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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중간 학원
“민호야!”
힘없이 걸어가고 있는 내 발걸음을 뒤에서 잡았다. 수호다. 올해 다른 반이 되었지만 둘도 없는 내 단짝 동무다.
“왜?”
워낙 기분이 바닥이라서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돌아봤다.
“그냥.”
맥 빠진 내 저기압이 번개같이 전염이 되었는지 수호도 힘없이 딱 한 마디다.
“왜?”
“그냥.”
난 또 왜라고 물었고 수호 역시 또 그냥이다. 별일이 없다는 대답이지만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 평소 같으면 형님이 부르는데 대답이 공손하지 못하느니 대답 소리가 작다느니 하면서 생트집을 잡을 건데 말이다. 수호는 내보다 두 달 먼저 났다고 입만 열만 형님이란다. 형님인 척 하려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수호도 안다. 가깝고도 가까운 사이라는 다른 표현이다. 그걸 알기에 그 말이 싫지 않다. 오늘 같은 날 그런 말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수호 역시 기분이 꿀꿀한 모양이다. 이럴 땐 누구라도 이 저기압에서 벗어날 말을 꺼내야한다. 분위기를 바꾸는 선수는 수혼데 오늘은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를 이런 분위기를 끌고 가서는 안 된다. 괜히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홀길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섰다. 수호를 빤히 쳐다봤다.
“왜?”
이번에는 수호가 ‘왜’다. ‘그냥’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저기압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형님 얼굴에 무슨 근심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말이지만 분위기를 치료할 좋은 말이다.
“그래? 살펴보니 무슨 걱정이 보이는고?”
역시 수호는 눈치가 빠르다. 금방 장난기로 받았다.
“수학 학원 가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게 보입니다.”
학원가기 싫다는 건 내 마음이기고 하지만 수호 얼굴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야, 니 귀신이냐?”
수호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면서 내 머리를 툭 쳤다. 머리에 스위치가 달린 건지 한 대 얻어맞자마자 축 쳐져있던 어깨가 쑥 올라갔다.
“형님도 내 얼굴 좀 살펴보세요. 형님도 금방 귀신이 될 겁니다.”
“아우 얼굴에는 영어 학원 가기가 싫다는 점괘가 나오는구나!”
“형님! 형님은 과연 귀신입니다.”
우리는 오른 손바닥을 쫙 펴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탁 소리가 나도록 세게 했다. 손바닥에도 스위치가 있는지 기분은 더 좋아졌다.
오늘은 정말 영어 학원에 가기 싫었다. 숙제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하겠다고 미뤄놓았는데 축구가 문제였다. 축구를 한 게 잘못이다. 솔직히 말하면 잘못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 학원 숙제 한다고 학반 대항 축구를 어찌 빠질 수가 있겠는가. 다시 그런 일이 와도 나는 축구를 선택할 거다. 수호도 축구 때문에 수학 학원 숙제를 못했단다. 당연하다. 오늘 점심시간 축구는 우리 반과 수호네 반 경기였으니까. 문제라면 나처럼 점심시간으로 학원 숙제를 미뤄놓은 게 문제고 잘못이다.
“수호야, 니 기분 꿀꿀한 것 이해가 된다. 축구를 이긴 나도 이런데 삼대 빵으로 깨진 니 마음이야 오죽하겠나.”
수호 등을 두들기며 약을 올렸다.
“야, 동생! 지금 위로하는 거야, 놀리는 거야!”
수호가 내 정강이를 건드리듯이 툭 찼다. 정강이에도 스위치가 있는지 기분은 더 더욱 좋아졌다.
“무슨 말씀? 놀리다니요 감히 형님을.”
일단 꿀꿀한 저기압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산뜻한 날씨로 다 바뀐 것 아니다. 학원 가야할 일은 그대로 남아있어서다.
“땡땡이 어때?”
수호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한 말이다.
“좋다! 나도 그 말 하려는 참이었어.”
밑도 끝도 없이 수호가 내뱉었지만 나도 대번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 우리는…….”
수호가 ‘우리는’에 리듬을 넣었다.
“호호! 2호! 두호! 투호!”
우리 둘은 박자와 리듬을 맞춰 크게 외쳤다.
호호, 2호, 두호, 투호는 우리 두 사람을 묶어 부르는 별명이다. ‘호호’는 1학년 때부터 동무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수호와 민호에서 ‘호’자를 따서 지은 거다. ‘2호’와 ‘두호’는 작년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지어줬다. ‘투호’는 얼마 전에 우리 아빠가 지어준 별명이다. 영어 별명이라서 가장 고급이라고 아빠는 뻐겼다. 남의 별명 지어주고 뻐기는 사람은 처음 봤지만 싫지 않았다. 이게 우리 두 사람 별명 역사다.
“어떻게 칠래?”
땡땡이치자는 데는 죽이 딱 맞았지만 땡땡이를 어디서 어떻게 할지에서 그만 꽉 막히고 말았다. 우리 둘은 어린이놀이터 나무 걸상에 앉아서 머리를 굴렸다.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학원에 가야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저기압으로 곤두박질이다.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탈출한 건데. 우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맞다! 그거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턱을 괴고 있던 수호가 갑자기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를 내질렀다.
“뭐야? 신통방통한 방법이라도 떠올랐어?”
놀라는 척하면서 수호를 빤히 쳐다봤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수호는 야단스러운 몸짓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선수다.
“있지. 있고말고. 나는 역시 천재야. 이럴 때 그게 떠오르다니.”
“진짜 뭐가 떠오르기는 한 거야? 뭔데? 어디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장난이 아닌 듯했다. 내가 급하게 따발총을 싸댔다.
“내가 며칠 전에 어떤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어느 교장 선생님이 어린 시절을 쓴 이야기가 있었어. 글 제목이 ‘중간 학교’인데 학교에 간다고 나서서는 학교에 가지 않고 중간에서 친구들과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았대. 그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대나 어쩐 대나.”
“내 그럴 줄 알았다.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 이야기가 지금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말이야?”
“왜 상관이 없어? 중간 학교나 중간 학원이 뭐가 달라.”
수호는 학원 뺑뺑이를 ‘중간 학원’이라고 제 멋대로 이름을 지었다. 그러면서 전화기를 꺼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이 형님만 믿어. 우선 전화기부터 꺼내.”
“왜?”
“왜는 뭐가 왜야. 학원으로 문자를 보내야지. 일이 있어 못 가게 되었다고.”
중간 학원의 첫 단계인 문자 보내기. 그게 쉽지 않았다. 적당한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에 들어갔다. 오랜 고민 끝에 방송부원인 나는 학교에서 특별촬영이 있다고 둘러댔고, 수호는 상담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느라 못 간다는 핑계를 댔다. 설마 학교에까지 전화를 할까 싶어서 짜낸 꾀다. 학교에 확인 전화를 한다고 해도 괜찮다. 엄마에게만 하지 않으면 된다. 학교 일이라고 했으니 엄마에게 전화를 할 턱은 없다. 안심하고 문자를 보내고는 우리는 전화기를 껐다. 위치 추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 중간 학원 장소만 찾으면 된다.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쿵덕쿵덕 방아를 찧는 것 같기도 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설레고 기대가 되어서다. 가방을 둘러메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사람들 눈에 쉽게 띄지 않을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 놓고 놀 수 있어야 한다. ‘중간 학교’ 글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고 했다는데 그런 곳은 도시 한복판인 이곳에는 없다. 오이와 참외 서리도 했다고 했는데 그런 논밭 역시 여기에는 없다. 우리는 범인을 찾는 형사라도 된 듯이 두리번거리면서 골목을 다녔다. 마음은 급했지만 골목을 함부로 휘젓고 다니는 것도 조심스럽다. 수상하게 여긴 누가 신고라도 하면 중간 학원이고 뭐고 끝장이다.
“이러다가 작전이 실패하고 말겠다. 조금 전에 우리 옆 집 여빈이 어머니가 지나갔어. 불안해 못 견디겠어.”
수호는 말소리를 한껏 낮춰 소곤대듯이 말했다.
“맞아, 나도 조금 전에 우리 옆집 누나가 가는 것을 봤어.”
나 역시 모기소리를 내며 수호 말을 받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위장이라도 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에는 걱정이 밀려온 두근거림이다.
수호와 나는 문방구에 가서 장난감 색안경을 사서 꼈다. 안경알은 까맣고 테는 하얀 플라스틱 안경이다.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야, 저기!”
앞에 가던 수호가 눈을 반짝 거리며 한 곳을 가리켰다. 골목 안 빈집이다. 그 집은 몇 년 전부터 비어 있었는데 귀신 집이니 유령의 집이니 하면서 가까이 가지 않던 곳이다.
“빈 집이잖아.”
“빈 집이니까 좋지.”
좋고 안 좋고를 따질 형편이 아니다. 어디에라도 몸을 감춰야 했다. 대문을 살짝 밀어봤다. 큰 문은 잠겼지만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문은 열렸다. 마당에 깔린 바닥벽돌 사이로 풀이 자라고 있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깨끗했다. 현관문 손잡이를 살짝 돌려봤다. 잠기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열었다. 손잡이를 잡은 수호가 긴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얼굴이 굳어질 대로 굳어있다. 수호가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것은 처음 본다. 내 얼굴은 더 했을 거다. 조금 열고 틈새로 안을 들여다봤다.
“야, 야, 야, 야 저거 뭐야?”
수호가 잔뜩 겁먹은 소리를 하며 무엇을 가리켰다.
“어디, 어디, 어디?”
수호가 가리키는 곳에는 뭔가가 있었다. 펄럭펄럭 하면서 얼굴이 벽 뒤에 숨었다 나왔다 한다. 하얀 색이라서 더 무서웠다.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이번에는 진짜 무서워서 생기는 두근거림이다.
“수호야, 돌아가자.”
내가 덜덜 떨면서 수호 옷을 당겼다.
“가만있어 봐!”
수호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거실은 빈 집 같지 않았다. 누가 살고 있는 듯이 깨끗했다.
“괜히 겁먹었네. 수건이잖아.”
거실 안쪽 벽에 헌 수건이 걸려 있었다. 조금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펄럭펄럭 움직이고 있었다.
“어? 이건 또 뭐야?”
이번에는 내가 먼저 찾아냈다. 현관 문 앞에 있는 헌 신발장 위에 종이가 놓여있었다.
무서운 곳이니 이 안으로는 함부로 들어가지 말 것. 유령 귀신 도깨비 |
“야, 수호야, 이 안은 무서운 곳이래. 들어가지 말자.”
벌써 거실에 한 발을 들어놓고 있는 수호 목덜미를 당겨 종이쪽지를 보여줬다.
“에이, 옛날 집 주인이 우리 같은 장난꾼들이 들어가지 말라고 써놓은 걸 거야. 겁낼 것 없어.”
수호는 이제 모든 게 안심 된다는 듯이 가방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여기 밑에 유령, 귀신, 도깨비라고 한 건 뭐야? 진짜 무섭다. 돌아가자.”
나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 겁쟁이야, 자기가 스스로 유령이라고 하는 유령 봤어? 그런 귀신 봤어? 그런 도깨비 봤냐고?”
수호가 핀잔을 주듯이 말했다.
“유령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도깨비도 아니다 하는 것은 봤어?”
나는 수호가 자꾸 겁쟁이로 모는 것 같아서 은근히 기분이 상해서 대들어봤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눕기나 해.”
수호가 가방을 베고 거실에 드러누웠다. 나도 따라 누웠다. 편했다. 무서움이 사라졌다. 두근거리던 가슴도 조용해졌다. 그때였다.
“수호야, 이게 무슨 소리야?”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수호에게 보냈다. 수호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다.
“나는 이 세상에서 이곳이 최고 좋아.”
“그걸 말이라고 해.”
“오늘은 뭐하고 놀래?”
현관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목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대는 소리지만 방안까지 들렸다.
“어, 뭐야? 진짜 귀신이나 도깨비가 오는 게 아니야?”
용감한 척 하던 수호도 겁먹은 얼굴이다.
“어어쩌지? 사람 살리라고 소오오리 지르자.”
나는 떨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숨자. 다락방으로 올라가자. 얼른!”
우리는 가방을 챙겨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다락문을 닫았다.
“그런데 누가 왔다 간 것 같은데?”
“오기는 누가 와.”
“여기 종이쪽지가 제자리가 아닌데?”
“놓을 때 잘못 놓았겠지.”
“그런가?”
세 사람인 것 같다. 혹부리 영감과 도깨비 이야기가 떠올랐다.
“6학년 민기 형?”
“도현이 형아 목소리도 있어.”
맞다. 우리 아파트 위층에 사는 민기 형 목소리가 분명하다. 껄껄한 도현이 형아 목소리도 틀림없다. 또 한 사람은 잘 모르겠다. 셋은 거실에 드러누워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기침이 나올라 그랬다. 목구멍이 간질간질 했다. 참느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목에 힘을 주고 침을 삼켰다.
“우리가 너무 자주 땡땡이치는 게 아니야?”
도현이 형아 목소리다.
“두 달에 한 번인데 뭐?”
민기 형아 목소리다.
“지난달에 했잖아.”
“맞다. 지난달에 했지. 한 학기에 한 번씩만 하자고 했잖아. 오늘은 학원 가자.”
“그러자. 난 지난번에 엄마가 눈치를 챈 것 같아 죽는 줄 알았어.”
“엄마도 엄마지만 너무 자주하면 여기서 우리보다 먼저 뺑뺑이 치는 중학생 형아들에게도 들킬 수 있어.
“그래, 오늘은 가자. 2학기 때 날 잡아서 하자.”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지. 가자.”
“그럴까. 한 학기에 한 번만 뺑뺑이를 치는 우리는 모범생이야. 가자.”
수호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웃었다. 나도 입을 막고 웃음을 참았다. 세상에 학원 뺑뺑이를 치면서 스스로 모범생이란다. 소가 웃고 개가 놀라 자빠질 일이다. 우리는 소리는 내지 않고 표정으로 웃고 또 웃었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닫히고 마당 대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듣고 다락에서 내려왔다.
“휴, 기침이 나서 죽는 줄 알았다.”
“하하하, 형아들이 우리보다 중간 학원 선배네.”
“어디 그것뿐이냐? 중학생 선배들도 있다잖아.”
“그러네. 한 지붕 세 가족이네.”
“진짜 웃기잖아? 자기들이 모범생이래. 그게 말이 돼?”
“하하하 호호호 풋풋풋 킥킥킥”
우리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동작은 크게 소리는 작게 웃었다. 몸으로만 웃으니 배가 더 당기고 아팠다.
우리는 귀신도 없고, 유령도 없고, 도깨비도 없는 거실에서 마음 놓고 중간 학원을 했다. 형들이 왔다 간 너무나 안전한 곳에서 뒹굴뒹굴 했다. 텔레비전도 없고 전화기도 없지만 괜찮았다. 많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 교장 선생님 글에서는 굉장히 재미가 있었다고 했는데 ‘굉장히’는 아니다. 그치?”
수호가 조금 심심한지 이렇게 말했다.
“거기는 시냇물도 있어서 물고기도 잡고, 논밭이 있어서 서리도 했다고 했잖아. 그런 게 없는 빈 집에서 하는 중간 학교가 이 정도면 되지 뭘 더 바라나?”
내 말에 수호도 끄덕거렸다.
“그런데 조금 심심하기는 하다.”
내가 수호 엉덩이를 발로 툭 찼다.
“나도 조금 심심하기는 하네.”
우리는 ‘투호’ 맞다. 심심한 감정도 똑같이 일어난 거다.
“심심한데 학원 숙제나 할까?”
내가 먼저 영어 숙제장을 꺼냈다.
“맞다. 그것도 시간을 보내는 한 방법이다.”
수호도 수학 숙제장을 꺼냈다.
“형들이 모범생이 아니라 우리가 모범생이다. 그치?”
“맞아. 중간 학원하면서 학원 숙제하는 학생 나와 보라 그래.”
우리는 빈 집에서 그렇게 학원 숙제를 하면서 ‘중간 학원’을 마무리 했다. 가방을 챙긴 우리는 도둑고양이 마냥 살금살금 빈 집을 빠져나왔다.
“나는 오늘 이 이야기를 나중에 커서 반드시 쓰고 말거야.”
수호가 ‘반드시’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 글을 읽고 우리 자식들이 중간 학원 하면 어쩌려고?”
내가 두 손을 내저으며 안 된다는 시늉을 했다.
“당연히 따라 해야지. 힘 빠질 때 얼마나 좋은 약인데. 경험을 해놓고도 그런 말을 해.”
수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근데 수호야, 학원 숙제한 이야기도 반드시 써. 그것도 따라 해야만 우리 자식들이 모범 중간 학원생이 되지.”
나도 ‘반드시’에 힘을 주어 부탁을 했다.
“걱정 마시라. 내 글을 읽은 아이들은 모두가 행복한 중간 학원생이 되도록 할 테니까 말이야. 하하하.”
수호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개선장군처럼 가슴을 내밀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하하하”
수호 뒤통수에 대고 일부러 큰 웃음으로 맞장구를 쳐줬다. 왜냐하면 우리는 호호, 2호, 두호, 투호니까. 그리고 수호처럼 가슴을 내밀고 당당하게 걸었다. 기분이 최고로 좋아졌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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