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의 진정한 챔피언
최근 [슈퍼스타K4]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싸이는 어느 소극적인 참가자 앞에서 냉정한 목소리를 냈다. 그의 쓴소리를 요약하자면 빠른 시간 안에 정면승부를 하라는 것이다. 일반 관객이 됐든 엄격한 심사위원이 됐든 마주한 사람을 당장 죽여버릴 기세로 무섭게 덤벼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삐—‘ 음으로 처리된 확인되지 않은 욕설까지 섞어 싸이는 그렇게 강경하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수긍한다. 싸이라면 그렇게 조언할 수 있다.
데뷔곡 ‘새’부터 오늘의 ‘강남 스타일’까지 싸이는 공격적인 노래로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이력의 가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이는 덧붙였다. 특히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자기 노랠 좋아한다고 한다.
싸이가 남긴 여러 노래들을 헤아려보면 역시 수긍이 간다. 그는 끼 많은 사고뭉치들을 대변한다.
하지만 너무 나가지는 않는다.
그의 노래와 태도에는 공격성을 중화하는 재치가 있고, 문제적 가사의 최근곡 ‘77학개론’을 두고 심의 기준에 대해 막연히 성토하는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19금’을 선언하고 요청할 만큼 진솔하고 당당한 구석이 있다.
수위조절에 대한 이해가 있는 그는 결국 뻔뻔하지만 불편하지는 않은 캐릭터이다.
- 앨범명
- 6집 싸이6甲 Part.1
- 아티스트 및 발매일
- 싸이 | 2012.07.15
- 타이틀곡
- 강남스타일
- 앨범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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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한 여섯 번째 앨범을 통해 그는 기존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성공적인 재기의 아이콘이라는 평가를 추가로 얻게 됐다. 몇 해 전 어느 무대에서 “안녕하세요, 6년 만에 제대한 싸이입니다”라고 복귀를 신고했던 것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고단한 개인사가 있었지만,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최근 발표한 ‘강남 스타일’을 통해 제대로 무대를 점령했다.
게다가 싸이가 회복한 무대란 결코 협소하지 않다.
국내 인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유럽 클럽 차트 성적과 이른바 ‘오픈 콘x 스타일’로 들려 빵 터진다는 해외 반응을 토대로 ‘싸이 강제 미국 진출’이라는 진지한 농담이 오고 가기도 한다. 일본 시장 진출을 앞두고는 ‘롯본기 스타일’로 바꿀 것인가, 아니면 그냥 ‘강남 스타일’로 밀 것인가 하는 논의까지 이루어졌다.
이렇듯 ‘강남 스타일’은 숱한 뉴스가 쏟아질 만큼, 그리고 올해의 노래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매력적인 노래다. 당장이라도 여름 음악의 강자 LMFAO와 맞장뜰 수 있을 만큼 요란하고 풍성한 비트가 출렁이는 데다 따라부르기에 힘들지 않은 호흡의 랩을 동반했다. 무대에서 선보이는 각종 말춤은 누구든 당장 흉내내고 싶어질 만큼 친숙하면서도 웃겼다. 언제든 전세계에 노출될 수 있는 뮤직 비디오는 함께 출연한 유재석과 노홍철에 대한 이해가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먹힐 만한 센스의 연출이 두드러졌다.
무엇보다도 싸이의 성공은 점진적인 성과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어떤 노래든 빨리 나오고 빨리 접히는 상황, 즉 나오자마자 노래의 시장 가치가 신속하게 결정되는 오늘날의 분위기 안에서, ‘강남 스타일’은 처음 노래를 처음 선보였던 당시 이상으로 호응이 확장된 이색적인 경우다. 많은 가수들이 관심의 분산을 이유로 활동을 기피하는 올림픽 시즌을 통과하면서까지 살아 남았다. 이는 아이돌 시장의 과열이 한풀 꺾인 것, 혹은 정상적인 활동과 사고를 마비에 이르게 하는 올 여름의 미친 더위와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아이돌의 상큼한 미소와 정교한 군무와는 다른, 거기에 더해 땀으로 얼룩진 일과를 잊을 만한 강렬한 자극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이 시기 가장 완벽한 대안으로 등장한 ‘강남 스타일’은 앞으로 오랜 시간 꽤 효과적인 여름 노래로 입지가 굳혀질 것 같다. ‘아름다워’로 시작하는 주요 멜로디가 약간 힘에 부친다는 것을 제외하면, ‘강남 스타일’은 참 잘 만든 노래이자 국경과 세대를 불문하고 누구나 마음을 열 수 있는 노래, 그리고 필요했던 노래다. 따라서 노래의 성공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앨범을 열어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수록된 모든 곡에 ‘피쳐’가 등장하는데, 객원멤버로 도배된 앨범은 당연히 할 말이 많지만 반대로 가수의 역량을 엄중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그 화려한 출연진 때문에 주체와 작품의 본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싸이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다.
게다가 빅뱅의 지디부터 발라드의 귀공자 성시경까지 천차만별 성향의 협력자가 포진한 앨범이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박정현이 등장하는 ‘어땠을까’는 박정현의 특성을 살려 발라드 진행을 보이고, 윤도현이 노래한 ‘Never Say Goodbye’는 윤도현의 특성을 살려 록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장르/스타일과의 융화는 꽤 피상적이다.
객의 역할을 존중해야 하고 따라서 발라드도 하고 록도 해야 하는데, 거기에 또 싸이의 캐릭터를 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되는 존재는 중심을 찾지 못한 채 랩만 실어 나르는 싸이다. 토이의 원곡을 해석한 ‘뜨거운 안녕’도 아쉬운 구석이 많다. 성시경을 메인 보컬리스트로 기용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었지만, 과잉된 편곡은 결국 원곡을 그립게 만든다.
사정이 나은 곡은 강도 높은 가사를 동원해 리쌍 및 김진표와 호흡을 나눈 ‘77학개론’, 그리고 피쳐 지디의 역량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 오히려 득이 된 ‘청개구리’다.
‘77학개론’ 안에서 싸이는 힙합 가수가 아니면서 랩을 한다. 장르의 마니아들을 설득하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동의를 기다리는 순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랩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청개구리’는 직구로 승부한다. 키워드 설정과 내용의 전개가 다소 도식화되어 있긴 하지만, 거기엔 삐딱하면서도 후련한 싸이의 일관된 캐릭터가 있다.
결국 앨범을 살리는 역할은 ‘강남 스타일’이 맡고 있다. 앨범 전체의 맥락을 함께 구축한 작곡가 유건형과 함께, 싸이는 완연한 자신의 음악을 한다. 세상이 평가하고 기대하는 자신을 그대로 반영하면서도, ‘새’와 다르고 ‘챔피언’과도 다른 새로운 노래를 들려준다. 그건 굉장히 높이 살 만한 일이다.
젊고 사랑스러운 무리들이 가요시장을 손에 쥐고 있는 구조 안에서, 의외의 모델이 승리를 거뒀다. ‘앨범 시장’이 아닌 ‘싱글 시장’이라는 사실이 조금 아쉽지만, 어쨌든 싸이는 할 만큼 했다. 아니 기대 이상을 이뤘다.
첫댓글 대단해 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