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젼, 열하일기> 고미숙 지음, 박지원 원저
많이 들어 너무나 익숙한 열하일기를 본격 탐색하기 전에 숨을 고르기 위한 쉬운 책을 골랐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여기저기 구석구석 살펴서 연암이 말하는 핵심 철학사상을 저자 고미숙씨의 방법대로
알기 쉽게 접근한 책이다.
저자는 ‘열하일기’를 벗 삼아서 공부한 지 10여 년이 족히 넘었고 그리고는 이내 연암선생님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던지 열하일기 관련한 도서만 벌써 여러 권 집필하였다.
정조대왕 4년 청나라 건륭황제 45년, 1780년.
황제의 환갑에 들어 축하 하기위한 조선의 대규모 사절단이 꾸려지고 연암이 북행길에 오르면서 글을 썼던
<열하일기>를 중심으로 하여 그때의 상황에 있을 법한 상황설정이 곁들여져 재미가 있다.
오호, 이거 딱 내 수준 아닌감?!
연암의 나이 44세, 그 해 5월에 출발하여 10월에 돌아오는 장장 3천 여리에 달하는 북행기의 시작부터
연암의 깊은 사유는 징검다리처럼 이미 벌써 물 속 깊이 박혀있다.
이 북행길에 오르기 전부터 연암은 문명의 정수를 청나라로부터 배우자는 그의 벗들과 함께 이미 북학파로 불린지 오래였기에, 연암의 이 여행은 그에게 알고 싶고 보고 싶은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1. 길은 ‘사이’에 있다 - 얕지도 깊지도 않으며, 잔잔하지도 않고 거세지도 않은 물결이며,
떨어져 있지도 붙어있지도 않으며 오른쪽도 아니며 왼쪽도 아닌 공간이다.
절대적 척도를 부정하고 양쪽을 다 긍정하는 사유, 즉 이것과 저것 두 양변을
고정시키는, 양변에 끄달리지 않고 둘 다를 벗어나 제 3의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다.
2. 이용利用과 후생厚生 그리고 정덕正德 - 연암이 말하는 문명의 핵심요지이다.
‘이용’이 있은 뒤에야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이 될 것이다.
그 쓰임은 이롭게(이용) 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후생)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쓰임이 올바르게 된다면 삶을 도탑게 하고 그리하여 덕을 바르게 펼수 있는 것(정덕)아닌가
(연암이 이용후생학파로 분류된 그의 철학이 예서 나온다)
개인, 가족, 국가, 인종, 성별등의 경계를 넘어서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능동적인
가치들이 바로 ‘덕’이다. 이 덕은 결코 자본과 권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용利用과 후생厚生을 논하는 자, 반드시 정덕正德을 환기해야 한다.
3. 대상과 주체 사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나에 대한 집착, 곧 아상(我相)을 버려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깨달은 건 마음과 대상사이의 분별심이 사라질 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이 열린다.
4.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고 듣는 것에만 의존하는 분별을 멈춰야 진정한 ‘사이’의 사유가 가능하다.
연암의 공부법은
生 과 死, 몸과 우주를 하나로 사유하는 능력을 말하며.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위험한 순간에도
존재와 삶에 대한 통찰을 놓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바빠도 생각의 끈을 놓아버리는 우리의 공부법은 얼마나 초라하고 빈곤한 것인가를
작가는 꼬집어 핵심을 알려준다.
우리가 사는 인생길은, 너나 나나 연암도 모두 ‘길 위의 존재’라는 것으로 연암은 화룡점정을 하고있다.
길 위의 존재,..
길 위에서 나고 길을 걷다가 길 위에서 삶을 마감하는 존재.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여행길은 곧 끝나겠지만 우리는 각자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해야 한다.
삶이 길이고 길이 곧 삶이 되는 여행ㅡ
그 길의 '사이'ㅡ
그 '사이'에서의 사유라...
에고,, 가볍고 조금 편안하리라했던 예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고미숙씨의 도우미 역할이 있긴 했으나 연암이 던진 화두는 밑천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게 또 하나의 불씨로
남는 너무나 어려운 명제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