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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국가관: 로마서 13장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오늘은 국가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는 세상의 나라의 법과 제도가 있고 우리는 이 국가의 일원으로서 삶을 살면서 하늘의 백성으로서 또 하늘의 법에 순종해야 됩니다. 이런 두 지위를 지닌 이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국가에 대해서 어떤 마음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에 대해선 세상의 국가의 구조와 법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또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올바로 이해를 할 수 있게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샬롬 로마서 6강 12-16장은 실천 부분인데 이 세상에서 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올바른 국가에 대한 시각이 어떤 것인지 마천 교회의 설교를 그대로 인용을 하면서 이해를 해 보겠습니다. 저보다 국가관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한 글이고 저도 이 글을 보면서 같이 공부를 하고 이해를 할 것입니다. 같이 보면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로마서 강해(33)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국가관(롬 13:1-7)| 로마서 강해
은혜의 샘 | 조회 163 |추천 0 | 2012.10.29. 17:09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국가관(롬 13:1-7)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느 나라에 속하건 한 나라에 속하여 살아갑니다.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모든 인류는 다 그 나라마다 다 다릅니다. 국민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있는 반면 살기가 어려운 나라도 있습니다. 만일 나라가 잘못되면 그 나라에 사는 국민 모두가 다 고통을 받습니다. 그 삶이 불행해집니다. 아무리 국민 개개인이 똑똑하고 뛰어나도 나라가 잘못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의 과거만 한번 되돌아보십시오. 일제에게 나라의 주권을 잃었을 때 우리 국민 모두는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던가요. 그 당시에도 우리 국민들은 똑똑하고 부지런했지만 그 모든 똑똑함과 부지런함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고통에 빠지면 모두가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육이오 사변은 어떻습니까? 다른 피해는 놔두고서라도 150만 명이라는 우리 국민들이 죽었습니다. 그 당시 인구가 2천만 명을 조금 넘은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숫자가 죽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국가가 잘못되면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잘못되면 그 안에 사는 국민 모두가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국가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제 치하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유였습니다. 지금 우리 국가를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과거에 공산주의에 의해 그렇게 많은 희생을 당했고 지금도 수많은 북한의 주민들이 잘못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학살 당하고 핍박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이 땅에서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이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역감정이 망국의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그것을 선동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치는 표류하고 있고 국민들은 나라의 유익을 앞세우기보다는 개인의 유익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불안과 불만이 가득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정이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고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사회지표는 우리 사회가 점점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니까 우리는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해야 합니까? 그 일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아니니 내 몰라라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저 신앙은 신앙이고 세상은 세상이니 그저 내가 생각하는 정치 이념에 따라 살아가야 하나요? 오늘 본문 말씀은 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위기에 처한 국가를 살려내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과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나라를 살려냈듯이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가 어려울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국가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국가를 향한 우리 그리스도인에 대한 국가에 대한 생각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다름 아닌 이것입니다. 1.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이 국가에 대해 가져야 할 대원칙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대원칙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그 원칙이 무엇인가요?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여러분 이 원칙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골자입니다. 신기하게도 성경을 읽어보면 복종하라는 명령이 종종 등장합니다. 모든 관계에 복종하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하라 말씀하시고 아내는 남편에게, 종은 상전에게, 국민은 다스리는 자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권위를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그 권위를 주신 자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원천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통치자의 권력을 존중하지 않으면 권력을 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2절)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권위 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권위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3장 1절을 다시 보십시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여러분 사실 이 말씀은 사실 독재자들에 의해 가장 많이 남용된 성경 구절입니다. 그래서 민주운동을 하던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이 성경에 원래는 없었는데 독재자들이 집어넣은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빼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구해봐도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 원문의 명확한 말씀입니다.(성경 여러 곳에 있다 - 단 4:32, 벧전 2:13-14) 그 뜻 역시 명확합니다. 우리는 국가를 다스리는 자들을 인정하고 그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받들어 섬기려면 교회의 하나님으로만 섬기면 안 됩니다. 이 세상 국가의 하나님, 이 세상 주권자로도 인정을 하고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라도 권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어떤 통치자든지 그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믿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저 북쪽의 악랄한 그 사람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75쪽 밑의 내용, 로마의 황제도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지도자는 존중하고 나쁜 지도자는 존경하지 말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니 악한 지도자라도 일단 통치권을 가지고 그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그 권세를 하나님이 주신 줄 알고 존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태도에서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받은 재판은 전형적인 불법 재판이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고 서둘러서 처리한 재판이니까 불법 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정에 서신 예수님은 어떤 입장을 취했습니까? 그가 끝까지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빌라도의 권한을 인정하지 아니하셨다면 끝내 재판을 거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시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 하고 물었을 때 주님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질문에는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주님이 가만히 계시니까 빌라도가 이상하게 생각을 했는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 19:10) 예수님을 석방할 권한도, 죽일 권한도 자기 손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1절입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들으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현대어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빌라도야 네가 하나님께로부터 총독의 권세를 받지 아니하였다면 나를 그렇게 다룰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비록 불법 재판을 하는 빌라도지만 그가 가진 권력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빌라도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권력을 주신 하나님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자세를 통하여 국가의 통치권을 가진 자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 왜 도대체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이 말씀을 기쁨으로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말씀을 읽을 때에 내 마음 깊은 곳에 거부감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어요. 왜 거부감이 느껴질까, 하나님의 말씀인데.... 제 마음을 자꾸 살펴보니까 이유가 보이더라고요. 우리 모두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인하고 싶지만 죄로 타락한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권위에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내재해 있는 것입니다. 제 마음 안에도 그 마음이 있더라고요. 우리는 이것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인정해야 해요. 한번 당신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세요. 거기에는 순종하기보다는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존재해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타락한 마음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사회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바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더욱이 요즘같이 권위가 무너진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이 말씀은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권위가 송두리째 무너진 사회를 상상해보세요. 이렇게 계속 권위가 무너져 내려가면, 마침내 우리 사회에 권위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 사회는 정글의 법칙만이 남는 무서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한 본성을 가진 우리 마음대로 사는 비참한 결과입니다. 국가는 타락한 세상에서 최소한의 선을 유지하게 하려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입니다. (국가의 통치자와 공직자들은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고 공평과 정의를 시행하기 위해서 세움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에서 다스리는 자들의 질서 유지자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강조하면 즉각적으로 우리 마음에 드는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잘못된 권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김일성 같은 독재자에게도 굴복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 13장 4절을 보세요.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하나님께서 권세자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나요? 선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권세자가 선을 이루기 보다 자꾸 악을 행하면 어떻게 합니까? 히틀러같이 악을 행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가?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딜레마입니다. 과거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가 세운 좋은 전통 중에 하나가 바로 시민 불복종의 권리입니다. 이것은 악한 정부에 대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바로 악한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는 불복종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어떻게 타당한가? 이 원리의 타당성은 바로 모든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권위 위에는 더 큰 권위, 하나님의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이 땅 위에서 주어진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이나 권위에서 배제된 것을, 배치되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면 우리는 그 권위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따라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이러한 예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니엘의 친구 사드란, 메삭, 아벳느고를 말입니다. 왕이 저 평원에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을 하라고 하자 그 세 사람은 그 왕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일제시대에도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신사에 절하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유대인 지도자들이 베드로가 복음 전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막고자 그들을 투옥합니다. 그리고 위협합니다.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때리고 위협합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지요. 사도행전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러분 이것이 바로 시민 불복종의 권리입니다. 만일 우리 위에 (주어진) 권위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난 것을 시킨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권리에 대해서 행사할 때에도 조심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친구나 베드로는 잘못된 권위에 대해서 불복종했지만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성경 어디에도 폭력을 동반한 불복종은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결코 수단이 목적을 위해서 합리화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누군가 성경을 읽기 위해 양초를 훔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 속에서 잘못된 권위를 인도한 경우는 바로 폭력이 아니라 비폭력 저항 운동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바로 이러한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그 나라의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저 유명한 간디는 어디에서 비폭력 저항 운동을 배웠을까요? 간단합니다. 성경에서 배웠어요. 산상수훈을 통해서,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폭력을 통해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분에게는 힘이 있었습니다.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들을 당장이라도 동원하여 그를 괴롭히는 자들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뺨을 때릴 때에 묵묵히 맞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악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거절할 것은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폭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전쟁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운동은 비폭력적이 되어야 합니다. 목적도 좋아야 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도 성경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번 예를 들어봅시다. 아버지가 자꾸 아들에게 도둑질을 시켜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 없지만 미국 가면 흑인들 가운데 아들 시켜가지고 가게 가서 도둑질 시키는 부모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자꾸 도둑질을 시키니까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야, 니가 아버지야." 그러면서 아버지를 때립니다. 요즈음 그런 시대 아닙니까? 그리고 요즈음은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부모를 죽이더구만요. 여러분,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가 도둑질을 시키면 '아니오'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니오'라고 이야기하면서 태도도 중요합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제가 도둑질은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아버지 권위 위에 있는 하나님께서 도둑질을 금했기 때문입니다."라고 아버지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 절대 그 일만은 제가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겸손한 태도로,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더 큰 하나님의 권위를 따르겠다는 결단을 아버지에게 알려드려야 되는 것이지, 그 아버지를 때리고, 심지어 그 아버지를 죽인다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바로 이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하나님은 분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의 원칙은 간단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권위를 존중하되 특별히 국가를 다스리는 권세자, 이 권세자라는 말이 우리에게 거부감을 준다면 '질서유지자'라고 바꿀 수 있습니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권위를 허락하신 그 사람들의 권위를,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우리 그리스도인만큼은 그들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들의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가슴으로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권위가 살아나야 합니다. 두 번째, 이 위기에 처한 국가를 어떻게 구원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올바른 국가관은 무엇인가? 2. 좋은 국가를 만드는 일에 우리가 앞장서야 합니다(3절. 이미 우리는 국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국가가 어려워지면 우리의 삶은 불행해집니다. 국가를 이루는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국민입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는 누구인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국가에요. 국가는 누가 이루는가? 바로 내가 이룹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좋은 국가를 건설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구체적인 행동들 몇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법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은 매우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받으십시오. 13장 3절을 보십시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여기 선을 행하라는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이냐? 국가의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에는 그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고 백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해 주는 법이 있습니다. 통치자와 공직자들은 이 법을 바로 보호하고 바로 집행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 법에 의해 악한 행동은 징계를 받고,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무질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법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모든 법위에 군림하는 한 가지 법이 있다고 합니다. 떼법이라고 합니다. 떼만 쓰면 되는 것입니다. 법이고 뭐고 소용없습니다. 법적으로 분명히 건물을 지어가지고 다 허가가 났는데도 이웃이 떼를 쓰면 어떻게 해야 돼요? 돈을 주어야 해요. 이 문화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쳐야 합니다. 내게 손해가 오더라도 그 법을 지켜야지 내게 손해가 된다고 떼를 쓰고 드러누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법은 무너지고 법이 무너지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됩니까? 모두가 법을 지키지 않으면 무질서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다 누구에게 돌아옵니까? 우리 모두에게 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법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세금을 잘 내야 한다(국민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점점 말씀이 어려워져요. 표정이 다 어두워지시네요. 롬 13: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 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성경은 국가를 향한 의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금을 내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물론 여기에도 우리가 순종하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나라가 세금을 잘못 사용한다거나 불합리하게 세금을 매긴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나 이 말씀이 로마의 압제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셨던 말씀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는 당시 가장 잔혹한 정부였고 이스라엘은 거기에 속국으로 있었습니다. 로마 나라는 자기의 속국으로 있는 나라에 혹독한 세금을 매기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로마의 철권통치 아래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정부이겠습니까? 우리가 그렇지요. 불순종할 핑계를 찾는다면 우리는 수많은 핑계를 찾아낼 수 있어요. 그러나 순종의 길을 찾는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세금에 대해 내기 어려운 경우가 어떤 경우인가 생각해보니 가난한 자들이 세금 내기 어려워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은 내는 세금이 적으니까. 그런데 세금에 대해서 세금을 안 내려고 하고 세금 내기를 싫어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다 부자들입니다. 왜요? 세금 액수가 많으니까요. 그러나 잘 생각해보십시오. 일 년에 천만 원 벌어서 백만 원 내는 삶을 택하겠습니까? 아니면 3억 벌어서 1억 세금 내는 삶을 택하겠습니까? 저 같으면 세금 1억 내더라도 3억 수입을 택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세금을 많이 낸다고 생각하면 내가 돈을 많이 벌었구나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구나) 십일조와 마찬가지입니다. 한 달에 백만 원 벌 때에 십만 원 드리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일억을 벌 때 천만 원 십일조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손이 떨려요. 그래서 한 그리스도인이 너무너무 못 살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한 달에 백만 원 벌었는데 '목사님, 한 달에 천만 원을 벌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세요.' 그랬더니 정말 한 달에 천만 원 벌게 되었습니다. 한 달에 백만 원 십일조 하려니까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입이 또 오천만 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십일조를 오백만 원 바쳐야 했습니다. 고민이 되어서 목사님께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오천을 버는데 오백까지 바칠 필요가 있겠습니까? 십일조를 조금 줄여서 십의 0.5조만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것은 안 되고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있다고 하니까 그게 뭡니까? 내가 오늘부터 다시 기도해서 수입을 백만 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많이 버시는 자들은 세금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 세금이 잘못 쓰이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나 잘 생각해보세요. 세금 내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차 타고 다니는 도로를 내가 내 돈으로 다 닦아서 다닌다고 하면 무슨 수로 닦아서 다니겠습니까? 상수도를 만들고 가스설비를 해서 틀기만 하면 물이 나오고 가스가 나오는데 내 개인 재산으로 한다면 그 재산을 다 감당하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내는 세금으로 하는 일들이 너무너무 많고 우리에게 돌아오는 유익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금을 잘 내셔야 합니다. 세 번째로 좋은 국가를 건설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국민의 권리를 올바로 행사해야 합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 가운데 나라 정치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있지 세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이원론적 태도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국가를 건설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에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선거일에 놀러 가고 선거일 떼먹는 일을 그리스도인들은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법을 해치는 자를 꼭 신고해야 합니다. 자꾸 신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좋게 건설하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이웃이 법을 해치는 일에 자꾸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미국에 가서 이것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참 비열한 놈, 이웃끼리 신고를 하다니. 그랬는데 그것이 성경에서 나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병역의 의무와 여러 의무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서 세운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를 좋게 건설하면 그 유익이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이야기를 좀 해보십시다. 위기입니다. 다들 경제의 위기라고 하지만 다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기는 결코 경제의 위기가 아닙니다. 세계에서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제로 인해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위기는 권위의 무너짐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학생은 스승을 무시합니다. 종업원은 사장을 우습게 여기고, 국민은 질서 유지자들을 조롱합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을 태연히 학교에 다녔습니다. 보험금을 노리고 배우자를 죽이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대낮에 집회하던 자들이 경찰서장을 폭행하고 그것을 정치인들이 잘했다고 치켜세우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이런 나라가 위기가 아니면 어떤 나라가 위기이겠습니까? 한 마디로 권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호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를 항공모함에 비유해보세요. 그 항공모함에 구멍이 나서 가라앉고 있는데 저 밑에서 물이 새는 것을 모르고 위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먹겠다고 빵을 움켜쥐고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겠다고 싸우고 나는 더 많이 가졌다고 낄낄거리고 좋아한다면 그 항공모함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 그 항공모함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습니까?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배는 국가입니다. 국가가 불행해지면 우리의 삶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의 삶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을 긍휼히 여기고 복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받지 못한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25%가 기독교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뒤로하더라도 우리만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이 좋은 국가를 건설하는 일에 적극 참여한다면 대한민국호는 다시 바다 위에 떠서 아름답게 순항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국가를 잘 가꾸어 우리의 후손들에게 넘겨주는 그 일에 모두 앞장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당부드립니다. 어두운 밤 마음에 잠겨 롬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 13: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롬 13: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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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말씀에 근거하신 귀한 말씀입니다. 국가와 하나님의 나라의 연구는 참으로 많은 공부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우선 국가에 대한 공부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국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제도에 대한 연구와 헌법과 법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 국가의 역사에 대한 연구, 그리고 경제, 정치, 문화, 행정, 사회 등등의 분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역시 세상의 나라와 같이 공부할 분야가 참으로 넓고 깊은 분야입니다. 이를 둘 다 연구하고 배운 뒤에 성경의 말씀을 보면서 깊이 연구를 또 해야 되는데 저도 많이 배워야 하는 상태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성경 말씀 전체를 올려드리겠습니다. 같이 공부를 하면서 세상 속에서 천국의 백성인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봅시다. 로마서 12장 -16장의 이해는 이런 부분의 이해가 있어야 되는데 오늘 글은 많은 이해를 도와줄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