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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와 열두 목마이야기
1.지푸뫼
백두산의 힘찬 기운이 묘향산 태백산으로 이어져 큰 줄기를 이루어져 이 한반도를 지탱하는 푸른 기둥이 되었어요. 그리고 다시 힘껏 뻗어내려 소백산으로 뻗어 낙동강 줄기를 타고 돌아가는 작은 마을, 지푸뫼에도 겨울이 왔어요. 백송 할아버지는 오늘도 철이와 함께 산에 올라갔어요.
할아버지는 지게 한가득 나무를 했어요. 지난 태풍 때문에 쓰러진 나무, 너무 오래되어서 그냥 말라버린 나무, 솔향을 품어내며 솔방울이 많아 철이가 올라가 놀던 춘양목도 넘어지고 말았지요.
“이 나무들도 이제 생명이 다했나 보구나.”
할아버지는 나무 등걸을 어루만지며 말씀하셨어요. 철이도 덩달아 나무를 어루만졌어요.
“이 나무는 이제 땔감으로, 목재로 다시 태어나야 한단다.”
할아버지는 나무들을 톱으로 자르고, 낫으로 가지를 잘게 쳐내니 한 지게에 다 못 질 정도로 높아졌어요. 철이도 할아버지를 따라 산에서 내려오면서 몇 가지를 들고 따라 내려왔어요.
철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 지푸뫼로 돌아왔지요. 아버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돌봐주실 어른은 이 두 분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나고 자란 곳, 지푸뫼는 아버지 냄새가 났어요. 붉은 몸에 푸른 머리, 늘 하늘을 향해 힘껏 뻗은 춘양목이 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백송 어른’, ‘백송 할아버지’라고 불렀어요. 소나무처럼 아주 튼튼한 팔과 다리, 하얀 머리카락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지요. 그러고 보니 뒷산 500년이나 되었다는 나무처럼 할아버지는 철이한테는 멋진 분이시지요. 무엇보다 소나무를 깎아서 나무 인형을 잘 만들어주셨어요.
할아버지는 산처럼 크고, 바위처럼 든든한 다리, 그렇지만 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산을 오르내리며 산나물도 캐고, 약초도 캐서 철이가 먹는 밥상의 반찬도 만들고 약도 만들어주셨지요.
2학년인 철이가 마을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밖에 없었어요. 방학이 되면 친구 없이 지내야 했지요. 그런데 이 지푸뫼는 너무 추워서 겨울에는 두 달 가까이 방학을 해요. 눈이 오면 학교에 갈 수 없어요. 지푸뫼에 아이는 철이 밖에 없어서 늘 할아버지랑 놀지요. 겨울 방학에는 아예 할아버지도 나무하는 일 외에는 바쁜 것도 없어 철이와 나무인형 만들기로 시간을 보냅니다.
눈이 며칠을 소복소복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어느 날이었어요. 철이는 먼 산 너머 마을이 궁금해졌어요. 할아버지 댁에 내려온 지 1년, 가끔 목욕하러 가는 읍내는 1시간을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다시 30분을 가야 했어요. 학교와 읍내, 그리고 지푸뫼 밖에 모르는 철이는 저 산 너머 마을이 너무 궁금했어요. 하지만 눈이 내린 겨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요. 마당 가에서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얼어버린 개울을 두드려보지만 별 재미가 없었답니다. 집안에서만 뒹굴뒹굴하다 보니 철이에게는 짜증이 나는 하루였어요.
“할아버지 말을 만들어주세요.”
철이는 저녁을 먹고 물러나 앉은 할아버지께 대뜸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할아버지는 화로 가에서 불을 모으다 고개를 돌리며 ‘왜’라고 짧게 말씀하셨어요.
“진짜 말은 아니지만, 말을 타고 제가 가고 싶은 곳을 다 가고, 말을 놀이도 하면서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저를 낳으실 때 12가지 말을 번갈아 타는 꿈을 꾼 뒤에 낳으셨대요.”
저녁상을 물리고 있던 할머니도 빙긋 웃으시며 ‘만들어 주시구려, 할 일 없으면...’ 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마당 가에 있는 창고를 뒤지고는 칼과 나무 조각을 가져오셨어요. 그리고는 화로 가에서 나무를 다듬기 시작했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철이가 갖고 놀기 좋은 크기로 나무를 깎기 시작했어요. 그걸 바라보는 철이는 어떤 말이 탄생할지 궁금해졌어요. 할아버지는 철이가 고구마를 깎아 먹고, 감자를 구워먹는 동안에도 꼼짝 않고 나무 말을 깎고 있었어요. 그것을 보자 어린 적을 아빠가 목마를 태워주시던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심심한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말동무가 되어주는데 이제는 말이 생기면 친구처럼 같이 놀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말은 태양의 기운을 가지고 태어난단다. 좋은 일에는 말을 타고 가지 않니.”
철이는 말이 좋은 동물이란 말에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교과서를 펼쳐 보았어요. 큰 눈, 멋스러운 갈기, 그리고 늘씬한 다리가 쭉 뻗어 있는 그림을 보니 저 높은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철이도 말을 타고 싶었어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처럼 푸른 들을 달리고 싶어졌어요.
철이와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바느질을 하시던 할머니가 말씀하셨어요.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 생기게 하고, 친구 없는 사람에게는 친구가 생기게 해준단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배부르게 해주고”
“와~”
철이는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정말 좋은 동물이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할아버지의 손과 나무 조각이 조금씩 다듬어져 말 모양이 되는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어요. 사실 철이는 어릴 적 말이 달리는 목장을 구경한 적 있었어요. 하지만 진짜 말을 탄 것은 아빠가 태워주는 목마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아빠의 목마는 세상 그 무엇보다 신이 나고 재미났어요. 방향을 잘 틀어주기 때문에 재미난 세상을 볼 수 있었지요. 더러는 남들 다 보는 가수들의 콘서트 구경을 갔다가도 못보고 돌아올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빠의 목마를 타면 동네 꺽다리 아저씨보다 키가 더 커지니 기분이 정말 좋았던 것이지요. 철이는 아빠가 없어도 탈 수 있는 목마가 생긴 기분이었어요. 친구처럼 늘 함께 하는 목마 말이죠. 아빠처럼 더 높이 올려 더 멀리 보게 하는 목마 말이에요.
철이는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는 모습을 아랫목의 따뜻한 느낌, 할아버지의 나무 깎는 소리, 소나무 향기, 할머니의 굽은 등을 보며 말을 타고 달리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였어요. 밖에서 나무토막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 기침 소리인지 아니면 바람 소리처럼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어요. 철이는 문밖을 내다보았었어요. 보름달이 ‘휘영청’ 떠서 밝은데 말들이 빈 밭을 달리고 있었어요.
“아이고 할아버지”
너무 놀라운 풍경이 철이는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어요. 작년에 할머니가 열심히 가꾸던 고추밭에 눈이 내린 그 위에 달빛이 비치는데 말들이 뛰어다니니 참 대단한 풍경이 펼쳐진 것이지요.
철이는 할아버지를 돌아보았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졸고 계시고, 할머니는 진작 베개를 베고 누우셨네요. 철이는 조심스럽게 문밖으로 나가보았어요.
2. 가리온
철이는 할머니가 사 준 털모자를 쓰고, 처마 밑으로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갔어요. 말들은 눈밭에서 뒹굴기도 하고, 서로 목을 비비기도 하면서 어울려 놀고 있었지요. 철이도 냉큼 장독대 위에 있는 하얀 눈을 한 움큼 집었어요. 그리고 한입 물었지요. 차가운 느낌이 온몸을 퍼져갔지만 도두지 저 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믿기지 않았어요.
그때였어요. 온몸이 하얗고 갈기가 검은 말이 철이 쪽으로 걸어왔어요. 눈이 정말 컸어요. 철이는 장독대 뒤로 숨었어요.
“나랑 달리기할까?”
철이는 깜짝 놀랐어요. 아니 말이 사람 말을 하다니 하고 생각했어요. 헛소리를 들었나 하고 방문 쪽으로 앉은걸음으로 가고 있었어요.
“너랑 달리고 하면 재미있겠는걸!”
철이는 벌떡 일어서 말의 입을 쳐다보았어요. 정말 말을 하고 있었어요.
“넌 말인데도 사람 말을 하니?”
“아…….놀랐구나. 내 말을 알아듣는 건 특별한 사람이야.”
철이는 갸우뚱 했어요.
“내가 특별한 사람이니?”
“그렇지 내 말이 들리는 사람은 백두대간의 정기를 타고난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 땅의 기운을 받은 사람만 들려. 여기 모인 우리말들은 모두 백두대간의 기운이 만든 말들이야. 낮에는 땅의 기운으로 있다가 밤이 되면 이렇게 세상을 맘껏 달리면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땅을 다져주는 거야”
그제야 말들이 나타난 이유를 알게 된 철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했어요. 철이는 흰 말에게 이름을 물었어요.
“난 가리온이야.”
“음. 가리온은 뭔 뜻이지. 처음 듣는데…….”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철이는 머리를 긁었어요. 그러자 가리온 고개를 크게 휘저으며 말했어요.
“나처럼 흰 몸에 검은 갈기를 가진 말을 뜻하지.”
철이는 정말 흰 몸에 검은 갈기를 가진 가리온이 멋진 신사 같았어요. 그런데 철이는 가리온은 땅의 기운이 어떻게 사라졌다가 밤에는 말이 되는지 궁금했어요. 궁금증에 철이 입을 열려는 순간 가리온이 먼저 말을 했어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찬바람 속에서 이렇게 들판을 달리고 나면 그 밭에서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어. 농사도 잘되고, 그 집은 큰돈을 벌 수 있거든. 그래서 맛있는 것도 맛나게 먹고 춥지 않게 겨울을 날 수가 있단다.”
철이는 가리온과 한참을 이야기했어요. 철이 내려온 뒤 산속에 먹고 입을 것을 걱정하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할아버지의 밭을 밟아주고 있는 것이었어요. 이야기가 끝난 가리온은 다시 할머니의 고추밭을 달리기 시작했어요. 철이도 물어볼 말이 있어서 달리기 시작했어요. ‘가리온~’하고 달리고 있었지만 가리온 뒤를 한 번씩 볼 뿐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었어요.
3. 수치, 아라
가리온을 따라가던 철이는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어요. 한 무리의 말 중 검은 말이 먼저 다가왔어요.
“괜찮니?”
“응…….조금 아프지만”
철이 엉덩이를 만지면서 일어났어요. 그리고는 눈을 ‘툭툭’ 털었어요.
“조금 아프구나.”
하고는 철이의 엉덩이 쪽을 향해 입을 갖다 댔어요. 그리고는 뜨거운 입김을 불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어요. 검은 말이 입을 가져다 대자마자 엉덩이는 하나도 안 아팠어요.
“어, 신기하다. 하나도 안 아파.”
할아버지가 나무 가지에 긁힌 철이의 손등을 ‘호~’하고 불어주는 그 느낌처럼 따스했어요. 그리고 하나도 아픈 엉덩이는 금세 나았어요.
“넌 어떻게 입김이 약이니……. 이름이 뭐니”
철이는 엉덩이를 털면서 말했어요.
“응 난 수치야”
그때 옆에 파란색 말이 달려왔어요. 정말 검푸른 바다같이 보였어요. 눈밭을 달려오는 모습이 파도처럼 보였지요.
“넘어졌나 봐”
“조심하거라. 눈밭이니. 우리 같은 말들은 괜찮지만,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단다. 우리도 처음에는 많이 넘어졌거든”
“알았어. 그런데 넌 왜 온몸이 파랗지? 이상하네.”
철이는 파란 말에게 말했어요.
“아…….난 아라야. 바다란 뜻이지. 본래 난 동해의 푸른 기운을 받아 태어났거든.”
철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철이가 넘어졌다가 다시 멀쩡하게 일어서 걸을 수 있게 되지 수치와 아라는 들판을 달리기 시작했어요. 갈기가 출렁이고, 꼬리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것을 달빛이 비치고 있었지요.
그때였어요. 저 멀리서 말들이 싸우고 있었어요. 서로 고개를 뒤로 젖히거나 엉덩이로 돌려서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을 본 아라는 정신없이 달려갔어요. 그리고는 싸우는 두 말 사이에 서서 두 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4. 미르, 이든
점박이 말과 검은 말 사이에서 아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를 토닥여 주고 있었지요. 이를 본 수치도 두 말이 싸우는 곳으로 갔어요. 뒤늦게 가리온이 나타났어요.
“가리온”
철이는 가리온을 쳐다봤어요.
“내가 넘어졌는데도 안 와보더라”
입을 삐죽거리며 철이 말했어요. 가리온은 너무 빨라서 가던 길을 되돌아보려면 한 참을 가야만 되돌릴 수 있어요.
“미안”
가리온은 짧게 말했어요. 그리고 철이에게 말했어요.
“저기 이든과 미르에게 가 보자. 참 착한 애들인데 뭔 일이지…….”
두 말은 한 참을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아라는 둘을 나무라기도 하다가 함께 손을 잡아주기도 했습니다. 수치는 그 옆을 빙빙 돌고 있었어요.
“어이~ 그만들 하지…….”
가리온이 말했어요. 그러나 흰 점박이 말이 말했어요.
“어…….알았어.”
곧이어 검은 말 이든도 대답했어요. 그리고 철이와 함께 가리온 앞에서 화해하고 있었어요. 아라도 수치도 기분이 좋은지 함께 달리기 시작했어요.
“너희 왜 그래?”
가리온이 말했어요. 미르와 이든은 금세 서로 웃으며 말했어요.
“내가 하늘의 기운을 이 아이에게 더 많이 주고 가자고 했는데, 이든이가 너무 많은 기운을 주면 아이들은 다 못 받는다잖아.”
그때 이든이 말했어요.
“너무 많은 기운을 한꺼번에 받으면 안 돼!”
가리온은 금세 미소를 지었어요. 특별한 아이 철이를 위하는 마음에 서로 의견을 나누다 다툰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가리온 아주 다정하게 말했어요.
“서로 좋은 일을 이야기할 때는 싸우지 말고 이야기해야지, 그리고 듣는 쪽은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옳은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 다들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었어요.
미르는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게 해주는 용마입니다. 하늘의 기운을 바고 있지요. 이든은 착함, 배려, 그리고 양보의 미덕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가끔은 좋은 일도 의견을 나누다보면 다툼이 생기기도 합니다.
5. 나래, 단미
말들이 다시 철이네 고추밭을 달리고, 그 옆으로 배추밭을 달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중 한 마리의 말은 정말 신기하게도 날개를 퍼덕였어요. 철이는 달빛 아래 반짝이는 그 날개를 보니 큰 새 같기도 하고, 그냥 보면 말이기도 한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지요. 크게 골짜기를 한 바퀴 돌다가 개울이 있는 부분에서 흰 말은 그냥 날듯이 건너는 것이었어요.
그 말은 철이 앞에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어요.
“한번 탈래?”
“어어…….”
철이는 넋을 놓고 말을 보다가 그만 대답할 때를 놓치고 말았어요. 흰 말은 다시 펄쩍펄쩍 뛰어 계곡 아래로 달리고 있었어요. 아라가 다가와 말했어요.
“음…….저 말은 나래야. 누구의 말도 함부로 듣지 않지만 늘 하늘의 뜻을 직접 받는 말이야.”
“진짜 신기해. 나도 저 말을 타면 날 수 있을까?”
철이의 말을 들고 아라는 싱긋 웃으며 말했어요.
“그럼. 저 등에 타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도 있고, 가끔은 하늘을 날 수도 있지…….타고 싶니?”
이야기를 듣는 내내 너무 놀라운 말에 철이는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때 저 멀리서 벌써 나래가 철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어요. 그리고 철이 앞에서 거친 숨을 쉬며 멈추었어요.
“타고 싶다고 했지. 타”
“어…….들었어?”
철이는 저 멀리서 달리던 나래가 어떻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빨리 알아. 자”
하며 철이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습니다. 타라는 이야기지요. 철이는 나래의 흰 잔등에 올라앉았어요.
하늘로 달리는 나래의 등은 너무 시원했어요. 춥지도 않고 그냥 가을 길을 달리는 기분이었지요. 눈 덮인 백두대간이 하얗게 이어져 있었지요.
나래와 철이 산과 산 사이, 강을 가로지르다가 하늘을 달리는 모습을 본 말 한 마리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어요. 나래는 가쁜 숨을 고르며 다시 철이네 고추밭으로 내려갔어요.
“아직 어린이인데 너무 높은 곳까지 태우고 달리는 건 아니니?”
이 말을 하는 아주 예쁜 말의 얼굴은 참 고왔어요. 그러자 나래는 씩씩하던 모습과 달리 아주 얌전하게 대답하였어요.
“응, 미안. 철이가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철이는 둘 사이가 궁금해졌어요.
“다른 말들은 아무 말 안 하는데 왜 저 예쁜 말만 걱정하지”
하고 말하자 나래가 씽긋 웃으며 말했어요.
“내 여자 친구야. 우리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사이. 사랑하는…….”
철이는 웃음이 났어요. 이제야 유독 걱정스럽게 나래를 바라보던 모습이 이해되었지요. 그러고 보니 많은 말 중에 날개를 가진 말은 나래와 단미뿐이었어요. 둘은 서로 닮은 것 같았어요.
“걱정하지 마……. 항상 조심하고 있으니”
나래 걱정을 하는 단미의 모습은 참 고요한 목소리를 지녔지만 깊어 보였습니다.
“철아……. 말을 탈 때에도 늘 조심해야 한단다. 우리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타고나서 하늘의 기운을 받았지만 그래도 넌 아직 어린데”
단미의 말에 철이도 알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6. 그린비
그때였어요. 초록 무늬와 검은 갈기 가진 말이 먼 하늘을 보며 서 있었어요. 철이는 두어 걸음을 나아가 말했어요.
“넌 왜 달리지 않니?”
다른 말들은 한 참을 달리고 쉬는데 이 말은 무슨 생각을 하는 듯 했어요.
“응, 난 아빠 생각하는 중이야.”
“아빠, 너도 아빠가 있었니? 아빠는 어디 가셨니”
“우리 아빠는 얼마 전까지 살아계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지”
철이는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났어요. 목마를 태워주시고, 놀이공원도 같이 다니던 아빠였지요. 아빠는 철이와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어느 금요일 아침에 학교 앞까지 데려다 주신 아빠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시지 않았지요.
“나도 아빠가 없어. 하늘나라 가셨다던데”
철이도 눈물이 났어요. 그날 이후 엄마는 몇 날 며칠을 우시다 아파 누우셨지요. 그러고는 아빠가 계신 산 속, 그 옆에 묻히셨고요.
“넌 이름이 뭐니”
“그린비야”
“그린 비…….나랑 같이 달리기 할래?”
“싫어. 그럴 기분은 아닌데…….”
“같이 달리자. 우리가 너무 보고 싶은 사람들은 달리다 보면 정말 보일 거야. 난 달리기를 하면 엄마, 아빠랑 달리기하던 생각이나. 그래서 막 달린다.”
그러자 그린비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휘젓더니 마구 달리기 시작했어요. 철이도 그린비만큼은 아니지만 땀에 흠뻑 젖도록 달렸지요.
그린비가 멀리 보이지 않았지만 철이는 계속 달렸어요. 걱정스러운 가리온, 단미, 나래 등은 모두 철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달리는 동안 산줄기를 타고 내리는 바람을 느끼며 아빠와 엄마를 떠올리고, 어릴 적 친구들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지요. 한 참을 달리다 지쳐 숨을 고르고 있는 철이에게 그린비가 돌아왔어요.
“그리울 때는 나와 함께 달리자.”
철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철이는 달리기를 잘했습니다. 학교에서 10명이 한 반에 있지만 늘 일등이었습니다. 달리기할 때만큼은 엄마와 아빠 생각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달리는 동안은 가슴이 시원해지고 세상 끝까지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온통 하얘졌는데도 철이는 자기를 위해 찾아온 말들이 아주 고맙고 신났습니다. 그러니 달리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7. 다솜과 씨밀레
밤이 깊어지자 오히려 달은 더 밝아지기 시작했어요. 외딴 이 골짜기에는 오두막과 철이, 말들만 그 달빛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말들과 함께 달렸던 철이는 힘이 쭉 빠졌어요. 하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철이는 밭둑에 가서는 조용히 바위에 걸터앉았어요. 너무 달렸던 거지요. 사람과 말을 할 수 있는 말들은 너무 멋졌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요. 지푸뫼는 산골짜기 사이에 물이 흐르고 그 곁으로 난 마을인데 한 마리의 말이 큰 개울가를 달리자 온몸이 무지개색으로 변하는 것이었어요. 달빛이 잔등과 갈기를 비출 때마다 여러 색깔이 번지고 있었어요.
“참 신기하네.”
그때였어요. 무지개 색 말이 껑충껑충 뛸 때마다 그 뒤에 무지갯빛이 만들어지는 것이었어요.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있던 철이는 그만 입을 ‘쩍어억’ 벌리고 쳐다 볼 수밖에 없었지요.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철이는 그 말에게 다가갔어요.
“넌 정말 신기하구나. 움직일 때마다 무지갯빛이 나와. 이 달빛에도 그게 가능하다니…….”
무지개색 말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흔들다 철이를 보고 말했어요.
“안녕. 난 다솜이야”
“넌 몸 색깔이 좀 이상한데?”
“내 몸의 무지개는 너무 아픈 사랑을 하고 난 후에 생긴 것이란다.”
“사랑?”
철이는 너무 궁금했어요.
“사랑하면 좋은 건데, 왜 무지갯빛이 되는 거지?”
“날 사랑하는 말이 있었단다. 내가 사랑했던 말이었지. 그런데 그 친구가 늘 날 바위 옆에 가 보았지만, 그는 없었단다. 나를 위해 더 좋은 달리기 장소를 알아보러 위험한 곳을 갔다가 다쳤어. 그리고 죽었지. 그리고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몇 날 며칠을 기다리다 보니 몸이 이렇게 변해버렸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철이는 아빠 엄마가 돌아가시고 곁에서 함께 울어주던 다정이가 생각났어요. 다정이는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함께 유치원도 다니고 학교에도 같이 입학했지요. 그리고 다정이 엄마와 철이 엄마는 늘 함께 시장을 다니고, 놀이공원에도 같이 다니곤 했지요. 다정이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아서 고개를 휙 돌리는데 주황색 말 한 마리가 다가왔어요.
“다솜아”
주황색 말이 다가왔어요. 그리고는 다솜의 곁에 와서는 고개를 저으며 인사를 했어요. 그러고 보니 목도리를 하고 있네요. 철이는 다솜에게 다가가 목도리를 만져보았어요. 참 포근했어요. 그러자 싱긋 웃으며 다솜이 말했어요.
“내 친구 씨밀레”
“철아…….내 영원한 친구 씨밀레야. 내가 아픈 사랑을 하고 난 다음에 비를 맞으며 사랑하는 친구를 기다릴 때 함께 있어줬어.”
철이는 정말 좋은 친구 씨밀레가 멋진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왜 목도리를 하고 있니?”
씨밀레는 고개를 몇 번 휘저었어요. 그리고 철이의 목에 그 목도리를 감아주었어요.
“철아…….난 너의 친구. 늘 외롭고 쓸쓸할 때에는 이 목도리를 감고 있어. 그러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친구가 될 거야.”
그랬어요. 철이는 이 산골에 들어온 이후 학교에 몇 명 없어서 늘 혼자 할아버지 할머니 뒤를 따라다니거나 산, 개울, 밭둑을 오가며 심심했는데 정말 좋은 친구들이 생긴다니 기분 좋았어요.
8. 누루, 가시버시
철이는 이 밤에 참 신기하게도 달빛처럼 다가온 말들이 모두 친구라는 생각을 했어요. 산도들도 다 예뻤어요. 철이는 좋아진 기분에 그만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눈밭이 좀 어지러워졌지만 아주 하얘진 들판이 다 자기 것 같았어요. 있는 힘껏 달리는 아까부터 아주 천천히 걷는 말이 있어요. 검은 말인데 옷을 입었네요.
“넌 왜 달리지 않니…….너무 느린데”
철이는 이제 먼저 말을 걸어봅니다.
“어, 난 천천히 달리면서 이 바람도 느끼고, 이 산도 느끼고, 저 소나무도 느끼고, 저 개울 소리, 맑은 냄새도 느끼는 중이야.”
“그럼 재미없지 않니? 다 달리는데”
“응…….난 다른 말보다 뭐든 천천히 해. 그런데 다른 말은 한꺼번에 못 가면 포기하는데 난 천천히 가고, 쉬었다가 가지만 포기하지 않지.”
철이는 그러고 보니 이 말은 좀 할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할아버지를 따라 가는 길, 뒷산 꼭대기에 우뚝 선 하얀 소나무 근처에는 송이버섯이 있었어요. 거기 갈 때면 늘 조바심에 짜증을 내는 철이에게
“서둔다고 되니. 차근차근해야지”
그랬어요. 그때 철이는 뛰지 않아도 멈추지 않으면 산에 다 오를 수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지요.
그때였어요. 할머니와 늘 철이에게 밭일을 하다가 맛있는 감자와 고구마를 먹던 소나무에 새 두 마리가 보였어요. 부엉이였어요. 둘은 너무 다정히 앉아 있었어요. 철이가 말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함께 달리기하는 것도 다 보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부엉’
그런데 철이와 눈이 마주치자 두 부엉이 아주 기분이 좋은 듯 날개를 퍼덕였어요. 서로 입도 맞추는 것이었어요.
‘아니 왜 나를 보고 좋아하지?’
“철이야”
“응”
엉겁결에 대답했지만 부엉이도 사람 말을 하고 있었어요.
“엄마랑 아빠야”
“뭐?”
“우린 널 두고 하늘나라 갔다가 걱정되어서 다시 부엉이로 태어났단다. 너를 지켜주려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맡겨두었지만…….그런데 넌 아주 특별한 아이라고 열두 말을 하늘께서 보내주신 것이란다.”
철이는 눈물이 났어요. 엄마 아빠가 부엉이가 되어 있다는 것도 왜 같이 살 수 없는지 생각하니 이해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 할머니의 설명을 들었지만 이해되지 않았지요.
“우린 너를 지킬 것이란다. 그리고 특별한 날에는 우리와 이야기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말고 재미나게 살아라.”
철이는 눈물을 닦으며 엄마 아빠를 따라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자꾸 소나무 끝으로 올라가고 싶어서 목을 늘이고 발을 돋우었어요. 그러자 아빠 부엉이가 말했어요.
“이제 그만해라.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다시 올 수가 없단다. 우리가 너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어. 오늘 많이 이야기하면 다음에는 말을 더 많이 못 하게 되지”
철이는 엄마·아빠가 다정히 앉아 있는 모습은 보기 좋았어요. 그리고 항상 지켜준다는 말씀을 듣고는 울먹이는 것을 멈추었어요.
9. 마루
철이는 눈물을 닦았어요. 엄마아빠가 늘 나를 지켜주고 있다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아빠가 사이좋게 소나무 위를 지키니 이제 걱정을 덜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였어요. 달빛 사이로 별이 하나 내려오고 있었어요. 파란별이 소나무 옆을 지나 개울을 한 바퀴 돌더니 철이 옆에 왔어요. 그리고는 푸른 말이 되었어요. 온몸에는 별무늬가 있었지요.
“마루~”
엄마 아빠 부엉이가 그 말을 보고 외쳤어요. 그러자 파란 몸에 노란 별 무늬를 가득한 말은 철이에게 별 모양 과자를 하나 주었어요.
“자……. 먹어”
철이는 별모양의 과자를 먹으면서 마루의 눈을 보았어요. 그러자. 씽긋 웃고는 고추밭을 지나 배추밭, 큰 개울까지 신 나게 한 바퀴 달리고 왔어요. 아주 빠른 속도였어요. 그리고는 가쁜 숨을 가다듬었어요.
“난 마루야. 나도 엄마 아빠를 잃고 이만큼 달리게 되었어.”
“그래”
“난 하늘의 정령을 다 받고, 저 많은 별의 정령을 다 받았지…….특히 내가 지키는 별은 샛별이야……. 초저녁이나 새벽에는 내가 사는 곳을 볼 수 있지”
“넌 진짜 별에서 온 거니?”
“난 너처럼 어려서 모두 잃고 열심히 달려 제일 빠른 말이 되었지. 그리고 하늘이 선택해서 나를 샛별에 살게 했어. 너도 이 지구에서 가장 착한 아이니까 늘 이 별들의 기운을 받아서 열심히 살면 나처럼 선택받는 것이란다.”
철이는 마루가 하늘의 정령을 받아 샛별에까지 가 살 수 있게 된 게 신기했습니다. 별무늬 말 마루를 타고 별나라에도 가고 싶었습니다.
“나도 너를 타면 샛별에 갈 수 있니?”
“그럼…….그런데 아직은 안 되지. 네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야지.”
철이는 좋은 기운을 많이 받고 이렇게 좋은 말들과 함께 한다면 우주 어디에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10. 할아버지의 목마
“철이야”
할머니 목소리였어요. 철이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예야 그만 자고 밥 먹어라. 오늘은 늦잠이구나.”
철이는 할머니 앞에 앉았어요.
‘잠을 잤다고?’
철이는 밤새 말들과 달리고, 그 신기한 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는데 잠을 잤다니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할머니, 제가 잤어요?”
철이는 밤새 말들과 눈밭을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많이 잤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뚱멀뚱 할머니를 쳐다보았어요.
“녀석도, 밤새 곤히 자고선. 그러게 이제 낮에 추운데 밖에 너무 다니지 마라. 감기 걸리겠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어요. 그런데 바구니 한가득 무엇을 담아 오셨네요.
“그건 뭐에요. 할아버지?”
“이건 네 장난감 말이란다.
그런데 철이는 깜짝 놀랐어요. 밤새 같이 뛰어 놀던 말과 부엉이까지 모두 만들어 놓으셨네요. 너무 똑같이 생겼어요.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놓으신 말들은 간밤에 철이 같이 달리고 이야기하던 그 말들이었어요.
“할아버지께서 밤새 너 갖고 놀게 하신다고 만들었단다. 자 밥을 먹고 갖고 놀아라.”
철이는 밥을 먹는 내내 지금 꿈을 꾸는 것인지, 말을 본 것이 꿈인지 몰랐어요. 살을 꼬집어보았어요. 아주 아팠어요. 밤새 뛰놀던 밭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을 만져보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러고 문을 열고 간밤에 뛰어다니던 고추밭과 배추밭을 보았어요.
깨끗했어요. 아주 하얗게.
글쓴이 소개
글쓴이 강진우 선생님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안동대학교와 경북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국어교육학 박사가 되셨습니다. 펴내신 책으로는 마당교육극의 정립과 실천, 문학교육총서 정전(공저)이 있어요. 그리고 문학교육을 위해 많은 논문을 많이 쓰셨답니다.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계시며, 경북대학교와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대학교와 안동대학교에서 글쓰기와 한국문화, 한국연극, 한국문학을 강의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