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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 10월 27일 평양 탈환 환영 시민대회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의 원전은 이솝 우화다.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라는 격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 또한 이솝 우화인 ‘북풍과 해’와 밀접하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라는 우화다.
우리 정치사의 중요 대목에까지 이솝(기원전 620년께~564년께) 우화(寓話)가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양치기 소년,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 시골쥐와 서울쥐, 신포도처럼 제목만 들어도 내용이 연상되는 이솝 우화가 생활 속 깊숙이 침투한 것도 한 가지 배경이 된다. 우화의 역사를 보면 우화는 애초에 정치와 밀접했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우화는 정치 담론에 사용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웅변가들은 주장을 펼 때 우화를 적절히 활용했다.
노예 출신의 못생긴 현인
그리스 철학자들은 당시 언어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던 우화를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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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처럼 이솝도 추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지혜가 더 빛을 발한다는 가치관을 그들이 대표한다. 이솝은 머리가 크고, 목이 짧고, 배가 나온 데다 등이 굽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말도 하지 못했으나 이시스 여신을 모시는 여성 사제에게 친절을 베풀어 말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이솝은 노예였다. 기원전 5세기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기원전 484께~430)는 이솝이 기원전 6세기에 살던 노예라고 기록했다. 노예였을 때 비서로 일했던 이솝을 그의 두 번째 주인이 해방시켰다. 자유인이 된 이솝은 왕들과 도시국가의 자문으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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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현실주의 세계의 원리 담겨
현대인은 중세·근대에 살던 사람들보다 고대에 대해 더 많이 안다. 이솝 우화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고대 생활상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이솝 우화에 나오는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니다. 긴털족제비나 흰족제비가 맞다. 일반 그리스 가정에서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 시대 이후이기 때문이다.
포도를 따지 못한 여우가 ‘포도가 시다’며 오기를 부리며 떠났다는 이솝 우화에서 유래한 신포도(sour grapes)에는 다른 뜻이 담겼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리스어 원문을 검토하면 신포도보다는 ‘익지 않은(unripe) 포도’가 더 정확한 번역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익지 않은 포도’가 성적으로 미숙한 여자를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적어도 겉으로는 매우 점잖은 시대였다. 이솝 우화의 원전에는 대변·소변이나 섹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심한 첨삭 과정을 거치며 그런 이야기들은 빠졌다. 특히 이솝 우화가 어린이에게 어른의 세계를 교육하는 교재로 사용되면서 이솝 우화는 원전에서 더욱 멀어졌다. 빠진 이야기로는 하이에나에 대한 것이 있다. 하이에나는 수컷과 암컷의 성(性)이 매년 번갈아 바뀐다는 고대 신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다. 수컷 하이에나가 암컷에게 ‘부자연스러운(unnatural)’ 짓을 하려고 하자 암컷이 이렇게 말했다. “네가 내게 하려는 짓을 곧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솝 우화의 내용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경우도 있었다. 케임브리지대 동물학자인 크리스토퍼 버드가 2009년 행한 실험에 따르면 떼까마귀는 병 속에 돌을 넣어 수위를 높인 후 물에 담긴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다. 목마른 까마귀가 조약돌을 물병에 집어 넣어 물을 마시는 이솝 우화의 ‘까마귀와 물병’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프랜시스 발로(1626?~1704)가 출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