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적 여행 기록문
강 희진 (예산군 문화유산 해설사)
행운의 시작
행운의 여행이다. 다른 문화유산 해설사 선생님의 양보가 만들어 준 행운이었다. 또 처음에 4박 5 일인 줄 알았기 때문에 온 행운이기도 했다. 사실 6 일까지는 무리였다. 농촌 일이라는 것이, 특히 가축를 기르는 입장에서는 더욱 무리한 비움이었다. 닷새를 간신히 끼워 맞춰 놓고 가기 전일에야 6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처음부터 6 일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계획도 하지 않았으리.
이렇게 시작된 행운은 또 다른 행운을 불렀다. 함께 가게 된 모든 분이 내겐 행운이었다. 그분들로 인해 행복했으므로. 6일 내내 화사한 웃음과 넘치는 기운을 함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른 분이 웃음의 화사함을 맞추고, 박수 소리의 키를 맞추고, 모두 기분을 맞춘다는 것은 모두에게 행운이었다.
장춘으로의 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장춘은 백두산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익살스런 가이드와 함께 대여섯 시간을 거처 숙소에 이르지만 이 긴 시간은 이제 곧 우리에게 익숙하게 된다. 처음에는 설레임으로 긴 시간을 버티게 되지만 나중에는 그저 익숙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엿새 동안 총 45 시간의 버스를 탔다.
바람의 나라
백두산의 첫 새벽이 밝다. 일어나 보니 현지 시간 4시였다. 그것은 한국 시간 5시를 의미한다. 이 시간은 평소 내 기상 시간이기도 했다. 처음엔 백두산을 본다는 설레임이 나를 일찍 깨웠다고 여겼지만, 나는 여행 내내 이 한 시간의 시차를 극복하지 못한다.
룸메이트의 단잠을 깨지 않기 위해 일찍 숙소를 나와야 했는데, 그러나 이 한 시간의 시차가 내게 가져다준 행운 또한 여럿이 있다. 한 시간의 새벽 산책은 다른 분들이 겪지 못한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백두산 천지를 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만이 열수 있고, 하늘이 열어야 사람이 볼 수 있다. 날씨가 좋기를 기대하며 숙소 밖으로 나왔다.
아 ! 날이 맑다. 하늘은 화창하다. 공기는 청량하다. 드디어 하늘이 열리는가 보다. 흥분을 감추기 위해 주변을 산책하다 숙소 뒤쪽에서 의외의 산책로를 발견하고 마음을 씻다. 이제 막 만들고 있는 숲속의 산책로다. 생 편목으로 숲속의 여백을 따라 다리를 놓고 숲이 행길을 만든다. 나는 그 숲속의 행길을 새벽과 함께 걷다.
멀리 눈 녹지 않은 백두가 보인다. 아침에 비가 온 것은 말하기 싫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들은 하늘이 열린 천지를 보았기 때문에. 다만 비가 마음이 서두르는 것을 차분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백두의 잔설이 마치 흰 바위 머리 같다. 그러나 마음이 빠르니 지척이다. 대협곡을 지나 서쪽 언덕을 타다. 서두르는 모습이 쉬 지칠 것 같더니 걸음 밑에 보이는 계단 숫자만 본다.
바람의 나라다. 1000 여 계단을 오른다는 것은 설레임보다는 긴 여정이다. 그 긴 여정을 내내 바람과 함께 한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또한 힘이다.
천지가 보인다. 아직 얼음이 녹지 않아 그 처연한 빛깔은 볼 수 없었지만 가슴이 벅차오른다. 만산의 조종이요, 민족의 영산이다. 무엇을 말하련만, 무엇을 쓰려하련만 불입문자다.
다른 분들 보다 조금 먼저 오른 탓에 느낀 쓰러질 듯한 감격과 감동을 잠시 뒤로 하고 다시 부산하기 시작한다. 그 부산함은 모두 함께 느끼기 위함이다. 사진을 찍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진 속에는 이 감동이 없다. 함성을 지르다. 그러나 그 함성에는 메아리가 없다. 주먹을 불끈 쥐고 기운을 느껴본다. 그러나 그 주먹에는 허함만 남는다. 단지 천지를 느끼는 법은 그저 바라본다는 것뿐이다.
추위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 후 한참이 지나서였다. 참 춥다. 언 손은 더 이상 카메라 셧터를 누르기 힘들었고, 감동 탓인지, 힘든 탓인지 무너진 다리 힘을 다시 바람에 받쳐 백두를 두고 내려오다. 천원짜리 따뜻한 커피가 다시 백두 천지의 감동을 그립게 한다.
점심 후 오는 가는 빗줄기가 우리들을 몰다. 이 또한 행운이다.
소심낙수 (小心落水)
집안이다. 환도 산성이 있는 곳이다. 고구려의 전시 수도이다. 무감동의 발맛사지를 받고 이동하여 온 숙소가 이곳이다. 새벽 산책을 하다 길가에서 소심낙수의 서각을 보다.
환도산성에 오르다. 천혜의 요새다. 절벽이 뒤를 받치고, 수구는 좁으니 가히 적들이 침입하기 어렵다. 넓은 대륙을 향한 포부가 숨어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단지 고구려의 옛 돌만을 보다.
우리들을 다시 놀라게 한 것은 광개토호태왕비다. 이곳에선 단지 내 정원을 잔디 대신에 크로바로 단장한다. 우리들은 잔디 속에 클로바를 잡풀로 뽑아 버리는 데 이들은 잔디를 잡풀로 뽑아 버리고 그 위에 크클바를 가꾼다. 잔디와 클로바....그 속에서 중국 혁명의 홍군을 보다.
그 크기의 위용에 놀라고, 그 거대한 포부의 역사에 놀랐다. 바로 강가에 두었다. 장수왕은 혹 이곳에 배수의 진을 치고 중국 대륙 정복의 꿈을 꿨을까. 그것은 장수왕릉도 마찬가지다. 동양의 피라미드라 불린다는 것이 실감나다. 그러나 단지 장군총이라 불린다.
‘그물처럼 피어오르는 맥주 거품’과 함께 점심을 먹고 오녀 산성에 오르다. 다쳤던 관절이 아파왔지만 끝내 가마를 타지 못하고 염치를 배우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 전설에서 따온 산의 성일 뿐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 역사의 횡적 팽창이다. 중국은 역사의 외연 확대를 위해 종적으로는 하, 은, 주의 이전 전설의 역사를 사실화해나가는 작업을 하였고, 종적으로는 그 외연을 동북 공정의 이름으로 우리 조선의 땅까지 넘어왔다. 정치와 역사의 외줄을 넘나들며 이미 고구려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극복하지 못한 한 시간의 시차로 환인 산성으로 가는 새벽 산책길가에 돌에 새겨놓은 서각, ‘소심 낙수’. 떨어지는 낙수를 조심해라. 떨어지는 낙수가 바위를 뚫는다는 격언이 그들의 동북공정에 빗댄다. 우리가 되새길 말이다. 그것은 다음날 북한과 맞대고 있는 호산장성이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는 안내표지판에서 극을 달했다.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삼학사들의 울음이 들리는 누루하치의 심양고궁 앞에 있는 화표 위에 올려놓은 피수의 상에서 중국의 욕망을 다시 본다. 피수란 먹기만 하고 내놓지는 않는 동물이라고 한다.
모처럼 일과가 끝난 후 동기 선생님들과 소줏잔을 앞에 두고 화합을 이야기 하다.
숙소 앞 단동의 새벽은 참 건조하다. 뒷길로 새벽 산책길을 잡다. 새벽 시장이 작게 열리고 있다. 거리 책장수와 손짓 발짓으로 책 값에 대해 흥정을 하는 데 사람들이 밀물처럼 한쪽으로 쏠린다. 가설극장이 끝나고 바삐 돌아가는 사람들 같다. 어느새 나도 그들의 무리에 묻히다. 새로운 골목길에 접어들더니 가파른 언덕이다. 작은 표지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산이라는 것을 알다. 단동의 금강산이다.
생각보다 높다. 올라가는 대로 자기의 힘만큼, 자신의 몸 넓이만큼 터를 잡고 운동이 시작된다. 중국인들의 새벽 운동을 익히 보아왔지만 이곳은 좀 심할 정도다. 정상에서 만난조선족 노인의 말에 의하면 마땅한 운동터가 이만한 곳이 없다한다.
정상에 동천각 마당이 넓다. 이곳에서 한국 가락에 맞춰 수백명이 운동을 한다. 비로소 단동에서 중국을 보다. 이들의 모습이 끝내 잔상으로 남아 있더니 심양의 한 복판 중산로 육거리 로타리의 마오쩌뚱 동상을 받치고 있는 인민들의 얼굴에서 다시 또 다른 중국을 보다. 그들이 표정이 정말 압권이다. 그들은 저 희망으로 일어서고 있구나.
단동, 그 지척의 동포들
압록강이다. 듣기만 해도 백두산만큼 두근거리는 곳이다. 저 너머에 동포들이 살고 있다.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동포 아닌 사람은 비교적 자유로이 오가고 있다. 동포인 우리들만 못간다.
강물이 참 푸르다.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을 건넜지만 넘지는 못했다. 일하는 군인들을 보았지만 말을 걸지는 못했다. 다만 마음만 주다. 그들도 무심히 할 일만 한다. 군대 가서 처음으로 북한 땅을 보았을 때 보다는 충격이 덜했지만 똑같은 땅, 똑같은 사람, 같은 언어를 쓰는 동일한 민족이라는 게 교육에 의해서 가려진다는 것이 참 슬펐다.
끓어진 다리에서 기념 촬영을 하다. 모두 표정은 즐겁다. 이곳을 통해 중국 군인들이 오지만 안했더라도...참 아이러니하다. 무엇을 기념하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그러나 그 지척의 동포들을 의외로 쉽게 만나다. 두 끼를 북한 직영 식당에서 먹게 되는 데 이곳에서 그니들을 만나다. 노래도 함께하고 춤도 함께 추었다. 한 장에 50원 하는 '일분만에 제꺽 나오는 사진‘을 제쳐두고 내 카메라로 살짝 사진을 청하다. 점잖게 거절했지만 끝내는 슬쩍 포즈를 취해주던 그녀들이 아름답다.
저녁 식사가 또한 참 아름답다. 끝나가는 5박 6일의 고구려 탐방을 아쉬워하며, 함께한 여러 선생님들의 배려가 또한 아름답다. 이분들이 함께해서 행복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