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언령8집_지도교수 시_김주완_5편.hwp
김주완얼굴사진.jpg
지도교수 시 - 김주완
■ 약력
* 1949년 경북 왜관 출생
* 1984년 『현대시학』등단(구상 시인 추천)
* 현) 사단법인 한국문협 이사
* 시집 :『구름꽃』 『어머니』 『엘리베이터 안의 20초』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
* 카툰 에세이집 :『짧으면서도 긴 사랑 이야기』
* 저서 :『아름다움의 가치와 시의 철학』 『미와 예술』외
* 논문 : 「시의 정신치료적 기능에 대한 철학적 정초」외
* 철학박사(예술철학 전공)
* 전) 대구한의대 교수, 현) 대구교대 겸임교수
* 현) 사단법인 대한철학회 고문
* 현) 운제철학상 운영위원장
도르래
나는 그저
제 자리에서 돌 뿐인데
너희는
천형의 내 몸을 파고들어
푸른 살 깎으며
내려가고
올라가고
저 발칙한 꽃들의 개화를 어쩌겠는가
무심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어쩌겠는가
수양버들
허리 긴 오월
간들간들
물가에 나부끼는
저 낭창
어쩌면 좋니
내가 죽지, 내가 죽어
말의 유령
촉망받는 여류가 보내온 신간 시집, 찜통에서 갓 쪄낸 찐빵의 팥소처럼 시가 뜨겁다, 급속히 난시로 퇴화하는 시력, 너머로 가물가물 무한 축소되는 활자들, 회화문자처럼 낯선 반추상의 그림들, 고물거리고 있다, 난시難詩가 난시亂視를 재촉한다, 도망치는 시를 쫓아가는데 눈이 아팠다, 왜 종이책의 글자는 작은 것일까
출입이 차단된 숲을 신비라 부른다, 뒤틀린 나무를 은유라 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방언이라 칭한다, 접신한 무녀의 푸념에 사람들이 손바닥을 비빈다, 자꾸 절을 한다, 그러다 보면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이는 수가 있다, 미신의 늪은 시야 밖, 신령한 어둠 속에 있다, 거기, 말의 유령들이 떠돈다
축소 지향의 활자와 원방 배회의 시, 젊다고, 신선하다고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들, 군맹무상群盲撫象*인가
* 군맹무상(群盲撫象) : 맹인(盲人) 여럿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으로, 사물을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잘못 판단함을 이르는 말. 열반경에 나오는 말이다.
검색, 비공개 1
긴 낮 저물 즈음, 유월 강바람 한 줄기 불어와 얼굴을 덮쳤다, 주린 코를 가득 메우는 분꽃 같은 모성, 어머니, 젖내 나는 어머니의 강으로 초승달 쪽배 떠간다, 혼자 온 먼 길 후려치는 저 소리, 섬으로 앉은 왜관 소공원, 깊은 잠을 깨우며 부르는 소리 절절한데, 맑고 은근한 현호색, 꽁지 긴 물새를 찾아 강으로 나간다, 그러나 둑마루 아래, 저문 강은 절벽이다, 완고한 침묵이다, 세상에, 어머니는 없다
편백나무 숲 2
편백나무 숲으로 가기로 했네, 염주알 같은 마른 열매 주워 목베개 만들자고 했네, 팔월 쓰르라미가 사철 내내 울 것이니
거기는 키 큰 자들의 마을, 누가 먼저 갔기에 길은 나 있어, 숱 많은 머리를 맞대고 은근히 내려볼 것이네, 푸른 물 곱게 든 새벽을 머금고 있을 것이니 아예 우산은 가져가지 말아야 하네, 수런수런 비라도 내리면 사람이 나무가 된다고 하네, 빗줄기 같은 사랑은 거기 어디 걸어두고 와야 하네, 조금씩 녹아 마른 땅 깊이 스며들어, 멀리 흘러가라고
따닥따닥 집을 파는 딱따구리 부리가 성할런지, 괘념치 마시게, 세상을 깨우는 소리는 상하지 않느니, 편백나무가 생명을 들이는 거룩한 절차, 교만이 없고 과시가 없고 허욕이 없는 성사聖事이네, 따닥따닥 경쾌한 절제의 소리
그러나 편백나무 숲은 멀고 우리는 끝내 가지 못했네, 길은 있는데 길을 몰랐네, 같이 갈 반려자는 오지 않고 기다림은 기다림으로 끝나는 것이었네, 내 속의 옹이를 숲으로 가꾸는 수밖에 없는 것이네, 가보지 못해 그리운, 편백나무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