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산
아름다운 김포의 금강산
김포에서 가장 높은 산(376m)으로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문수산은
동쪽으로는 한강과 서울의 삼각산, 서쪽으로는 멀리 인천 앞바다, 북으로는 개풍군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절경을 자랑한다. 또 산림욕장을 지나면 약4㎞의 문수산성과 연결되어 구한말 외세 침략에 저항했던 민족의
역사를 보여주는 산교육장이라 할 수 있다.
정상에서 느끼는 역사의 향취 문수사
문수산 산림욕장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 홍예문을 거쳐 정상에 오르면 신라 혜공왕(재위 765∼780) 때 창건된 문수사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풍담대사부도 및 비를 만날 수 있다.
장릉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1623~1649)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황후 구씨의 능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으로 용모가 출중하고 태도가 신중했으며,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정원군은 처음엔 양주군 곡촌리에 묻혔다. 큰아들 능양군(인조)이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정원군은 대원군에 봉해졌고, 묘가 원으로 추숭되어 흥경원(興慶園)이라 했다.
덕포진
충신 뱃사공 손돌의 넋을 기리며
덕포진 끄트머리에는 고려시대 뱃사공인 손돌의 묘가 있다. 손돌은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뱃길을 잡은 뱃사공인데 험한 물길에 불안을 느낀 왕이 그의 목을 베었다. 그러자 손돌은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워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
조선시대 말까지 손돌의 넋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오다가 일제강점기동안 중단되었으며 1970년부터 다시
지냈다. 1989년부터는 김포문화원이 주관하여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월 20일에 진혼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