* 2024년 8월 27일 화요일. 여전히 맑고 뜨겁다.
하워드 정원 앞이다. 몰타 섬의 옛 수도 임디나(Mdina)는 신분이 높은 귀족들이 모여 살던 요새다. 이 요새 바깥쪽에 하워드 정원(Howard Gardens)이 있다.
하워드 정원은 주로 서민들이 거주한 라바트(Rabat)와 신분이 높은 귀족들이 모여 산 임디나의 경계 지역에 있다. 오래된 돌 십자가가 보인다. 정원은 1942년에 개장했다.
정원 이름은 몰타 초대 총리인 조셉 하워드(Joseph Howard, 1862~1925)의 이름에서 따왔다. 정원 입구에 조셉 하워드의 동상이 있다. 동상의 모양이 미국 워싱턴 링컨기념관에 있는 링컨 좌상과 모습이 비슷하다.
좀 더 걸어가면 숲을 등지고 정치가 폴 쉬에렙(1923~1994,Pawlu Xuereb)동상이 있다. 몰타 하원의장으로, 1987년에는 몰타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조각가 Anton Agius가 디자인 한 청동상이다.
지나가는 주민이 자기들의 대통령이었다고 설명해주고 간다. 이제는 임디나 라바트 지역을 살펴보기로 했다. 임디나가 지배계급이 살던 성내라면, 평민들이 살던 성외 마을의 이름은 라바트이다.
뜻은 아랍어로 근교라는 뜻이다. 라바트는 모로코의 수도 이름이기도 하다. 라바트 역시 아랍 이슬람 지배의 흔적이자 몰타어에 남은 아랍어의 흔적이다.
라바트에는 사도 바울이 몰타에 상륙했을 때 전도를 했다는 지하 동굴과 그 위에 세운 성당이 있다. 바울 유적을 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바울처럼 사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바울의 유적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 바울 Grotto, 카타콤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조금만 걸어가면 성당을 만난다. 연옥에 있는 거룩한 영혼들(Soul in Purgatory)을 표시하는 지역을 먼저 만났다. 성인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성 바울의 기념비(St. Paul’s column)도 있다. 도로변에는 성 바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성 바울 교회를 본다. 교회 동편 그늘에서 잠시 앉아서 건빵과 사과를 먹는다. 배가고프니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주 맛있다.
교회 건너편에 있는 비냐고트(Wignacourt) 박물관을 찾았다. BC800년경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부역 도중 몰타 섬에 정착을 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몰타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원에 위치한 임디나와 라바트에 거주하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 로마 통치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이곳은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도시 중심가에 무덤을 만들면 위생상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도시 외곽에 로마 무덤 카타콤을 만들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임디나 외곽 라바트 지역이란다. 비냐코트는 1601년부터 21년 동안 몰타의 통치자였다.
1981년 라바트에 문을 연 비냐코트 박물관은 몰타 사람들에게 문화적, 역사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곳이다. 입장료는 6유로다. 시니어는 4.5유로다. 박물관뿐 만 아니라 전시회, 카타콤, 성 바울 동굴 성지 순례까지 가능한 곳이다.
박물관답게 여러 가지 물건들이 전시되어있다. 특히 중세 시대의 성구들과 그림들이 많이 보인다.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갈6:14)는 사도 바울의 대리석 기념비도 보인다.
황소와 성인을 조합해 놓은 조형물도 보이고 바울의 동상도 보인다. 동굴로 들어가니 동상이 있는데 바울의 동상이다. 교황에게만 열어준다는 철문 사이로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 밀어본다.
바울이 이곳에서 3개월 머물면서 기적의 역사를 보여주고 몰타 인들에게 예수를 전했다고 기록된 곳이다.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나니아의 동굴이 생각난다. 카타콤도 들어가 보았다.
이탈리아의 카타콤, 터키의 카타콤보다 규모는 작고 얕다. 그래도 엄청 길다. 출구를 못 찾아 헤맸다. 장례를 마치고 함께 식사했다는 Agape Table도 찾아보았다. 굴을 파던 철재 기구들이 모아둔 곳도 보았다.
핍박받은 개신교인들이 있던 곳이란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폭격으로부터 대피하던 장소로도 사용되었단다. 수 천 명이 이곳으로 대피했단다. 각자의 방을 손으로 긁어서 만들었을 정도로 부드럽고 견고했단다.
44개의 방이 교회와 카타콤과 연결되어 있다. 글로비게리아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몰타의 면적 가운데 78%를 차지하는 몰타 섬의 핵심부는 서쪽에서 높이 185~245m에 달하는 높은 산호질 석회암 고원이다.
그 주위를 둘러싼 검푸른 점토질의 경사지는 남쪽으로 높이 125m인 글로비게리아(해양 원생동물) 석회암 지역으로 낮아지고 있단다. 이 같은 지질학적인 조건들은 물이 여과되어 지하수로 저장되기에 유리하단다.
1530년에 만들어진 바울이 새겨진 돌 메달도 있다. 몰타의 대표적인 화가 마티아 프레티(1613~1699)의 초상화와 그림도 있다. 몰타에서만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접이식 제단도 있다.
종교성이 강한 성 요한 기사단은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접이식으로 기도하는 제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왕족의 관, 바울 상, 여러 가지 종들, 그림 성화. 십자가 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예수님의 수의 복사본이 이곳에 있다. 바티칸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본 품을 대고 그대로 그렸다고 하는 복사본이다. 배도 고프고 지친다. 구경만하고 다니니 눈이 빠질 것 같다.
교회가 있는 광장은 뜨겁다. 이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오래된 작은 성당도 지나간다. 광장이 나온다. 조각가 안톤 아귀우스(Anton Agius)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물고기와 개 두 마리가 함께, 조각가의 끌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둥근 로터리 가운데에는 아기를 앉고 있는 수도사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차들이 분주히 돌아간다. 우리는 버스를 기다린다. 53번 버스를 타고 발레타로 돌아간다. 에어컨이 살살 나오는 버스는 시원하고 좋다. 중간에 갑자기 내렸다. 버스표에 시간이 있어 다시 공짜로 버스를 타고 간다.
엄청 뜨겁다. 발레타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맘이 편하다. 줄지어있는 푸드 트럭에서 페페로니 피자 한 조각(2유로)과 빵을 샀다. 몰타의 명물인 파스티치(Pastizzi)빵이다. 특별 간식이다.
우리는 리코타 치즈가 들어간 빵을 샀다. 다진 완두콩 소가 들어간 것도 하나 샀다. 종류가 다양하다. 기름기와 치즈향이 가득이다. 가격도 저렴하다.
하나에 0.8유로다. 배가 고파 당장 먹고 싶었으나 그늘이 있는 벤치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할 수 없이 봉지에 담아 들고 숙소로 왔다. 숙소에서 먹는 피자와 빵은 정말 맛있다.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행복했다. 잠시 숙소에서 쉰다. 오늘이 몰타에서 마지막 밤이다. 내일은 비행기를 타고 튀니지로 간다. 숙소에서 나와 저녁 산책을 한다.
늦은 오후 중앙 도로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골목길 식당에는 손님들이 가득 앉아있다. 바다가 보이는 내리막 골목길은 바람이 불고 그늘이 되어 사람들이 많이 걸터 앉아있다. 숙소 식당 건물을 쳐다본다.
평범한 건물인데 뫁타 다운 예쁜 건물이다. 성 요한 성당으로 걸어간다. 정문 광장에는 여전히 파라솔 식탁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가득하다.
제 6대 몰타의 총리였던 엔리코 미치(Enrico Mizzi) 흉상 아래에도 여행객들이 서너 명 앉아있다. 발레타 동상이 있는 광장까지 걸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시간을 아쉬워하는 것 같다.
열려 있는 교회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사람들이 많다. 줄을 서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물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 가게 앞에서는 백발의 노장 가수가 키타를 치면서 노래를 한다.
신청곡도 들려준다. 캐리커쳐(Caricature)를 그려주는 거리의 화가들도 바쁘다. 기념품가게에 전시된 발레타, 몰타 글씨가 들어간 가방도 눈에 들어온다. 법원 앞 광장에는 공연 준비 무대를 설치하고 있다.
빅토리아 동상이 있는 광장에는 식탁 파라솔에 사람들이 엄청 많아 빅토리아 여왕이 보이지도 않는다. 골목길에 즐비한 식당과 꽃가게, 기념품 가게도 예쁘고 훈훈하다.
다리가 아프다. 날이 어두워지고 화려한 조명이 하나 둘 들어온다. 숙소로 돌아왔다. 뜨거운 물을 끓여 사발면을 먹는다. 저녁이다. 튀니지 숙소를 예약해두고 오늘을 정리한다.
*8월 27일 경비 – 버스비 10유로, 박물관 8유로, 카타콤 10.5유로, 피자, 빵 5.3유로, 아이스크림 5.5유로. 숙박비 151,000원. 계 209,500원. 누계744,075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