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색녀 하희.(마지막)
장왕은 하희를 살려주었고 그녀와 환락의 밤을 보냈다. 그리고 하희를 후비로 삼고자하였다. 그러자 초나라의 대부인 굴무가 말렸다.
"하희는 상서롭지 못한 여인입니다. 그녀가 정나라에 있을 때 오빠인 영공 그리고 자공과 동시에 정을 통해 마침내 영공이 비명횡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집을 와서도 남편을 요절하게 만들었고 또한 세 사람과 정을 통해 그로 말미암아 나라까지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천하에 미인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 음란하고 상서롭지 못한 여자를 취하려 하십니까?"
초장왕은 굴무의 충언을 듣고 그자리에서 천하를 품기 위해 하희를 곁에 두지 않으려고 하자 이번에는 장군 자반이 그녀를 달라고 했지만 무신(굴무)이 역시 제지시켰다.
그 후 연윤 양로가 홀아비임을 자처하면서 하희를 요구하자 장왕은 양로에게 하희를 주었다. 색녀인 줄도 모르고 하희를 얻게 된 양로는 며칠 동안은 즐겁기가 한량 없었지만 날이 갈수록 하희의 요구에 진절머리를 내고 만다.
이후에 하희의 소문을 들은 양로는..
'세상사람들의 말이 헛소문이 아니었구나. 이러다가는 나도 색에 곯고 곯아서 말라 비틀어져 죽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나라가 침공해오자 양로는 하희로부터 도망치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초장왕 앞으로 달려가 자신이 출전해 진나라를 괘멸시키겠다고 하며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다. 그는 용감무쌍하게 선두에 서서 싸워 초군은 대승을 거뒀으나 그 전투에서 발기발기 찢겨졌다. 그의 시신조각을 적들이 가져가 버려 초나라에서는 그의 장례식도 치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양로의 아들 흑요가 하희를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틈타 그녀를 범하고 데리고 살게 된다. 그러자 평소에 하희를 탐냈던 굴무가 꾀를 내었다. 그는 비오는 어느 날 밤, 내리는 빗줄기를 그냥 맞으면서 하희의 집으로 갔다.
굴무도 하희의 남편 양로가 비참한 전사를 한 뒤 그의 아들 흑요가 하희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굴무는 허리에 찬 장검의 손잡이에 손을 대며 흑요에게 소리쳤다.
"하희는 비록 친어미가 아니라지만 어차피 네 새어미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비는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죽었는데 네놈은 명색이 어미인 아비의 여자와 정을 통하다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
흑요는 목숨을 구걸하여 달아나고 굴무는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속마음을 감추며 언젠가는 하희를 차지하리라 결심했다. 또 완벽한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굴무는 얼마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는지 모른다.
"친정으로 돌아가시오. 진나라가 아니고 정나라로 말이오. 정나라가 그대의 고향이 아니오?"
실상 하희는 자신과 관계를 맺었다하면 죽든가 도망치든가 하는 불행을 당하는 남성들을 겪으면서 많이 지쳐 있었다. 떠날 수만 있다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굴무의 계략대로 하희는 무사히 정나라로 돌아갔다.
정나라는 아버지 정-목공과 하희와 정분을 통했던 큰오빠인 정-영공도 죽었고 지금은 그녀의 또 다른 오빠인 정-양공이 다스리고 있는 중이었다. 15살 때 정나라를 떠나 약 50의 나이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굴무는 초-장왕에게 간언하여 하희를 단념토록 하고 장군 자반에게 충고하여 하희에게서 손을 떼게 했었다. 굴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희를 자기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궁리 끝에 하희를 먼저 친정인 정나라로 보냈다. 그리고 초-장왕에게 자신은 노나라를 치기 위해 제나라의 협력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사신을 자청하여 길을 떠났다.
굴무는 초나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하희와 남은 여생을 함께 할 계획이었다. 그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체 하다가 정나라로 갔다. 그리고 하희와 결혼에 성공하여 정나라에 눌러 살게 된다. 굴무는 초나라 왕족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있었고 백성들의 추앙과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는데 하희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이다.
아무튼 굴무가 제나라로 가려다 길을 바꿔 진나라로 들어가 제 발로 충성을 바치겠다고 하자 진 경공은 기꺼이 대부로 삼아 봉토를 주고 후대하였다. 이러한 굴무의 배신행위가 초나라에 알려지자 모두 격노하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흥분한 사람은 장군 자반이었다.
장왕에게 하희를 달라고 했을 때 하희가 요부라하여 반대한 자가 바로 굴무가 아닌가.
그런한 자가 하희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속이고 계획적으로 일을 꾸몄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한편 초나라에서는 장왕이 죽고 공왕이 즉위했다. 무신(굴무)이 하희를 차지했다는 소문을 듣고 기어코 자반은 일을 저질렀다. 초나라에 남아 있던 굴무의 일가 친척을 모조리 죽이고 흑요까지 주살한다. 뿐만 아니라 굴무의 친척들이 소유한 전답과 노예, 심지어 처첩까지 모조리 차지해버렸다.
멀리서 그 소식을 전해들은 굴무는 불같이 화를 냈다. 원래 배신자는 굴무였는데 그가 오히려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이 원수는 반드시 갚겠다. 내 반드시 자반 이놈을 사로잡아 갈갈이 찟어놔야 속이 풀리겠다. 자반 이놈..!"
굴무는 진나라의 왕을 설득하고 오나라를 사주해서 초나라에 반기를 들게 해야한다고 하면서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건너가 오나라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마침내 오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하여 남쪽 국경지대인 주래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 때부터 오나라와 초나라는 적대관계가 되었다. 이 모두 하희라는 여자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자반은 그 후 2년 뒤 정나라 땅 언릉에서 진-초 양국이 격돌하여 초나라는 돌이킬 수 없는 참패를 당해 초-공왕은 진나라군이 쏜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초나라 장군 자반은 전쟁에 패하고 자결했다. 그 이후 초나라는 패자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다.
하희는 한 나라의 멸망을 가져왔고 두 명의 군주와 다섯명의 대부와 대신 그리고 외아들인 자식까지 능지처참의 형으로 죽게 하였다. 그리고 오와 초가 전쟁을 하게 한 빌미를 제공하여 양국에서 몇 만명을 죽게했다. 또한 초나라의 무신(굴무) 일가를 도륙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그녀는 색기를 타고 나서 수많은 남자를 죽게 하였고 나라를 망하게 한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미인이었던 건 확실한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