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토요일 저녁, 해가 넘어가면 선인봉 석굴야영장에는 하나 둘씩 텐트에 불이 켜진다. 놋쇠 석유버너에 코펠, 하지감자, 양파, 김치, 쌀 등 먹을거리와 장비를 담은 40kg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석굴야영장으로 향한다. 그때는 왜 그리 무거운 것들만 짊어지고 다녔는지 모르겠으나, 언제나 마음만은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웠다.
텐트를 치고 나무에 해먹을 매달고 석유버너에 펌프질을 하고 알코올에 불을 붙여 예열을 한다. 버너 대가리가 적당히 달아오르면 에어를 틀어 불을 붙이고 본격적으로 밥과 찌개를 끓인다. 밥상을 차려지면 그놈의 똥파리는 우리보다 더 빨리 식사를 한다. 아무리 쫓아도 달라붙는 똥파리와 우리는 사실상 이미 한 식구였다.
“야! 술 가져와.”
석굴 야영장에서는 소주 됫병이 맥없이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시끄럽다.
“형님! 이제 그만 드시고 주무시죠.”
“야! 이 놈 봐라, 기합이 빠졌어.”
혓바닥이 뒤틀려 부정확한 발음으로 버럭 고함을 지른다. 후배는 부리나케 도봉산 할머니가게로 내려가 술을 가져온다. 그때만 해도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 하지만 그렇게 술을 마셔도 아침이면 멀쩡하게 일어나 부지런을 떤다. 바위는 얼마나 열성이었던가. ‘야바위’, ‘취바위’, ‘해장바위’, ‘물바위’, 그러고도 바위에 붙으면 점심도 굶고 해가 넘어가야 내려오는 바위꾼들이었다.
뻣뻣한 암벽화는 슬랩만 붙으면 “우두둑!, 우두둑! 추락!” 여기저기서 떨어지기를 밥 먹듯이 하는 바위꾼들의 외침이 들려온다. 특히 막내길 슬랩은 떨어지지 않고는 오를 수 없는 그 시대 선인봉의 가장 어려운 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열정 하나 믿고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는 아예 떨어지는 것을 별도로 배웠다.
선인봉의 인기 루트 중 하나
선인봉 ‘하늘길’은 우정산악회 이주명, 박창규, 함영기, 한기훈씨 등이 1970년에 개척했다. 총길이 146m에 네 피치로 구분된다. 우정산악회는 1969년에 인수봉에 하늘길을 개척하고 그 이듬해 선인봉 하늘길을 개척했다. 당시에 열정적인 클라이밍 활동을 한 유명한 산악회다.
하늘길은 선인봉에서 최고의 인기 루트 중 하나다. 제3피치의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갈라져 있는 크랙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총 4피치로 구분되며 중상급자들이 오를 수 있는 크랙 위주의 루트다.
첫 피치 출발지점은 표범길 우측으로 20여 m 떨어져 있다. ‘현암길’ 출발지점 바로 좌측의 나무들이 있는 큰 크랙으로 20여 m 올라 우측으로 15m 정도 이동해서 4개의 루트가 만나는 확보지점으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등반자들은 원래의 길로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크랙을 타고 오르다 우측으로 이동해야 하는 과정이 로프가 꺾이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 등반자들은 현암길 제1피치 출발지점으로 올라가 제2피치에서 하늘길로 접어든다. 현암길 제1피치 구간은 약 30m의 크랙과 페이스, 5.9 정도이며 원래의 하늘길 좌측 크랙으로 오른다면 5.8 정도의 쉽게 오를 수 있는 크랙이다.
제1피치를 오르면 비교적 넓은 테라스의 확보지점이 나온다. 이곳은 하늘길, 현암길, 설우길, 푸른길 총 4개 루트의 첫 피치 쌍볼트 확보지점이다. 지금은 도봉파워클라이밍센터를 운영하는 소흥섭씨가 4개의 확보지점을 체인으로 연결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제2피치는 약 35m의 슬랩과 크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난이도는 5.9다. 출발지점에서 양호한 완경사 크랙을 4m 정도 오른 다음 밴드로 올라서서 볼트(바위에 박혀 있는 고정 확보물)에 퀵드로를 걸고 좌측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곳이 조금 부담스러운 지점이다. 하지만 다리를 최대한 벌려 디디면 양호한 스탠스가 있다.
좌측으로 조금 이동해서 슬랩으로 8m 정도 오른 다음 오른쪽 양호한 크랙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크랙을 5m쯤 올라 캠을 설치하고 좌측 크랙으로 이동하여 크랙을 따라 곧바로 오른다. 이런 등반선이 개척자의 의도이지만 요즘은 우측 첫 번째 크랙을 거치지 않고 슬랩으로 직상하여 좌측 크랙으로 곧바로 오른다. 크랙 중간에 작은 사이즈의 캠을 설치하고 크랙 마지막에 있는 볼트에 걸고 우측으로 트래버스한다.
우측으로 이동해 큰 크랙으로 약 6m 오르면 쌍볼트가 박혀 있다. 이 피치의 중간 부분의 크랙은 손가락이 적당히 들어가서 기분이 좋다. 특히 슬랩에 부분적으로 디딜 곳이 많아 안정된 자세로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전체적으로 경사가 완만하여 초보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재미있는 크랙 등반 구간이다.
제3피치 확보지점 쌍볼트가 있는 곳은 테라스가 없어 확보하고 서 있기가 불편하다. 우측의 푸른길과 확보지점이 나란히 있는데, 푸른길 등반자가 없다면 그 곳의 쌍볼트를 같이 이용하기도 한다.
3피치의 수직 크랙이 하이라이트
제3피치 수직크랙은 하늘길의 대표적 피치로 선인봉에서 가장 잘 생긴 크랙으로 꼽는다. 곧바로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오르는 이곳이 하늘길의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이 크랙을 오르기 위해서 하늘길을 찾는다. 제3피치의 길이는 약 38m이며 하단부 양호한 크랙 구간은 5.9이며, 수직크랙 끝 페이스 구간은 5.11b, 마지막 페이스 구간은 원래 5.11a였으나 중요한 홀드(손으로 잡을 수 있는 돌기)가 깨져 나가 지금은 5.12a급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크랙은 블랙다이아몬드의 캐멀롯 3호와 4호를 설치하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출발지점은 크랙의 암각이 좋아 레이백이 잘 적용되며 오른발과 다리를 재밍하면서 오르면 편하다. 5~6m 오르면 크랙이 넓어져 까다로우나 왼손을 크랙 깊게 넣어 바위를 안고 가듯이 오르면 편하다. 넓은 크랙에 캐멀롯 4호를 설치하면 든든하다. 이곳 넓은 크랙 속에 세로로 붙어 있는 팔뚝만 한 바위가 덜렁거리며 간신이 붙어 있는데 이곳 흔들리는 암각을 너무 세게 당기면 위험하다. 조심스럽게 당겨야 하며 이 흔들리는 바위모서리는 제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에 이곳 암각이 떨어진다면 확보자나 밑에 있던 등반자들이 낙석으로 인해 위험하게 될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크랙이 좁아지며 암각이 확실하여 레이백이 잘 적용된다. 대신 오른발은 적당히 재밍(신체의 일부분을 크랙에 넣어 힘을 가하거나 뒤틀어 지지력을 얻는 기술)하여 안전하고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왼손은 크랙을 당기고, 오른손은 바깥쪽의 바위모서리를 잡고 바위를 안듯이 오를 수도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크랙은 좁아지며 크랙 끝 구간은 아예 손가락 끝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 구간은 부드러운 동작과 적절한 중심 이동이 요구되어 까다롭다. 이 크랙 끝에서 페이스로 연결되는데, 페이스에서 일어서면서 위의 작은 언더홀드를 잡는 것이 5.11b의 1차 크럭스다. 크랙 끝에 도달하면 급경사로 이어지며 홀드가 만만치 않아 까다롭다. 페이스에서 발을 세워 딛고 부드럽게 일어서서 위의 홀드를 잡는 과정이 아슬아슬하다. 위쪽 홀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발이 밀린다면 추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적당한 발디딤을 찾아야 하는데 키가 작을수록 불리하다.
언더 홀드를 오른손으로 잡고 부드럽게 일어서면서 손을 교차해서 잡고 우측으로 약 2m 이동해 미세한 벙어리 수직크랙으로 올라선다. 중심을 오른쪽으로 뉘인 다음 레이백 동작을 취하고 왼발을 계속해서 크랙을 디디면 쉽게 오를 수 있다. 마지막 크랙이 끝나고 페이스 구간 2m를 돌파하는데 크럭스(가장 어려운 구간)이다. 원래 좋은 홀드가 있었는데 깨져 나가 난해한 구간이 되어 버렸다. 이곳을 프리클라이밍으로 가볍게 돌파하는 길등반학교 교장 방의천씨는 최소 5.12a는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의 느낌은 5.12a가 넘을 듯하다.
제4피치가 시작되는 지점은 발디딤이 좋아 확보하기 편하다. 이곳에서 시작되는 페이스 구간은 인공등반(확보물을 직접 잡고 의지하며 오르는 등반방식)으로 볼트 몇 개를 통과해 5.8의 슬랩 등반으로 오른다. 위로 올라갈수록 슬랩은 쉬워지며 마지막 끝나는 구간은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요델버트레스와 만난다. 이곳 역시 확보지점은 비교적 넓고 편하다. 등반이 끝나면 올라왔던 하늘길을 통해 하강한다.
하늘길은 총 4피치로 이어지지만 하이라이트는 수직으로 갈라져 있는 제3피치 크랙 구간이다. 따라서 대부분 등반자자는 제3피치 수직 크랙 구간을 등반하고 전면으로 하강한다.
도봉산 선인봉 찾아가는 길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1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하차한다. 시내버스는 141, 142번(파란색 간선버스) 종점까지 간다. 도봉산역에서 큰 도로를 건너 상가지역을 통과하여 북한산국립공원 도봉분소를 거쳐 주 등산로를 따라 석굴암(사찰) 방향으로 간다. 30여 분 가면 도봉산장(도봉대피소)이 있고 산장 앞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따라 10여 분 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측의 석굴암 방향으로 가면 된다. 석굴암 뒤편의 암벽이 선인봉이다. 도봉동 상가지역에서 약 1시간 20분 거리로 하늘길은 석굴암 뒤편에서 시작된다.
등반 길잡이
늘길은 제1피치(5.8, 35m) 크랙으로 올라 우측으로 이동해 확보, 제2피치(5.9, 35m) 슬랩으로 오르다 양호한 크랙. 제3피치(38m) 수직 크랙 끝 구간 페이스(5.11b)와 피치 마지막 구간(5.12a), 제4피치(5.8, 38m) 인공등반(A0)으로 오르다 슬랩으로 이어지는 총길이 146m의 중상급자 루트다. 등반했던 하늘길을 통해 60m, 총 3번 하강으로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다. 로프 60m 2동, 퀵드로 10개, 캠 1,2,3호 캐멀롯 3, 4호가 필요하며, 2인조의 경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야영은 선인봉 아래 지역 구조대 부근에서 할 수 있으나 허가제다. 식수는 석굴암 150여 m 못 가서 우측 샘터에서 구할 수 있다.
필자 김용기
설악산 4대 빙폭, 당일등반. 설악산 전국 빙벽등반대회 1, 2, 3회 연속 우승.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대회, 프랑스 난이도경기 공동 1위. <한국의 암벽> 저자.
<실전 암벽빙벽등반> 기술서 저자. 네파 종로점 대표. 김용기등산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