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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피정 순례길 답사-9일째
순례는 새롭게 태어나는 길입니다. 순례는 일상을 잠시 덮어두고 주님과 함께 떠나는 여정입니다. 순례는 묵상의 길입니다. 순례는 구원의 길입니다. 순례는 생명의 빛을 향한 위대한 탈출입니다. 순례는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길입니다. 순례는 영성의 등불을 들고 자기의 영혼을 찾아떠나는 나만의 길입니다.
제9일(2013. 3. 30) 밑도 끝도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모든 걸 다 던져버리고 주저앉아 투정을 부리고 싶었습니다. 피로가 쌓여 지칠수록 출발은 늦어지고 철부지가 된 기분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당신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라는 물음에 선듯 답을 하지 못하고 멍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답사는 신창마을 용수리 해변으로부터 조수공소와 금악리 ‘새미 은총의 동산’을 거쳐 한림읍에 이르는 약 30km의 먼 길입니다. 특히 오늘의 답사길은 완만한 오름을 따라 걸어야 하는 부담이 컸습니다. 오늘 아침메뉴는 캔참치와 김치, 라면과 식은 밥을 넣고 끓인 이른바 취사반장의 이름을 딴 ‘바오로 짬뽕’입니다. 모두들 출발을 서두를 때 클레버 드리퍼로 커피를 내려 마시고 탬블러에도 담았습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작은 여유를 선사했습니다.
10시 40분 어제 끝난 용수리 포구의 한국남부발전 풍력센터로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도착한 최재욱 세례자 요한 형제님이 합류했습니다. 용수리 포구는 김대건 신부님이 1845년 8월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페레올 주교님과 다불뤼 신부님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항을 떠나 서해바다를 건너 귀국길에 큰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 용수리 해안에 표착한 곳으로 고국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했던 감격어린 곳입니다. 이후 배를 수리해 전라북도 금강 하류 나바위로 입국한 뒤 경기도 용인에서 사목활동을 하다 관군에 붙잡혀 고문 끝에 1846년 9월 16일 서울 한겅변 새남터에서 군문수효형으로 순교하셨습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제주 표착 기념관에 전시된 '조선 교우들 보아라'라는 제목의 마지막 옥중서한을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몸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잘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휼하신 때를 기다리라.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서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혀제들 입에 사랑을 친구하노라."
그 곳에는 성 김대근 신부 표착 기념성당이 건립되었고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복원한 라파엘호가 전시되어 있었으며 김대근 신부님이 간직한 '기적의 성모상본'에 있던 성모상이 야외에 건립되어 있었습니다.
신창 성당과 조수 공소를 거쳐 16.5km를 걸어 금악 성당이 있는 성 클라라 수녀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수녀원은 신축공사로 금악성당은 헐리고 펜스가 쳐졌습니다. 바다를 낀 부드러운 곡선의 해변도로를 걷는 것보다 직선으로 이어지는 오름을 따라 걷는 순례길이 멀고 지루했습니다. 한원리 사거리를 지나 5.6km 떨어진 곳에 조수 공소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공소에서는 부활 맞이 계란을 삶고 쓰고 난 두부통을 모아 계란과 사탕, 유과와 젤리를 담는 오현자 마리아 선교사와 교우들의 일손을 도왔습니다. 손자와 손녀를 업고 나와 일손을 돕는 마을의 할머니들이 농사일하듯 정성을 다 했습니다.
선발대가 저지리 사거리 문화예술인 마을을 지나 10.5km를 걸어 ‘이시돌 새미 은총의 동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본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들의 답사 길을 추적하던 한 교우가 배달시킨 점심을 받아두라는 전갈이었습니다. 답사 도중 몇 차례 의 통화 끝에 이시돌센터에서 만났습니다. 덕분에 제주에 온지 열흘 만에 처음으로 싱싱한 돌돔 생선회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생선회를 배달한 사람은 저희들이 찾아가는 한림 성당에서 오늘 밤 세례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답사대는 운전석에 놓을 수 있는 성모상을 선물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임피제 맥그린치 신부님이 조성하신 예수 생애 공원과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호수와 성모동굴, 삼위일체 대성당과 이시돌 목장을 둘러보며 예수님 부활의 의미를 묵상했습니다.
이시돌 목장의 넓은 초지에서 만난 경주마들은 이곳의 내력을 말해주려는 듯 울타리까지 다가서기도 했습니다. 이시돌(Isidore)은 희랍어로 ‘선물’이라는 뜻으로 농민의 주보성인이기도 합니다. 신부님은 1954년 당시 한림 공소에 부임한 이후 버려진 황무지, 가난하고 척박한 땅,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외면한 곳을 개간하기 위해 씨를 뿌렸습니다. 150만 평의 초지를 갖춘 목장과 오늘날의 이시돌 센터를 조성하여 오름과 습지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곳에 전원과 목장을 가진 오늘의 금악리를 일구었습니다. 맛있고 싱싱한 돌돔회를 배불리 먹은 답사대는 이시돌 센터로부터 8.5km 떨어진 한림 길목 동명교차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완만한 오름을 오르며 에너지를 빼앗긴 저희들은 윈기를 회복하기 시작한데다 내리막 길은 한결 수월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도착한 한림 성당은 제주에서 중앙, 서귀포에 이어 세 번째 설립된 본당입니다.
밤 10시부터 시작된 ‘부활성야미사’는 불의 예식과 말씀의 전례에 이어 세례예식이 거룩하게 거행되고 성가대의 특송이 울려퍼질 때는 이미 새벽 1시가 넘었습니다. 오늘 하루 27~28km를 걷는 강행군으로 피로와 고단함이 겹쳤으나 부활성야미사의 감동과 감격이 더 크게 몰려왔습니다. 이곳 제주에서 마음의 영성 카페 가족들에게 부활인사를 드립니다. 예수부활을 통해 새로워지고 주님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용수리 해변에 설치된 한국남부 발전 풍력발전기 조수 공소 전경 이시돌 '새미 은총의 동산' 부활 선물을 포장하는 조수 공소 신자들 생선회를 배달한 김성욱 루카형제(오늘밤 한림성당의 예수부활성야 미사에서 세례를 받을 예정)
예수생애 공원에 전시된 성찬례 제정 십자가의 길 '첫번째 넘어지심' 새미은총공원에 조성된 묵주기도의 호수 이시돌의 삼위일체 대성당 150만평의 초지를 갖춘 이시돌 목장 제주교구에서 3번째로 세워진 한림 성당의 전경 부활성야미사에 참례한 한림 성당 교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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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appy Easter!
한림성당에서 부활성야미사를 드렸네요!
이제 막바지 순례길 답사 은총속에 건강하게 맺음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철부지님! 알렐루야!! 그동안 보살펴주신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드신 만큼 더 은혜로운 부활절을 보내셨네요 부 활 축하 합니다.
명금당님! 기회 있으면 우리 함께 순례길 걸으시죠. 부활은총 듬뿍 받으십시오.
정말 고단하시겠네요.
저희는 성삼일에 성당 나가는 것도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군요.
보람있고 뜻깊은 순례답사와 그 곳에서 맞이한 성삼일, 부활성야미사까지 하시니...
답사팀 모두 댁으로 오실 때까지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
청초이님! 맞아요. 이번 순례답사의 가장 큰 은총은 한적한 시골 성당에서 성삼일을 보낼 수 있었던 일입니다.
님께서도 행복하십시오.
순례하시는 내내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순례답사 하시는 신부님과 대원님들 화이팅입니다.
강엘리님께서 외치시는 화이팅이 들립니다. 힘내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치고 힘드신 여정중이셔서 부활 성야 미사가 더욱 은총의 시간이셨으리라 믿어지네요..
부활의 기쁨과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오드리님! 잘 계시죠? God with us!!
고단함과 은총의 길을 매일 매일 걸으셔서 기쁨으로 부활하신, 신부님과 세 분께 진정 부활 축하 인사 드립니다~~^^
하늘인연님! 참고 견딘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합니다. 결국 순례는 변화였습니다.
저의 게으름으로 부활 축하인사가 충분히 늦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