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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전을 달리며[189km 외발자전거 하이킹 후기]
작성일: 2007년 4월15일
작성자: 김경수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처에게 나, 이번 일요일에 하루 종일 없을 거야, 하고 말한 게 3일 전.
미쳤어?!, 라고 짤막한 답변이 돌아 왔다. 승낙의 답변임을 확신했다.
콩나물이라는 웹사이트에서 가야할 길의 거리를 계산하느라 며칠 째 살았다. 집에서 사당역사거리까지 약 28km, 사당역사거리에서 대전까지 155km정도 나왔다.
일자형 프레임 대신 가지 모양의 헌터프레임을 장착했으며 크랭크는 알루미늄 114mm 로 달았다. 안장 밑에 손잡이가 달려 있고 거기에 유선 속도계도 달았다.
출사표엔 도전이며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고 했지만 사춘기적 발상 아닌가?
속도계를 장착하기 위해서 며칠을 고생했다. 기존의 무선속도계의 계기창이 없어져서 찾는 데 몇 시간을 허비했고 기숙님이 주신 것도 장착해 보았지만 결국은 실패.
아주 먼 거리를 갈 때는 속도계가 중요하다. 계기판의 숫자를 보면서 달리는 것도 큰 재미다. 기숙님 댁에 잠깐 들렀더니 푸하하하! 그렇게 달고 싶었던 유선 속도계가 있지 아니한가.
우여곡절 끝에 장착에 성공! 야호!!!
준비는 다 됐고 자고 나면 출발이다. 주말인데 함께하지 못한 유영, 유수에게 미안하다.
물론, 처에게 미안하다. 미안한 게 왜 이리 많은지 갔다 와서 더 잘 해야지.
혹시 몰라 머리맡에 알람을 맞춘 휴대전화까지 놓고 잔다. 잠이 오질 않는다. 머리 속엔 온통 속도와 시간과 관련된 숫자만 떠오른다.
03시 40분쯤에 일어날 계획이었는데 03시 15분에 눈을 떴다.
지난밤에 챙겨놓은 물건들을 가방에 넣고 하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4시에 가까워진다.
집을 나서니 엘리베이터가 집 앞에 대기하고 있다. 시작부터 행운이다.
자고 있는 처에게 갔다 올게, 했더니 너무 어둡지 않아?, 하고 묻는다. 긴 여행길을 흔쾌히 승낙해준 아내가 고맙고 출발하는 길을 염려해줘서 또 고맙다.
드디어, 출발이다. 2007년 4월 8일 04시 05분. 서울 상계동 중랑천자전거도로 녹천교 밑.
‘빠르지 않은 속도로 가자’ 수없이 다짐한다. 심한 언덕길이 나오면 즉시 내려서 걸어간다. 걸으면서 쉬는 거야, 하며 작전을 세운다.
가로등이 있다지만 길은 어둡고 공기는 차갑고 눅눅하다. 자꾸 계기판에 눈이 간다.
몇 번은 균형을 잃을 뻔하기도 하고...
10km쯤 지날 때 사고가 터졌다. 전력질주하며 계기판을 보다 넘어지고만 것이다.
손잡이 끝에 종아리를 긁혔지만 다행히 부상은 피했다. 넘어지면서 입에서 튀어나온 말 “큰일 날 뻔 했구나!”
수없이 달린 길이지만 갈 길이 멀어서인지 처음 가는 길처럼 낯설고 징검다리 건너는 듯하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달린다. 이미 절반은 온 거야, 하고 어거지를 써보기도 한다.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자전거도로 끝자락에서 뚝방길로 접어들었다. 급경사다. 잔차에서 내렸다. 내린 김에 사진 몇 장 찍어본다. 어둠 속의 이정표 정도지만.
내가 나를 찍어본다. 난 100m 미남이야!
나를 찍는다는 건 순 엉터리야, 하고 사진 찍는 걸 포기한다.
살곶이 다리다. 원효대사가 놓았다는 얘기도 있다. 울퉁불퉁한 이곳을 낑낑대며 타고 갔을 텐데 참기로 했다. 이런 길을 아슬아슬 타는 재미도 별나다. 걸으면서 안내문을 보니 잔차에서 내려 건너란다. 위험하고 문화재를 보호해야한다고 적혀 있다. 그동안 몰랐던 것 알게 된다.
어제 밤 일기예보는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다.
한강변으로 접어든다. 좀더 넓은 세상이다. 서해 쪽에서 불어와야할 바람이 없다. 아침이 다가오나 보다. 행인들이 하나 둘씩 지나간다. 운동을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속엔 젊은이는 없다.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다라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외발자전거는 걷는 것만큼 생각을 많이 하게하는 스포츠다. 별의별 생각이 다 나고 저절로 하게 된다. 그게 가끔 엉뚱한 것도 있지만. 그래서 100권의 책보다 한번의 여행이 낫다, 라고도 하나보다.
희미하게 잠수교가 보인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오가는 차도 없다. 잠수교를 막 건너는데 젊은 녀석이 건너편에 서서 낚시를 하고 있다. 이 근처에 사는 녀석일까? 날은 샌 것일까? 아니면 방금 전에 나왔을까? 걸어서 왔을까? 차를 타고 왔을까? 차를 이용했다면 차는 어디쯤 뒀을까? 이것저것 추측하며 달린다. 잠수교를 건너는 건 이번이 네 번째다. 항상 기분이 좋다. 모든 회원들이 이곳을 건너봤으면 좋겠다. 색다른 맛을 느낄 것이다. 바다사이를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자전거전용도로는 다 달렸다. 이젠 차도다. 자전거 타기엔 인도나 자전거도로보다 차도가 훨씬 낫다. 자전거도로를 날림으로 만들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차들을 작게 만들어서 자전거도로로 다니게 하고 자전거는 차도로 다니는 거야!
엉뚱한 생각인가?
사당역사거리 근처 식당으로 들어선다.
자리에 앉으며 시계를 보니 05시 55분이다. 1시간 50분이나 걸렸다. 너무 천천히 달린 것 같다.
계기판엔 28.1로 지나온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벽면 곳곳에 [병천순대전문]이라고 어지럽게 쓰여 있다. 옆자리에 청년들이 시끄럽게 몸자랑을 한다.
삼각형이니 뭐니 하면서. 수학시간인가?
TV가 시끄럽다고 떠들어댄다. 순대국이 앞에 놓이고 반찬이 놓인다. 쪼갠 마늘과 엇썰은 풋고추에 빨간 고춧가루가 군데군데 보인다. ㅠ ㅠ
다른 누군가 먹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눈에 안 보이게 멀찍이 밀어둔다. 모든 반찬이 의심스럽다. 식당에 들어설 때 밖에서 청소하던 노인이 식당 안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청소하던 장갑을 그대로 낀 채다. 구이판에 뚜껑을 덮는 일인데, 이건 아니잖아~~
다시는 이곳에 들르나봐!
06시 25분.
여기선 화장실도 가기 싫다. 조금 위로 가니 주유소가 있다. 오래전부터 모든 주유소의 화장실은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게끔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저글링샵의 서상만님이 일주일에 한두 번 출퇴근한다는, 부산과 해남 갈 때 지났다는 남태령이다.
서울을 벗어나는 거야, 하며 외친다. 대전까지의 끝 차선은 내가 반드시 점유해야 할 영역이다. 무엇보다 나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쌩쌩이들을 무서워해서 갓길로 쫒겨날 필요는 없다.
자전거 도로라고 인도 옆에 있긴 하지만 도로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 아마 저 길로 가다가는 화병이 나서 수원쯤 가서 주저앉을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순 엉터리다. 나쁜 놈들!
무엇이든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남태령을 버스전용차선으로 달린다. 버스가 알아서 비켜가겠지. 적어도 오늘만은 외발잔차의 전용차선이다.
차로 오를 때보다 가파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년 장성고개 넘을 때가 생각난다. 그거에 비하면 쨉도 안된다. 제법 속도도 낼 수 있다. 난, 언덕이 좋다. 비빌 곳이 있어서 그러나?
요즘 언덕은 비빌 곳이 없다.
중간쯤 오르니 나보다 더 느린 놈이 있다. 뒤에 2개씩 4개, 앞에 2개 바퀴달린 포크레인이다. 풍! 나보다 느리다니 푸하하하!
힘차게 페달을 돌려 그놈을 앞서가니 흥이 돋는다.
과천시내를 오른쪽으로 두고 달린다. 가을에 이곳에 오면 낙엽이 뒹구는 게 장관이다.
여기도 인도에 자전거도로가 포장되어 있다. 자전거도로처럼 포장한 건 아닌지...
과속차량들로 가득한 도로 위를 질주하는 게 차라리 낫다. 난 차도가 좋아!
새벽에 출발한 게 잘한 일인 것 같다. 아침을 맞으면서 쭉 뻗은 길을 달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쾌한 일이다. 아직도 서울 안이었다면 답답해서 힘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몸은 새벽이 아니라 한 여섯 시쯤 일어난 걸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새벽에 일어났다면 시계는 쳐다보지 않는 게 한 방법이다. 보더라도 스치듯 보면서 기억에서 지우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몸은 평소 일어나던 때 깬 것으로 알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안양을 지난다. 아직까진 버스 외엔 오가는 차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전진에 있어 신호등이 걸림돌이다. 아니, 빨간 신호등이 문제다. 누가 이리 신호등을 많이 만들었나? 신호등 만드는 회사는 떼돈을 벌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놈 만드는 회사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떤 정권하에서는 국내에서 하나뿐이었단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 잠시 벤치가 있는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바나나도 먹어본다. 아침 먹은 지가 불과 몇 십 분인데.
수원초입에 들어서니 전화기가 불났다. 전화 오는 소리도 나고 문자오는 소리도 나고 가방속이 요란하다. 마침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뀐다. 고마운 빨간 신호등!
선태형님 전화다. 점심을 같이 하자신다. 야호~~
수원거리는 서울에 비해 약간은 어수선하다. 물청소를 자주 하지 않나 보다.
서울은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게 유행이다시피한데 수원은 아닌가 보다. 멋진 것처럼 보이는 고가도로다. 과속하는 차들 뿐이니 나도 한번 올라타 보자.
시내를 벗어나니 비상활주로가 펼쳐있다. 저 앞에 두발이가 신나듯 달린다. 같은 여행객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얼른 따라가서 말 좀 걸어보자. 그런데 아니다.
거의 따라잡는 순간에 갑자기 옆길로 샌다. 김도 샌다.
활주로를 가는 차들은 웃긴다. 자꾸 내가 달리는 쪽으로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워낙 쌩쌩 달려 달아나니 무섭다. 결국 옆으로 옆으로 밀려 달린다. 나쁜 놈들!
오산에 접어들었나 보다. 자전거의 생활화라고도 적혀 있고 또 다른 여러 내용의 문구들이 공사장 철재벽에 산만하게 쓰여 있다. 저렇게 적어놓고 세뇌시키는 것인가? 그건 ‘오산’이다.
그래서 오산인가?
여전히 도시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은안 든다. 길 양 옆으로 아파트들이 즐비해서 그렇고 흙냄새가 없어서 그렇고 그을음 천지인 내 옷을 봐서도 그렇다. 농촌이 모두 도시가 되고 도시는 그대로 도시로 남아 있다. 갖가지 쓰레기들이 길가에 무관심하게 널려 있다. 쓰레기는 자원이고 돈이라고 하는데 돈이 굴러다닌다. 무거워질 가방을 생각하니 돈 줍는 일은 포기해야겠다.
대전가는 길은 숫자 투성이다.
바닥에 ‘60’이라고 적혀있다. 욕심 부리지 말고 가라는 뜻이다.
욕심 부리지 말자, 다짐한다.
‘80’이라는 숫자도 있다.
80km/h로 가라는 것인지 80km/h처럼 달리라는 것인지 헛갈린다.
욕심과 팔심(힘) 뿐이다!
안장이나 손잡이를 잡고 달리기 때문에 팔힘이 필요하다. 팔힘을 많이 쓰면 어깨가 아플 수 있다. 욕심을 버리고 팔심(힘)을 잘 이용해야겠다.
밤새 숫자놀이만하다 깨어났는데 달리는 중에도 그렇다. 속도계 숫자와 도로표지판의 숫자를 셈해 보니 예상거리보다 10km 늘어났다. 192km를 달려야하는구나.
평택시가지사이로 (1)번 국도가 뻗어 있다. 천안이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시선을 가끔 앞쪽 멀리 두기도 하고 옆쪽으로 두기도 하고 기분을 새롭게 해본다.
고개를 뒤로 돌려선 안 된다. 뒤를 볼 필요가 없다. 날 싫어하는 차들은 알아서 비켜가겠지.
가끔 졸음운전자의 차에 치어 멀리 논바닥까지 날려 떨어지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헬맷을 착용했으니 팔다리는 부러져도 죽지는 않을 것이니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비상식량으로 준비한 연양갱을 계속 달리면서 먹기로 했다. 이런 게 여유며 풍류인가?
잔차 위에서 뭔가를 까먹는 거, 좋은 것이다. 재미도 있다. 커피를 마시며 달리던 안재선님이 떠오른다. 함께 길을 떠났으면 좋았을 텐데 내 욕심 때문에 나만 용맹한 것처럼 달린다.
여하간 까먹는다는 말은 좋은 말이다.
천안에 들어선지 5분여.
그 넓은 차도가 차들로 꽉 찬다. 핑계 삼아 걷는다. 36인치 자전거는 탈 때나 걸을 때나 눈에 잘 띈다. 멀리서 보니 말을 타고 오는 것 같다고 하신 분이 생각난다.
예식장 주변이라 예식하객들 차량과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차량들끼리 뒤죽박죽이다.
걸으면서 휴대폰에 쌓인 문자를 확인해본다. 광주의 김철님의 문자도 와 있다.
대구, 광주, 부산 여기저기서 온 문자를 보니 기분도 좋아지고 힘이 다시 쏟는다. 천안삼거리를 지나 선문대학교 앞에서 대전팀을 만났다. 선태형님, 강신권님 내외가 차를 몰고 오셨다. 특별히 잘난 구석도 없는데 점심 한 끼 사주신다고 여기까지 오시다니 감동이다. 먼 길을 가던 차에 아는 분을 이렇게 만나는 것도 커다란 기쁨이다. 휴일인데 시간까지 쪼개서 먼 길을 마중 나오시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시원한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두 캔을 마셔댔다.
우렁된장쌈밥, 내장탕이 점심 메뉴다. 영양보충을 위해서 마구 먹어댔다. 우렁된장쌈밥은 충청도 음식의 단골메뉴인걸로 아는데 맛이 특별나다. 입맛 떨어졌을 때 식욕이 돋는 그런 음식이다.
잠깐 사이지만 수많은 얘기를 한다. 이러다가 끝이 없이 시간이 지나갈 것 같다. 대화의 내용이 공동관심사라면 으레 있는 일이지만 갈 길이 멀고 밥을 먹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게 마음에 걸린다.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페인 성분이 들어있어 지구력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커피. 그러고 보니 새벽에 출발할 때 마셨어야 하는데 못 마셨다. 불현듯 생각이 난다. 무슨 일을 하든 빠뜨리는 게 하나씩 늘어가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내일 출근해서 일할 수 있겠느냐, 라는 물음에 제 몸이 알아서 할 것이니 별 걱정 안 한다고 자신 있게 답변 드렸다. 내가 어찌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소화는 잔차 위에서 하기로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내 뒤에서 호위차량이 따라온다.
점심 얻어먹은 것도 황송한데 대전까지 뒤에서 호위해주신단다. 정말 정말 고마우시다.
이제 뒤에서 나는 차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든든한 두 형님이 마치 마라톤 트레이너처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난, 최선을 다해서 컨디션을 조절하며 앞으로만 가면 되는 것이다.
나를 위협하며 앞서가는 차들은 없다.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차가 없으니 이 보다 편하고 안전한 하이킹은 없다.
그래 이건 즐거운 하이킹이다.
운전석과 조수석 지붕위로 태극기가 휘날린다. 국가대표선수가 된 느낌이다. 그리고 쉴 때마다 두 분이 어깨며 다리를 인정사정없이 주물러 주신다.
먼 거리를 달려서인지 오른쪽 무릎 옆쪽으로 통증이 온다. 내리막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할 근육을 썼기 때문이다. 과거 내리막에서의 몇 번의 넘어짐이 나쁜 추억으로 되살아나는 때문인가? 내리막에서 달리기를 더 연마해야겠다. 재인이나 재선님처럼 까이꺼, 하면서 휘저어줘야 하는데...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양말을 좌우로 바꿔 신는다는 걸 자꾸 잊어먹는다. 쉬는 참에 양말도 바꿔 신고 안장높이도 약간 높게 조절해 보았다. 통증이 없어졌는지 괜찮다. 내리막에서 더 효과를 봤다. 좋은 생각이었다. 왜 좀더 일찍 판단을 못했을까?
안장을 한번 더 높였다. 키도 커진 느낌이고 통증은 아예 사라진다. 야호!
천안에서 대전가는 1번 국도는 차량도 그리 많지 않고 외발자전거 타기에 환상적이다.
회원여러분에게 강력히 추천해 본다.
몸이 이상해진다. 오전에 있었던 탈수 증세는 아닌데 열을 많이 빼앗겨선지 몸이 뜨거워진다. 열감기 증세 같기도 하고 몸살기가 생긴 것도 같다. 하긴 150km를 달리는데 여기까지 버텨준 내 몸이 정상이라면 사람이 아니지. 벗었던 긴 바지를 다시 입었다. 내 생각이 맞았나보다. 체온유지를 하니 몸살기도 없어진다. 빠른 판단은 일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법 중의 하나이다.
대전 시내에 확실히 접어들었다. 복잡한 곳에 이르러 선태님 차량과 헤어졌다. 대전팀 모임장소에 먼저 가셔서 외발자전거를 타고 다시 나오기로 하신 것이다.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물어물어 남문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대전의 3대 하천중 하나라는 갑천, 그 옆을 달린다. 이 길은 빨리 달리는 곳이 아니다. 아주 천천히 앞도 보고 물 건너편도 보고 오른쪽도 보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손도 흔들어주고 말 거는 사람에게 답변도 해 주며 간다.
비갠 후의 하늘처럼 하늘의 구름이 몽실몽실하다. 길이 좌우로 기울어져 있어 구름 위를 걷는 것도 같다. 조깅로 옆에 펼쳐진 잔디며 풀밭이 맘에 든다. 그냥 무조건 누워서 하늘을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곳은 서울처럼 풀 위에 공해물질은 없을 거야!
저기 앞에 선태형님이 외발자전거를 타고 오신다. 아는 사람이 외발자전거를 타고 나타난다는 거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그 위에서 오가는 인사말들, 여러 얘기들 항상 추억이 된다. 장모가 사위를 맞듯 오시는 모습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서울10km 마라톤대회에 아빠와 참가했던 태권이도 온다. 김영일 지역장님도 오신다. 은혜도, 나루도 온다. 강신권님도 자전거를 타고 오신다. 물론, 외발자전거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좀더 가니 대전의 모든 회원이 박수로 완주를 축하해 주신다. 신성규님은 내 다리를 만져보신다. 이상이 없나 살펴보신 것이다. 호! 호! 전, 아주 멀쩡합니다.
36자전거가 신기하신 듯 만져도 보시고 굴려도 보시고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더 기뻐하시고 축하해 주신다.
50년을 훨씬 넘게 장사를 했다는 식당에서 닭도리탕으로 보양도 하고 서울촌놈이 호강을 한다. 기차도 2시간 뒤로 미루고 소주도 한잔. 캬~~~ 이 맛이란?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끝이 없이 나온다.
서대문역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며 1시간을 같이 보낸다.
(저녁 9시가 넘도록 함께해주신 대전회원님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먼 길을 오고감에 이처럼 큰 마중과 배웅은 처음이다. 이런 게 삶이다. 기쁨이다. 행복이다.
덩치 큰 36애마를 들고 걱정반 근심반으로 차에 오른다. 승무원이 의외로 친절하다. 사정을 얘기했더니 손님 따로 물건 따로 갈 수 없지 않는냐, 한다.
별도의 보관 장소가 있으나 불편하니 자가기 쉬어야 할 승무원실에 세워두라 한다. 잔차를 놓으니 승무원을 위한 공간이 없어진다. 미안한 생각도 들고 고마운 생각도 든다.
피곤했을 텐데 잠이 오지 않는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닌다.
용산역에 내려 집으로 오는 전철을 탔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다.
대전에서 집까지 2시간 걸렸네!
약간은 허망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추억을 또 만들 것이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온종일 자전거 타기, 저녁부터 해뜰 때까지 밤새면서 타기. 두 가지 소원 중 하나를 이루었다.
외발자전거타기의 매력은 시간이 갈수록 큰 목표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목표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표가 세워지는 스포츠, 얼마나 멋진가.
성공과 안전을 기원해주시고 응원과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주신 전국의 CUA 회원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태권, 나루, 은혜, 김선태님, 강신권님과 형수, 김영일지역장님, 신성규님, 이혁근님, 김영재님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함께한 소중하고 멋진 시간들 영원히 가슴에 간직하겠습니다.
달린 거리: 189km(서울 노원구 상계동 중랑천 자전거도로 녹천교 밑 - 대전남문광장)
총 소요 시간: 14시간 30분
출발: 07. 04.08 04:05
도착: 04.08 18:35
탑승시간: 10시간 31분
식사 및 기타시간: 3시간 59분
사양: 알루미늄114mm 크랭크, 36인치 바퀴. 유선속도계 장착함.
준비물: 물, 연양갱 2, 쵸코바3, 바나나 5, 디카, 갈아입을 옷과 양말 한 켤레, 한 장의 수건, 스포츠고글.
▣ 김경수의 서울-대전간 외발자전거 달리기를 기록한 사진들보기
http://www.unicycle.or.kr/zeroboard/bbs/zboard.php?id=photo&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735
http://www.unicycle.or.kr/zeroboard/bbs/zboard.php?id=photo&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