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일기
중대CP는 1004미터고지 한계령지표지점, 한쪽어께 비뚤어진
은중위 금이빨 새로 장고같은 웃음을 비죽이며 나직이, 신고다
시!, 소위오양호는 일천구백육십오년유월사일 이사단 십칠연대로
부터 일대대삼중대이소대장으로 명을받았습니다. 이에신고합니
다. 신고다시!! 원기가 그래가지고 우째 간첩놈을 때리잡겠노.
바람이 수림의 체취에 숨이 가쁜 마루, 잣나무, 소나무, 참나
무, 피나무, 칡넝쿨, 다래넝쿨 비집고 선 바위틈새 직각으로 쏟아
져 내리던 태양의 눈부신 그늘, 진녹색 수해를 올라타고 대청봉
오르던 유월 한계령.
주전골 드릅나무 속잎 피던 4월, 관터 앞 메기 잡아먹고 비내
리는 가라피리 야간 잠복, 산목련 핀 소대막사 찾아 와 밤새 울던
부엉새, 감청색 하늘아래 홀로 타오르던 단풍, 목청껏 부르면 그
만큼 더 먼 한계령.
하 많은 나날 땅속에 머리 처박고 설악달빛 전선야곡으로 풀던
김일병 탈영하고, 온천골 피나무 아래 가랑이 씻고 대구집 주모
막걸리 한 사발에 아람드리 소나무베다 깔려죽은 연락병, 그 다
타버린 여름, 하조대가고 경포대가고 강릉가고 정동진 가던 7번
국도, 오늘은 안녕할까.
오색약수로 보랏빛 밥짓고 깔깔대던 안경잽이, 종아리곧은 서
울가시나 아트란타로 갔다더니 언제 왔나! 당산 앞 왕소나무에
걸터앉아 아목동아 노래하네. 강릉할매 저승가고, 고씨밥집 흔적
없어도 오색지킴이 왕소나무 한계천 흘러간 세월 가지마다 걸어
놓고, 대청봉 산신다려 돌려달라 빌고 있네. 한계령 넘고 종적없
는 그 청자빛 세월 그 오만한 약속 목놓아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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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속초에서
오양호
저 날름대는 혓바닥이
사내들을 유혹하는 비릿한 바다
누구의 안부가 궁금하길래
갈매기는 그렇게 초병처럼 날았을까
핼멧을 벗어들고 벌컥 문을 연 선술집
아 전쟁은 거기서 6월 장미처럼 목을 타고 올랐다.
스물다섯 나이를 유혹하는
여인의 가슴
그 가쁜 숨이 두 쪽 난 가족사로 부풀어 오르는 줄 몰랐지.
해풍에 그리움이 덧날까 봐 감싸는 줄 알았지.
산 너머 노을 따라 뜨던 포성
주모 치맛자락 앞에서 발갛게 부서지고
속초항 등대에 걸린 하얀 낮달
드러눕던 해변
그렇게 속초는 전쟁이 반쯤 사는 항구.
아니 현재진행형으로 아직 우릴 담금질하는
남자들의 원적지
속초의 갈매기는 그래서 북풍이 서럽다.
속초가 날마다 저녁 놀 삼키며 빨갛게 몸을 사르는 것은
꽃 피고 지는, 울산바위 그리매, 단풍 비춰 담고, 역사를 청자
빛으로 녹인 파로호 때문이 아니다. 북쪽이 고향이라서가 아니다.
노을처럼 뜨던 그날의 포성 때문이다.
낙산사 보타굴에 곤두박질치는 한 시절 업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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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호 평론가, 수필가
「시문학」(1980), 「현대문학」(1884) 등단.
경력: 인천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일본경도대학 객원교수.
대구카톨릭대학교 교수. 현, 인천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문협 제23대, 24대 평론분과 회장.
수상: 윤동주 문학상(<한국문학과 간도>/ 한국문인협회.
심연수 문학상(연구서 <만주이민문학연구)/ 강릉시청.
저서 그들의 문학과 생애, 백석(한길사, 2008) 외 다수.
E-mail: yh3913@hanmail.net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