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7일. 오전 일찍 테르몰리 해양경찰서에 갔다. 10시 약속이지만 오전 9시 30분 도착. 경찰서 사무실에 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나도 제일 끝에 섰다. 그러자 안쪽에 있던 노숙한 사수가 나더러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뭐지? 들어가 보니 내 출항허가서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탈리아를 떠나기 직전 제일 마지막에 들른 항구에 이 서류를 전달하라고 한다. 서로 말이 잘 안통하기에 몇 번이고 강조한다. 당연하다. 나는 그들의 법에 따라야 한다. 내가 100% 이해했다고 하자, 'Bon Voyage - 여행 잘 다녀오세요‘ 라고 말해준다. 다시 말하지만 이탈리아 인들은 정말 친절하다. 감동 받기에 충분하다.
테르몰리 쇼핑몰에 들러 몇 가지 부품을 사고 마리나로 돌아와 아내와 아기가 샤워를 한다. 저녁에 있을 전 선주 까를로네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때문이다. 샤워를 마치고 바로 코인 세탁소에 세탁을 하러 간다. 이점이 나 혼자 항해할 때와 아내와 함께 항해할 때가 다른 점이다. 물론 나도 세탁을 하지만 이렇게 자주는 아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항해를 하게 되면 세탁은 힘들 텐데. 어쨌든 지금은 눈앞에 닥친 일만 충실하자.
세탁을 하면서 윈디 앱을 보았다. 엇! 다음 주 월화에 소나기가 잡혀 있었는데 기상이 바뀌었다. 약 3~4일 간은 바다가 평온하다. 그렇다면 월요일 오후에 바로 출항하기로 마음먹는다. 수요일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월요일 오전 10시 렌트카를 돌려주고 택시를 타고 (이번에는 바가지 쓰지 말아야지) 마리나스베바로 돌아와 출항하면 된다. 그리고 오트란토 까지 222.7해리. 하루하고 16시간을 더 가면 된다. 경유는 85리터 소모지만, 나는 범주를 많이 할 예정이니 30~40리터 이하로 소모할 거다. 만약 바람이 전혀 없으면 85리터 다 소모하게 되겠지. 그러나 여기가 무풍지대도 아니고 완전히 바람이 사라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거다.
세탁을 마치고 다시 바스토 철물점에 가서 유류 보급용 자바라펌프를 하나 산다. 인근에 맥도날드를 그냥 지나친다. 어차피 저녁에 잘 먹을 텐데, 그냥 마리나 인근의 쇼핑몰 파스타 집에 가서 5.5유로 짜리 파스타나 하나 먹자. 가는 길에 산살보데카트론에도 들러야 한다. 황당한 일이 있었다.
지난 2월 2일 배의 가스레인지를 교체해야만 해서 산살보데카트론에 가서 휴대용가스렌지와 부탄가스 10개를 샀다. 아내가 급하게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헛! 1분 간격으로 98,000원이 두 번 찍힌다. 뭐지? 곧장 차를 돌려 가보니 결재 POS 기기의 이상으로 같은 금액이 두 번 찍혔단다. 그럼 하나를 취소하라고 하니, 자신들의 결재 컴퓨터엔 한 건만 결재가 되어 있어 취소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글로벌 회사라, 잘 못 결재된 돈을 그냥 꿀꺽하지는 않으니 며칠만 기다리라고 한다. 3일이 지나도 입금되지 않는다. 다시 가보니 우리 주거래 은행에 전화를 해보라고 한다. 열 받지만 전화를 해보니(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외국 거래 담당자가 이메일로 보내준 사유서에 내용을 써 보내라고 한다. 도대체 왜 죄 없는 피해자인 우리가 이런 것을 작성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서류를 써서 보냈다. 결과 아무런 답이 없다. 그래서 오늘 다시 산살보데카트론에 간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영어하는 여직원에게 가니 얼굴만 보고도 상황을 다 안다. 나는 너희의 내용 확인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하니 데카트론 이탈리아의 본사 서비스 팀에 전화해 본다고 한다. 그러더니 메모지에 상황을 써서 준다. 사인도 하고 71.98유로 금액도 적는다. 너희 본사 서비스 팀에게 너희 거래 은행에도 연락해 두라고 말하고, 확인서를 받아 한국의 은행 담당자에게 메일로 보낸다. 얼마나 빨리 제대로 처리될지는 모르지만 진짜로 황당한 일이다. 만약 금액이 더 큰 건이었으면 어쩔 뻔했나? 이탈리아에서 별 경험을 다 한다. 여러분 데카트론을 조심하세요. POS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결재가 잘 못 되도 취소가 안돼요.
까를로 가족과의 약속시간인 저녁 8시까지 배에서 대기하다 보니 배고프고 피곤하다. 여기 저녁 6시면 한국은 새벽 2시다. 우리는 여기서 늘 5시 정도에 저녁을 먹었다. 뭐가 이리 늦게 만나자는 거지? 만나자는 식당을 검색해보니 헛! 오후 8시 오픈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오후 8시가 식사 시간인가보다. 또 괜히 오해한 것 같아 미안하다. 오후 7시 56분. ‘카리브’라는 레스토랑에 가보니 우리가 제일 먼저다. 까를로 이름으로 예약한 것이 있냐고 물어도 영어가 안 된다. 그러더니 몇 명 정도 오느냐? 처럼 묻기에 10명 정도라고 짐작으로 말하니, 제일 좋은 예약 석으로 안내한다. 헛! 진짜 10명이 오려나?
오후 8시 10분쯤 까를로 부부가 제일 먼저 왔다. 곧이어 까를로 남동생 부부, 까를로 부친 파파로코 부부 까를로 여동생 부부와 그 아들 9살 야고보와 5살 라나가 왔다. 우리 부부와 리나까지 총 13명이다. 그야말로 까를로의 온 가족이 출동했다. 까를로가 우리 아기 리나에게 소리 나는 동화책을 선물로 주었다. 빈손으로 간 우리가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까를로 여동생 부부가 영어를 해서 중간에 통역을 해 주었다. 역시 주제는 어느 쪽 한국이냐? 남쪽 한국이다. 서울서 왔다. 너의 고향은? 한국의 동쪽 끝 강릉이다. 인구 20만으로 바스토, 산살보와 비슷한 풍경이다. 너의 이름은? 나이는? 아이는 몇 살? 자잘한 대화를 진짜 신나고 재미나게 한다. 이들의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 되었는지, 우리 부부도 별 것 아닌 대화를 하며 점점 즐거워진다. 그들도 소주를 알더라.
이들의 분에 넘치는 환대도 고마웠지만, 온 가족이 모두 와서 우리 가족과 인사한다. 이런 일에 가족이 모두 모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 여동생은 시애틀에 있고, 우리 부모님은 한국에 있고, 나는 이탈리아에 있다. 당신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곧이어 피자 주문을 하는데, 헛! 이들은 1인 1피자다. 다른 테이블의 서빙을 보니 피자 크기도 한국의 라지 사이즈 정도인데. 대단하다. 이걸 다 먹는다고?
처음 마리나스베바에 도착했을 때, 까를로에게 이것저것 항해 물품을 부탁했었다. 문자로 계산서가 왔는데 1,250 유로다. 그런데 배 하부 검사 시에, 원래 있어야 할 S-드라이브 고무 커버가 없는 것을 보고 당장 부품이 없으니 부품을 구해 주면 내가 한국 가서 배 들어 올릴 때 장착하겠다고 했다. 항해엔 전혀 지장 없다. 그 고무 커버가 100유로 포함되어 있다. 기억나니? 하고 나는 1,150유로를 확인해 달라고 문자를 보내니 그는 Okay! 하고 자기에게 1,100 유로만 보내라고 한다. 100유로를 따진 내가 좀 머쓱해서 1,200유로를 준비해서 식당에서 건넸다. 세어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는다. 이 남자 한국 사람보다 더 화끈하네.
주문을 하라고 하는데 뭐가 뭔지 알아야 하지. 그냥 추천해 달라고 하니, 감자에 뭐에 잔뜩 들어간 컴비네이션 같은 피자가 주문 됐다. 음료수에 식전 빵에 드디어 피자가 나왔다. 피자는 진짜 환상이다.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먹었던 건 뭐지? 그들은 맥주. 나는 콜라로 건배를 한다. 나중에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니네 다 차를 가지고 왔는데 맥주 마셔도 괜찮나? 조금은 괜찮아. 아마 2000년 대 초반의 한국 수준으로 음주단속을 하나보다. 실제로 그들은 피자를 안주 삼아 딱 한 잔씩만 마신다. 우리는 들입다 부어대니까, 단 한잔도 못 마시게 된 것 아닌가? 절제가 문화를 유지하는 힘이다.
삭사 후에는 티라미슈와 젤라토가 후식으로 나왔고, 나는 에스프레소 까지 한 잔 더 먹었다. 이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다 보니 이미 10시가 훌쩍 넘었다. 이탈리아식의 환대에 감동 가득한 저녁 시간이었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한국에 꼭 오라. 오면 나도 멋진 저녁을 대접하겠다. 진심으로 약속하고 아쉬운 석별의 인사를 했다. 이번 요트 구매 여행은 진짜로 인생 추억이 되었다. 고마워요 까를로, 파파로코, 그리고 가족 분들.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