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국민소득)
물가는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지만 그 자체로 개인과 기업 등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주는 핵심 경제변수이다. 일반적으로 경제정책의 목표는 물가안정, 고용확대, 경상수지 흑자 기조 유지의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개개인의 살림살이는 물가가 안정되고 일자리가 넉넉하면, 성장이나 수출 등과 관계없이 좋을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소득의 실질가치가 감소하여 살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 양이 줄어 살림살이가 어려워진다. 이와 함께 현찰이나 예금, 채권 등을 가진 사람과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손해를 본다. 반대로 물건이나 부동산을 가진 사람과 빚이 있는 사람은 이익을 본다. 즉 물가가 오르면 금융자산 소유자와 채권자의 소득이 물건을 가진 사람과 채무자의 소득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물가가 국민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소비, 투자, 수출입 세 부문 모두에 걸쳐 나타난다. 첫째,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물가상승 시 소비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 소득이 물가에 맞추어 늘지 않으면 실질소득이 감소하여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이 준다. 또한 물가가 상승 시 예금, 채권 등 금융자산과 부동산의 실질자산 가치도 감소하는 것도 소비감소 요인이다. 여기에다 물가상승은 중앙은행의 강력한 금리인상 요인으로 전반적 금리상승으로 이어지기 쉽다. 금리상승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소비 등 국민소득에 마이너스 효과가 크다.
이렇게 일반적으로는 물가상승 시 소비가 감소하나 이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경우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물가가 계속 상승하면 물건 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려는 수요가 있어 일시적으로 소비가 늘 수 있다. 이러한 논리로 물가가 떨어져 마이너스 상승률을 보이면 소비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물가가 더 떨어진 다음에 사려고 하기 때문에 소비가 감소할 수 있다.일본과 같은 디플레 국가에서 소비가 정체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물가의 상승과 하락은 소비의 교란요인이 되기도 한다.
둘째, 물가가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일차적으로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물가상승은 기업의 입장에서 생산물의 판매가격 상승을 의미하므로 기업의 수익성과 현금흐름이 개선되어 기업의 투자를 증가시킨다. 물론 물가상승은 원자재나 투자재의 구입비용 상승도 초래하여 투자를 위축시키는 효과도 있지만 투자를 증가시키는 효과 보다는 작을 것이다. 그리고 기업은 채무자인 경우가 많고 완제품과 원자재 등 물건을 보유하고 있어 물가상승 시 소비자보다는 유리한 입장에 선다. 이것도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물가상승은 소비위축을 초래하여 기업의 생산물에 대한 수요부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투자에 제약요인이 된다. 또한 물가상승이 지속되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대한 투기심리가 커져 기업 등 경제주체가 생산활동보다는 투기활동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 약화, 경제구조 왜곡 등을 초래하여 장기적으로 생산적인 투자의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적당한 수준까지의 물가상승은 투자증가 요인이지만 과도한 상승은 오히려 투자 감소로 연결될 수 있다.
이에 비해 물가하락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소비와 마찬가지로 하락의 정도와 관계없이 감소요인이 될 것이다. 물가하락은 기업의 판매수입 감소, 보유자산 가치하락, 소비부진에 따른 판매수요 감소를 초래하고 물가하락의 정도가 커질수록 이러한 투자감소 효과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물가가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은 환율까지 게재되어 있어 조금 복잡하다. 먼저 물가상 승시 환율이 변하지 않는다면 국내의 물가가 상대적으로 더 비싸지게 되므로 수출은 불리하고 수입이 유리해진다. 물가상승은 수출을 감소시키고 수입을 늘리는 요인이다. 물가는 한 나라 통화의 국내가치이고 환율은 대외가치이기 때문에 물가가 올라 통화의 국내가치가 떨어지면 대외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돈의 대외가치가 떨어지면(환율이 오르면)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은 좋아지고 수입상품의 가격경쟁력은 나빠진다. 이렇게 되면 수출이 늘고 수입이 준다.
결국 물가상승은 일차적으로 수출 감소와 수입 증가, 물가하락은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로 나타난다. 그러나 물가변동과 함께 환율이 변동한다면 물가가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은 알기 어렵다. 여기에다 환율상승은 원유, 원자재 등과 수입완제품의 가격상승을 통해 물가인상 요인이다. 따라서 물가가 오르면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 회복을 위해 환율이 오르고, 환율상승은 다시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물가상승과 환율상승의 악순환은 과거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은 중남미 국가를 포함 많은 후진국에서 일상적으로 겪었다. 한국도 중남미 국가들 보다는 정도가 덜 심했지만 1960년대 이후 2013년 까지 지속적인 물가상승과 환율상승이 있었다. 1969년 달러당 원화환율이 300원에서 2013년 1,100원으로 올랐고 물가는 같은 기간 21배 정도 올랐다. 같은 기간 동안 독일과 일본은 환율이 1/3~1/4로 떨어졌고(통화가치가 오르고) 물가는 3.3배 정도 오르는데 그쳤다.
한국은 과거 40여 년 간 높은 성장을 이루었지만 물가와 환율이 올라 소득분배구조와 경제구조가 왜곡되었다. 물가상승은 앞서 설명한 대로 채권자와 금융자산 소유자의 소득을 채무자와 실물자산 소유자에게 이전시키고 환율상승은 다수 국민과 수입업자의 소득을 수출업자에게 이전시킨다. 이에 따라 다수 국민은 성장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수출기업과 관련된 사람, 자산보유자들은 더 많은 소득과 부를 갖게 된 것이다.
종합해 보면 물가변동은 국민소득을 포함한 경제전체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과도한 상승(인플레)이나 하락(디플레)은 경제에 특히 큰 마이너스 요인이다. 물가는 안정되어 경제주체들이 변동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승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적정 상승률은 어느 수준일까? 소비자물가 기준 연 1.5~2% 정도 상승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안정이라고 물가상승률 “0”%에 근접하면 실제는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잘 작성되면 실제 구매력을 0.5~1%포인트 낮게 평가하는 경향(소비자물가지수의 상향 편이현상)이 있다.
예를 들어 소고기 가격이 올랐을 때 가격이 오르지 않은 닭고기나 돼지고기로 소비를 조금 바꾸면 구매력의 손실이 소고기 값이 오른 만큼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기술개발이나 품질개선 효과도 물가에 다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것들이 소비자물가지수의 상향 편이현상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물가상승률이 2% 정도 보다 많이 넘으면 가계나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물가상승을 감안해 소비나 생산, 투자를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물가상승이 장기화되거나 확대되면 물가상승 기대(인플레기대심리)가 고착되어 물가상승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물가상승률을 1.5~2% 정도 유지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남미국가 등 많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대부분 인플레가 문제되지만 일본은 1990년대 중반이후 물가상승률이 0%대나 마이너스를 보이는 디플레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은 2001년부터 양적완화조치를 통해 돈(중앙은행의 본원통화)을 엄청 풀고 있지만 아직 디플레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