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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9월 3일 화요일. 덥다, 35℃, 모래바람, 비.
여기는 스베이틀라 아침이다. 테라스로 나서보니 공기가 좋다. 로마 유적이 내려다보인다. 어제 돌아다니던 유적터가 내려다 보인다. 동쪽에서 해가 보석처럼 떠오른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간다. 아침 6시라 준비가 안 되어있다.
조금 기다리니 준비가 된다. 호텔에 손님이 없어서인지 조식이 부실하다. 마지못해 주는 것 같다. 토마토가 좀 상했다. 빵과 계란, 요플레와 잼으로 배를 채운다. 호텔 규모에 비해 실망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대문을 나선다. 건너편 벌판에는 올리브 나무가 예쁘게 심어져 있다.
루아지 터미널로 향한다. 거리가 좀 멀어 보여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루아지 터미널에서 카이루안 가는 루아지를 알아보니 루아지가 없단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소박하게 생긴 기사가 와서 그림으로 설명해준다. 수스 행을 타고 가다가 카이루안에서 내리면 된단다.
그렇게 해야겠다고 맘먹고 수스 행 루아지를 타고 간다. 기사에게 카이루안 입구에서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요금은 수스 행까지 요금이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가더니 휴게소에 선다. 아침식사를 하는 것 같다. 오고 가는 다른 루아지들도 모여든다.
휴게소가 있는 길가에는 가로수가 길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들판에는 올리브 나무가 넓게 자라고 있다. 잠시 후 루아지는 다시 달려 우리를 카이루안 입구에 있는 로터리 길가에 내려주었다. 호텔 이름을 찾아서 메모를 하고 택시를 기다린다.
날이 무척 뜨겁다. 한참을 기다린 것 같다. 택시를 겨우 잡아서 호텔(HOTEL CONTINENTAL)을 간다. 택시 미터기를 켠다. 살펴보니 0.9디나르부터 시작된다. 3디나르를 지나니 호텔이다. 호텔의 터가 넓다.
수위가 있는 대문을 통과해 건물로 들어서니 리셉션이 나온다. 친절하게 아가씨가 우리를 맞아준다. 환영 주스도 한잔 주고 디저트 설탕과자도 준다. 시원하고 구수하고 달콤했다. 테라스도 있는 넓은 방이다.
그런데 라면을 끓여 먹을 도구, 커피머신이 없다. 뒷마당에 있는 수영장은 물이 없고 청소중이다. 시내 구경을 나섰다. 숙소 앞 저수지 입구에 도시 안내판을 타일로 만든 것이 있는데 잘 그렸다.
길 건너편에 관광정보 센터 2층 건물이 있다. 명승지 6곳을 들어갈 수 있는 통합 입장권을 끊었다. 두당 12디나르(4,800원)다. 도심 지도를 한 장 얻었다. 2층 전망대로 올라가 커다란 수조를 구경하란다.
계단을 올라가니 보고 싶었던 저수조가 보인다. 감격이다. 이 물 저장고는 아그라비드 왕조 때 건설되어 아그라테 물 저장고로 불린다. 이곳은 9세기경 세워졌다.
약 30Km 떨어진 산으로부터 물을 끌어온 것으로 지금은 별것 아니라 생각되지만, 당시로는 대단한 공사였다. 카이로우안에는 약 50여 개의 저주조가 남아 있으며, 여기는 규모가 가장 큰 것부터 3개가 있다.
물이 귀한 이곳에 도시를 이뤄 살 수 있었던 것은 아그라바 물 저장고 때문이라고 한다. 700년대 아글라비드 왕조시대 대부분의 도시들이 강이나 부근에 수원이 있었으나 카이루안은 항상 물 부족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아글라비드 왕조는 860년 이곳에 저수지를 짓기 시작하여 2년 만에 완공을 하였다. 서쪽의 커다란 것은 지름이 127미터, 깊이가 4.8미터고 동쪽의 작은 것은 지름이 34미터라고 한다.
물을 끌어와 작은 저수지에서 불순물을 걸러 큰 저수지로 보낸다고 한다. 이 저수지 덕분에 사막의 불모지대에서 천 년이 넘도록 카이루안에 물을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길가에는 석관 무덤으로 보이는 건물도 있다.
이제 내려와 본격적으로 카이루안을 찾아본다. 메디나를 향해서 골목길을 걸어간다. 그늘이 없어 뜨겁다. 카이루안(영어: Kairouan)은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에서 18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카이루안이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대상"(隊商)이라는 뜻을 가진 '카르반'(페르시아어)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이슬람교 수니파에서는 카이루안을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과 동등한 제4의 성지로 여긴다. 1988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카이루안(Kairouan)은 튀니지에 건설된 최초의 이슬람 도시이다. 이슬람 사원은 신앙생활의 중심으로서 도시의 위상과 종교적 신성성을 표현하는 상징이었다,
그들은 새 도시의 중심부를 메디나(Medina)라고 불렀다. 원래 메디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헤자즈 지방에 있는 도시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헤지라(聖戰)를 시작한 곳이다. 이슬람권에서는 메카, 예루살렘과 더불어 3대 성지에 해당한다.
그러나 새로 개척된 도시에도 메디나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신성한 도시로서의 의미를 표현했다. 이후 메디나는 ‘도시’라는 보편적인 의미로 통용됐다. 카이루안 Kairouan 은 아랍의 군사 작전 기지로 670년에 건설된 이후로 오랫동안 튀니지-아랍의 수도였다.
아마지그(Amazighe)는 이슬람 정복기 이전부터 사하라 사막을 포함한 북아프리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베르베르(Berber)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베르베르는 그리스어로 ‘야만인’, ‘미개인’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사실은 베르베르인, 즉 아마지그 인이 북아프리카의 토착민이자 선주민인 셈이다. 당시 아마지그 인들은 무슬림의 침략에 저항하며 그들을 계속해서 공격했으므로, 따라서 무슬림들은 아마지그인들을 피해 안전하게 도시를 세울 장소를 물색해 울창한 숲 속에 카이루안을 세웠다.
서기 800년 아글랍(Aghlab)이 튀니지 지역의 사령관에 오른 후 독자적으로 권력을 세습화했다. 이 아글랍 왕조는 카이루안을 중심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나갔으며, 로마가 건설했던 수로와 도로 등을 활발히 복구해 기간시설을 확충했다.
또한 그들은 농업을 발전시켜 올리브 재배를 활발히 하는 동시에 수공업 발전을 촉진시켜 가죽, 보석, 직조 기술을 발전시켰다.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카이루안은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했다. 카이루안 Kairouan 에는 수많은 모스크가 있다.
우리는 그레이트 모스크가 보이는 길 건너편에 도착했다. 흰색으로 칠해진 비석들이 가득한 무덤 지역이 나온다. 커다란 대포 2개가 성채를 지키고 있다. 그레이트 모스크 탑을 보면서 길을 건넌다. 그레이트 모스크로 들어간다.
875년경 건설된 그레이트 모스크는 동서쪽으로 기둥들이 줄지은 회랑이 있고, 북쪽에는 미나렛(첨탑)이 있다. 대 모스크, 시디 오크바(Sidi Oqba)는 671년 카이로안을 설립한 시디 오크바(Sidi Oqba)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8m 높이의 벽과 31.5 m 높이의 미나렛(minaret)은 거대한 요새를 방불케한다. 모스크는 기도실과 광장의 두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입구 양쪽으로 사막의 건조한 모래처럼 메마른 색조의 벽돌로 만든 긴 회랑 사이사이에 짙은 고동색의 나무로 만든 문들이 벽면과 멋진 조화를 이루며 예배당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든다.
중앙 문 안쪽으로 들여다보니 커다란 원추형의 등을 달아 놓았다. 이 대大 모스크는 마그레브(Maghreb) 이슬람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마그레브는 대체로 오늘날의 북아프리카 지역, 즉,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아우르는 지역을 말한다.
아랍어로 "해가 지는 지역" 또는 "서쪽" 이란 뜻의 알마그리브(Al-Maghrib)라는 단어에서 유래한다. 기도실의 목제 설교대(minbar)는 전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디 오크바 모스크에는 무함마드의 측근 중 한명인 아부 자마(Abu Djama)의 시신이 안치 되어 있는 등 이슬람 역사에서 중요한 건물로 인식되고 있으며 다른 마그레브 지역의 모스크들을 건설하는데 큰 영감을 주기도 했다. 쿠란의 구절을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사원의 기둥이 보인다.
돋을새김은 음각보다 작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작업량도 많아진다. 양각의 두께만큼 굵은 기둥을 더 깎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8m 높이의 대 모스크 외벽, 담벽의 코너에는 장식용으로 보이는 코린트식의 기둥이 붙어 있다. 400여개의 대리석 기둥이 모스크를 떠받치고 있다.
기둥 상단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높이 5미터에 이르는 기둥은 로마, 비잔틴, 아랍시대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목각은 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기둥을 보면 코린트식이 제일 많고 이오니아식도 보이고 드물게 도리아식도 찾아볼 수 있다.
고대 로마의 유적지인 Sbeitla, Carthage, Hadrumetum, Chemtou 등에서 신전과 공공건물 용으로 사용했던 것을 모두 가져와 건설했다. 특히 로마의 유적지의 자재를 가져와 사용됐다. 모스크 내 넓은 마당,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빛으로 가득한 세로 135m, 가로 80m의 약간 어그러진 직사각형의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마당이다.
좌측 년단 위에 해시계가 있고, 빗물을 저장하는 시설인 수조가 지하에 있다. 수조에 공기를 통하게 하는 시설도 안뜰 사방에 보인다. 물 저장 시설은 강수량이 적은 지역인 이슬람권에서는 필수조건이다. 17개의 본당과 7개의 구역으로 되어 있고, 주 기도소는 다른 곳보다 훨씬 넓고 높다.
모스크 내 예배장소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있다. 기둥은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로마시대 유적지에서 수거해 온 기둥들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둥의 모양이 제각기 다르다. 이곳에는 414개의 로마 기둥이 있고, 모스크 내의 모든 기둥을 다 합치면 500여 개가 넘는데 일일이 다 세면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믿음 때문에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밖에서 본 그레이트 모스크의 벽이 마치 성벽같이 보인다. 카이로우안은 50여개의 모스크가 있는 이슬람 성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나렛 중 하나인 높이 31.5m의 미나렛은 도시의 랜드마크다. 미나렛Minaret (모스크의 첨탑)은 아랍어의 머나라(menarah)에서 왔는데 이는 등대라는 뜻이다.
미나렛의 역할은 기도시간을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멀리서도 모스크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높이 세운 것이 처음 목적이었단다. 시원한 비율의 3단으로 디자인한 미나렛은 당시 사막의 등대역할을 했단다. 기도소 앞에는 물컵이 여러개 보인다.
그레이트 모스크를 나와서 구시가지 골목길을 걷는다. 지도에 있는 번호대로 모스크를 찾아 걷는다. 구 도시 메디나는 넓은 면적으로 불규칙하게 뻗어 있고 1772년 알리 파샤 베이(Ali Pasha Bey)의 명에 의해 건설된 7.5k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러번의 외침을 받았다고 한다. 건물 벽을 장식한 인상적인 무늬와 색깔의 모자이크를 발견했는데 얼핏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오려서 불럭 짜 맞추기 식으로 완성한 것으로 알았으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몇 개의 정형(定形)된 무늬로 사전에 불럭을 만들어 짜 맞춘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치밀하게 계산된 모양의 무늬일 뿐만 아니라 짜 맞추기도 결코 수월한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9세기에 세워진 삼문 모스크(Mosque of the Three Gates)를 찾았다. 생각보다 작고 소박하지만 오래되 보이는 모스크다.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란다. 아치 위에 새겨진 서체와 문양들이 보인다. 866년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이슬람 건축에서 아주 중요한 곳으로 쿠파체(현존하는 이슬람 세계의 필체 중 가장 오래된 체)가 새겨진 곳으로 3개의 아치는 안달루시아(스페인 남부) 양식이란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파란 대문이 인상적인 블루 모스크, 성자의 무덤의 모스크를 발견했다. Mausolee SIDI ABID GHARIANI. 8세기에 세워졌다는 화려한 글씨가 인상적인 모스크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기하학적 문양을 갖고 있다.
줄지어진 아치는 얼룩말 문양을 하고 있다. 조각과 문양이 섬세하다. 천장도 목조로되어있는데 조각이 섬세하다. 초록색 천으로 덮힌 영묘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AU MUSEE ARABE) 건물이 붙어있다.
사방 메디나 골목 끝에는 약 4km에 달하는 성벽을 따라 4개의 성문이 있다. 모양과 이름이 모두 다르다. 아랍식 골목을 돌다보면 또 다른 골목들과 마주치는 작은 광장이 나오고 작은 가게가 나타난다.
가게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메디나의 미로같은 골목은 세월을 비켜간 듯 중세의 냄새를 간직하고 있다. 길고 단순한 골목이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가 튀어나온다.
골목에서 길을 물으면 방향만 가르쳐주면 되는데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엄청 친절하다. 가끔은 팁을 요구하는 손짓을 한다. 길을 묻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커다란 시장 골목이 나타난다. 수크다.
천장에는 파란색 그늘막이 길게 쳐져있다. 시장 모퉁이에는 신발 가게 건물이 나타난다. 카페트도 판매하는 2층 건물이다. 소박한 모스크도 보인다. 베야라 바자르(Bellara Bazar)라는 글씨가 보인다.
시장에 있는 이 건물은 식탁보나 벽걸이(Tapis)를 제조하는 공장이다. 수작업으로 제품(Tapis)을 짜는 장인을 볼 수 있다. 골목길을 돌다가 비르 바로우타 우물(Bir Barouta)을 찾았다. Barrouta 7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메카의 성스러운 물, 비르 바로우타 우물이다. 층계를 올라가 2층 집 안에 있는 우물을 중심으로 낙타가 원을 돌면서 물을 퍼 올리는 특별함이 있다.
이 우물은 수평으로 누워있는 톱니를 낙타가 돌리면 이와 연결된 수직의 톱니가 돌아가며 우물 속의 물을 길어 올리는 구조다. 깊이가 18.5m라고 한다.
우크바 장군의 병사 중 한 명이 모래에 묻혀있는 황금잔을 우연히 발견한 자리에서 발견한 샘이라고 한다. 사막 한가운데서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던 우크바 장군은 우물 발견으로 도시개발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눈을 가린 낙타는 목에 형형색색의 스카프를 두르고 꼬리 부분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관광객들이 들어와 둥근 형태의 우물가에 앉으면 낙타는 우물을 중심으로 천천히 돌면서 물을 길어낸다.
이 우물은 메카의 신성함 젬젬샘에서 온다는 전설로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성스러운 물로 알려져 있다. 낙타가 길어 낸 이 우물 맛을 볼 수도 있다.
낙타가 우물 주위를 돌면서 커다란 바퀴를 돌리면 줄에 매달린 항아리가 물을 퍼 담아, 돌아가는 세로 바퀴를 따라 끌어 올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를 Noria 또는 Sakia라고 한다. 현재는 폼일 뿐 물을 긷는 것은 아니다. 홍보 판넬 사진에는 물 항아리가 세로 바퀴에 붙어 있었다. 그래도 진열된 컵으로 물을 마실 수 있다.
오래된 흑백 사진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시장 골목으로 나왔다. 낙타 인형이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Musee Amor Abada)을 만났다. 1261년에 세워진 건물로 아모르 아바다의 영묘가 있는 곳이다.
카페트를 만드는 과정이 전시되어있고 고가구와 다양한 아랍식 문양들이 전시된 박물관이다. 지도를 보고 걷다보니 메디나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도로 옆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로터리 안에도 기념비가 보인다. 작은 공원이 숲과 산책길을 가지고 있다. 복잡한 길을 건너면 오른쪽에는 어린이 놀이터 Kids Land가 보이고 킹콩도 보인다.
길 건너편에는 광장있고, 그 광장에는 평범해 보이는 2층 건물이 나온다. 이발사의 사원 MOSQUEE DE BABIER 또는 시디 사브의 영묘 MAUSOLEE DE SIDI SAHAB라고도 불리는 ABU ZAMA EL BELAOUI의 영묘가 있는 곳이다.
685년에 죽은 그는 동료였던 이슬람예언자 무함마드의 턱수염 몇 가락을 경외의 표시로 가지고 다녔고 무함마드의 전속 이발사이기도 해서 이곳을 이발사의 사원이라고도 한단다.
이곳은 사원과 이슬람학교와 영묘가 한 곳에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호메트의 친구로서 그가 왜 서쪽 마그레브까지 와서 잠들어있을까.
멀리도 왔다는 생각이 든다. 서늘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타일로 꾸며진 벽화와 스투코 장식은 이곳이 안달루시아와 마그레브땅임을 느끼게 해준다.
입구는 허술해 보이는데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학교 운동장이기도 한 이곳을 지나 북서쪽의 탑이 있는 곳으로 들어서면 타일 문양이 화려한 현관이 나온다.
현관을 나서면 양쪽으로 회랑이 이어지는데 여기도 타일로 화려하게 장식을 했다. 회랑의 끝에서 야자수 잎을 상징하는 듯한 문양이 있는 돔이 있는 곳을 지나면 회랑으로 둘러싸인 광장이 나온다.
서북쪽으로 하얀 돔이 얹혀진 지붕 아래로 영묘가 안치된 방이 있다. 물 항아리와 컵도 보인다. 뜨거운 날씨에 계속 돌았더니 지친다. 거의 메디나를 한 바퀴 돈 셈이다. 숙소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늘이 반갑다.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시원한 음료수와 요플레를 샀다. 가는길에 허름한 리어커에서 샌드위치 빵을 만들어 팔고 있다.
고추소가 들어간 매운빵이다. 감자도 튀겨준다. 숙소로 와서 빵과 감자로 점심을 대신한다. 맛있고 맵다. 오후 1시 40분이다. 숙소에서 쉰다.
아내는 낮잠을 잔다. 오후 늦은 시간에 아직 해가 하늘에 그대로 있다. 아글라비드 저수지 바로 앞에 커다란 슈퍼마켓 MONOPRIX가 있어 찾아간다.
길을 두 번이나 건너야 하지만 먼 거리가 아니다. 아이스크림과 아이락, 복숭아 등을 사니 장바구니가 두둑하다. 숙소에서 드거운 물을 구해서 누룽지와 멸치로 식사를 한다.
고추장에 볶아온 멸치는 이제 끝이다. 저녁에 바람이 불더니 비가온다. 비가 옆으로 앞으로 미친 것 같이 내린다. 청소해 둔 수영장이 날아든 낙엽으로 다시 엉망이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비를 보는 것은 좀 신기하다.
*9월 3일 경비 – 택시비 7.8, 스베이틀라에서 케로우안 루아지 34, 입장권 24, 음료수 4.1, 빵 5, 숙소 팁1, 청년가이드 2, 슈퍼 16.4, 숙박비 현금 75.9유로(106,260원) 계 143,980원. 누계1,48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