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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 김경집
23일(목) 저녁 7시부터 김천시립도서관 시청각실에서 강의가 있어 집을 나섰다. 비는 내리지만, 다행히 바람은 그다지 강하지 않아 걷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깜빡 잊고 늦게야 신청을 했더니 이미 마감되었다고 후보로 등록해 주었다. 7시에 와서 기다렸다가 신청자들이 들어가고 난 다음 빈자리가 있으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아무튼 도착하니 태풍으로 많이 못 와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래도 자리가 제법 찼다. 늦게까지 온 사람까지 치면 거의 다 찼던 것 같다.
김경집님 소개가 잠시 있었다.
김경집
서강대학교 영문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교수를 지냈다. 서른 살 무렵에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며 25년은 마음껏 책 읽고 글 쓰며 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살겠다고 마음먹었고, 두 번째 25년을 마친 뒤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지금은 충청남도 해미에 있는 작업실 수연재(樹然齋 )에서 ‘나무처럼 사는’ 바람을 품고 살고 있다.
지금까지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2012 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나이듦의 즐거움》 《생각의 인프라에 투자하라》(2008 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도서 ) 《책탐》(2010 년 한국출판평론상 수상) 《생각의 프레임》《완보완심》 《위로가 필요한 시간》 《지금은 행복을 복습하는 시간》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공저)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철학교과서 , 나》(공저) 등의 책을 썼고 《어린왕자 , 그 두 번째 이야기》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밖에도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세상과 교감하는 글을 쓰고 있다 .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가치가 실현되는 세상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싶었던 오래전부터의 염원을 담아 이 책 《인문학은 밥이다》를 집필했다.
[출처]인문학아카데미_김경집 |작성자 SIBF2018
강연은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내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사는가? 우리는 노동삼권에 대해서 배우지만, 내 노동의 가치, 권리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김천고등학교와 달리 김천여자고등학교라 했을 때, 남자와 달리 여자를 붙이는 것은 울타리를 쳐놓는 것이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관심이 없고 으레 그러려니 했다. 익숙하다는 것은 위험하다.
가장 큰 행복이란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린 왕자’를 좋아한다. 아마 인생에 가장 순수하고 맑은 시절에 읽은 책이라 읽으면서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하는 아련한 그리움. 개인적으로 ‘어린’이라는 번역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이라는 것은 시간을 뜻한다. ‘돌아가지 못하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비해 ‘작은’이라고 번역했을 때 그것은 ‘내 안에 늘 담고 살아가는’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중에서,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올라온 글
나였던 그 아이, 나인 그 아이, 나일 그 아이로 가는 과정이 삶이다.
1997년 세상이 변했다
20세기는 ‘속도와 효율’의 시대였다. 그 전반기엔 전쟁을 치렀다. 전쟁에선 성능 좋은 무기를 더 먼저 개발하는 게 중요했다. 전쟁이 끝난 후반기엔 산업화가 현저하게 일어났다. 대량 생산하여 대량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60년대 산업화에 접어든 지 30년 만에 OECD에 가입했다. 가히 초고속 압축성장이라 할 수 있다. 그 동력은 많은 노동력과 희생이 원인이었다 하겠지만, 가슴 속 욕망 – 내 새끼는 이 질곡의 삶을 안 살게 해야겠다는 욕망이 가장 컸다.
그래서 악착같이 공부 시켰다.
그러나 우리 성장은 중국의 덕택이기도 했다.(이러한 국제 정세에 대한 관심을 우리는 가져야 한다.) 중국은 60년대 우리가 가발 산업을 할 무렵 자급자족과 중공업 정책을 폈으나, 기근으로 수십 만 명이 죽으면서 마오쩌뚱이 실각하고 경공업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66년에서 76년에 문화혁명이 일어나 공자 비판이 홍위병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 이유로 중국 경공업 발전이 늦춰졌다. 그때 중국 경공업이 우리 산업과 경쟁했다면 우리는 중국(저가와 대량 생산)에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1989년에 독일이 통일되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하나는 감상적인 반응 : 이제 우리가 마지막 분단국이구나!
또 하나는 막연한 기대(우리도 언젠가 통일되겠지)를 가졌으나, 정작 독일이 통일되기 전 기울인 노력에 대한 정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때도 그 이후에도.
독일은 속도와 효율은 끝났다는 깨달음을 가졌다. ‘역사의 종말’에서 저자는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음을 이야기했다. 속보와 효율만으로 따지면 공산주의는 벌써 무너졌을 것을 이념으로 좀 더 오래 끌었을 따름이었다.
1991년 당연하게도 소련연방이 해체되었다. 이후 승자독식, 신자유주의가 만연했다.
미국 모기지 파동도 소련과 연관이 있다. 예전에 수학박사들이 주로 취업하는 곳은 나사 우주항공사였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은 더 이상 우주항공에 돈을 투자하지 않게 되었다. 경쟁자가 사라졌으니 막대한 돈을 투자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우주 발사가 있는가?
그러면 그 많던 수학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월가에서 이들을 스카우트했다. 제조업은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금융은 파생상품을 계속 만들며 이윤을 추구한다.
1997년, 지독한 IMF 치하 그 고통, 그 사태는 누가 만들어냈나? 정책을 결정하는 자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책임은 그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져야 했다. 그 전에는 비정규직들이 없었다. 대학교에 경비서는 분들이랑 청소하는 사람들도 다 월급은 적었어도 학교 직원이었다. 그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IMF치하 혹독한 시련 속에 대량해고가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감수해야 했다. 금 모으기 운동? 3년 만에 IMF 졸업? 밑에 사람들이 그 고통을 감수하고 고통이 위로 향할 무렵 끝나버린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고, 노동자들은 짤려 나고 그러면서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일했다. 비정규직으로.
이제 청년 일자리가 문제가 되었다. 그러자 자기 계발서가 유행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잘못해서이니 내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계발서를 읽어나갔다. ‘마시멜로 이야기’ 등등이 쏟아져 나왔다. 좀 더 노골적으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등이 나왔다.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 자기 계발서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했다.
그런데 아무리 자기 계발서를 읽어도 사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치유’로 나아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이지 그게 어떻게 청춘인가? 우리가 할 일은 미안해해야 한다. 매일 청년 10명이 자살하고 있다. 희망이 없어서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에게 “아프니? 미안하다”고 해주어야 한다. 공감해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그래도 안되니 다음 ‘힐링’으로 나아갔다. 그 원조는 ‘힐링캠프’이다. 아직도 여전히 개인 문제로 치환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먹는 것뿐이니 먹방이 유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정의지수’마저 소비당하고 있다. 백종원은 좋은 사람이다. ‘골목식당’에서 보면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각종 먹방을 하면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편의점에 도시락을 납품하면, 누군가가 납품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떨어져 나가고 그러다보면 그 누군가는 끝내 내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걸까? 우린 이미 ‘잘난 놈, 힘 센 놈이 제일이다’는 의식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는 공감하지 못한다. 우리 자식들에게 어떤 미래를 만들어주어야 할까?
우리 부모 세대 반만이라도 ‘희생’할 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적 위로가 바로 복지다.
① 삶을 재구성할 사회적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평생교육원이 만들어졌으나, 주로 취미, 건강, 오락에 치우쳐 있다. 지금 시니어들의 문제는 생애 내 나이만큼 오래 산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삶을 살아가는 데에 모델이 없다. 그러니 생각을 뒤바꾸어 내가 모델이 되어야 한다.
② 아직도 복지 하면 퍼준다고 생각한다. 복지를 처음 도입한 사람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때 비스마르크 재상(별명 철혈재상)이었다. 그는 공황 상태의 나락에서 사회 안전판을 만들려고 사회 연금을 고안해냈다. 19세기 중반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인가?
이 지점에서 ‘인문학’이 나오게 되었다. 아무리 해도 삶은 안 바뀌니 사람들은 외치기 시작했다.
“내 인생 뭐야?”
그러나, 그것도 상품화되기도 했다. 우리를 지배한 것은 탐욕이었다. 사회적 연대에 대한 학습이 부족했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나와 세상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의 무늬’라 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정신, 미래 의제를 만들어낼 토대가 바로 인문학이다.
21세기 인문학적 가치는 지금 안고 있는 질곡을 어떻게 벗어나서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우나? 고민하는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삼포를 넘어 오포(결혼 포기)를 넘어 연애도 하지 않는다. 자기를 책임지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하며 자기 미래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인문 정신 토대는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회적 연대를 통해 나은 방향으로 바꿀까?
지금도 구조적 모순은 여전히 말하지 않는다. 반성적 성찰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직진만 해왔기에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이 교육이다.
여러분은 학교 다닐 때 미분 적분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이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 번도 배우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계산만 잘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래는 삶과 앎의 연대가 필요하다. 기득권 세력은 없는 것들끼리 싸우게 한다. 내가 컴퓨터를 고치려면 닭집으로 가면 된다. 닭집의 50%가 망한 벤처기업 사장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은 최저임금 때문에 그들이 망하는 것처럼 같은 무리들끼리 싸우도록 한다.
4차 산업은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 경제인 포럼에서 ‘4차 산업 혁명도래 선언’에서 나온 얘기이다. 그런데 우리만큼 호들갑 떠는 나라가 없다. 대체 누가? 기업이 나서고 언론이 부추기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공포 – 71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 개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는 것이다. 즉 500만 개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거다.
여기서 비행기가 서서히 착륙하듯(연착륙) 일자리 없어지는 충격을 서서히 하겠다는 위험한 호들갑이 나타난다. 즉 ‘내 맘대로’ 해고이다. 그런 속에서 우리 미래 세대들이 노예처럼 안 살게 하려면 연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왜?'라고.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가 아니라 농업인의 날이다. 그런데 빼빼로 대신 형태가 비슷한 가래떡데이로 하잔다. 그런다고 농업이 활성화되나? 농업은 미래 으뜸 산업인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예로 중국은 2009년 독신자끼리 선물하는 날을 정했다. 독신자들의 우울한 마음을 읽어낸 ‘약자’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상술이긴 하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는 이렇게 형태가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문화를 읽어내는 이 힘은 교육에서 가능하다.
우리 교육에도 희망이 있다. 전 세계에서 지식량이 제일 많다. 오랜 시간 주입식으로 집어넣기 때문이다. 여기에 입체화하고 재해석하는 능력이 생기면 바뀔 수 있다.
‘질문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혁명의 시대에 혁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연대, 입체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러분은 지방에 산다고 기죽지 마시기 바란다. 생각은 장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가 갖고 있는 흐름이 수구적·퇴행적이면 치명적이 된다.
우리는 어떻게 학습되어 왔으며, 학습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도서관은 중요한 과도 장치이다. 더 나은 삶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서를 키워야 한다. 어느 나라는 5년간 사서를 하면 대학원에 보내줘 전문가로 양성한다. 각각 전문적인 분야가 있다. 우리 사서들은 너무도 일을 많이 한다. 도서관 사서는 책만 보는 사서가 있어야 한다. 다 안 되면 김천에서, 구미에서 특색 있는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된다. 그래서 그 책과 맞는 사람에게 연결시켜줄 역할을 해야 한다.
알면 두드려라. 내 몫은 내가 챙겨야 한다. 도서관은 미래 가치를 만드는 핵심이다.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많은 사례들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내용들이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김천은 사드로 그 첨예하게 대립된 곳이라며, 샌드위치처럼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시류를 잘 읽어 적절하게 양쪽을 이용하며 헤쳐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좋았지만, 특히 마지막에 사서 이야기는 정말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경북은 사서에 대해 무관심한 곳이다. 학교 도서관 사서 예산이 없어져서 많은 학교에 전문 사서교사가 없어졌다. 그저 서류만 많이 만들게 할 따름이지 사람이 있어 그곳이 활성화된다는 생각은 없다.
율곡동 주민들이 율곡동 도서관 정책에 대한 요구가 있는데, 김천 시립도서관 모델을 잘 참고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겉만 번드레한 것이 아니라 진짜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곳, 찾아가고 싶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도록 사서들뿐만 아니라 교사나 학부모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