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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에서 북유럽 초호화유람선 DFDS SEAWAYS 에 승선하고 있다.
DFDS SEAWAYS 는 스칸디나비아의 도시와 도시를 운행하는 유람선이다.
길이가 170미터나 되는 유람선에 레스토랑과 바가 있고 엔터테인먼트 시설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유람선 승선은 백두산 등정때 승선 했던 동춘호와 일본속의 한국문화 탐사를 위해 일본 을 방문했을 때 부관 페리호 승선을 제외하고는 세번째다.
설래고 기대가 되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
버스에서 캐리어를 꺼내 직접 꿀고가는 것이 불편했고, 끝없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것도 짜증났다.
여권심사가 의외로 빨리 진행되어 위안이 되기도했지만 유람선 승선은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유람선
선상에서 바라본 신비스러운 노울
객실은 5평도 되지않았다.
객실은 밀폐된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두명이 상하 침대를 의지하며 잠을 청해야 한다는 것이 아찔했다.
숙면은 커녕 오히려 잠이 달아나고 있었다.
침대의 폭이 좁아 밑으로 떨어지지 안을까 두려웠기때문이다.
오슬로 시청
화장실을 제외하면 캐리어를 눕힐 만한 장소도 없었다.
더욱 곤혹스럽게 했던 것은 감옥과 같은 분위기라 할 수있다.
유람 선은 밤새 발트 해를 항해해 오슬로 협곡으로 진입하고 있다.
유람선 7층으로 올라갔다.
주변 전경을 관망하기위해서다.
어듬속에서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다.
시청 벽화
근해 섬에서 반짝거리는 불빛이었다.
창살없는 유리창 속 공간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은 파도만 출렁거리고 있다.
바다는 “U” 자 모양의 협곡을 이루고 있다.
유람선이 앞으로 전진 할수록 불빛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오슬로 시가 가까워지고 있는 듯 하다.
오슬로 항구
이곳은 북해 스카게라크 해협으로 발트 해에서 북해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전략 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요충 지이기도 해서 각국의 해군과 공군이 초미의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이다.
하늘은 물론 수중에 서도 감시를 늦추지 않고 있는 곳이다.
별 탈없이 이곳을 항해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시청 벽화
노르웨이의 북쪽은 북극권과 인접해 있다.
그래서 국토의 절반은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동토 라는 뜻이다.
일찍이 이곳에 노르만 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에 의해 고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청동기 문화가 발달했다.
오슬로 항구
흉노족의 침략을 받은 게르만족이 북 유럽지역으로 이동했다.
그 영향으로 게르만족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것이 게르만족 이동이다.
게르만족이 로마제국의 영토로 진출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스칸디나비아 반도지방의 노르만 족은 유럽 역사에 편입되지 못했다.
시청벽화
아직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지방은 청동기시대에 머물러있었다.
8세기 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변화가 일고있었다.
기후가 따뜻해지고 인구도 증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원은 한정돼있었다.
가용할 수 있는 자원에 비해 인구는 폭발하고 있었다.
기존의 수렵과 농경 만으로는 사람들이 생존할 수 없었다.
오슬로 시가지
이들은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 하기시작했다.
이것이 약탈경제다.
약탈은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는 행위를 말한다.
약탈은 용맹한 사람들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칼과 방패를 구입한 이유다.
초기는 근해에서 상선을 습격했다.
상선도 무장하기시작해 공격이 쉽지않았다.
그래서 가까운 육지까지 올라가 노략질을 일삼았다.
바이킹족은 더 먼 지방까지 진출하기시작했다.
영국은 물론 덴마크나 러시아까지 공격했다.
영국에 노르만왕조가 등장한 것은 바이킹족이 영국 육지를 공격해 왕조를 건국했기때문이다.
노르만 족은 스웨덴계 바이킹족과 덴마크계 바이킹족으로 나눌 수 있다.
스웨덴계 바이킹족은 동쪽 루트를 주로 선호했다.
이들은 노부고르드지방 까지 공격해 노부고르드 공국을 세웠다.
그리고 모스크바와 키에프 까지 공격했다.
이들이 러시아 루스 족이다.
그리고 일부는 영국 북부지방을 공격했다.
이것이 스코틀랜드 지방 노르만왕국이다.
바이킹족은 계속 남진해 프랑스에 노르망디 공국을 건설하고 이어서 이탈리아까지 진출했다.
시칠리아 섬이 한때 이들에 의해 점령당 하기도 했다.
노르만 족의 역사가 유럽사에 편입되기시작하고 있었다.
Norway 의 뜻은 ‘north’의 어미에 길을 뜻하는 'way'가 더해진 합성어다.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8세기 까지만 해도 노르만 족은 유럽 해안지방을 자주 습격해 파괴와 약탈을 일삼았다.
모험을 좋아하고 충동 적으로 행동했으며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다.
중앙집권국가의 등장은 훨씬 이후 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노르만 족은 대부분 부족단위로 활동했다.
노르만 족은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을 숙지하고 있었다.
배가 어낙 신속했기때문에 바다에서 누구도 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노르만 족의 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오슬로시가지
국립극장
무역과 전투를 위한 다목적 용 선박으로 드라카르가 있다.
그리고 무역과 수송 및 대서양 항해위한 크나르가 있다.
드라카르의 경우, 재질이 가볍고 선체가 안정적이어서 기동성이 뛰어났다.
노를 저어서 도강할 수 있었고 전사들이 배를 들고 이동할 수도 있었다.
현대의 고무 보트처럼 가벼웠기때문이다.
노르만 족은 약탈할 때 좁은 수로를 활용했다.
은폐 하기가 쉽고 적은 전사로 적을 제압할 수 있었기때문이다.
노르만 족이 역사 전면에 등장한 것은 9~11세기다.
9세기 후반에 프랑스 북부와 서부 연안을 자주 습격 하면서 부터다.
10세기 경에 프랑크 왕국의 영역인 센 강 하류에 항구적인 거점을 구축 하기도 했다.
오슬로 비겔란 공원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습격에서 이름을 올린 롤로는 바이킹족 주민들 사이에서 뛰어난 지도자로 부상되었다.
이후 프랑스 센 강 입구와 지금의 루앙 시를 프랑스로부터 탈취했다.
노르만 족으로 알려진 바이킹족은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프랑스 노르망디 까지 지배권을 넓혔다.
그후 11세기 중엽에 스스로를 백작이나 공작이라 일컫는 통치자가 등장했다.
이들은 노르웨이 지배계급 뿐만 아니라 프랑크 원주민에 대한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했다.
노르망디 공국을 세우고 원정을 나가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지까지 정복했다.
그들이 숭배한 원시 종교는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못했다.
현지에 적응하기위해서는 기독교로 개종할 필요가 있었다.
노르만 족은 현지에 순응해 적응해가고 있었다.
프랑크 족에 동화돼 해적 질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조들의 기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충동 적이며 용감했다.
교활하기 까지 했다.
유럽을 제패하기위해 적은 수의 인원으로 다수의 적을 쳐부수곤 했다.
육지와 바다에서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쾌속 성을 가지고 있었기때문이다.
노르만 족은 전투시 주로 도끼와 방패를 사용했다.
노르만 족 남자라면 관습적으로 하나 이상의 무기는 가지고 있었다.
부유한 남자라면 헬멧과 사슬갑옷, 방패와 검까지도 소지했다.
바이킹 유물 중에서 단검이나 검이 흔히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전사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검은 만들기가 어렵고 구입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들었기때문에 의식용 성격이 강했다.
실제로 전쟁터에서 사용된 무기는 값싼 둥근 방패와 창이었다.
창은 길이는 2~3미터 가량으로 찌르는 것 외에 투창 용도로 많이 쓰였다.
방패는 주로 참나무로 제작했다.
참나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흔한 수종이다.
칼날로 쪼개 지는 법이 없고 목재의 섬유질때문에 방패에 박힌 칼을 빼기도 어려웠다.
참나무가 방패 용 소재로 많이 사용된 이유다.
약탈에서 정복전쟁으로 확 전은 노르만 족을 위한 생존전략이었다.
노르웨이는 국토의 절반이 북극권에 속해있다.
때문에 대자연의 광활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울창한 숲과 빙하가 태고적 그대로 모습이어서 연거푸 호흡을 해보고 있다.
한 번이라도 호흡을 더해서 가슴에 신선한 공기를 가득채우고 싶다.
오슬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있다.
학처럼 고개를 들고 고고하게 앉아있다.
유람선에서 하선해 노르웨이 땅을 밟고있다.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동방의 고요한 나라 한국에서 출발한지 이틀 만이다.
노르웨이의 세계적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드의 비겔란 조각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오슬로의 프로그네르 공원에 위치하며 종합 야외전시장이다.
비겔란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4세 때 목 세공가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그의 작품은 인간신체의 신비성을 주제로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인간의 흉상과 부조가 대부분이다.
인물 석상을 비롯해 200개가 넘는 조각이 마치 숲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모든 작품들을 자신이 직접 제작하고 설계 했다고 들었다.
조각 상은 인간의 탄생과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죽음을 테마로 하고있다.
조각은 121개의 조각상과 36개의 군상으로 돼있다.
점심을 먹은 후 오슬로에서 플롬(Flåm)으로 이동하고 있다.
플롬(Flåm)은 노르웨이 송노피오라네주 에울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유명한 피오르 중 하나인 에울란피오르의 끝 부분에 있는 마을이다.
국토 동쪽끝에서 서쪽끝으로 횡단하고 있다.
일몰이 다가와도 도로 끝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체력이 고갈되고 인내심도 바닥나고 있다.
중간에서 숙박하지않고는 이동할 수 없는 거리다.
그래서 산상 호텔로 이동하고 있다.
호텔은 해발 947m 높이에 위치하고 있다.
꼬부랑 길을 따라 산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도로가 비 포장 도로 이기때문에 버스가 자주 덜커덩 거리고 있다.
도로는 버스 한 대가 겨우 왕래할 수 있는 좁은 폭이다.
갈지자 모양의 꼬불꼬불한 도로 위를 기사가 곡예 하듯 운전하고 있다.
급경사 언덕을 올라채기위해 버스는 죽을 힘을 다하고 있다.
사방은 설산이 운무에 가려져있다.
신비롭고 불가사의하다.
수백년간이나 쌓인 눈이 빙하가 되어 거울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버스는 마지막 기름까지 고갈 시키며 산 정상을 올라채고 있다.
산 정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넓은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기때문이다.
주차장도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도 있다.
요정의 길
산 정상에 호텔이 있다니 놀랍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정상은 가랑비고 내리고 있다.
우리를 환영한 듯 하다.
산아래 피오르드 위에 안개가 자욱하다.
구름이 바다를 이룬 듯 하다.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키고 있다.
이곳이 1,000m 에 가까운 산 정상이지만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있다.
지구가 온난화되어간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는 듯하다.
요정의 길 정상
호텔주변은 삼라만상이 잠을 자고 있는 듯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고 있다.
적막 하기만 하다.
여장을 풀고있다.
그러데 요란한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별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노후된 온수 관 파열때문이라고 했다.
몸을 씻어야 하는데 그렇지못해서 화가났다.
장시간의 이동으로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침대에 누워있지만 도무지 잠이오지않고 있다.
내일도 새벽같이 일어나 출발해야한다는 압박감때문에 잠을 청해보고 있다.
하지만 눈이 말똥거렸다.
조식 후 산 정상에서 Otta 마을 방향으로 하산하고 있다.
Otta 마을은 강이 두개로 갈라지는 분기점에 위치하고 있다.
Otta 초등학교도 있고 고등학교도 있다.
어찌나 마을이 아름다운지 진흙탕 속에 감춰진 진주같다.
절벽과 폭포로 둘러싸인 트롤스티겐 도로를 달리고 있다.
트롤스티겐 도로는 일명 요정의 길이다.
요정의 길은 천국과 연결된 도로다.
도로를 따라 천국으로 달리고 있는데 천상천하유아독존 이라는 말을 이곳을 두고 하는 말 같다.
협곡의 암벽을 지그재그로 각도를 내 도로를 만들었다.
험준한 길을 마치 요정이 만든 사다리 같다고 해서 요정의 사다리 길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계곡 안으로 계속 들어갈수록 환상적인 장관이 전개되고 있다.
도로 양편은 수백미터에 이르르는 험준한 산이다.
이곳에서 쏟아져 내리는 크고 작은 폭포가 눈길을 끌고 있다.
마치 계곡을 수놓은 듯 보이고 있다.
요정의 길
협곡은 빙하가 자리하고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빙하가 녹아서 바다와 연결돼 있다.
이것이 오늘날 피오르드 다.
피오르드 사이를 돌아 요정길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승용 차로도 올라갈 수 없는 좁은 도로를 대형버스가 곡예 하듯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왼쪽에서 포탄이 폭발한 듯 굉음이 들려오고 있다.
폭포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천지를 진동하고 있다.
몸부림치는 이무기를 은폐하려고 물안개가 소용돌이 치고있다.
에울란피오르드
파란 하늘과 물안개가 어우러지고 있다.
무지개도 질 수 없다는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인간으로서 얼굴 내밀 기가 부끄럽다.
속세와 동떨어진 천상 이기때문이다.
흩날리기시작한 가랑비는 온데간데 없다.
하늘에서도 티끌 하나 찾아볼 수 없다.
트레킹 준비를 하고 있다.
폭포까지 걷기위해서다.
그런데 바람이 방해하고 있다.
산 정상이라 장애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바람이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생에 한번 뿐인 기회다.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바람을 등지고 photo zone 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이 예사롭지않았다.
모자가 날아갔다.
서기도 불편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기회는 영원히 사라사라진다.
폭포 앞에 섰다.
그러나 바람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게이랑에르 마을로 이동 하고 있다.
게이랑에르는 피오르드 가 시작되는 작은 마을이다.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만한 마을이다.
뾰쪽한 창처럼 내륙으로 깊이 파고 들었다는 뜻을 지닌 게이랑에르는 해발 1,500m 가 넘는 산맥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뵈이야 빙하
마을에서 시작되는 피오르드 길이도 16km에 이르르고 있다.
게이랑에르에서 유람선에 탑승해 피오르드를 종단하고 있다.
이 구간이 유명한 헬레쉴드 구간이다.
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창조주의 연출에 감사하고 있다.
신부의 면사 포 같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 같지는 않다.
7자매 폭포가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유람을 마치고 뵈이야 빙하 및 피얼란드 빙하 박물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스테달산을 통과해 피얼란드 터널을 지나고 있다.
뵈이야 빙하는 빙원 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빙원의 일부가 모두 녹아 내리고 있었기때문이다.
산 허리에 걸치고 있는 빙원도 머지않아 생을 마칠 것 같다.
피얼란드 빙하박물관
산아래에 조그만 호수가 있다.
물이 맑아 파랗게 보이고 있다.
빙하와 호수가 어우러지고 있어 한 폭의 그림같다.
노르웨이 서쪽은 피오르드식 해안이 발달해 있다.
피오르드는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골짜기를 말한다.
주로 “U” 자형 모양을 하고 있다.
지구의 온난 화때문에 빙하가 해빙된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것은 인류에게 치명 적인 피해를 줄 것이다.
해수 면이 상승 함과 동시에 자연 재해로 연결되기때문이다.
노르웨이에 3천 여 개의 피오르드가 존재하고 있다.
그 수려 함은 형언할 수 없었다.
천상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