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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오늘은 5월5일 하느님의 뜻의나라 동정마리아 5일째를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5일째 동정마리아의 묵상 주제는 천상 여왕에 대한 하느님의 뜻의 다섯 번째 단계입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시험에 대한 승리입니다.
어제 4일 성모님께서 시험을 넷째 단계인 시험을 거치고 오늘 다섯 번째 단계는 시험에 대한 승리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뜻의 다섯 번째 단계 승리를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그 과정 의미에 대해서 오늘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성모님 말씀 묵상 하기전에 먼저 배경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제 3가지 단계, 첫째, 둘째, 셋째 단계까지는 우리 인간이 할 일이 하나도 없고 하느님께서 전적으로 하셨다. 하는 것 우리가 봤습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것도 하느님의 뜻인 것 하느님의 뜻을 성모님이 주신것도 성모님이 하신일 하나도 없는데 그냥 거저 주신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으시고 나서 그 결과로써 능력, 하느님께서 성모님에게 능력, 사랑, 또 하나 지혜의 세가지 바다를 주셨고 이 3가지 이외에도 많은 하느님의 좋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성모님께서 여왕이 되셨고 만물의 지배자가 되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성모님이 거저 받으신 것입니다. 아담도 그 은혜를 똑같이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 단계가 시험인데 아담은 네 번째 단계에서 통과를 못한 것입니다. 시험에 떨어 졌습니다. 그런데 성모님은 네 번째 단계 시험에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승리를 하는 것이 오늘 다섯 번째 단계입니다.
그래서 네 번째 단계와 다섯 번째 단계 승리, 시험과 승리 이것을 우리 인간에게 적용시키면 성모님께서 세 번째 단계 까지는 아무것도 하시지 않고 거저 받으셨는데 우리인간에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인간은 좀 다릅니다. 어제도 말했듯이 원죄없이 잉태되지도 않았고. 또 아직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지도 않았고 또 그래서 그런 능력 과 지혜와 사랑도 받지도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네 번째 단계인 시험의 단계를 거쳐야하는 합니다.
시험의 단계를 거친 이후에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는 선물이 확고해지면 더 이상의 시험이 필요 없고 그 하느님의 뜻은 결정적으로 완전히 인간의 것이 되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을 사는 우리는 시험이 우리 앞에 드러나 있고, 시험을 통과하면 역시 똑같이 성모님께서 다섯 번째 단계 시험에 대한 승리에 그 결과처럼 똑같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 시작 세 번째 단계 까지는 차이가 있지만 네 번째 단계에서 부터는 성모님이 받으시고 또, 아담이 거쳐갔던 똑같은 단계를 우리가 받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대한 승리, 성모님께서 그 시험에 대한 승리 직전에 설명 하십니다. 우리가 아까 본 것닙다. 성모님께서 그 시험에 대해서 승리를 하게 된 성모님의 상태를 잠깐 보면 35쪽에 하느님께서는 중대한 모욕을 받으시게 되고 인간은 빗물처럼 쏟아지는 해악을 입게 된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의 뜻대로 하게 될 때 이렇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나는 내 뜻대로 하는 것에 대해 극심한 두려움과 반감을 느꼈고 그것은 당연한 두려움이기도 하였다.
극심한 두려움과 반감!! 자기 뜻대로 하는 것에 대해 떠는 것입니다. 떨립니다. 내 뜻대로 하면 떨려요. 떨림 이것이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느낌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성령의 반대는 악령인데 그럼 악령은 어떻게 하냐? 악령은 인간 뜻때로 자기 뜻대로 하는것에 대해 자유를 느끼게하고 해방감을 느끼게 하고 시원함을 느끼게 하고 순간적으로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오는 느낌 자체를 언제나 진실하게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물론 느낌 자체는 언제나 솔직하지만 그 느낌 자체가 항상 나에게 올바른 느낌이라고, 다시 말하면 내가 느끼는 이 느낌이 정당하다. 라고 우리가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느낌이 올 때는 이 느낌이 지금 성령께서 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악령이 주는 것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분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냥 느낌대로 사는 것입니다. 좋은 느낌이 오면 “좋다” 고 살고 나쁜 느낌이 오면 “왜 나뿐 거야” 그것을 물리칠려고 하고 무조건 물리 칠려고 하고 안되는 것입니다.
좋은느낌이 올 때 성령께서 주시는 느낌이라고 생각 될 때는 그 느낌속에 머물면서 내가 어떻게 이 느낌을 느끼게 됬는지 분명한 것은 느낌 이전에 생각이 먼전 온다고 그랬지요? 내가 지금 이런 느낌이 오는데 이 느낌이 오게 된 것이 무슨생각의 결과로 이 느낌이 올까? 를 자기 생각을 봐야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주시는 좋은 느낌이라고 하면 전에 있었던 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고 맞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 생각대로 살아 가야 하고 반대로 어떤 느낌이 오는데 이 느낌이 나쁜 느낌이다, 다시 좋은 느낌이 왔어요. 좋은느낌이 왔는데 분별을 해보니까 아, 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느낌이 아니고 좋은느낌 악령이 주시는 거야 악령!!
마치 도둑놈이 도둑질을 하면서 자기는 천만원 훔칠 려고 하는데 2천 만원이 있어서 이게 웬 떡이냐 기분이 좋죠. 그때의 좋은느낌 성령께서 주시는 거는 아니잖아요. 좋은느낌이 왔을 때도 이거 악령이 해주시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 때는 좋은 느낌이 있기 전에 왔던 그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 생각을 바꿔야합니다. 그 생각의 반대로 살아가야 하고, 그다음에 나뿐 느낌이 오는데 불쾌하다. 던지 떨린다 던지 두렵거나 여러 가지 반감, 가만히 생각해보니 성령께서 주시는 것 같다 그럴 때는 마찬가지 두려움, 반감, 나쁜느낌이 나오게 된 그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여기서 성모님 예를 들면 나는 내뜻대로 하는것에 대해서 극심한 두려움과 반감을 느꼈고 그것은 당연한 두려움 이기도했다. 이것은 당신 뜻대로 해보려고 하니까 내 뜻대로 살아야지 내 뜻으로 한다면 하고 생각할 때 두려움이 오니까, 이건 성령께서 주시는 거니까 어떻게 해애되요? 내뜻대로 하지 말아야 되겠다고 결정을 하는것입니다.
또 반대로 어떤 두려움 반감,이런 것이 오는데 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데, 악령이 나에게 주는거다.그럴때는 어떻게 해야하죠? 악령이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는구나.내가 지금 하느님의 뜻대로 할려 했는데 악령이 두려움을 느끼게 해줘요. 이건 악령이다. 라고 생각할 때 어떻게 해야하죠? 그 두려움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사탄아 물러가라!” 해야합니다.
가짜 두려움이고 가짜 반감이니까 빨리 “사탄아 물러가라“했을 때 사탄이 없어지면 두려움, 반감, 불쾌한 기분이 사라지고 평화가 오고 자기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대로 실천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성모님께서는 시험에 대한 승리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는데 일차적으로 느낀, 내 뜻대로 하는것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반감을 느낀 성모님 그러니까 아직 내뜻대로 하면 안되겠다 라고생각 하셨지만 여기에서 성모님은 한걸음 더 나아 가서 한단계 더 나아가서 그 밑에 그리하여 두려움 때문에 또 두려움 보다는 내 창조주에 대한 사랑에 이끌려서 내 엄마인 나는 절대로 내뜻을 따르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단순한 두려움과 어떤 반감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두려움, 반감이 오니까 불쾌하니까 내 뜻대로 하면 안되겠다 이 차원으로 끝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창조주께 대한 사랑에 이끌려서 하느님께 대한 충동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뜻을 내가 해야 겠다.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도 요 차원으로 가야 되는겁니다. 그래서 두려움 이라는 것은 이성적 당위성, 이성적인 생각으로 부터 거기에 머물르는 것이고 그 다음에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 승리의 단계에 올라가려면 바로 사랑으로 그것을 승화시키고 사랑에 충동에 이끌려서 하느님의 뜻을 내가 실천 하고 내 뜻대로 하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돼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분명히 어떠한 느낌을 느끼는 것인가 하면 희생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고 할 때 희생이 요구되네, 뭔가 힘이 드네, 분명히 이것이 있습니다. 희생이 없는 승리는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성모님도 분명히 표현을 하시죠. 그분께 내 희생을 더 확실하고 더 크게 증가하기 위하여 그 다음에 끊임없는 사랑과 희생의 선서가 되게 하였다.
사랑과 희생의 선서가 되게 하였다. 우리가 수난의 시간에서 묵상 하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두 개의 못에 박혔지요. 하나는 고통의 못, 하나는 사랑의 못 예수님은 고통과 사랑 이 둘을 합쳤어요. 여기에 나오는 희생이 바로 고통으로 대치 할 수 있습니다.
고통만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미 고통이 너무 세니까. 그러나 거기에 사랑을 집어넣었을 때 사랑의 힘이 고통의힘을 극복할수 있게 해줍니다.
또 사랑의 힘이 기쁨을 주기 때문에 이 기쁨의 힘이 고통의 힘을 이길 수 있는겁니다. 그래서 무조건 희생으로만 하겠다. 하면 지칠 수사 있습니다. 희생을 사랑으로 승화시켜서 사랑과 함께 희생을 실천할 때 그때는 그 희생이 감미로운 것이 됩니다. 고통이 감미로운 것이 됩니다.
그래서 단순한 희생은 오래가지 못해요. 그러나 사랑으로 인한 희생은 영원히 갑니다. 끝까지 갑니다. 사랑으로 인한 희생은 아픔, 고통, 괴로움, 중에서도 기쁨을 준다. 바로 성모님이 승리를 하시게 된다. 당신의 뜻을 이렇게 희생으로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 인간도 사랑으로 자기 뜻을 희생한다면 한순간쯤 자신을 희생하는 것 그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적인 힘으로도 할수 있어요. 그렇지만 일생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이 말씀하십니다. 36쪽 3번째줄 이게 어쩌면 나의 뜻없이 산다는 것이 네게는 대수롭지 않은 희생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희생과 유사한 것은 달리 없다.
실제로 내 희생에 비하면 일류역사 전체에 걸친 다른 모든 희생은 그림자에 불과 할 뿐이라고 알 수 있다. 하루쯤 한순간쯤 자신을 희생하기는 쉽지만 그다음 순간은 이미 쉽지않다. 그럼 어떻게 매순간 순간 희생 할 수 있는가? 희생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우리 자신의 뜻을 행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그 지향을 가지면 희생을 느끼면서도 어떤힘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한가지 성모님께서 35쪽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굵은 글자 “나는 인간의 뜻이 인간에게 끼칠 수 있는 중대한 해악임을 깨달았다.” 인간의 뜻은 아주 나쁜 것이고 하느님의 뜻만이 좋은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선의 원천은 하느님의 뜻이고 모든 악의 근원은 인간의 뜻이고 인간의 뜻이 그렇게 나쁜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뜻이 나쁜데 하느님은 왜 인간의 뜻을 우리에게 창조 하셨는가? 왜 인간의 뜻을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셨는가?
그 이유를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나쁜데 왜 주셨는가? 이것은 인간의 의지 그 자체가 나쁜게 아니고 하느님의 의지와 동떨어져 있을때만 나쁜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인간의 의지를 창조하셔서 주신 이유는 그 인간을 인간 의지를 인간 뜻을 홀로 그것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고 네 인간의 뜻을 발휘해서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을수 있는 준비를 갖춰라, 라는 그러한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서 인간의 뜻을 주신것이지 인간의 뜻 그 자체 만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뜻이 만일 없으면 우리는 하느님의 뜻도 선물로 받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뜻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뜻이 기반이 돼서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인간의 뜻으로 내가 내 뜻을 바치겠다는 지향, 이 지향이 인간의 뜻이 잖아요. 자기의 뜻이죠.
그래서 그 자기의 뜻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게되고 그래서 하느님의 뜻안에 내 뜻을 집어넣고 내 뜻안에 하느님의 뜻이 들어와서 그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즉 만일 우리가 처음에 인간의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하느님의 뜻도 받을수가 없는것입니다. 이해하시죠? 그래서 인간의 뜻이 중대한 해악을 끼치는 원천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홀로있을 때만 그런 것이고 이것이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기위한 터전으로 작용할때는 좋은 것이니까 하느님께서 인간의 뜻을 창조 하신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인간의 뜻을 당신께 바치도록 이것을 요구 하신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간의 뜻이 따지고 보면 좋은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이니까 36쪽 3번째 단락에서 “지극히 사랑하는 얘야 이처럼 네 창조주께 내 뜻을 선물로 드렸기 때문에 나는 하느님께서 내게 원하신 시험에서 승리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인간의 뜻을 성모님께 다시 선물로 드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내 뜻이라고 하는거 좋은거니까 좋은 것 주셨으니까 선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 차원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5번째 단계를 생각을 할 수있게 됩니다.
5번째 단계에서는 우리가 뜻을 선물로 드려야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내일은 다섯 번째 단계 끝나는 거죠? 그래서 오늘 선물로 드려야 하는데 오늘 자기전까지 선물로 드려야 하는데 어떻게 선물로 드려야 하는지 묵상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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