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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저수지에서 얻은 교훈(敎訓) (2005년 6월 장마 끝나고)
우리 내외는 기산지를 즐겨 찾는다.
낚시 베터랑이라고 자처하는 내가 입질을 놓쳐 3.5(6.3m)호 낚시대는 물론 앞 뒤 받침대를 다 끌고
어가는 수모도 당했고 아내 2.5(4.5m)호대를 쏜살같이 끌고 도망가더니 저수지 두 바퀴를 돌고 난 후에
기산저수지 정총무가 건지다가 8호 바늘을 부러트리는 사건도 있었다.
또 아내는 2.7(4.9m)호대에 걸린 잉어와 사생결단(?)하다가 3호 줄이 터지는 바람에 벌렁 뒤로 나
자빠져 내 낚시의자로 넘어지더니 낚시의자가 쓰러지자 다시 내가 먹던 라면 공기위로 주저앉아 내가
먹지도 못하게 묵사발을 만든 끔찍한(?) 일도 있었는데 이때 두 번이나 넘어져 꽤 아플 터인데도 깔
깔 웃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집에 와서 목욕을 할 때 보니 엉덩이와 허리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잉어와 싸우다 명예의 부상(?)을 당한 꼴이 되어 실소를 금치 못했던 일도 있었다.
이제 장마도 끝나 늘 다니던 물 내려오는 큰 소나무 밑으로 직행.
어랍쇼? 이게 웬일? 우리가 대를 칠 곳에 떡하니 밥집으로 만들려 했던 기산지에서 제일 큰 좌대가 놓여있었다. 아마도 큰비에 여기까지 떠내려 온 것 같았다. 그런데 허리가 부러진 채 누워 있는 게 아닌가?
한참 바라만 보고 있다가, 옳다! 저 좌대를 타자!
정총무에게 전화를 했더니 위험하단다.
좌대 입구가 너무 경사져 들어가기도 어렵고 또 물이 늘고 있으니 어디로 흐를지 몰라 위험하단다.
내가 알아서 낚시를 하겠다고 허락을 받고 한 손엔 낚시가방, 다른 손엔 낚시미끼와 도구가 들어있는
비닐가방을 들고 심히 경사진 배로 올라섰다. 조심조심 한 발짝 다시 두 발짝을 딛는데, 미끈하더니 양
발이 공중에 붕~ 뜨면서 꽝! 하고 나가떨어졌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엉덩이가 얼얼하다. 장마철에 비를 맞아 뱃전에 곰팡이가 많이 나 바닥이 무지하게 미끄러웠다.
멀리서 구경하던 아내가 놀라서,
"괜찮아요? 다치지 않았수?"
"아니요!"
미끄럼을 타고 간신히 내려가 낚시 짐을 내려놓고 올라가려니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이 땡포 박이 누군가? 꿩을 잡는다고 산과 들을 날아다니는 포수가 아닌가?
게걸음으로 살살 오르다 좀 미끄러져 내려가고 또 다시 올라가고 여러 번 만에 어렵게 뭍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안 들어간다는 아내를 뒤로 하고 큰 비닐봉지를 꺼내 모래를 듬뿍 담아 여러 차례 뿌렸다.
이젠 왔다 갔다 해도 안 미끄러지니까 아내도 합세하여 낚시준비를 했다.
앉고 보니 여지껏 타 본 좌대 중 으뜸이었다. 좌대도 크지(보통 좌대보다 7~8배) 식당 칸(조리실로 만
들려고 했던)도 있고 더군다나 계곡 물이 내려오는 원류 한가운데에 대를 펼 수가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1.9(3.4m)호 대를 펴 수심을 재보니 2m가 좀 모자란다. 참 딱 좋은 수심이다. 아내는 1.9호와 2.2(4m
호를 나는 2.6(4.7m)호와 2.9(5.2m)호를 폈다. 우리 낚시대에는 대물을 노리려고 본 줄은 4호, 바늘은
10호를 썼다.
이윽고 내가 대를 펴는 사이 아내가 1.9호로 먼저 걸었다. 40cm급 향어. 오늘은 어째 꽤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대를 다 필 무렵 아내는 또 걸었다.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아내에게 천천히 뜰채를 들고 가,
"좀 더 놀려요!"
"여보 팔이 너무 아파 죽겠어요! 빨리 건지세요!"
"이런! 고기가 힘이 빠져야 뜰채를 대지! 더 놀려요!"
내 뜰채는 붕어용이라 작아서 건지기가 쉽지 않다.
"에이! 뜰채나 좀 큰 것으로 개비하시지!", 아내의 말씀.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해 내가 낚시대를 건네받았다. 이리저리 놀리다 천천히 끌어내니 45cm급 잉어다.
"한 마리 갖고 두 사람 다 재미 보네! 오늘 우리는 대박을 만날 것 같아! 낚시대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
해요!"
이렇게 해서 밤 11시까지 내가 7~8마리 아내가 6~7마리를 잡았다.
"여보! 당신이 그렇게 극성을 부리더니만 오늘은 굉장히 재미를 보는군요. 주위에 우리 밖에 없으니 너
무도 조용하고 좋은 데요!"
11시가 넘어서면서 아내의 2.2호 대 찌가 천천히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당신 낚시대!"
올라오던 찌가 물속으로 홱 사라질 찰라 아내는 "획!" 챔질을 했다. 사정없이 끌고 들어가는 보통이 아
니다.
"대를 세워!"
있는 힘을 다해 대를 세우는데 초릿대가 물에 잠겨 올라오질 않는다. 아내 낚시대 하나와 옆에 있던 내
낚시대 둘, 3개를 다 치웠다. 초릿대가 위로 천천히 빠져 나오면서 왼 쪽 옆으로 내 달리는데 그 기세가
등등하다. 낚시대를 안 치웠으면 다 감을 뻔 했다.
이번엔 반대쪽 오른쪽으로 도망가는데 아낸 팔도 너무 아프고 겁이 나는지
"여보! 나 못하겠어! 당신이 좀 어떻게 해 봐요!"
"좀 더 놀려요! 힘을 빼야지!"
"이젠 더 못 버티겠어요! 너무 힘들어 죽겠어요! 안 받으면 그냥 놔 줄래요!"
어? 이젠 공갈이다.
할 수없이 내가 받았다.
굉장한 힘이다. 남자인 나도 힘 드는데 그 동안 버틴 게 용하다.
"슉! 슉! 슉!", "비비빅!" 정신없다.
좌로 돌면 우로 당기고 앞으로 나가면 뒤로 사정없이 제끼고 대가 부러지든 말든 힘들게 버텼다.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이젠 힘이 다 빠졌는지 천천히 들어 눕는다. 뜰채를 대도 반항하지도 못 하고
가만히 있다. 뜰채가 겨우 머리를 조금 더 감싸지는 것이 무척 큰 향어다. 아내가 들어내는데 너무 힘에
부쳐 뒤로 잡아끈다. 나도 낚시대를 바닥에 놓고서 함께 거들어 힘들게 꺼내고 보니 여지껏 이렇게 큰
향어는 처음 본다.
와! 한 60cm는 족히 되겠다. 바늘을 빼는데 한 바늘은 입술에 약하게 끼어 있고 한 바늘은 깊숙이 꽂혀
있었다. 향어를 작은 수건으로 누르고 바늘을 빼려고 하는데 그 동안 얌전하던 향어가 기운을 차렸는지 화닥닥! 뛰는 게 아닌가?
"악!"
내가 소리를 질렀다.
향어 입술에 약하게 꽂혀 있던 바늘 하나가 빠져 내 오른 엄지 한가운데에 깊이 박히면서 향어가 길
이 날뛰었으니 얼마나 아팠겠는가?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재빨리 향어를 누르고 박힌 낚시 바늘의 줄을 끊으니 통증이 밀려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닛퍼로 바늘을 빼려니 미늘 때문에 빠지지도 않고 아프기만 했다. 아내한테 좀 빼 보라고
니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여러 번 이를 악물면서 빼 보았으나 도저히 안돼 정총무에게 외과병원이
어디냐고 물으니 이 근처엔 없단다.
할 수 없이 고양시에 있는 명지종합병원에 가기로 하고 대충 짐을 정리하여 차를 빼는데 밥집 아저
가 자기가 경험이 있어 빼 줄 수가 있다고 한다. 멀리 가기도 어렵고 큰 부상도 아니어서 맡겼다. 눈을 감으라 해 괜찮다고 보고 있으려니 입을 꽉 다물라고 했다. 단번에 잡아 빼는데 그리 아픈 줄 몰랐다.
파상풍에 걸리면 안 되겠어서 항상 지니고 다니던 비상약을 바르고 일회용 반찬고로 조치를 하니 또 낚
를 하고 싶었다. 더욱이 아내가, 아니 우리 둘 다 오랜만에 만나는 대박이어서 다시 하기로 했다.
새벽 1시쯤 되었을까?
아내의 1.9호 대는 치워 버리고 2.2호대만 하고 있었는데 찌 세 개가 나란히 있으니 눈에 잘도 들어
다. 그런데 아내의 2.2호 대 찌가 달싹 달싹하더니 한 마디, 두 마디 천천히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여보! 좀 더 기다려 봐요!"
마치 내 낚시대에서 입질을 받는 것처럼 내 가슴이 두근두근. 그러니 아내 마음은 오죽 했겠는가?
전형적인 붕어 입질. 찌가 다 올라오는 순간,
"여보! 채!"
"삐비빅!" 고기가 옆으로 나간다. 내 낚시대 두 개를 다 치워놓고 아내를 응원하는데 잘도 제압한다.
"어때? 붕어 같지?"
"붕어 같은 데 왜 이렇게 힘이 쎄지?"
피아노 소리를 내며 좌우로 세 번 반을 왔다 갔다 하더니 들어 눕는다. 내가 뜰채를 대니 또 도망을 간
다. 드디어 건져 내니 와! 한 동안 구경하지 못했던 통통한 월척 붕어다.
아내가 생애 두 번째 잡은 33cm급 월척이다. 노랗게 너무도 잘 빠진 예쁜 붕어! 기산지에도 이렇게도
멋있는 붕어가 있었는가?
"여보! 축하해요! 욘석은 이따가 방생합시다!"
"여보! 그런데 702호 아줌마가 붕어를 잡거든 꼭 달라고 하던데요. 오늘 나올 때도 만났는데 신신 당
부하던데... 아빠가 붕어 매운탕을 즐기신다고....."
여하튼 계속 나오는데 밤을 꼬박 새웠다. 여지껏 아내가 밤을 새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침 7시에도
계속 나와 그만 잡기로 하고 살림망을 들려고 하니 좀처럼 들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너무도 즐겁고
행복한 것은 누구 혼자 재미를 본 것이 아니라 둘 다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오손 도손 정담도 나누면서
이런 대박을 만나다니 낚시 30년 만에 처음이다. 건너에서 낚시를 하던 젊은 꾼들이 잉어가 필요한 모양이라 서너 마리를 건네고 붕어만 남기고 다 방생하였다. 나를 다치게 한 향어부터 방생했다. 좋은 교훈을 주어 고맙다고.....
그런데 이 잘 생긴 월척붕어(눈 대중으로 33cm는 넘을 듯)가 마음에 걸렸다.
아내도 안타까운 듯,
"어떻게 하지요? 약속을 했는데....."
붕어는 월척 말고 2마리밖에 더 잡질 못했기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봉지에 담았다.
지금도 그 예쁜 월척 붕어를 생각하면 못 잡았다고 하고 놓아 주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후기)
얼마 전에 향어한테 당한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해야 될 것 같아 "기산지에서 얻은 교훈"이라는 글을
"낚시와 사람들" 싸이트에 올린 적이 있다.
대물을 잡았다고 너무 흥분해 자칫하면 불상사가 일어 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낚시 경륜이 많
는 이 땡포 박이 당한 수모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반드시 대물은 큰 수건으로 확실
히 가리고(누르고) 바늘을 빼야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땡포 박의 가족 낚시( 맨끝 큰아들 맨 앞 사위 그 뒤 아내 정포 그리고 손주들)
손녀와 막내 아들
외손주 승준군이 올린 향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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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가족이 같은 취미를 한다는 건 정말 축복인 것 같습니다!!
낚시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이죠!
사냥이 최고요, 그 다음이 낚시입니다.
저도 지금 시골에 내려와 있습니다^^ 잠시후에 아버지와 낚시를 하러 갈 참입니다
멋진 낚시대는 아니지만 그 재미가 아주 좋은것 같습니다 ㅎㅎ
사냥은 동적이요, 낚시는 정적이죠.
그러나 둘 다 재미가 있는 건 틀림이 없죠.
네~ ^^ 낚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살생을 금하라 하십니다 ㅎㅎ
올 겨울 엽기도 그냥 지나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