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도미티안(51,81-96)이 9월 18일 암살되었다. 살해한 자객은 황후의 호위무사들이었다. 황제 부부는 한 때, 모범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위에 따른 삶이, 이들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서로 외도의 의혹을 살만한 일이 생겨났고, 불신의 벽은 높아졌다. 불안하다고 느낀 황후가 선제공격을 하였다. 거사는 성공하였지만, 곧 호위병들이 들이닥쳤고, 암살자들은 모조리 현장에서 죽임당하였다.
유세비우스는 로마시대의 열 번에 걸친 그리스도교 박해를 열거하면서, 네로와 마찬가지로 박해를 주도한 황제라 기록했다. 출애굽의 10재앙이, 로마에서도 재현되었다고 보면서 억지로 열을 세었는데, 도미티안이 여기에 들어간 것이다. 뚜렷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 평가는 반복해서 인용되었고, 확대되었다. 이 시대에 최후의 사도 요한이 유배되었고, <계시록>을 집필하였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666은 ‘네로 황제’의 숫자에 해당되고, 현실에서는 도미티안이라는 해석은, 신약학에서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실제 그 시대에 큰 박해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황실에서 클레멘스와 플라비아 부부가 처형 혹은 유배되었다. 죄목은 종교문제였는데, 차기 황제로 지목된 아들들을 위해서, 부모가 희생되었다. 이방신앙을 허용한 채로 황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를 두고서,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해석하였다. 혹, 성서에 나오는 클레멘스와 혼동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글은 아깝게도 정경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문서이다. 그리고 교회사의 첫 신학자이다. 로마천주교에서는 네 번 째 로마주교라고 센다. 도미티안이 두 번째 네로라는 누명은, 교회사에서는 벗은 듯하지만, 신약학에서는 여전히 떠돌아다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