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궁을 가기 위해서 모노레일을 이용한다. 계단으로 안 올라간다.
편안하게 백세궁 입구까지 나를 데려다준 모노레일.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며 보는 풍경이 참 좋다.
백세궁은 명대에 처음 지어졌다. 처음 "칠성암"이라고 불었으며, "만년선원"이라고도 불렸다. 지원사, 동악사, 감로사와 함께
구화산의 "4대 사원"이다. 백세궁의 건물은 산세에 따라 연결되어 있으며, 상하로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하나로 느껴진다.
주요 건물로는 산문. 대불정, 재당, 방과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전 내부에는 126세를 살며 혀를 깨물어 "혈로 화엄경"을
쓰고 앉은채로 죽어 3년이 지나도 살아있는 모습으로 남아 금가루를 입혀 등신불이 된 무하선사의 등신불이 있다.
무하선사를 모시기 위해 1630년에 창건됐으며, 1983년 이 사원은 한족 지역의 전국적으로 중요한 사원으로 지정되었다.
붉은 담벼락을 따라 걷는데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이다.
붉은 담벽에 난 창이 " 卍만"자는 불교의 상징으로 인도에서 전하여 오는 부처님의 성덕과 길상의 징표라 하며
태양의 상징으로 보기도 하고, 흐르는 물로 해석하기도 하며 둥글게 선회하는 신령한 빛이라고도 한다.
무하선사는 명나라 때 북경의 왕평현에서 태어나 24세 때에 산서성 오대산에서 출가하였고 법명을 "혜옥"이라 하였으며 26세에
구화산을 찾아 40리 산으로 올라 갔으나 승증은 물론이고 거주하는 사람조차 볼 수 없는 지라 산을 내려와 사람들에게 물으니
"당대 초기에는 불교가 융성하여 산에 신위를 모신 집이 많았으나 당말에 이르러 황제와 왕실이 도교를 신봉함에 따라
지방 관리들의 억압과 핍박으로 인해 떠났다"라고 했다. "지장보살 의 육신이 존재하는가? 라고 묻자 어떤 스님이 지장보상의
육신을 모시고 동남제일산 위에다 묻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곳이 육신보전이 있는 장소이다.) 산머리 지세를 살펴보고
빼어난 용두석을 찾아 올라가 지장보살의 탑묘임을 알았다고 한다.
무하선사는 용두석 옆에 거처를 정하고 산열매를 따먹으면서 계율을 엄정히 하고 뼈를 깎아내는 고통과 청빈한 수행 생활을
하며 혀를 잘라 피를 내어 대방광불화엄경을 38년에 거쳐 80권 화엄경을 혈로 완성하였다. 1639년에 혈경 한 질을 남긴 채
126세에 입적을 했다. 혈경은 글자가 분명하고 단정하여 국보로 지정하여 구화산 역사문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내부에서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근엄하게 앉아 계시는 스님께 "한꾸어런" 하면서 한 장만 찍겠다고 하니 보일 듯 말듯 고개를 끄떡이신다. 구의산에서 한국인은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1630년 명나라 말엽에 병부상서 왕대인이 구화산 동남 제일산에 이르게 되자 산꼭대기에서 한 줄기 빛이 탑묘를 비추고
동남방에 탑묘에서도 또 한중기 빛을 비추어 두 줄기 빛이 서로 비추는 지라 산에 올라 동굴에서 노인을 찾게 되었는데
이미 천화 遷化한여 유체는 바짝 말라 있었지만 마치 살아 있는 듯 한 무하선사를 발견하였고 그 옆에는 "혈로 쓴 화염경"
한 질도 발견하였다.
명나라 의종 황제 때인 1630년 황제가 무하화상에게 "응신보살"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위선최락"이라는 사액을 내렸다.
같은 해에 적성암이란 이름을 "만년선사"로 바꾸었고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부터 백세궁으로 불렸다.
이곳에서 참배를 하면 100세까지 장수한다고 하는데....
눈치 보면서 사진 찍느라 참배를 빼먹었네...
九華山聯句 구화산연구
靑陽縣南有九子山, 山高數千丈, 上有九峰如蓮花.
청양현남유구자산, 산고수천장, 상유구봉여연화.
청양현 남쪽에 구자산이 있는데 높이가 수천 장에 이르고 연꽃을 닮은 아홉 봉우리가 있다.
按圖徵名, 無所依据. 太史公南遊, 略而不書.
안도징명, 무소의거. 태사공남유, 약이불서.
그림에서 이름을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고
태사공이 남쪽을 유람했을 때에도 이에 관한 내용을 적어두지 않았다.
事絶古老之口, 復闕名賢之紀, 雖靈仙往復, 而賦詠罕聞.
사절고로지구, 부궐명현지기, 수령선왕복, 이부영한문.
옛일을 전하는 노인들의 입에도 오르지 않고
이름 있는 현인들의 기록에도 그 이름이 빠져 있으며
영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문도 좀체 들어볼 수 없었다.
予乃削其舊號, 加以九華之目.
여내삭기구호, 가이구화지목.
(그래서) 내가 옛 이름을 빼고 ‘구화’란 이름을 더했다.
時訪道江漢, 憩於夏侯回之堂, 開檐暗幘, 坐眺松雪, 因與二三子聯句, 傳之將來.
시방도강한, 게어하후회지당, 개첨암책, 좌조송설, 인여이삼자연구, 전지장래.
이때 도(道)를 찾아 강을 타고 내려오다 하후회의 집에서 쉬게 되었는데
처마 밑에 두건을 쓰고 앉아 눈에 덮인 소나무를 바라보다가
고제와 위권여, 그리고 나 세 사람이 뒤에 올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시를 지었다.
改九子山爲九華山聯句
개구자산위구화산연구
妙有分二氣 靈山開九華(李白)
태초에 신묘함이 음과 양으로 나뉘고
그렇게 나타난 영산이 구화산이네(이백)
層標遏遲日 半壁明朝霞(高霽)
봉우리가 겹쳐 일출이 늦어지기는 하지만
산허리부터 아침놀로 밝아지고 있네(고제)
積雪曜陰壑 飛流噴陽崖(韋權輿)
봉우리마다 쌓인 눈 침침한 계곡을 비치다가
볕 비치는 절벽에서 폭포처럼 쏟아지는데(위권여)
靑塋玉樹色 縹緲羽人家(李白)
봉우리마다 나무들 푸른빛으로 빛나고
신선이 사는 곳 아득하여 찾을 수 없네(이백)
구화산은 불교 명산으로, 역사적으로 승려들은 엄격한 규율을 준수하여 고기를 금하고 채식을 하였으며, 산민과 관광객에게도
고기를 금지하였었다. 수백 년 동안 관례가 이어져 오면서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명성을 떨친 구화산 "채식"있다.
그런데 이건 뭐꼬?
호텔 아래 호텔 조식을 제공하는 조그마한 식당에서 걸어 논듯한데...
그런데 이 식당 주인 참 싹수가 없었다.
"불친절"과 "싸가지"는 좀 다르지.
허참, 그리고 보니 맛있는 삼겹살이 군침 넘어가네.
백새궁에서 조금 일찍 일정을 마쳤다. 덕분에 여유로운 시간. 호텔 앞 테라스에서 구화산 계곡을 내려다보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데 잘생긴 호텔 직원 슬그머니 차 한잔을 올려놓고 간다. 이 호텔 상태도 좋고 직원들도 세심하게 친절하다.
얼마 있다가 샤인머스켓까지 한 접시 내어 줘서 칭찬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당신도 먹었잖아..!!
구화산에 밤이 내린다.
낮에 그 많던 보살님들도 숙소에 들으셨겠지.
자비희사 慈悲喜捨
상대방에게 역린 마음으로 다가서서, 상대의 아픔에 같이 슬퍼하고, 상대의 성공을 기뻐하며,
내가 준 마음을 되돌려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평정심을 가져라.
마실정회동
첫댓글 일찍 마무리한 일정에 한가롭게 쉬었던 기억...
숙소도 좋았고... 직원들도 친절했고....
나무아미타불!
이번 여행일정중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곳이 구화산 이였는데 의외로 편안함 이랄까....좋았던 기억이 있다
여행중 누구를 만나느냐도 중요 한데 호텔직원이 영어로 안내를 하고 우리를 많이 배려해줬다 중국여행중에 영어로 안내하는 직원은 처음 본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