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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港灣) |
항만은 육지가 깊숙이 들어간 곳이다. 계룡산을 중심으로 하여 가라산, 산방산, 대금산, 옥녀봉이 동서남북으로 잘 배치되어 있다.거제의 배랑(背梁)은 통영 벽방산(碧芳山)이 견내량 해협에서 자맥질했다가, 다시 솟은 시래봉(始來峰)이 육지와 연결하여 노자산, 가라산의 시맥(始脈)이 되었고, 진해의 천자봉이 가덕해협을 지나 저도(猪島)·이수도(利水…島)의 두 섬을 탄생시키고, 대금산에서 앵산, 옥녀봉에 이르렀다. 이 두 산맥이 치마폭처럼 감싸고 있다. 산의 기운이 바다에 빠졌거나 육지에서 용트림하여, 굴곡진 항구를 만들고 섬을 만들어 놓았다. 섬 자락에 협곡을 이룬 항구는 386.60㎞(약 970리)로 굽이굽이 절경이다.
호수처럼 조용한 해안변에는 동백, 해송, 후박나무 등 상록수와 활엽(闊葉)이 즐비하고, 아열대 식물과 괴기(怪奇)·절묘(絶妙)한 바위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난·한류가교차하는 바다에는 다양한 어류와 해산물이 풍부하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거제는 일본과 가깝고,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동해와 서해의 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이다. 항구마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방어 성(城)이나 진(鎭)을 설치하였다. 고려시대는 태조 왕건(王建)이 송악 일대를근거로 해상무역에 종사하여 개국초부터 송나라와의 해상무역이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항만은 고려 때 정비된 조운제도(漕運制度) 및 삼포개항(三浦開港)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운은 고려말부터 조선초기까지는 서해안과 남해안에 출몰한 왜구들때문에 중단되었다가, 1396년(태조 5년) 김사형(金士衡)의 대마도 정벌과 1416년(태종16년) 이종무(李從茂)의 대마도 원정으로 서해안과 남해안에 조운제도가 부활되었다.조선시대의 대외무역은 왜구에게 개방한 삼포의 무역과 압록강변의 국경무역으로 구분되는데, 국경무역은 육로를 배경으로 한 반면 해로와 항만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 1407년 왜구의 회유책으로 동래의 부산포와 웅천의 내이포를 개항하고 왜관을 설치하였다. 1426년(세종 8년)에는 울산의 염포(鹽浦)를 다시 개항하였다. 1510년(중종 5년) 삼포의 왜인들이 난을 일으킴으로서 부산포와 염포를 폐쇄하였다. 1521년에 부산포를 다시 개항하여 임진란 이후까지 제한된 교역을 허용하였다. 1603년(선조 36년)에 부산포의 절영도(絶影島)에 임시 왜관을 설치하여 무역을 재개하였고, 1607년 왜관을 두모포(斗毛浦)로 옮겼다가, 1607년(숙종 4년)에 초량 왜관으로 확정하였고, 1878년(고종 13년) 강화도조약에 의거, 이 지역을 일본전관거류지(日本專管居留地)로 개방하였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에 개항된 항구는 부산(1876년), 원산(1880년), 인천(1883년), 목포, 진남포, 군산, 마산, 성진(1899년), 용암포, 청진(1908년), 신의주 나진, 웅기, 해주, 다사도(1910년) 등이다. 거제의 지세포항·구조라항 등은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국의 사신이 경유하였던 항구이다. 자연적인 조건이 풍랑을 피하기 좋은 항구로 일본과 가깝기 때문이었다.항만은 육상교통과 해상교통이 연계되는 관문(關門)으로서 육지의 산물을 선적하거나, 입항하는 선박의 화물을 양륙(揚陸)하는 곳이며, 또한 여객이 승하선(乘下船)하는장소이다. 많은 사람들과 화물이 출입하는 관문으로 사회·경제·정치·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해운은 운송비가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으로 대량 수송이 가능하여 항로의기점인 항만은 국가의 해외 발전의 출구인 동시에 외세의 침입로가 되기도 했다. 신라는 청해진을 설치하여 황해와 동중국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바 있으며, 1970년대 이후의 국력신장은 항만개발에 있었다. 해상 교통의 발달에 따라 일찍이 항만에는 큰 도시가 생겼고, 창고업, 조선업, 하역업, 부선업(浮船業), 무역업, 선구업, 냉동업, 수산 가공업 등이 발달했다. 해운항만청,검역소, 해난재판소, 세관, 금융기관, 수산업협동조합 등의 각종 기관이 들어섰다. 특히, 국제항에는 외국 상선과 선원들이 출입하므로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관계국의 영사관이 설치되는 경우도 있었다. 항만의 발전은 지질, 지형, 기상 등의 자연 요건에 의하여 좌우되고, 사용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그리고 그 용도에 따라 상항(商港), 어항(漁港), 군항(軍港),공업항(工業港), 대피항(待避港) 등으로 구분한다. 우리 거제도의 항만은 어항과 공업항(조선기지), 대피항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태에 따라서는 군항으로 사용 목적이 바뀔수도 있는 곳이다. 어항은 어선들이 어료 용품을 공급받고, 어획물을 양륙하는 항구다. 상항(商港)이나 공업항보다 규모는 작으나 도처에 많이 있고, 소비자와 연결되는 신속한 수송망을 가지며, 냉동업과 수산 가공업이 발달한다. 거제는 사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서 어항이 많다. 항만법은 1967년 3월에 제정되었다.항만의 지정사용 및 보전과 공공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항만의 개발을 촉진하고,그 이용과 관리의 적정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이 법 제46조의 부칙에 의하여 공공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항만은 지정 항만으로 하여 항만관리청장이 관리하도록 되어 있고, 1종 항은 해양수산부장관, 그 밖의 항만은 지방항만이라 하여 서울특별시장, 직할시장 또는 도지사가 관리한다. 항만법은 군항과 어항에 대하여는 적용되지 않는다. 군항에 대하여는 해군기지법이 있고, 어항에는 어항법이 있다 |
1)고현항 (古縣港) | 고현항은 지정항(국제항)으로 항만관리청장이 관리한다. 계룡산과 앵산 자락 협곡이다. 거제의 중심 도시인 고현을 비롯하여, 수월 해명과 연초 일부인 오비, 한내가 항구주위에 있다. 항구 서편은 장평 지구로 죽도 섬을 헐어서 매립하여, 1974년에 죽도조선소를 설치했다. 대섬과 나란히 있는 섬은 귤도(橘島)다. 이 섬에 중국의 유자가 떠 내려와서 자생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 1980년부터 1983년까지 고현만 35만평을 매립하여 새로운 시가지로 변모했다.고현만은 성포, 항도 목섬에서부터 하청면 석포리 열녀봉 목섬까지 6.2㎞며, 내항은3.2㎞, 항장 7.4㎞이다. 수심은 내수심 8m, 외수심 19m, 삼성조선소 내수심 16m,외수심 19m, 항구를 벗어나면 내해의 뱃길이다. 부산·마산·진해항과 마주하고 있다.항외 서쪽에서 가조도가 풍랑을 막아 주는 좋은 항구다. |
2)하청항(河淸港) | 하청항은 2종 항으로 경상남도지사가 관리한다. 앵산과 용등산 사이에 있는 항구다. 이 바다를 묵개(墨浦) 바다라 한다. 덕곡의 천마산취(天馬山嘴)와 칠천도 꽃밭등(花田嶝) 사이 0.5㎞가 서해의 해문(海門)이고, 칠천도 장곶(長串)과 실전 나루 끝이 부산의뱃길이다. 실전에서 장곶까지는 길이 455m, 폭 2차선의 육교가 1996년 12월 30일 착공하여, 1999년 12월 완공하였다. 총 공사비는 210억원으로 주식회사 신성건설 외 3개사에서 공사를 했다. 이 다리가 놓여진 곳을 칠천량(柒川梁)해협이라 한다. 임진란 후 정유재란 때 우리해군이 일본 해군에게 크게 패전을 당한 곳이다. 내항은 1.6㎞이고, 항장 4.1㎞이다.내수심 7m, 외수심 20m, 왼쪽은 고현만과 접하고 있고, 오른쪽은 장목항과 연결된다. |
3)장목항(長木港) | 장목항은 2종 항으로 경상남도지사가 관리한다. 장목면 소재지의 제석봉이 북으로 내려 뻗어 긴 곡의 바다를 이루었다. 항구가 길고 입구가 문같이 생겼다고 하여, 예전에는 이 항구를 장문포(長門浦)항이라 불렀다. 내항은 0.4㎞인데 주머니같이 생겼다. 외항 3.6㎞, 항장 5.1㎞이다. 내수심 9m, 외수심 18m, 농바위 끝과 군항개 왜성산 끝이마주 보는 가까운 거리다. 이곳을 벗어나면 칠천량해협과 송진포항이다. 칠천도가 앞에가로누워 있어서, 어떤 방향의 바람도 닿지 않는 항구로 군사적 요충지였다.해안변에 장목면 소재지인 장목리와 송진포항이 있다. 장목에는 조선시대 장목진이설치되었다. 이 진의 속건물인 장목진 객사가 서구마을에 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이 장문포항에서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송진포는 1904년 2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러시아와 일본간에 있었던 노일전쟁 당시일본 해군기지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송진포항도 장문포에 속해 있는 항구다. 이 두 항이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항구를 벗어나면 진해와 마산·부산항이다. 임진란 때는 이충무공이 송진포(松未浦)에서 하룻밤 자고, 그 이튿날 옥포항에 있던 왜적을 무찔렀다.칠천도가 항구를 엄폐(掩蔽)하고 있어서 내해의 뱃길에서는 항구가 보이지 않는다. |
4)외포항(外浦港) | 외포항은 1종 항으로 해양수산부장관이 관리한다. 대금산이 동으로 달려와서 왼쪽으로는 망월산이 항구를 감싸고 있고, 오른쪽은 대계의 꽃밭등이다. 항구 주위는 외포, 소계, 대계마을이 있다. 망월산 끝에서 대계 끝까지 항폭 0.8㎞로 내해 수심 8m, 외해수심 22m이다. 항구를 벗어나면 부산과 대한 해협이다. 거제현의 바깥 지역에 있다고 하여 밖개라 한다. |
5) 관포항(冠浦港 | 관포항은 2종 항으로 경상남도지사가 관리한다. 장목면 하유리 목고개 끝에서부터 외포리 망월산 뒷개 까지 7.8㎞의 거리다. 내항 5.0㎞이고, 내해 수심 9m이며, 외해 수심11m이다. 대봉산(大峰山)과 제석산 (祭石山) 사이에 여러 개의 항구로 형성되어 있다. 관포항 북쪽에 간곡만의 농소항이 있고, 남쪽에는 두모, 대금, 시방이다. 간곡만은 1㎞가 넘는 몽돌밭이 있다. 항구밖 동북쪽에는 저도(대통령 별장)가 있고, 남동쪽에는 이수도가 학처럼 앉아 있다. 그 앞에 백사도, 갈산도, 백여도가 있고, 부산과 가덕도가 빤히 바라보인다.외항을 벗어나면 대한해협이다. 이 지역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율천에는 조 선 중기에 축성한 성이 있고, 중금산에는 조선 후기에 축성한 방어성지가 있다. |
6)옥포항(玉浦港)) | 옥포항은 지정항(국제항)으로 항만청장이 관리한다. 장승포 양지암 두툽바위 끝에서외포 망월산 끝까지 6.2㎞의 거리다. 내항은 2.8㎞, 항장 5.6㎞이다. 내해 수심 16∼17m, 외해 수심 22m다. 이 항구는 옥녀봉과 국사봉 사이에 있는 항구다.신라시대 아주현이 있었던 이 지역에는 1973년에 대우조선소가 들어왔다.아주, 아양 해안 60만평을 매립하였다. 옥포 시가지를 비롯하여, 왼쪽으로 팔랑포·덕포마을과 이순신 장군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옥포대첩기념 공원이 있다.남 쪽으로 대우조선소, 용소·아주·내곡· 탑곡·두모·느태마을과 능포항이 있다. 느태마을은 60여 가구가 1992년 옥수동으로 이주를 했다. 거제의 동쪽에 있는 옥포항은 수심이 깊고풍랑이 없는 항구다. 항구를 벗어나면 부산과 대마도가 나타난다. 일본과 가까운 곳으로 내륙으로 쉽게 접근이 용이한 곳이므로 일본의 침입이 먼저 있었던 곳이다. 우리나라 최동남단 거제는 왜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옥포는 군사적으로 요충지였기 때문에 옥포진과 조라진이 옥포항에 있었다. 임진란 때는 이충무공이 제일먼저 임진년 5월 7일 왜적을 무찔렀던 유서깊은 고장이다.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1957년에 당등산에 기념탑과 옥포정을 세우고, 매년 5월 7일 기념제전과 문화행사를 했다. 대우조선소 설치로 당등산이 허물어지고, 1975년에 대우조선 부지 내로 옮겼다.
당등산에는 조선시대 석성이 있었고, 성 주위는 느티나무, 포구나무, 소나무 등 아름들이 나무들이 꽉 차 있었다. 이 곳 용소(龍沼)마을에 거위를 기르던 삼각주(三角洲)가있어 아주(鵝洲)라 했다. 옥녀봉 기슭 에는 신라시대 법률사(法律寺)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탑골은 탑이 있었던 마을이다. 1935년 아양리 박학중씨가 밭갈이를 하다가 삼층 석탑을 발견하였으며, 그 탑은 대우조선소 내에 있다.아주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내곡마을에는 당시 것으로 보이는 성지가 있다. 1997년 대우조선 서문앞 용소마을에서 B·C 4세기부터 A·D 7세기에 이르는 고분이 발견되어, 여기서 곡옥을 비롯한 귀중한 자료가 발굴되었다. 옥포항은 거제와 부산 뱃길의 관문이다. 대우조선이 들어올 때, 아주·아양을 비롯한5개 마을 480세대가 이주를 했다. 대우조선 건설 당시 옥포항 사진 한 장으로 외채를얻어 올만큼 지리적 여건이 좋은 항구 이다. 옥포항은 대우조선소가 들어서면서, 1971년부터 아주 일대 해변과 바다 100만평을 매립하였고, 또 1974년 9월부터 1979년 12월까지 옥포만 옥포마을 앞 9,726평을 매립했다. |
7)능포항(菱浦港) | 능포항은 1종 항으로 해양수산부장관이 관리한다. 옥포만 내에 있다. 고두바위에서양지암 두툽바위까지 1.7㎞이다. 이 항구는 능포마을이 장승포시가지와 연결되어 있고,우리나라 3대 정치망의 하나로 진흥 수산과 능포수산이 있다. |
8)장승포항(長承浦港) | 장승포항은 1965년 6월 25일 지정항으로 지정된 국제개항(國際開港)이며, 항만청장이 관리한다. 장승포동과 마전동이 항구 언저리에 도시로 발전하고 있고, 부산방면의여객선터미널을 비롯하여 장승포 세관, 항만관리청, 검역소 등 해양에 따른 사무소와 거제수협 등이 있다. 장승포 뒷개에서 가시바꾸미 끝까지 2.3㎞의 항구다. 내항 0.7㎞, 항장 1.8㎞이다. 내해 수심 3m, 외해 수심 16∼18m다. 외항을 벗어나면 대한해협이다. 일본의 대마도가 수평선에 걸려 있다. 이 항구는 고종 (高宗) 26년(1889)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이후 일본의 입좌촌 어민들이 들어와서 마을을 이루고, 1930년 방파제를 쌓았다.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전시켜 왔던 곳이다. |
9)지세포항(知世浦港) | 지세포항은 1종 항으로 해양수산부장관이 관리한다. 가시바꾸미 끝에서 쥐부리끝(鼠耳??末)까지6.1㎞ 지점으로 내항 2.5㎞, 항장은 지심도까지 3.0㎞이다. 내해 수심 13m, ? @??@e@@@@@@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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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해 수심 30m다. 옥녀봉이 동으로 향해 내려와서 바닷가에서 양팔을 벌리고 있는 형상을 한 곳이다. 항구 입구에 지심도가 가로질러 파도를 막고 있다. 섬이 가리어 바깥에서는 항구가 있는 줄 모른다. 자연적인 방파제로 군사적으로 아주 좋은 항구다.자연적으로 좋은 여건이 있기 때문에 일찍이 중국과 일본을 내왕하던 배들이 이곳에서 바람과 풍랑을 피하고 갔다는 기록이 있다. 소동과 지세포는 선사시대 막강한 힘을 가진 부족의 형태로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지석묘가 많이 있다. 항구 주위는 지세포를 비롯하여 소동, 선창, 옥림, 미조라마을이 있다. 선창마을 뒤에는 인종 원년에 축성한 지세포성이 있다. 수심이 깊고 파도가없는 항구로, 1970년대 조선기지로 맨 먼저 물망에 오른 곳이기도 하다. |
10)구조라항(舊助羅…港) | 구조라항은 1종 항으로 해양수산부장관이 관리한다. 쥐이끝(鼠?????@@@@@@@@@??末)에서 남부면 갈도(葛島)까지 7.8㎞이다. 항장 7.7㎞, 내해 13m, 외해 20m, 망치앞 수심은 15m이다.?e?@e? @??@e@?e?@e? @??@e@?e?@e? @??@e@@@@@@e? @??@e@?e?@e 여기서부터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북병산이 좌우로 갈라져 구조라항을 만들었다. 그끝이 남으로 달려와 구조라에서 바다로 잠길 듯 하다가, 힘차게 솟은 산이 수정봉이다.산은 작아도 기상은 힘차다. 그 잘록한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으로 가라산이구불구불 달려오다가 갈도섬을 만들었다. 구조라만 안에는 학동만이 포함되어 있다. 예전에는 구조라에서 와현·조라·망치·양화·수산 학동까지 다 관장을 했다. 이와 같은내용은 항리(項里) 절목(節目)과 고문서에 밝혀진 내용이다. 구조라의 옛 지명은 항리(項里)이다. 항구 안에 내조라도(內助羅…島), 외조라도(外助羅…島)가 있다. 지금은 이들 섬을 내도, 외도라고 부른다. 공곶이와 내도는 선사시대 인류가 살았던 유적지가 있고, 내도의 패총에서는 후육무문(厚肉無紋)토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항구를 벗어나면 대한해협과 일본이다. 거제의 동남지역 해변은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일본과 가깝다. 그래서 곳곳에 방어 성지가 쌓여져 있다. 구조라 앞 수정봉에 조선시대 축성한 성이 있다. 이 성의 진(鎭)이 선조 37년에 옥포 조라진으로 옮겨갔다. 그 때부터 이곳을 옛 조라(舊助羅…)라 하고 옥포 조라는 신 조라라 하여, 신(新) 자는 없애고 조라라 한다.( ?@@@@@@@@?쥐부리 끝 : 耳. 쥐 귀, 쥐 이 끝이라고도 함) @@@@?N@?e?@e? @??@e@?e?@e? @??@e@?e?@e? @??@e@@@@@@e? @??@e@?e?@e? @??@e@@@@@@e? @??@e@?e?@e? @??@e@?e?@e? @@@@e@?e?@@@? @MI@?J@@@@@@e? ?@0Me?@e? ?@e? ?@e? ? |
11)다대항(多大港) | 다대, 다포항은 가라산이 동남간으로 뻗어 내려 감싸고 있는 항구다.갈도(葛島)와 다포도(多浦島)가 망망 대해의 바람을 잠재우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항폭 3.2㎞, 내항은 4.3㎞, 항장 3.8㎞이다. 내해 수심 13∼15m, 외해 수심 30m다.항구 주위는 다대, 다포마을이 있고, 가라산 중봉에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한 다대산성이 있다. 항구를 벗어나면 대한해협과 일본이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항구다. 1998년에 600m의 방파제와 물량장을 만들었다. 동국여지승람에 가라산 남쪽 10리 아래 신라시대 송변현(松邊縣)이 있었다고 한다. 다대포 지역이 그 당시 현(縣)의 치소가있었던 곳으로 고다대포 (古多大浦)이다. 가라산 중봉에 왜적을 방어하기 위한 다대산성이 있다 |
12) 저구항(猪仇港) | 저구항은 가라산 지맥인 망산(望山)이 왼쪽으로 내려 와서 저구, 명사, 근포, 대포마을을 이루었다. 항폭 3.7㎞, 내항 1.7㎞, 항장 2.9㎞이다. 내해 수심 13∼15m, 외해수심 22m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비경과 명사해수욕장이 있다. 한국전쟁 때 친공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곳이다. |
13)율포항(栗浦港) | .율포항은 2종 항으로 경상남도지사가 관리한다. 노자산과 가라산 협곡에 생긴 항구다. 노자산은 가배와 함박구미 끝에서 가배항을 감싸고, 가라산은 탑포로 내려와서 쌍근 은방개 뒤 취(嘴)에서 율포항을 감싸고 있다. 동망산(東望山) 줄기가 바다 쪽으로 뻗어 내려 가배량 취곶(嘴串)을 만들어, 율포항과 가배항으로 갈라놓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두 곳 다 중요한 곳이다. 이 두 항구를 오아포(烏兒浦)라 하는데,율포는 큰 까마귀개, 가배는 작은 까마귀개라 했다. 함박구미에서 은방개 끝까지 9.7㎞이고, 율포 내해는 3.1㎞, 가배 내해는 1.1㎞이다. 율포항의 항장은 4.0㎞, 가배량의항장은 2.5㎞이다. 내해 수심 8m, 외해 수심 19m다. 가배량에는 임진란 당시 1593년 8월 이충무공께서 이곳에 삼도수군 통제영을 설치하였다. 선조 35년에 고성 춘원포로 옮겼다가, 다시 통영 한산도로 옮겼다. 그 당시의 관아지와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율포만은 덕원해수욕장이 있고, 탑포마을 앞에 대섬(竹島)이 있다.
항외는 남쪽 바다에 한산도가 풍랑을 막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탑포고개에 탑포산성이 있고, 율포 마을 송곶(松串)에 율포진이 있었다. 이 진은 장목 율포에 있던 진을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부터 이 곳은 신율포, 장목은 구율포(지금의 율천)라 한다. 송곶이율포진이 있던 곳에 동부면사무소가 있었다. 1933년에 산양리(현재 위치)로 옮겼다. |
14)거제만(巨濟灣) | 거제만은 계룡산 서남쪽에 있다. 조선시대 거제부가 있었던 곳이다. 서쪽은 산방산 자락이 법동 고승도 에서 산달도를 감싸고 있고, 동으로 동부면 함박구미 귀도(龜島)가 오송 동호를 감싸고 있다. 항구내는 산달도, 큰솔섬, 작은솔섬, 전도, 복도 등이 있고, 죽림포에는 조선 중기에 바다를 경계하던 어해정 (禦海亭)이 있었다. 거제의 옛 고을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기성관, 질청, 향교, 반곡서원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거제의 고도(古都)다. 산달도는 선사시대 인류가 살았던 패총지가 있고, 계룡산 밑 수정봉에는 조선말기에 축성한 옥산금성이 있다. 테뫼성의 성곽과 성루가 돋보인다. 성내는 우물터와 적을 방어하기 위한 몽돌이 쌓여 있다. 항구를 벗어나면 통영군 송도·서좌도 한산도다. 섬과 감싸고 있는 천혜의 요새지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