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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한 오징어와 탈세한 선민
(슥10:1~12)
1.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3.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숫염소들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돌보아 그들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4.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5.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출세한 오징어와 탈세한 선민>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출세한 오징어와 탈세한 선민’
출세라는 말은 여러분 다 잘 아실 것입니다.
‘탈세한 선민’이라는 말, 탈세는 또 혹시 마음이 뜨끔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근데 다행스럽게도 그 탈세가 아니라 제가 만들어 본 단어로 출세의 반대적인 의미에서 탈세입니다.
출세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까?
입신양명을 하는 것이 출세라고 하고, 숨어 살던 사람이 세상에 나오는 것도 출세라고 하는데, 그냥 문자 그대로 출세(出世), 세상에 태어나는 것, 세상에 나서게 되는 것을 출세라고 하면, 탈세(脫世)는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세상 안으로 들어와서 세상 안으로 나서는 게 출세라면, 세상을 떠나는 게 탈세(脫世)지요.
선민 중에서 출세한 오징어가 있고, 탈세한 선민이 있습니다.
선민이려면 탈세(脫世)한 선민이어야 됩니다.
출세한 선민은 오징어처럼 붙잡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그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믿게 되는 교인들에게 어부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낚는 어부의 사명을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 낚는 어부로서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인이 되었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이에요.
우리 말고도 또 어부가 있습니다.
사탄도 어부예요. 사탄은 어떤 어부냐?
믿지 않는 자들을 낚을 필요가 없어요, 그들은 믿지 않는 상태에서 저주 아래에 있고 지금 현재 사망과 멸망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삼스럽게 낚아 올릴 필요가 없어요, 자기 수중에 있는 것입니다.
선민을 낚는 어부가 누구냐 하면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이 지배하는 공중권세 잡은 자의 통치 아래 있는 영혼들을 낚아 올리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라면 사탄의 사명은 선민들을 낚아서 멸망으로 끌어가려고 하는 것, 그래서 베드로도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탄이 우리 선민의 영혼을 낚을 때, 오징어 잡듯이 채서 낚아버린다는 거예요.
오징어잡이를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채낚기라고 하는 채서 낚는 방법으로 오징어를 잡는다고 합니다.
아주 강한 굵은 낚싯줄을 길게 늘어뜨려서 가짜 낚싯밥을 한 서른 군데 달아 놓습니다.
서른 군데 미끼를 달고 그 끝에 낚싯바늘을 답니다, 그리고 바다에 늘어뜨려요.
그 다음에 그 줄을 끌어올리는 롤러를 감으면 그 줄에 달려 있는 서른 개의 낚싯줄들이 돌아가면서 주변에 모여 있는 오징어들을 채서 낚아 끌어올리는 겁니다.
그래서 롤러로 그 줄을 감아올리면 채서 낚인 오징어들이 바다에 떠있는 채낚기 배의 바닥으로 마구 떨어지게 되는 거지요.
채서 낚기 방법으로 오징어를 잡는 거예요, 확 잡아채는 겁니다.
우리 마음이 출세하게 될 경우에 잡아 채이게 됩니다.
선민이라도 잡아 채이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절대로 출세하면 안 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출세를 포기하게 된다는 거예요, 내 마음으로 이제는 더 이상 출세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되는 것으로서의 출세뿐만 아니라, 아예 이 세상에 마음이 들어서는 것 자체, 그 출세조차도 안 하겠다는 것이 십자가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을 출세, 탈세라는 말과 연관 지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함께 연합을 하게 됩니다.
그게 믿음이에요, 믿음이 바로 그겁니다.
내 마음으로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 왜? 내가 죽어야 될 자리에서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내가 주님과 연합해서 죽은 자다, 뭐에 대해 죽은 겁니까?
이 세상에 대해 죽은 거예요.
왜 세상에 대해 죽으라고 자꾸 얘기합니까?
세상에 대해 살아있다는 것이 그냥 중성적이고 중립적으로 살아있다는 게 아니라 그건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마음이 사랑하지 않는 것에 마음이 가지 않아요.
그러므로 마음이 어느 대상에 대해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원수를 마음에 품고 미워하는 것도 뭔가 원수가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하니까 그런 것이죠.
사랑과 연관되어서만 마음이 쓰여 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마음이 붙잡으면서 이 세상과 하나님아버지가 계시는 나라의 경계선에 딱 서게 돼요.
십자가는 이 세상과 하늘나라의 경계선에 서있습니다.
주님과 연합하면서 세상에 대해 죽게 될 경우 하나님께서 주님을 부활시키셨듯이 우리도 부활시키실 텐데, 그 전에 십자가를 붙잡으면서 몸이 죽고 있지 않은 이 상태에서는 새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어제까지 모든 더럽고 추악한 죄를 지은 죄인이 주님과 함께 연합하면서 죽었습니다. 끝났습니다.
내가 이 몸을 중심으로 내 인생을 경영하려 하면서 벌어졌던 이 모든 죄악이 다 끝나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새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자, 이 새 생명이 세상과 하나님나라의 경계선에 서있습니다.
세상으로 들어갑니까? 출세한다는 것이에요.
우리 몸은 비록 이 세상에 남아있지만 우리 마음은 다시 세상에 엮여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반드시 하나님아버지께로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도 쭉 읽어 가시다 보면 ‘여호와하나님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쪽으로 가야 된다는 거예요.
자! 그러면, 출세,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구체적인 현장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내가 내 몸의 눈으로 사람을 만나고 보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내 마음이 직접 관계하기 시작하죠?
세상으로 들어선 것이에요.
그리고 이 몸의 귀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들으면서 내 마음이 그것에 반응하지요? 한 발 들여 놓은 겁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는 언제나 우리의 경계가 십자가예요, 십자가.
세상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십자가가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십자가가 경계이기 때문에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십자가를 거꾸로 통과해야만 됩니다.
십자가에서 딱 걸리면, 거기서 세상에 대해서 죽는 거예요.
그러므로 십자가를 먼저 생각하면, 사람을 만나든 사건을 만나든, 이 몸이 만나는 모든 상황에 대해서 마음이 처음으로 십자가를 더 먼저 발견하게 되면 세상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십자가는 세상에 대해 죽게 되는 문이니까…
그러므로 십자가를 보면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를 안 보고 직접 내가 그 상황으로 뛰어 들어가 버립니다.
사람과 상황과 문제에 직접 뛰어 들어가자마자 사탄이 낚아채는데 채낚기로 잡아챕니다.
잡아채는데, 그 잡아 채여서 끌려가는 과정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깊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깊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깊이 근심하기 시작합니다.
깊이 절망하기 시작하고, 깊이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다 지금 마귀에 의해서 잡아끌려서 출세한 결과라는 겁니다.
왜 십자가를 먼저 보지 않고 내가 직접 마음이 그것에 닿는 겁니까?
이미 출세해 버렸어요,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아버렸습니다.
그러면 선민은 어떻게 사는 사람들입니까?
눈과 귀와 오감관으로 이 상황과 사람과 사건이 접해지게 될 때 십자가를 먼저 보는 거예요.
십자가를 먼저 보면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상황에 대해서 마음이 죽었다고 인정하면서 내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이 세상을 벗어나 탈세를 하는 자들입니다.
언제나 모든 순간에 십자가를 보며 세상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고 출세하지 않고 이 세상을 탈세해서 하나님께로 마음이 가는 자들이 선민이요, 선민 됨을 유지할 수 있는 자들이고, 오늘 본문은 이러한 선민들을 데리고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통치하시는 세계를 예언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자들을?
탈세한 자들을 이끄시고 내가 탈세한 이 세상에서 메시아가 어떻게 통치를 해나가시는가 하는 것을 본문이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1절에서 콱 막혀버려요, 여러분.
1절을 한번 다시 읽어볼까요?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여러분, 이 1절이 조금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언뜻 보면 봄비가 올 때 ‘비가 잘 내리게 해주세요!’ 그래서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소낙비는 큰 비를 말합니다, 충분한 큰 비,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그래서 이 봄비라는 것은 우리 생각과는 좀 다르게 팔레스틴의 농사 싸이클에서는 3, 4월이 늦은 비입니다.
여름에 추수를 합니다, 가을에 뿌리고 10월과 11월에 파종을 할 때 내리는 비가 이른 비예요, 우리는 그때 추수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때 파종을 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틴 지역의 겨울을 지나면서 곡식들이 싹이 나서 자라게 되고 그리고 봄이 되면서 늦은 비가 한 차례 내려줘야 곡식들이 아주 실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 햇볕이 내려 쬐면서 여름이 되어 추수를 합니다.
그런데 봄비가 올 때에 봄비를 구하라는 겁니다.
늦은 비와 이른 비에 대한 언급이 성경에 종종 나옵니다.
대표적인 예가, 신명기 11장이에요,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여호와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너희 땅에 내려줄 것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이 말은 봄비, ‘늦은 비가 내릴 때 늦은 비를 하나님께 구하라’라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말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결과로 비를 주신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좀 더 확장하면 이 늦은 비라고 하는 게 수확 전에 내려서 곡식을 실답게 해주는 비인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구하지 말라, 너희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은 다 하나님아버지 천부께서 너희에게 때를 따라 충분히 주실 것이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봄비가 내릴 때에 또 봄비를 구하라는 거예요.
이 말도 어법상 마치 ‘여름에 더위를 구하라’, ‘겨울 한복판에서 추위를 구하라’는 말과 비슷하다는 얘깁니다.
갈멜 산에서 엘리야가 싸울 때 가뭄 중에 비를 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만…
‘봄비가 올 때에 봄비를 구하라’
자, 이 말씀이 왜 들어갔을까요?
한 구절을 더 읽어보겠습니다.
예레미야 5장 23, 24절입니다, 여기에 해결의 키가 있어요.
예레미야가 선민들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뭐만 남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을 빼버리면 이른 비가 내리고 늦은 비가 내리고 곡식을 파종해서 그것이 싹이 나고 이삭이 패어 추수하게 되고 하는 이 모든 싸이클이 자연법칙이라는 말로 포장이 돼버리고 맙니다.
인격적으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먹이시려는 배려심과 은혜와 사랑 때문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이 배제되어버리고 나면 우리 눈에 남는 것은 자연법칙,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싸이클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봄에 늦은 비가 내리고 가을에 이른 비가 내리고 땅에 씨를 심으면 이삭이 패고, 또 곡식이 무르익어서 우리가 먹고 살고 하는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이 세상 안에 폐쇄된 채로 세상 안에서 돌아가는 자연법칙이 있다고 믿고 살게 됩니다.
이 자연법칙에서 더 나아가 사회법칙이 있다고 믿고 살게 됩니다.
사회법칙이 있다고 믿고 살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를 당하면 십자가를 보지 않고 그 문제를 생각해 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왜?
뭔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법칙과 원칙과 원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세상 안으로 끼어들어 가게 됩니다.
왜 생각해요? 왜 고민해요? 왜 걱정합니까?
내가 걱정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생각하고, 연구하다 보면 이 세상에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내 마음이 그 문제를 끌어안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아닙니까?
출세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출세하기 시작하자마자 사탄에게 잡아 채이는 겁니다.
선민 됨으로 인한 메시야 통치에 의해서 주어지는 은혜가 딱 끊어져 버리고 맙니다.
예레미야가 뭐라고 합니까?
‘너희의 죄가 좋은 것을 막았다’고 말합니다.
은혜를, 메시야 통치를 막는 겁니다, 세상에 폐쇄되어서.
그래서 우리가 무병장수하기 위한 법칙, 돈 잘 버는 법칙, 증권투자 하는 법칙, 자녀를 양육하는 법칙, 이 법칙을 찾는 이유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배제되어 있는 상태로 이 세상 안에 폐쇄된 상태에서 이 세상 내에서 잘 살 수 있는 법칙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 세상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걱정하며 그 문제를 끌어안고 들어가 버려요. 잡아 채이는 거죠.
쉽게 말하면 이런 거예요.
대기업에서 점심때가 되면 회사직원들을 위해서 회사식당에서 밥을 해줍니다.
식당을 찾는 모든 직원들은 마음의 관심이 오직 밥이에요.
아침 일찍 나와서부터 저녁 늦게까지 근무하면서 식당에서 제공하는 밥이 관심입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세끼 밥을 먹고 삽니다.
이 세끼 밥은 밥이 관심이 아닙니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먼저 앞서 있습니다.
회사식당에서 제공되는 밥과 가정에서 제공되는 밥의 차이는 내가 어머니의 아들딸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내게, 내가 관심이 없어도 세끼 밥을 주신다는 거예요.
근데 어머니라는 관계가 배제된 채, 회사 같은 데에서 누가 밥을 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이들의 관심은 오직 밥에 다 가있습니다.
이렇게 세상 내에 폐쇄되어 사는 것을 막으면서, ‘봄비가 내릴 때에 봄비를 구하라’ 이 ‘구하라’의 의도가 뭡니까?
자연법칙에 의존해서 살지 말라는 얘깁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여호와가 되셔서 내게 와서 네가 자연법칙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배려해주시고 제공해 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내에서 폐쇄되어서 세상 안에서 통용되는 원칙과 법칙을 찾느라고 헤매고 다니면서 네 스스로 세상 안으로 들어가서 살지 말고 세상 바깥에 계신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얘깁니다.
하나님께로 나온 자의 마음을 끌어안고 메시아는 내가 떠나버린 이 세상에서 몸이 남아있는 나의 삶을 통치해 나가십니다.
여러분, 자식이 말썽을 부리지요?
그것은 오징어잡이의 채낚기 줄에 묶여 있는 가까 미끼이고 낚싯바늘입니다.
조심하세요! 그것에 마음을 쓰지 마세요.
마음을 그것에 써서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이 세상 내에서 뭔가 방법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들어간 상태에서, 세상 안으로 들어가 출세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녀양육법을 책을 보며 연구하는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여러 가지 세상 내에서 잘살아보겠다고 출세한 다음에 법칙을 찾는 중에 예수님, 하나님 믿는 게 하나의 법칙으로 등장하게 되는 거예요.
이건 신앙이 아닙니다. 이건 우상시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위로가 헛되므로’
세상 안에서 여러분이 잘살 수 있다고 말하는 모든 법칙들, 여러분이 생각하면서 찾아내려는 모든 법칙들, 여러분이 책을 뒤져서 찾아내려는 모든 성공의 법칙들, 다 거짓 위로고 다 거짓말이고 여러분의 인생을 끊임없이 지옥 같은 삶으로 연장시키게 하려는 사탄의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그 거짓말이 3절에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지도자들을 말하는 거예요.
소위 이 세상 내에서 앞서가는 사람들, 우리의 모델이 된다는 사람들, 이 사람들에 의해서 법칙을 배우며 살지 말라는 얘기에요.
출세하지 마세요.
세상 안에 세상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원칙이 있을 거라고 믿고 세상 안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그 원칙을 찾아내려 하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세상에 들어갔다가는 사탄의 오징어 채낚기 바늘에 꿰어서 걱정 근심의 지옥으로 빠져버리게 됩니다.
메시아의 통치영역 바깥으로 나가버리게 되는 것이에요.
돈 문제, 자식문제, 건강문제, 내 명예문제,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오징어 채낚기의 낚싯바늘입니다.
지금 나를 채려고 돌고 있는 거예요, 내가 한 발자국만 나가면 잡아 채입니다.
매순간 모든 문제에 십자가를 바라보시면서 그 문제를 세상 내에 있는 법칙을 발견해서 해결하겠다고 뛰어 들어가지 말고, 마치 ‘자연법칙이다’라고 믿고 농사를 짓지 말고, 이 세상을 탈세해서 하나님께로 가는 겁니다.
십자가에서부터 하나님께로 가는 겁니다.
하나님께로 간 자들을 메시아가 평강의 왕으로서 통치해 가시며 그 마음을 평강의 나라 가운데 머물고 있게 하시는 동안 이 몸이 처한 이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통치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게 될 것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겁니다.
‘봄비가 올 때 봄비를 구하라’
농사를 짓느냐? 자연법칙을 의존하지 말아라, 자연법칙이라는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배려하시고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셔서 허락하시는 것이지 자연법칙은 없다.
이 세상 내에서 돈 잘 버는 법칙은 없다.
증권투자 방법은 없다, 자녀를 잘 양육할 수 있는 법칙은 없다.
김연아의 어머니가 김연아를 어떻게 키웠느냐?
조수미의 어머니가 조수미를 어떻게 키웠느냐?
이걸 보고 배우려고 하지 말아라, 이걸 보고 배우려고 할 때 이미 너는 하나님을 배제한 것이고 이미 세상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이방의 우상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을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
여러분!
선민이 되었습니다, 교인이 되었습니다.
출세한 오징어가 되어서 사탄의 채낚기 낚싯바늘에 걸려들어 걱정의 나라, 근심의 나라, 부담의 나라, 책임의 나라로 들어가지 마시고 주님의 십자가를 먼저 보며 탈세(脫世)하셔서 하나님께로 가서 평강의 나라를 누리실 때에 이 땅에서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태양이 뜨는 것이 어떻게 자연법칙이겠습니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배려요, 사랑이요, 태양이 뜨고 달이 뜨는 동안에 메시아의 통치가 일어나기 위함인 것을 우리가 기억하게 해주시옵소서.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을 만한 무슨 자연법칙이나 사회법칙이나 다방면에 원칙이 있어서 그대로 하면 잘될 것 같은 마음으로 세상 안으로 걱정하며 출세하지 말게 하시고 십자가 바라보며 매순간 탈세(脫世)하게 해주셔서 하나님 품에 안겨 평안을 누리며 우리의 몸이 살아있는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