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이상향 샹그리라를 찾아서
<곤명/옥룡설산/대리/여강/샹그리라(중전,덕흠)/매리설산 탐방기> <2004. 9. 9 ~ 16>
LG전자 사랑방 산악회(OB)가 매년 한차례 해외산행을 갖고 있다. 금년도는 9월9일부터 16일까지 7박8일일정으로 중국 운남성의 여강 부근에 있는 옥룡설산(5,600m)전망대 트레킹과 중전(中甸),덕흠(德欽)지구의 샹그리라관광을 하기로 되어 있다. 2001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 트레킹 이후 몇년간 해외트레킹을 못했던 나로서는 무척 기다려지는 일정이었다. 이번 트레킹은 난이도 면에서 푼힐전망대 트레킹보다는 훨씬 쉬운 코스이나, 4,000m가 넘는 고산지대라 고산증을 견디어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집사람이 샹그리라관광이라는 매력으로 동행을 하겠다고 해서 퍽 다행으로 생각했지만,고소증이 심한 아내이기에 걱정도 되었다. 이번 여행은 LG에서 24명(11쌍부부와 싱글 2명)이 참가하였고 다른 멤바들 포함 40명이 일행이다. 이번 여행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산악오지 전문여행사인 T&C여행사가 주관한다. 아직 관광지로 유명세가 덜한데다 트레킹이 필수이므로 이곳 여행을 경험한 사람은 적은 편이다. 요즘 샹그리라 지역이 TV에 자주 나온다니 멀지않아 한국관광객이 들끓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산 트레킹과 샹그리라 관광여행이라는 두가지의 호기심으로 미리 배포한 안내문과 인터넷 정보로 궁금증을 풀어 보지만 역시 현장에 가보지 않고는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숨겨진 곳이고 상상의 비경이라고 여겨져 기대가 컸다.
2004. 9. 9(목)
운남성 곤명으로 아침 8시 10분발 중국 동방항공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까지 인천공항으로 가야한다. 새벽 4시반경 일어나서 전날 준비한 여행가방을 챙기고 고속터미날 앞 공항버스정류장으로 택시를 타고 갔더니 그곳에서 일행인 유건희 사장부부,장대순 사장부부를 만났다.모두 국내 등산에서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나 집사람은 초면이라 소개를 시켰다. 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정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만에 목적지인 곤명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서울과 중국의 시차는 한시간이다. 현지시간 11시20분(서울 12시20분)이다. 현지의 가이드가 장미꽃송이를 하나씩 건네주며 환영해 주었다. 곤명은 몇년전 친구와 같이 여행을 다녀간 곳이다. 그래서 낯설지 않은 곳이다. 점심을 이곳 별미인 쌀국수로 하고 바로 여행지인 곤명 서산으로 향했다.
곤명서산/원통사/취호 곤명시내의 고도가 해발 1,890M이고 서산은 2,300m나 되니 이곳만 해도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보다 높은 곳이다. 서산에 오를 때는 버스-리프트를 타고 올랐다. 멀리 곤명호와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산의 관광명소인 용문,도교불상을 감상하고 하산시는 도보와 전동카를 이용하였다. 용문을 지날때 가이드는 꼭 이말을 남겼다. 남자는 오른 손으로, 여자는 왼 손으로 용문 위에 있는 옥을 만지라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인생이 열린단다. 모두 시키는대로 하면서 기뻐하였다. 사진을 찍느라 인산인해를 이룬다. 조그만 일이지만 이것이 기쁨이요, 즐거움인 것이다.
다음 목적지는 원통사이다. 아름다운 취호와 규모가 큰 원통사 경내를 구경하면서 한국의 사찰과 비교해 본다. 요즘 중국은 서부지역을 대상으로 개발이 한창이다. 곳곳의 간판에 '서부 대개발'표어가 붙어 있다. 중국 서남에 위치한 운남성은 최근 관광지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차마고도(茶馬古道)와 실크로드가 각광을 받는다. 곤명은 운남성의 행정수도로 인구가 160만 정도 되는 늘 꽃이 핀다는 상춘(常春)의 도시이다.그래서 春城이라고도 하며 년평균 온도가 15.8도라 한다.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되었다.
이곳 특산물은 유명한 '보이차' 이외 담배,술,원예식물,한약재,돌(돌공예) 등이다. 1999년도에 있었던 세계 꽃 박람회로 유명해 진 곳이다. 저녁시간 전에 실크공장(昆明帝呈絲조制品有限公司)에 들러 실크선전을 위한 패션쇼와 쇼핑시간을 가졌다. 여자들이 오니 역시 쇼핑이 활발하다. 실크이불이나 의류는 이곳과 소주가 유명하여 이미 중국 실크이불은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쇼핑시간이 길었다. 특히 실크내의가 인기이다. 감촉이 좋고 따뜻하단다. 저녁식사는 15가지 약재와 닭,오리,돼지고기,야채를 주로 한 '약선요리'였다 한약냄새가 많이 나는 식사로 요즘 중국은 좀 살만 하니까 먹는데 상당한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특히 관광도시라 특이한 요리도 개발되어 먹는 즐거움을 주어야 하니까- 8시경에 호텔에 입실하였다. 佳貨廣場酒店(KAIWAH PLAZA INTERNATIONAL HOTEL)으로 이곳에서는 5星급 최고급호텔이었다.32층 건물로 트윈룸으로 방도 크고 깨끗하여 아주 만족스러웠다. 여행중에서 잠자리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내일은 옥룡설산에 오르는 날이라 긴장이 된다. 등산을 할 채비를 준비하고 미리 받은 고산증 알약 반쪽을 먹었다. 내일 아침에 마저 반알을 먹으란다. '다이어맥스'라는 이 약은 이뇨제이며 강압제이다. 그래서 잠자는 동안 화장실을 여러번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휴대품은 카메라이다. 기대에 부풀어 있는 비경을 마음껏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저녁에 밧데리 충전은 필수이다. 내일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9월10일(금) /
비가 하루종일 오다. 당초 옥룡설산으로 갈 스케쥴이었으나, 비가 내려 다음날 일정과 바꾸었다. 옥룡설산 전망대에 올라 옥룡설산을 보지 못한다면 힘들여 오르는 목적이 없어지는 셈이니-- 그래서 두번째날의 여행지는 대리왕국으로 바꾸었다. 곤명에서 비행기로 여강까지 와서 여기서 대리까지 버스로 간다. 버스로 3~3시간반 정도 걸린단다. 대리에는 소수민족인 백족이 살고 있다. 백족의 여인은 키가 작고 피부가 흰 미인족이다. 이곳 여강이나 대리에는 한국관광객이 적고 주로 일본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한국관광객을 위한 가이드가 여강에 7명,대리에 3명 뿐이라니 대강 짐작이 간다. 이곳 가이드가 인사를 하면서 비오는 날씨를 원망치 않고 좋게 이야기 한다. 귀한 손님(貴人 즉 龍)이 오면 비를 청하는 법이란다. 고산지대에 오면 주의할 점 세가지를 강조하여 설명하였다. 첫째는 고산증에 대비하여 자극적인 음식,물 쵸코렛,사탕,국물을 많이 마시란다. 서울의 산소량이 64/100 이라면 여강의 산소량은 42/100 이다. 두번째는 자외선에 대비하여 썬크림을 바르고 창이 긴 모자,머리수건,양산을 쓰야한다. 그리고 색안경도 필수이다. 해발고도를 보면 대리가 1,900M, 여강이 2,400M이다. 세번째 주의점은 감기에 조심해야 한다. 아침과 낮 기온차가 크서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사항은 이곳에서는 걸음을 천천히 걷는 것이 상식이다. 빨리 걷는 것과 천천히 걷는 것의 피로도 차이는 10배나 된다고 한다.
대리 산과 거대한 호수 사이에 넓은 평야를 가진 대리. 대리는 쿤밍에서 서쪽으로 400km, 미얀마 국경에서 불과150km 떨어진 곳으로 히말라야 산맥의 한 줄기인 창산( 山)에 자리잡고있다. 대리는 운남지역의 옛 중심지이며 오래전부터 백족들의 삶의 근거지였다. 대리석이 많이 나서 도시 이름도 대리라고 불리고 있으며 지금도 30개의 광구에서 세계에서 가장 질이좋은 대리석이 채굴되고 있다. 대리는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는서남 실크로드의 중심지로서 남조-대리왕국의 수도로서 500여년간 번성했던 곳이다. 1900m에 위치한 대리의 주민은 대부분 백족이다. 56개 소수민족 중에서 흰것을 좋아히고 찰떡,김치,마늘을 먹는 것이 조선족과 비슷하다. 대리관광은 경관의 관광뿐만 아니라 역사관광,민족관광인 셈이다. 삼국지의 제갈량이 맹획을 7번이나 잡았다가 놓아주는 곳이 이곳이며 맹획이 바로 백족의 선조라 하는 이족이다.
대리에는 삼도차가 유명하다. 쓰고 달고 무덤덤하며 씁슬한 세가지 맛의 차를 마신다. 이는 인생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사람이 태어날때는 괴로워 울면서 태어난다. 그래서 첫번째의 차맛은 쓴 맛이다. 중년이 넘어가면 행복한 시기가 온다. 이때는 단 맛이며, 말년은 인생을 다 살고난 후의 씁슬하고도 무덤덤한 인생의 의미를 차맛으로 나타낸다. 운남성은 94%가 산간지방이며 26개의 소수민족이 모여 살고 있다. 오후시간에는 '삼도차'와 민족쇼를 관람할 예정이다. 여강에서 대리로 가는 길에는 고산지대의 농촌풍경을 한껏 구경하게 된다. 담배,뽕나무,해바라기,그리고 옥수수가 지천이다.비가 그친 깨끗한 자연풍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수채화 같다. 2,600m 고산지대의 녹색초원, 멀리 보이는 구름과 촌마을 모습,염소와 양떼들이 한가로이 코스모스가 만발한 길거리를 유유히 걷고 있다. 조금도 바쁜 것이 없는 한가로운 농촌 모습이다. 대리시에 들어오니 백족을 상징하듯 집벽도 흰색이다. 논에 피를 뽑는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광활한 논에는 우리네 논에서 보듯 허수아비가 새를 쫓으려 바보처럼 서 있다.이곳의 고도를 보니 1,980m란다. 사방 멀리는 전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12시가 넘어서 숭성사를 지나고 왼쪽으로 가면 대리고성이라는 가이드의 멘트를 들으며 호텔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의 관광지는 대리삼탑,대리고성,이해(호수) 세곳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들 관광은 점심후에 할 예정이다.
風花雪月! 대리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다. 창산에 덮인 눈,이해에 뜬 달,그리고 대리의 바람과 들꽃 이것이 시적으로 표현한 풍화설월이다.하관(下關)의 바람, 상관(上關)의 꽃, 그리고 창산(蒼山)의 눈, 이해(耳海)의 달. 대리에는 동으로 이해라는 남북 42km 길이의 고원 담수호가 있고 북으로는 해발 4천m가 넘는 창산을 베고 있다. 대리 역시 해발 2.000m의 고원지대이지만 최저기온이 영상7도라 사철 꽃을 볼 수가 있고, 상, 하관은 이해의 나루이다.
사람의 귀를 닮았다고해서 붙여진 이해는 호수가 아니라 바다라 불린다. 1,980의 높이에 자리한 이해는 잦은 안개로 물가가 보이지 않아 마치 바다를 보는 것 같고 이곳 사람들은 당연히 바다를 본 적이 없으므로 이렇게 산정의 바다를 보면서 살아간다. 배를 띄워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데 승선시간은 약 4시간. 호수가 크서 그렇다기보다는 유람선 성격이라 배안에서 대리 특유의 삼도차 (三道茶)시연과 중간중간 배에서 내려 경치를 구경하는 시간이 포함 된다.
첫잔은 쓴맛, 두번째는 단맛, 세번째는 회미(回味). 참 멋있지 않은가? 인생의 경로를 차맛에 끌여들인 것이다. 청년기의 방랑과 중,장년기의 넉넉한 살림살이, 그리고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노년기에는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보는 여유. 바로 삼도차에 스민 백족의 깊은 인생철학이다. 이곳의 소수민족 중 문화적 수준이 가장 높다는 백족은 집도 이해를 향해 동쪽으로 짓고 담장은 흰색이라 민족의 이름도 백족이다.
작은 사진을 보면 어여쁜 아가씨가 있는데, 바로 백족의 전통복장이다. 풍화설월이 모두 이 모자에 들어있다. 위의 흰색은 창산의 눈이요, 화려한 여러 색상으로 놓인 수는 상관의 꽃이며 얼굴을 둘러싼 둥근 모자의 형태는 아름다운 호수 이해에 높이뜬 달이다. 그밖에 하늘하늘 드리운 수슬이 하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낀다. 나무 한그루 없는 고원의 높은 산과 작은 바다 이해가에서 하얀 집을 짓고 사는 백족과 함께 나누는 삼도차, 그 안에 들어있는 그네들만의 소박한 인생관을 함께 마신다.
오후 첫 방문지는 숭성사 대리삼탑이었다. 9세기에 건축된 3개의 탑이다.중앙의 탑이 16층으로 69m나 된다. 양 옆 두개의 탑은 10층으로 42m인데 왼쪽 탑은 지진으로 7도정도 기울어져 있다. 대리고성 안을 30분 정도 거닐며 아름다운 옛 도시를 감상하였다. 바닥에 붉은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과 길 옆으로 흘러 내리는 시냇물을 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발하게 된다.
이해로 갔다 이해에서 두대의 유람선을 빌려 약 40분간 유람관광을 하였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불고 있었다. 일행은 마치 어린애처럼 모두들 줄거운 표정들이다.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이해 유람관광을 마치고 오후 4시경 우리는 휘주라는 민속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옛 부호의 집인듯한 주택을 관람하고 그곳에 준비된 백족의 민속쇼와 삼도차를 마시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대리관광을 마치고 다시 여강으로 돌아왔다. 대리에서 여강까지는 200km로 1995년도 까지만 해도 차길이 없어 1주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저녁 8시40분경에서야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해발 2,400m의 식당(金谷食劑)에서 식사를 한 것이니 이 또한 화제거리인 셈이다.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타녀 몹씨 피곤하다. 호텔로 향했다. 금년 5월 새로 문을 연 새호텔(天樂HOTEL)이라 해서 우리가 '따끈따끈한 호텔"이네 하였더니 당황한 가이드가 금방 '아닙니다. 난방이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곳은 난방시설이 없다. 온풍기를 틀면 산소가 부족해 큰일 난단다. 아파트에도 나무를 땐다고 한다. 이곳 여강은 조명이 화려한 민속쇼가 아주 유명하다. 관람료가 200위안(3만원)이라 하니 규모나 내용이 좋을 것으로 기대가 되었지만 시간이 늦었고 모두 피곤하다는 말에 쇼관람은 취소를 하였다. 내일은 여강고성을 관광하고 오늘 일정과 바뀐 옥룡설산을 보게 된다.
대리삼탑
9월11일(토)
여강고성의 아름다움 가이드의 말대로 난방이 안되니 다소 추위를 느꼈다. 방안에 여분의 이불이 있었는데 이것을 모르고 잔 사람들은 옷을 껴 입고 잤단다. 무조건 호텔에 들어오면 여기저기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오늘아침은 6.7.8 이란다.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 스케쥴. 오전 시간은 '여강고성'관광이다. 여강은 양자강이 W자로 흐르는 가운데 지점에 위치하는데 그 곳에 옥룡설산(5,596m)이 있다. 여강은 산(山).성(城).물이 아름다운 도시이다. 즉 항상 눈을 이고 있는 옥룡설산이 있고, 800년 된 고성(古城)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관광지이며 여강 시내를 흘러가는 맑고 깨끗한 시냇물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여강은 '아름다운 시냇물이 흐르는 도시'라 할 수 있다.
여강에는 '나시족'이 대부분이며 나시족이 역사상 478년이나 이 지방을 지배하였다고 한다. 여강은 교통과 상업의 도시로 발달했는데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중심지로 곤명의 차, 사천성의 비단, 베트남의 비취, 티벹의 우유가 이곳에서 물물교환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연 관광도시로 탈바꿈하였다. 1996년 옥룡설산에 3,000여명이 죽은 대지진이 있었다.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이곳을 방문하게 되고 여강의 아름다움에 놀라 그 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1998년에 공항이 개설되고 1996년에 있은 곤명 원예박람회도 이곳을 관광지로 비약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여강은 요즘 중국 최고의 관광지로 뜨고 있는데 하루 관광객이 3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여강시내에 호텔이 78개나 된다고 하니 짐작이 간다. 1997년에 여강고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는데 중국의 29개 세계문화유산 중 28개는 한족의 도시에 있고 유일하게 소수민족(나시족)의 도시에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셈이다.최근 고구려고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문제가 관심사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의 고성답사.
세계문화유산 여강고성 입구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입구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여강고성은 약 3만명이 살고 있는 나시족의 민속마을이다. 송나라 말기에 형성되어 원나라 때 성이 건축되었고 1254년 휴빌라이 시대에 다시 짓게 되었다고 한다. 여강고성은 주위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이 없는 특이한 곳이다. 대신 미로로 되어 있어 외침 때 황제의 궁을 찾지 못하게 설계 되어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여강고성 내부를 아침일찍부터 관광하니 편리했다. 좀 늦으면 관광객이 많아 다니기 힘든다고 한다.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상점들도 모두 옛 건물이다. 한참 걷다보니 특별히 눈에 띄는 간판이 보였다. 영어로 SAKURA라는 찻집이었다. 이 찻집은 한국 부산에서 온 북경유학생이 여강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눌러 앉았고 그가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여 일약 이곳 최고의 부자가 되었단다. 북경과 서울 부산에 빌딩을 갖고 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가이드가 신나게 설명하였다. 가장 높은 곳에 萬古樓라는 높은 전망대가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곳이다. 과연 2,600m의 전망대 만고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여강고성은 아름다웠다.
세계문화유산 대리여강고성
운삼평의 산책 여강고성 관광을 마치고 옥룡설산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직 비가 내리고 있어서 일정을 바꾸어 운삼평(雲杉坪)을 먼저 가기로 했다. 여강의 운삼평은 13개의 큰 봉우리중 대평원을 이루고 있는 해발 3,200m의 고산평원이다. 삼나무 숲이 온 산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산림욕을 하면서 옥룡설산을 조망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필수적으로 찾는 곳이다. 운삼평에 이르는 길은 2,800m에서 걸어서 한시간 정도 걸려 등산하는 길이 있고 리프트로 가면 15분정도 걸린다. 우리는 걸어서 오르고 내리는 길을 리프트를 타기로 했다.
운삼평에는 이족들이 살고 있는데 이족은 사냥을 하면서 사는 소수민족으로 목욕을 안하는 사람들로 이름나 있다. 평생 세번의 목욕을 하는데 태어날 때, 결혼할 때, 죽을 때 모두 세번의 목욕을 하는 민족이라고. 아직도 1년에 한번정도 목욕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산속에 살면서 추위를 견디어 내려면 저항력을 길러야 하기 때문에 목욕을 안 한다고 한다. 비록 목욕을 안하지만 마음만은 어느 민족보다 깨끗하고 순진하다고 한다.운삼평에 오르는 입구에는 큰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옥색빛의 빙하수가 옥빛을 발하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이 물에 손을 씻으면 장수한다고 한다. 방목되고 있는 흑돼지, 오골계 닭들이 운치를 더해 주었다. 운삼평에 오르는 등산로는 야생화 천국이었다. 특히 에델바이스가 많았다. 오르는 길에 사고가 생겼다. 벌떼를 만나 5명이나 벌에 쏘여 소란이 일었다. 모두들 엎드리기도 하고 빨강색이 위험하다고 하여 다른 색 옷으로 감추고, 결국 옆으로 새길을 개척하여 벌떼를 피할 수 밖에 없었다.벌에 쏘인 환자 한명은 병원에서 만 하루 입원했다고 한다.
11시에 운삼평에 도착하여 산림욕을 하면서 거닐었다. 한참을 가니 대평원이 나왔다. 곳곳에 민속춤이나 공연을 하고 있었고 평원 주위를 산보를 하면서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비와 안개 때문에 옥룡설산의 경관을 못 보는 것이 안타까웠다.두시간 정도 산책을 마치고 다시 리프트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벌써 관광객들이 많아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대망의 옥룡설산 트레킹 하산하여 점심을 먹고 오후에 옥룡설산 관광을 위해 샤틀버스를 타야 한다. 인산인해다. 과연 오늘 옥룡설산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연방 버스가 와서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실어 나른다. 케이블카 타는 곳이 해발 3,356m이고 이곳에서 4,506m까지 1,150m를 케이블카(6명씩 탑승)로 타고 간다. 케이블카 종점은 4,506m로 트레킹 시발점이다. 전망대 맨 정상이 4,680m이니 트레킹 높이는 174m에 불과 하지만 4,500m가 넘는 고산에서 오르는 한걸음 한걸음은 무척이나 힘이 든다. 4,500m에서 벌써 고산증으로 많은 인원이 포기를 하고 이곳에서 쉬기로 했다. 집사람도 고산증 영향인지 설사를 심하게 하고 죽만 먹고 있으니 힘이 빠져 무기력증 증세다. 결국 집사람도 여기서 쉬고 있겠다고 하였다. 나머지 일행은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아랫쪽은 비가 왔지만 이곳은 눈바다였다.
귀마개를 하고 두꺼운 겨울파카를 여미며 4시 25분에 산행을 시작했다.한발짝씩 천천히 걸었다. 숨이 차면 쉬면서-- 요령이 부족하면 고산증 증세가 온다. 오르는 길에는 중간중간에 해발 몇m라는 간판들이 꽂혀 있었다. 나무계단길이나 눈이 내려 녹은 물 때문에 미끄러웠다. 거추장스러워 스틱을 안갖고 왔더니 이때는 스틱이 아쉬웠다. 옆 난간을 붙들면서 오르기를 계속하다보니 드디어 45분만에 4,680m정상에 도달하였다. 생애 최고의 높이에 오르는 감격의 순간이다. 아내와 같이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안개가 자욱하였다. 기념촬영을 하고 그곳에서 발행하는 인증서를 받았다.
도착시간과 성명을 기재하고 10위엔을 받고 스탬프를 찍어준다. 별 것 아니지만 감격스런 등정기념이니 안할 수 없었다. 알프스의 여권에다 찍어주는 기념스탬프와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하산길은 호흡이 다소 쉬워진 반면 미끄럼이 더해 주의를 요했다. 나중에 보니 우리 일행인 유성삼 전회장이 눈이 녹은 계단에 미끄러져 팔을 부러뜨려 깁스를 하게 되어 다음 여행에 큰 지장을 주었다. 산행요령을 가르치던 전문가인 유회장이 다치니 더 할말을 잃었다. 케이불카 있는 곳에 오니 여자 가이드가 나를 보자마자 '사모님이 혼 났어요' 한다. 왜냐고 했더니 고산증으로 혼이 나고 의자에 누워 있어서 겨우 진정이 되었다고 한다. 이 옥룡설산 트레킹코스에 설치된 케이블카는 1996년부터 2년간 시공을 하여 완성한 것으로 빙하인 설산의 중턱까지 관광객이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저녁식사시간에는 온통 오늘의 트레킹 중 벌에 쏘인 환자, 그리고 넘어져 팔을 다친 환자 얘기로 화제가 풍성했다. 병원에서 응급처치나 약을 타온 환자도 있었지만 하루를 입원한 환자도 있었다. 고산증 때문인지 물이나 음식 탓인지 설사환자도 많았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백미인 샹그리라 지역 탐방날이다. 부푼 기대를 하면서 숙면을 했다.
해발 4680m 옥룡설산 전망대에 올라
9월12일(일)
흑룡담 옥천공원 아침 8시40분에 일행은 버스를 타고 여강 흑룡담을 관광했다. 흑룡담을 구경한 후 샹그리라를 향해 긴 버스여행을 하게 된다. 흑룡담 옥천(玉泉)공원은 300년전 나시족이 만든 못으로 28km의 지하수 샘터로 만든 큰 못으로 흑룡이 사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여강고성의 물 발원지라고 한다. 비가 개이기 시작했다. 물안개 낀 흑룡담은 한폭의 그림 같이 아름답다. 사진을 찍느라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안내판 글자에 한자와 영어와 동시에 동파상형문자가 씌여 있어 그 설명에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은 오전에 '호도협'이라는 최고의 대협곡을 관광키로 되어 있었는데 이곳 '호도협'이 비로 붕괴되어 인명사고가 났단다. 그래서 아예 봉쇄가 되어 흑룡담관광후 바로 샹그리라의 중심도시인 '중전(中甸)'으로 향했다.또 현지 가이드가 바뀌었다.중국은 가는 지역마다 가이드가 달라진다. 많은 가이드의 취업을 위해 법으로 정해진 것이란다.
내마음의 해와 달 - 샹그리라 샹그리라-- 인간의 이상향 마음의 해와 달이라는 샹그리라 ! 신비의 지역 샹그리라 ! 몹씨도 궁금했다. 차안에서 샹그리라에 대한 가이드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어느 히말라야 고원지대에 한 비행기가 불시착 하였다. 살아남은 사람 4명이 기진해서 눈덮힌 산 몇개를 넘으니 금빛으로 도배된 라마교 사원과 마을, 맛있는 음식과 현대적인 시설에 모두 놀란다. 주인공 콘웨이는 인도 바닐라 주재 영국 영사- 그는 이곳 샹그리라에 매료되고 그곳 승정(250여세)의 권유로 다음 승정으로 마음을 굳히다가 후배 영사관 직원의 강력한 항의로 마음을 바꿔 탈출한다. 어여쁜 만주족 처녀도 같이~ 그러나 비행기가 불시착 한 지점에 이르자 갑자기 그 여인의 얼굴은 백발노인으로 변하고--사랑하던 여인이 백발노인으로 변하게 된 것은 그곳에서는 200년 300년을 살 수 있지만 그곳을 떠나면 속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 노파 여인의 도움으로 돌아왔으나 그는 기억상실증으로 고생을 한다. 그가 경험했던 샹그리라에서의 기억을 구술한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그는 결국 다시 샹그리라로 찾아 갔는지 행방불명이 되었다. 영국의 제임스 힐튼 경의 소설과 영화로 소개된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의 내용이다. 당시 전셰계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큰 인기를 얻었다.
샹그리라라는 이름은 그 뒤 싱가폴의 최고급호텔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중국 정부에서 소설에 나오는 샹그리라 지역에 걸맞는 지역을 수소문하여 결국 중전,덕흠지역을 샹그리라(香格里拉) 현으로 지정하게 되었단다.
샹그리라는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티벹어로, 적경(迪慶)지역의 행운이 만나는 곳이다. 중심도시는 中甸으로 운남,사천성의 접경지대로 서장 장족 자치주이다. 중전을 지나 매리설산 트레킹코스인 덕흠(德欽)지역은 더욱 오지 산골로 설산이 뒤덮인 아름다운 경관이 뛰어나다고 한다. 중전에서 이틀,덕흠에서 하루를 묵게 되는데 해발 3,200과 3,300m라 한다. 백두산 보다 500m나 더 높은 곳에서 잠을 잔다고 하니 과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버스는 한없이 꼬불꼬불한 오지 도로를 달리고 있다. 강건너 보이는 깊은 산에는 수백년 된 우거진 삼림이 신비로움과 경이감으로 가슴을 벅차게 한다. 이 적막강산에 수만년전부터 만들어진 아름다운 자연은 너무나 벅찬 감동의 연속이었다.
도로의 대부분은 포장이 되어 있었지만 벗겨진 곳이 많아 덜컹그렸다. 옆으로 긴 강이 나왔다. 기와와 흙으로 만든 벽돌집 부락을 옆으로 하고 패인 덜컹거리는 포장도로를 따라 기나긴 장강을 끼고 한없이 달린다. 11시15분경 장강 제1만이라는 곳을 지났다. 장강의 구부러진 첫번째 만으로 130도로 휘어져 있었다. 20분가량 더 가니 다리가 나오고 2차선의 고속화도로가 나왔다. 길이 좋아지니 한결 편했다. 가는 도중 12시경 예정된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후 다시 30분 가량 달리니 또 비포장도로가 나왔다.진장로라는 길로 운남성에서 서장으로 가는 길이다. 진장길을 일명 내장을 진동시킨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환장길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단다. 산돼지처럼 생긴 돼지를 방목하고 있었는데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그 돼지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샹그리라관광은 5-6월은 꽃관광이 좋다고 한다. 7월부터 9월초까지는 장마철이고 계절적으로는 지금이 적기인데 11월이면 눈이 와서 관광이 불가능해진다. 단풍구경은 10월이 좋다고 한다.5월에는 두견화(진달래)가 온 산을 뒤덮고 6월에는 노란 유채꽃이 장관이란다.
곤명에서 중전까지 항공편이 있으므로 이를 이용해도 좋다. 다만 고도가 1,500m정도 올라가는 곳이니 고산증에 유의해야 한다. 샹그리라를 찾아 가면서 거듭된 안내멘트는 반드시 어느 곳이든 마음의 샹그리라를 찾아라는 것이다. 과연 나의 샹그리라는 어디에?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없이 오르고 있다. 우리 버스 이외에도 제법 많은 차들이 다니고 있었다. 모두들 마음의 샹그리라를 찾으러 떠난 여행객들이다.높은 재를 넘더니 다시 내려 가고 곳곳에 장족의 라마불교의 상징인 돌무더기가 보였다. 많은 깃발을 달고 있었다. 해발 3,250m라는 지점에 잠시 버스를 세웠다. 버스는 물을 먹어야 갈 수 있단다. 즉 물엔진이라 수시 물공급이 필요했다.
보리(칭크라 함)건조대가 논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국 정찰기가 이곳 중국 변방을 정찰하면서 칭크 건조대를 방공포로 오인하였다나? 야크와 집소의 잡종인 소떼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마을이 나타나면 응당 흰 백탑이 나왔다. 이 백탑은 티벹지구에서만 볼 수 있다. 외부인을 환영하는 탑이다. 사람이 죽으면 가장 높은 산에 고승이 천장대를 세우고 그곳에서 시체를 108토막을 내어 까마귀와 독수리밥이 되게 한다. 토장은 한족의 문화였으나 지금은 토장을 금하고 화장을 한다. 원래 화장은 스님만 하게 되어 있는데 고승의 시신은 화장후 백탑에 모시고 기도를 한다고 한다. 샹그리라지역은 23,780평방km로 35만명이 살고 있는데 33%인 12만이 장족(티벹족)이라고 한다. 우리는 장족민가를 방문할 예정이다. 북으로 평원을 계속 달리니 멀리 나파해(納파海)가 보였다.
나파해는 갈망하는 마음에서의 바다란 의미로 늪지대의 큰 호수이다. 가장 클 때는 660평방km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가 대단하다. 오후 3시50분경 장족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입구엔 "나파해 고원농촌 생태보호 발전지구"란 큰 간판이 서 있었다. 이 마을을 방문하기에 앞서 전화로 사전 허락을 받은 집인데 좀 부유한 농가 같았다. 마당엔 달리아꽃이 만발해 있었다. 3층 집인데 1층엔 가축이 2층엔 숙소와 요리를 하는 주방이 있고 그 윗쪽 다락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 보니 말린 건초와 무말랭이, 시래기 등이 널려 있었다. 창고인 셈이다. 거실 입구엔 우리네 농촌집처럼 사진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배우 같은 이집 주인의 젊었을 때의 사진과 가족사진이 있었다. 주인은 53세,여자는 47세라는데 얼른보기엔 나이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어찌나 순박하고 친절한지 금방 친밀감이 생겼다. 갔던 길을 되돌아 오면서 다시 나파해를 사진으로 남기고 중전시내로 향했다. 멀리 금빛지붕의 사찰이 보였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송찬림사(松贊林寺)"가 보였다. 시간이 없어 송찬림사 견학은 없고 내일 '동죽림사'를 견학할 예정이란다.
샹그리라 나파해 청초원 샹그리라 공빈 소학교 샹그리라 라파해 마을 이장댁
드디어 오늘 숙소인 '實力大酒店'에 도착하였다. 해발 3300m에 위치한 호텔이다. 가방에 든 인스탄트커피, 빵봉지,리면등이 기압으로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빵빵커피'니 '3300커피'니 명명하였다. 짐을 내리고 일행은 시내구경을 나섰다. 시내 중앙통이 길게 생겨 한번만 다녀오면 훤히 지리를 알 것 같았다. 산간 소도시에 불과하여 별 구경거리가 없었다. 돌아오면서 재래시장에 들러 풍물구경을 하였다.시장에 돌아다니는 우리일행이 그들에겐 도리어 구경거리였다. 저녁은 두시간이나 걸린 만찬이었다. 이제 날자로도 한창 어울릴수 있는 시기이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식사를 마치고 당초 장족 민속쇼를 그만두게 하고 호텔방에서 전신맛사지를 받기로 했다. 이곳 시골에도 많은 맛사지걸이 있는지 한참만에야 우리방에도 두명의 여자 맛사지걸이 들어왔다. 부부가 한방에서 맛사지를 받기란 생전 처음이다. 쑥스럽기도 하였지만 피곤한 몸이 다소라도 풀릴까 혹은 과연 이곳의 전신 맛사지란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시키는데로 누웠다가 엎드렸다가 하다가 나는 잠이 들었나보다. 코를 골더라고 아내가 흉을 보았다. 몹씨 고단했던 모양이다.맛사지가 끝나고 바로 숙면에 들어갔다. 내일은 가장 경관이 빼어난 매리설산을 감상하고 덕흠으로 가는 날이다.
9월13일(월)
덕흠으로 가는 길 6시30분에 기상하였다. 7시30분에 식사시간이란다. 오늘은 덕흠으로 가는 날이라 일찌감치 짐을 꾸렸다. 날씨는 화창하게 개여 있었다. 기분 좋은 날이다. 처음으로 환한 태양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오늘은 4,300m의 전망대에서 감상을 해야 하는데 가이드가 5,300m 고개를 넘는다고 하여 지레 겁을 먹은 집사람이 산소호흡기를 준비하자고 하여 55위안을 주고 하나 사서 시험을 해 보았다. 4,000m 고산지대에서의 유의점을 강조하였다. 뛰지말것. 신경질,화를 내지 말것. 과식이나 과음하지 말것. 뜨거운 물에 목욕이나 샤워를 하지 말 것.
8시30분에 떠난 버스는 두시간쯤 달리다가 길가 니시도자기 판매상 앞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니시부락에서 굽는 니시도자기는 중국에서 유명한 도자기인데 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이라고 한다. 중전에서 덕흠까지는 187km이다. 니시마을을 지나 조금 가니 행복촌이라는 도시가 나왔다. 과연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부근의 경관은 모든 산이 돌산이고 옆에는 큰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운남성에서 다리를 하나 건너고나니 사천성 땅이란다. 왼쪽에는 바위산과 계곡물이 흐르고 오른쪽은 금사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양수리에 온 듯했다. 금사강은 황토색 빛갈의 물길이 세차게 흐르고 있다.11시경에 덕흠현 분자란마을(奔子欄鎭)에 도착하였다. 자시란시식당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하였다.한시간 가량 식사시간을 갖고 다시 오후일정을 위해 출발하였다. 구비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 가팔라진다. 10분가량 지난뒤 버스는 잠시 멈췄다. 여기가 유명한 금사강 제1만이란다. 과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금사강 제1만은 아름다웠다. 붉은 색 강물이 90도를 꺽여 구비치는 모습이 그림 같았다. 가게에는 배,석류가 많았다. 또 밀빵을 굽어 팔고 있었는데 누군가 5위안치를 샀더니 우리버스 전원이 싫컷 먹을 수 있었다. 백마설산이 보이고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한뒤 덕흠 방향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12시40분경 우리 일행은 동죽림사에 도착하였다.
금사강 제1만
東竹林寺 동죽림사는 규모가 큰 사찰로 스님이 3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동죽림사에 들어가니 마당에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한마당 앉아 있었다. 마침 이날 큰스님의 법문이 있는 날이라 모든 스님들이 법문을 듣기 위해 모여 앉아 있는 것이란다. 스님들의 법의는 붉은색인 반면 생불님의 법의는 황색이었다. 티벹의 지도자 달라이라마의 제자인 4명의 생불 중 한분이 오늘 여기에 오신 모양이었다. 우리의 불교와는 판이하게 다른 현상을 발견하여 놀랐다. 이날의 잔치를 위해 돼지를 사찰 안에서 직접 도살하여 요리를 만드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살생을 금기시하는 한국불교와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한 스님의 안내로 우리일행은 사찰내 본당으로 안내되었다. 4층의 사찰 내부는 관광코스가 되어 있었다. 1층에 들어서니 맨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앉아 있고 좌측 입구쪽은 라마교의 창시자인 륭카바 대사가 탑장되어 있었다. 2층에도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이 있고 좌측에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과 구세에 한계를 느끼고 흘린 눈물로 된 21명의 신선이 도열되고 있었다. 우측에는 능력이 가장 강한 신선들의 모습이 늘어서 있었다.
3층에는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에 나오는 환상의 샴바라왕국을 모방하여 만든 모형도가 있었다. 라마불교의 대표적인 사찰인 동죽림사를 견학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기이한 바위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야에 나타난 가장 뾰쭉한 산이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빠랑껑둥설산"이라고 하는데 매리설산과 함께 장족지구의 성산으로 떠받히는 산이라고 한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돌을 박아 만든 길이 이어졌다. 눈이나 비에 미끄러지지는 않겠지만 덜덜거리는 버스는 불편했다. 온통 나무가 없는 설산만 전개되었다. 그런데 우측에는 울창한 나무숲이 있다.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백망설산의 위용 2시40분경 눈앞에 백망설산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도를 물으니 현 위치는 4,200m란다. 이곳에서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찍었다. 왼쪽은 5,760m의 백망(白茫)설산이, 오른쪽은 험준한 돌바위산이 위용을 뽐내고 있다. 다시 포장도로가 나오고 조금 가니 4,292m의 백마(白馬)설산 전망대가 나왔다. 모두들 다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왕관봉'이라는 뾰쭉 바위산과 멀리 보이는 매리설산의 풍경을 번갈아 보면서 아름다움에 탄성이 나왔다.백마설산은 봄이면 진달래로 장식되는데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전망대 주변에는 예쁜 야생화들이 유혹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지 않고 가면 아쉬울 것 같아 보이는데로 찍어댔다.
매리설산 전망대에서 한시간 가량 다시 달리다가 '明永氷川 梅里雪山 觀景臺'라는 전망대에서 모두 하차하였다. 이곳에서 매리설산의 경관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매리설산은 이 지역의 가장 높은 설산으로 가장 높은 '카와격방봉'은 6,740m로 아직 아무도 오르지 못한 처녀봉이다.과거 일본과 중국의 산악인 17명이 도전하다가 전원이 사망하여 세계 2대 대형 조난사고를 일으킨 곳이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하여 매리설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좀처럼 이런 화창한 날씨는 보기 힘든다고 한다. 며칠간 비가 내린 뒤라 행운이 온 것이다.
이곳 전망대는 매리13탑기념비가 있고 13태자를 상징하는 13봉을 탑화하여 세운 13태자탑이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이 13개의 탑 속에는 오곡(五穀)과 오보(五寶)가 들어 있다고 한다. 오곡은 보리,밀,청과,깨,콩 이고 오보는 금,은,옥,산호,만호 다섯가지 보물이라고 한다. 매리설산의 주봉은 '카와격박봉'이고 왼쪽에 '싱녀봉' 더 그 왼쪽엔 오자봉의 다섯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주봉의 오른쪽은 웅장한 장군봉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길게 늘어선 흰 설산은 이곳에서 보면 나란히 서 있는 것 겉지만 더 멀거나 가깝게 위치가 다 다르다. 이번 여행의 경관중 하이라이트인 이 매리설산을 이토록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우리는 두시간을 이곳에서 기다렸다가 일몰광경을 보기로 하였다. 옹기종기 모여 잡담을 하거나 전망대 뒤산에 올라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는 등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일몰시간이 왔다. 그러나 그토록 기대하였던 붉은색의 낙조일몰은 신통찮았다. 구름이 덮이고 상상했던 일몰사진을 남길 수가 없었다. 오늘의 숙소인 덕흠으로 향했다.7시20분에 호텔(德欽迪慶酒店)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10시에 취침을 하였다. 호텔방이 추워 이불을 추가로 더 덮고 잤다. 고산증이 두려워 가져간 산소호흡기는 사용을 하지 않고 약만 복용했다. 이곳의 해발도 3,280m이다. 내일아침엔 해뜨는 일출광경을 보기위해 새벽 4시기상이란다.
메리설산 전망대메리설산 전망대에서 일몰을 기다리며
덕흠(德欽)은 운남성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천과 서장성의 사이에 접해있다. 장족과 기타 민족 교류의 주요 지점이기도 하며, 총 23,780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지니고 있다. 샹그리라는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뺴놓을수 없는 주요한 관광지구이다. 덕흠은 장족의 언어로 바라는데로 이루어질것 같은 지역이란 뜻으로, 이곳 푸른 고원 동남쪽변으로 남쪽에서 북쪽까지 산맥이 뉘여있다. 세개의 강줄기가 흐르는 오지로써 독특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며, 협곡과 초원, 호수, 원시산림과 민족풍정등이 일체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어, 여유를 갖고 여행하기에 좋은 관광지구이다. ...풍경구내로는 높덮인 산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운남성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해발 6,734m의 <카와격박봉>이있는데 중전현 내부로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4,000미터이상의 설산이 470여개가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유명한 금사강(金沙江), 난창강(瀾滄江)이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고산초원지대는, 원시삼림이 우거져있고 씽라치포의 고산호수도 같이 자리하고 있어, 덕흠의 자연경관의 신비함과 험준함, 맑고 우와함을 더해준다. 덕흠은 서장고원 설산협곡의 용모와 장족풍정을 지니고 있을뿐 아니라, 사람들이 내몽고의 대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과 소를 보는 것 같은 장려한 경관도 지니고 있다. 그외에도, 덕흠의 샹그리라는 해발 3,280미터로, 저해발국가와 구역내 인사들이 방문한 곳으로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민족 풍정에 대한 이해를 편안히 받아들일수 있을 것이며, 풍성한원시삼림에서 품어져 나오는 산소때문인가, 고산반응에 대한 걱정은 필요없다. 덕흠주(州)의 내부로 들어가면, 장족, 한족, 납서족, 이족, 백족, 등 13개의 소수민족이 생활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33만명에 달하고, 그들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이나, 생활방식과 복장, 민족건축양식과 혼례습관등의 전통풍속은 각 민족의 특색을 지니고 있어, 이곳에서 각 민족특색을 마음껏 느낄수 있어, 구전되는 전설중 샹그리라라고 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2002년 10월 15일 UNESCO 문화사찰단이 샹그리라를 방문해 앞으로 또하나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엄청한 관광지로 새로이 태어나고 있다.
9월14일(화)
일출관광 새벽에 일어나 부산을 떨고 5시50분에 일출관광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25분가량 가니 전망대가 있었다. 깜깜한 밤이다. 제단이 있는 곳에는 향과 나뭇단을 팔고 있었다. 신자들이 나뭇단을 사서 제단에 불을 때고 기도를 한다. 해발 3,400m인 이곳이 해뜨는 광경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란다. 해뜨는 광경이란 붉은 해가 솟아 오르는 광경도 보기 좋지만, 그 보다는 매리설산의 봉우리가 햇빛을 받아 마치 흰설산의 봉우리가 솟구치는 모습이 더 장관이다. 안개가 자욱하여 일출관광도 별 소득이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언제 해가 떴는지 부옇게 날은 샜지만 해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 두가지 모두를 보이지 않으려나 보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비가 온 직후라면 안개가 없지만 화창한 후에는 안개가 끼게 마련이란다. 아쉬움을 남긴채 매리설산 트레킹을 위해 명영빙천 방향으로 출발했다. 조금 가다가 보니 안개가 걷힌 하늘에 해가 보였다. 차에서 내려 아침해를 감상하였다. 달리는 차창너머로 란찬강대협곡이 보였다. 우리일행은 두대의 버스로 나누어 탔다. 한대는 란찬강대협곡을 관광하고, 다른 한대는 란찬강대협곡 아랫마을에서 매리설산전망대 까지 트레킹을 한다. 물론 나는 트레킹 팀이다. 계곡을 따라 비포장도로의 험로를 오르내리는 도로는 아찔할 정도로 험했다. 멀리 보이는 란찬강대협곡은 눈덮인 바위산,얼음의 빙하, 험준한 협곡,그리고 빙하 아랫쪽으로 흘러내리는 붉은색의 강물이 한데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었다.
매리설산 트레킹 아침 8시가 좀 넘자 드디어 트레킹의 깃점인 명영촌에 도착하였다. 이 마을에는 트레킹에서 말을 타고 가는 관광객을 위해 집집마다 자기 말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아침 일찍부터 말과 말을 끌고갈 마부 남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영촌의 특기사항은 장족의 "일처다부제"가 현존하는 유일한 마을이란다. "일부다처제"는 들어 보았지만, "일처다부제"라니? 그곳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이곳 명영촌은 해발 2,200m로 매리설산 전망대인 3,100m까지 트레킹코스가 개설되어 있다. 등산로가 있고 또 말을 타고 가는 길도 있고 험준한 길에는 계단을 만들어 도보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해발 높이로 900m를 오르는 셈이다. 도보로 2시간, 말을 이용하면 50분이 걸린다고 한다. 험한 산길을 말을 타고 가는 게 미안했지만 이곳 주민들에겐 생계수단이니 말을 이용해 주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원래는 등산 트레킹을 하려 했으나 집사람이 말을 타겠다 하고 나도 평생 말을 타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기회에 한번 타 보기로 했다. 말을 타고가는 종점까지는 1시간 20분이 걸렸다. 여기서부터는 계단인데 약 1km를 걸어서 30분만에 올랐다. 오르는 동안 야생화 사진도 찍고 곳곳에서 빙하천과 높이 보이는 매리설산을 올려보며 기록사진을 남겼다.3,100m 전망대에서 모인 일행과 단체사진을 찍었다. 하산도 기다리고 있던 각자의 말을 찾아 명영촌으로 내려왔다. 말 이용료는 120위안이란다.
메리설산 트레킹
고산지대의 자선학교 명영촌에서 중식을 하고 머나먼 중전까지의 버스여행이 시작되었다. 란찬계곡의 홍색물과 빙하의 눈 녹은 하얀 물살이 만나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깊은 계곡물, 하얀 눈, 얼음, 녹색나무숲,파란 하늘, 흰구름, 이들이 어우러져 한폭의 산수화를 그리고 있었다. 오후 2시경 아침에 올랐던 일출전망대로 다시 왔다. 10여분간의 휴식을 가지면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길 위에는 10여마리의 야크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결코 경적을 울리지 않고 천천히 차를 몰면서 피해 갔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니 지형을 복습하는 느낌이었다.어제밤에 잤던 덕흠을 지나 오후 3시40분에 4,292m의 백마설산 백마경구 지점을 통과하였다. 조금 더 가다 보니 해발 4,000m지점에 갈림길 표시가 있었다. 우측으로 샹그리라 23km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돌을 박아서 만든 길을 천천히 내려 가던중 '白馬雪山 大森慈善學校' 앞에서 차가 머추었다. 뒷차가 펑크가 났다는 전갈이다. 우리는 이곳의 학교를 구경했다. 학생34명과 선생님 4분이 계셨다. 교실에는 닭과 새끼돼지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모습은 신기하게 보였다. 칠판에는 영어수업이 있었는지 한자,티뱉어,영어가 적혀 있었다. 매리설산 트레킹 때 만났던 영국여인을 이 학교에서 만났다. 그가 이학교의 영어선생이란다. 반가웠다. 뒷버스가 수리를 마치고 뒤따라 왔다. 저녁 9시경에야 중전시내에 있는 호텔(實力大酒店)에 도착하였다. 하루종일 차를 탄 셈이다. 미안했던지 저녁에 돼지바베큐를 추가했다고 했다. 해발 3,300m에서 식사하고 잠을 자고-- 이제 면역이 되었나 보다. 어느 누구도 머리가 아프다거나 설사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일은 중전발 곤명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래서 새벽 5시 기상이란다. 일정이 좀 무리였지만 어쩔수 없었다.
9월15일(수)~16일(목)
대석림과 소석림 비행기는 안개 때문에 8시20분발이 무려 두시간이나 연발 되었다. 한시간이 채 안걸려 곤명에 도착하여 일단 석림으로 향했다. 비행기 연발로 일정이 타이트해졌다.석림에 도착하여 '아스마'식당에서 중식부터 했다. 약선요리는 이곳의 특별메뉴인듯 했다. 한약재를 넣고 닭과 오리고기를 주로한 고급요리라 한다. 아스마란 이곳 이조들 말로 '여자, 아줌마'란 뜻이다. 이족의 의상은 우리의 한복과 비슷한데 모자가 화려하다. 석림은 역사가 없는 갑자기 관광으로 부유해진 도시이다. 도시건설이 불과 3~4년전부터 건설되었다.이곳 석림의 대석림,소석림지구와 구향동굴,은 곤명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며,곤명에 있는 골프장(春城리조트)은 요즘 동남아,한국,일본 관광객들이 붐비는 세계 100대의 명문골프장의 하나이다. 석림은 3억년전 바다였던 것이 융기되아 기형의 돌산이 된 것이다. 몇년전 나는 이미 이곳을 관광하여 크게 신기한 것이 없었지만 처음 보는 관광객들은 모두 놀란다.
입구의 호수를 시작으로 石林이라는 돌에새긴 붉은 글자가 눈에 띄고 그 뒤로 계속되는 웅장하고도 기이한 바위들이 한없이 펼쳐졌다. 대석림을 구경하면서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정상에는 정자가 있고 이곳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무조건 정상에는 꼭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대석림과는 달리 소석림은 정원이 꾸며져 있고 아기자기하게 기이한 모습의 돌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리 되어 있다. 사진을 남기기에는 소석림이 좋다.
석림관광을 마치고 급히 구향동굴로 향했다. 입장시간에 맞추어야 하므로 사실 석림구경도 시간에 쫒기듯이 한 셈이다. 아침 비행기의 연발로 계속 바쁜 스케쥴이다.한시간반이 걸려 5시경에 구향풍경구에 도착하였다. 몇년전 이곳을 다녀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도로포장이 안되어 무척 고생을 하였었는데,지금은 너무나 도로사정이 좋다. 가는 도중에 보이는 야산에는 온통 옥수수와 해바라기 천지다. 논에는 누렇게 벼가 익어 있었다. 추수기가 되었나 싶었다. . 구향동굴은 중국의 4대동굴의 하나이다. 길이로 두번째 큰 동굴이라고 하는데 낙차가 30m나 되는 폭포는 장관이다.
구향동굴의 하이라이트는 큰 낙차의 폭포와 신선이 농사를 지었다는 다락밭이다. 구향동굴을 관람하는 코스는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40m를 내려가서 1시간 정도 걸으면서 관광을 하게 된다. 처음의 코스로 구명조끼를 입고 동굴내를 보트를 타고 큰 연못을 한바퀴 돈다. 동굴내는 희미한 전등으로 조심조심 걸으면서 기이한 모양의 조각에 기념촬영을 한다. 굴내는 소란스런 물소리에 아무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12,000평방m의 이형괴석에 감탄의 연속이다. 사자광장을 지나 웅장한 폭포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다락밭이 나온다. 출구쪽에는 기둥종유석이 전등 불빛을 받아 아름답게 서 있다. 이곳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300여개의 계단을 올라와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입구쪽으로 내려가게 된다. 리프트를 내리면 자동으로 카메라를 들이데어 찍힌 사진을 15위엔에 팔고 있었다. 필요한 사람만 사면 된다.
(九鄕洞窟, 구향동굴) 추울 정도로 시원한 동굴 안에는 종유석과 석순들이 연출하는 장관이 펼쳐지고, 곧이어 이곳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선녀동이 나오는데, 선녀궁(神女宮)은 선가(仙家)가 거주하던 동굴부로 원명은 선인동(仙人洞)이다. 이곳은 선량한 선녀가 살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그 선녀의 모습이 지금은 석화로 굳어져 있다고 한다. 동굴밖으로 나오는 길에는 300개의 계단이 있고, 가마꾼들이 있어서 흥정해 이용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출구 앞에는 리프트가 있어서 스키처럼 타고 출구로 나오면 되는데, 신미한 동굴과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재미있다.
시간에 쫓기는 오늘의 관광일정을 모두 마쳤다. 곤명으로 돌아오는 길은 역시 옥수수밭이 이토록 넓구나 하는 감탄의 연발이었다.한시간30분 걸려 곤명시내의 저녁식당으로 왔다. 고속화도로가 잘 되어 있었다. 몇년전과는 판이하게 변모하고 있었다.오늘 저녁식사는 버섯요리 전문식당이란다. 한시간의 버섯만찬을 마치니 밤 9시30분이었다. 석식후에는 또 "보이차"시음회 장소로 가야한다. 12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1시 비행기를 타게 된다. 밤 스케쥴이 한가하여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 궁금하였는데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스케쥴이다. 보이차 시음회를 마치면 또 발맛사지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보이차를 마시러 가는 동안 부인네들은 첫날 실크 공장에서 못다 구매한 제품을 사러 택시로 세대나 빠져 나갔다. 남은 일행은 곤명지구의 특산물인 "보이茶"를 시음하고 몇몇 회원들은 차를 구입하였다. 이곳의 '보이차'는 잎을 따서 말리고 숙성한 차로 중국의 명문차에 속한다. 중국에서는 대부분 커피를 마시지 않고 차를 복용한다.
밤 11시에야 발맛사지 건물에 도착하였다. 한시간동안 발맛사지를 하였다. 중국에 올 때 마다 발 맛사지는 필수코스이다. 경험한 바로는 북쪽보다 남쪽이 서비스나 질이 좋은것 같다. 밤 12시에 겨우 맛사지스케쥴을 마치고 공항으로 갔다. 공항엔 벌써 출국수속이 끝나고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가까스로 비행기에 탑승하니 7박 8일의 모든 스케쥴이 모두 끝나는가 싶어 한편 시원하면서도 또 한편 뭔가 아쉬운 점도 있었다.
후기 넓은 운남성을 단 일주일에 다 본다는 것은 무리이지만 그래도 남에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공항에서 운남성 관광책을 하나 샀다. 이번 여행도중 많은 사진을 찍었고 기록도 많이 했다. 기록사진전과 여행기행문을 남길 생각이나 과연 정확하고 재미있는 여행기가 될지 걱정이 앞선다. 여행중 처음엔 비가 와서 지장이 많았지만, 다행히 나흘째 부터는 날씨가 완전히 개이어 비온후 맑은 시계로 정말 보기 힘든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아직 샹그리라지역은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신비의 세계로 남아있는 곳이다. 이 여행기가 관심있는 관광여행객이나 트레킹을 하고 싶은 산악인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