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금 산 강원도 인제 출생 초, 중, 고등학교 교직생활 춘천사범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아동문예, 문예사조, 문학사랑으로 등단 동시집 :「다람쥐 운동장」.「하늘도 잠을 자야지」. 「별씨 뿌리기」.「그냥 두렴」 시집 : 「낙엽 속의 호수」.「내린천 서정」. 「여울물 소리」.「어머니의 달걀」 한국문인협회 제도개선위원 한국동시문학회회원 대전문인총연합회회원 명동문학회회장 E-mail : keumsan004@hanmail.net ☎ : 010-6405-5923 대전광역시 서구 벌곡로 1278번길 56 (가수원동)
시인의 말 모두와 가까와졌으면 나무로 새집을 만들어 나무에 걸어놓고 산새가 날아와 집을 짓기를 기다렸다. 며칠 후 어치 한 쌍이 집 지을 재료를 물어 날랐다. 집을 반도 짓지 못했는데 어치 부부는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았다.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이 어치에게는 위험 부담이 되었나보다. 산토끼가 밭 가운데까지 내려왔다. 소리 나지 않게 토끼의 움직임을 살폈다. 어쩌다 토끼의 눈과 마주쳤다. 나를 본 토끼는 울타리를 뛰어 넘어 산속으로 도망갔다. 그 때의 서운함을 생각하며 아직도 나를 믿어주지 못하는 그들을 탓하기보다 믿음을 주지 못한 내가 더 미워진다. 내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가 예쁜 글을 쓰고 싶지만 오히려 어린이는 내 마음을 못 믿어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산새 어치와 산토끼가 나를 믿어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치와 산토끼가 나를 믿어줄 때까지, 동심에 감동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해 나를 닦아가고 싶다. 덜 닦아진 글이지만 가까이 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낸다. 발문을 써주신 임교순 선배님께 감사드린다. 2014년 여름 지은이 한금산
1부 그냥 두렴
그냥 두렴……………………………………………………… 서울 할머니는 왜 없어?………………………… 엄마한테 물어봐………………………… 앞니가 빠졌다………………………… 할머니의 교회………………………… 할머니 얘기는 외계인 얘기………………………… 문 바르던 날………………………… 멍청이 아빠………………………… 착한 아이………………………… 할머니가 쓴 시………………………… 그게 왜 거기 있지?………………………… 예쁜 짓………………………… 정말 아셨을까?………………………… 눈으로 먹는 엄마………………………… 빨래집게………………………… 울어도 박수 친다………………………… 어부바 차………………………… 비 맞으면 크는 놈들………………………… 토끼베개…………………………
2부 눈으로만 웃는다
머리 깎던 날………………………… 다 알아………………………… 주사………………………… 바람 손………………………… 몸 밭………………………… 고구마………………………… 눈으로만 웃는다………………………… 삐질이………………………… 요정 다 잡았어………………………… 장갑 ………………………… 빨간 코………………………… 생각난다………………………… 암, 그럼 ………………………… 향기자석………………………… 하늘 나누어 갖기………………………… 봉숭아의 멀리뛰기………………………… 뛰어 가는 비………………………… 인심 변했네………………………… 새집
3부 꽃씨의 방학
별들이 쏟아지는………………………… 꽃씨의 방학………………………… 이름 좀 불러줘………………………… 강아지와 잠자리………………………… 눈 온 날………………………… 숨바꼭질………………………… 시끄러운 인사………………………… 뿌리를 내리려고………………………… 그림자………………………… 겨울이 온다………………………… 긴의자…………………………………………………… 새만 하늘을 나나?………………………… 바람은 어디서 잠을 자나?………………………… 바람………………………… 맹꽁이………………………… 깊은 골………………………… 소금………………………… 그 때는 안 늙었었지………………………… 다행이다………………………… 산새 알………………………… 벌집 쑤셔놓고…………………………
그냥 두렴 겨우내 찬바람 이겨낸 시금치 까치가 와서 고갱이만 남기고 뜯어 먹었다
아빠는 말뚝을 박고 그물을 쳤다 “까치에겐 보릿고개인데, 그냥 두렴” 옥수수가 수염 색깔이 변하기 시작할 때 까치가 파고 뜯어먹었다 아빠는 또 그물을 쳤다 “나눠 먹고 살게, 그냥 두렴” 동생이 책상에 매달려 아빠가 쓰던 원고를 망쳐 놓았다 “저도 쓰고 싶은 게지, 그냥 두렴” 할머니 말씀은 하나뿐이다 “그냥 두렴”
서울 할머니는 왜 없어?
대전 할머니 집에 갔다 내일은 군산 할머니 집에 간다
“그러데 엄마! 서울 할머니는 왜 없어? 현아는 서울 할머니가 좋다던데......” “그 대신 현아는 군산 할머니가가 없잖아” “그래도 할머니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든지 할머니는 두 분밖에 없는 거야” 똑 같은 것도 좋지만 나만 더 있으면 아주 좋을 텐데......
엄마한테 물어봐
창가에 엄마가 새로 심은 꽃분
“아빠! 아빠! 이게 뭐야?” 신문에서 눈도 안 뗀 아빠가 “엄마한테 물어봐” 꽃을 쑥 뽑아들고 주방으로 달려가며 “엄마! 엄마! 이게 뭐야?” “저런, 저런” 엄마는 흘린 흙부터 쓸고 있는데 “아빠! 아빠! 이게 ‘저런’ 이래”
앞니가 빠졌다 임프란트 하신다며 앞니를 뺀 할아버지
석호와 마주 앉아 서로 웃었다 “앞니 빠진 수만생이 연못가에 가지 마라 붕어새끼 놀린다.” 석호는 할아버지 보고 할아버지는 석호 보고 둘이는 서로 같다 이 빠진 것이 그래서 서로 친하다
할머니의 교회 달빛을 모으듯 한 아름 안아 합장하고 냉수 그릇 속 달님에게 마음 다 드리며 비는 기도
할머니의 교회는 장독대다.
할머니 얘기는 외계인 얘기
찰칵찰칵 베 짜는 소리에 새벽 닭이 울었대
바느질 하다 손가락 찔려 피가 나면 입으로 빨고 송진 붙였대 할아버지는 나귀를 타고 한양까지 다녀오셨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할머니는 그게 사실이래 할머니 얘기는 외계인 얘기
문 바르던 날 가을 햇살 자그르르 내려앉는 문 바르던 날
코스모스 꽃잎 은행잎, 풍나무 잎이, 문 속에 앉았다 겨우내 문고리 잡을 때 마다 할아버지와 같이 지낼 가을이 앉았다 문 속에 앉았다
멍청이 아빠 “바보 멍청이 아빠야! 나보고는 아껴 쓰라고 하면서 왜 이렇게 빈칸을 남겨 놓고 써?“
원고지에 글 쓰시는 아빠 옆에서 동생이 하는 말이다 “아참, 아빠가 멍청이 짓을 했구나” 아빠가 멍청인지 동생이 멍청인지 나까지 멍청이가 되는 것 같다.
착한 아이
초인종 누르고나서 “학교 다녀왔습니다.”
착한 어린이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선생님이 그랬거든 안에 엄마가 없는 줄 알면서도 허리까지 구부렸는데 목에 걸린 아파트 열쇠가 엄마처럼 문 열어주려고 먼저 나온다.
할머니가 쓴 시 환갑이 넘으신 할머니가 문학공부 하신다며 대학에 다니시더니 시를 쓰셨다.
그런데 내용은 이제 겨우 옹알이 하는 동생 얘기를 썼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더니 할머니가 애기가 됐나보다.
그게 왜 거기 있지?
퇴비장 치우다가 숟가락 찾아내면 “그게 왜 거기 있지?”
쓰레기통 정리하다 과일 칼 찾아내면 “그게 왜 거기 있지?” 찾아다 주는 할아버지에게 고맙다는 할머니 인사 말 “그게 왜 거기 있지?”
예쁜 짓 동생이 낮잠을 자다 지도를 그렸다.
“아이고, 우리 아가 예쁜 짓 했네” 할머니의 생각 속에 있는 예쁜 짓은 어떤 뜻인지 할머니만 안다.
정말 아셨을까?
할아버지 서재에 가면 자일리톨 껌이 있다 몰래 한 알을 꺼냈다.
며칠 뒤 또 한 알을 빼냈다. 다음 날 밖에서 돌아오신 할아버지가 자일리톨 껌 한 통을 건네주시며 “너 이것 좋아하지?” 어떻게 아셨을까? 정말 아셨을까?
눈으로 먹는 엄마
동생에게 이유식을 먹여주는 엄마 동생 눈도 엄마 눈도 반짝반짝
엄마도 먹고 싶은가? 동생이 오물거릴 때마다 입이 오물오물 “엄마도 먹고 싶어?” “엄마는 보기만 해도 배불러” 입으로 먹는 동생 눈으로 먹는 엄마
빨래집게
건조대에 내 손수건을 빨래집게가 꼭 물고 있다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면 안 돼 양말도, 예쁜 원피스도 날아가지 않게 꼭 물었다.
“그곳에 가지 말아” “넘어지면 안 돼” “찬 음식 먹으면 감기 걸려” 엄마는 나를 꼭 물고 있는 빨래집게다
울어도 박수 친다 재롱잔치 하던 날 짝꿍 순남이가 순서를 잊었다.
울상이 되어 가만히 서 있는데 좋아하는 쵸코렛을 가지고 엄마가 뛰어나왔다. 그래도 생각이 안 나는지 “으앙” 하고 울어버렸다. 웃음소리와 함께 큰 박수 소리가 강당을 꽉 차게 했다. 울었지만 박수는 제일 많이 받았다.
어부바 차 따뜻한 엄마 등에 업혀 할머니 댁에 간다.
먼 길 갈 때는 엄마가 업고 간다. 조그만 자동차가 큰 차에 업혀간다 차도 먼 길 할머니 댁에 가나보다 어부바차 타고 간다.
비 맞으면 크는 놈들 이슬비 내리더니 백일홍 싹이 쏘옥 나왔다
소낙비 내리치더니 텃밭에는 작은 돌이 굵은 돌로 자랐다 가을비 내리더니 고구마가 머리통처럼 굵어졌다 얼마나 크고 싶은 지 동생이 비 맞으며 웅덩이 물 밟고 다닌다.
토끼베개
새 동생이 베고 자는 토끼베개는 내 것이었는데
토끼 같은 눈 잠깐 떴다가 보름달 속 토끼와 노는 꿈을 꿨나 혼자 싱긋 웃고는 또 새근새근 얼마나 편안하면 만세 부르며 자나
2부 눈으로만 웃는다
머리 깎던 날
언니 머리 깎던 날 동생도 가위를 들고 제 단발머리 앞을 잘랐다.
쥐가 파먹은 듯 비뚤어졌다. 너무 많이 잘라 엄마가 다시 다듬어 줬어도 여전히 비뚤어졌다 앞머리가 자라려면 오래 걸려야 제 모습을 갖추겠다고 했다. 잠간의 잘못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무서운 힘이다.
다 알아 붉은 노을 물들이고 지는 해
아무리 얼굴 붉히며 산 너머에 숨어도 나는 다 알아 내일 아침이면 웃는 얼굴로 다시 떠오른다는 것을 말다툼 하고 얼굴 붉히며 헤어졌지만 아침마다 웃는 얼굴 내 짝궁처럼
주사 “조금 따끔 할 거야” “그럼 아프다는 말이지요?, 의사 선생님!”
“아프지 않아” “정말인가요? 간호사님!” 그래서 간호사님에게 주사를 맞기로 했다 -정말 안 아플까? 정말일까? 그때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다 됐어요” 엉덩이는 맞았지만 정말 안 아픈 거 맞다.
바람 손
창가에 앉아 동화책을 읽다가 잠간 쉬는 사이 폴폴폴 책장을 넘겨 덮고는 다 읽었다 바람손이
두 살짜리 동생이 그림책을 넘기며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그림 책장을 넘긴다. 어느새 다 읽었다 동생 손은 바람 손
몸 밭
땅이 거름지면 예쁜 꽃 피고
밭이 건강하면 곡식이 병도 없이 큰다 키가 크고 예쁘고 튼튼하게 자리려면 몸 밭이 좋아야지 내 몸 밭 건강해야 내가 튼튼하게 자란다
고구마 농장에 가서 고구마를 캤다 줄기에 매달린 고구마 두 개
하나는 나 하나는 동생 그럼, 엄마 고구마는? 우리에게 다주고 엄마 것은 없잖아 고구마 두 개를 다 엄마 드렸다. 우리 둘 다 엄마 거 잔아
눈으로만 웃는다 돌부처는 눈으로만 인사한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보고 웃다 목이 쉬어 눈으로만 웃는다. 웃음으로만 인사 한다
삐질이 엄마 얼굴 보며 깔깔대던 지호가
할아버지 얼굴 마주치자 삐질삐질 왕할머니 보기만 해도 삐질삐질 한돌 더 지나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배꼽인사 하네요. 이젠 삐질이 아니에요.
요정 다 잡았어 할아버지 방에 몰래 가서 사탕을 찾던 석호
들어오신 할아버지에게 안기며 “무서워! 밖에 요정이 있나 봐” 엉뚜한 소리로 딴전부리는데 “아니야! 할아버지가 몽둥이로 다 잡았어. 이젠 요정 하나도 없어” 사탕은 요정이 다 가져 갔나?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잡혔나? 요정도 사탕도 못 찾았다
장갑
내 털장갑은 엄마가 짜 주셨다.
시장에서 사 오신 것이 아니라 엄마의 낡은 털 쉐타 실을 풀어서 내 장갑을 짰다. 엄마의 가슴 그 따뜻한 체온이 묻은 실로 짰다. 엄마의 가슴처럼 아주 따뜻하다.
빨간코 눈사람을 만들고 꽁꽁 얼어서 들어왔다.
“아이구! 코까지 빨개졌네 추운 날 밖에 너무 오래 있으면 감기 걸려” 할머니가 담요로 감싸줬다. 하루 종일 밖에 서 있는 눈사람은 코가 까맣다 코가 빨갛게 되지 않는 눈사람은 감기에 안 걸린다. 빨간 코로 바꿔주면 눈사람도 감기 걸리려나?
생각난다
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처음 보는 아줌마 등 두드려주는 아저씨
나는 알 수 있다 안골 노인요양병원에 다녀오는 사람이라는 것 외할머니 생각난다.
암, 그럼 “할머니! 제가 아주 어릴 때는 삐질이였다면서요?” “응, 나를 보기만 해도 삐질삐질 울었지”
“그럼 유치원 다닐 때는요?” 그 땐 삐쭉이였지, 욕심이 너무 많았거든“ “그럼 지금은 어때요” “지금은 공주님이지, 아주 예쁜 공주님이야” “그럼, 이 다음에는요?” “음, 호수위의 백조같이 우아하고 멋진 아까씨가 되겠지” “정말 그럴까요?” “암, 그럼”
향기 자석
“킁킁-” 엄마 코를 끌어 당기고 “흠” “흠흠-” 누나를 잡아오더니 벌과 나비까지 자석처럼 끌어오는 분꽃 향기
하늘 나누어 갖기 큰 나무가 햇볕을 많이 받으려 하늘 가득 가지를 펴고 있어도
햇볕을 받기 위해 가지와 잎을 펴 보는 낮은 나무에게도 가지를 비켜주어 나누어 주네요. 작은 나무에게도 땅을 나눠줬듯이 하늘도 필요한만큼 나누어 갖네요
봉숭아의 멀리뛰기
새빨간 봉숭아가 크고 작은 씨를 조랑조랑
조그맣고 야무진 씨가 “얏!” 멀리 뛰기 했다. 이번엔 조금 큰 씨가 “우랏차!” 우아, 정말 더 멀리 뛰었네! 역시 크고 건강해야 해 가리지 않고 잘 먹어야 힘이 세다는 엄마 말이 맞아
뛰어 가는 비
장독대 옆 채송화 밭에서 속살거리던 비가 양철지붕 위에서는 쿠당탕탕 뛰어서 간다 지붕이 뜨거웠나?
가로등 아래 포장도로에서는 저렇게 반짝반짝 촛불 시위라도 하나? 바쁘면 뛰어가고 화가 났는지 소리도 지르는 비보다 조용히 속살거리는 비가 더 좋다. 조용한 비는 새싹을 키우고 뛰어다니는 비는 꽃밭을 파 간다
인심 변했네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면 먹음직스런 무밭이 있다고 친구까지 데리고 내려온 고라니
“아니! 어느새 철조망 같은 울타리를 쳤네” 저 그물망에 잘못 걸리면 집에도 못 돌아가는데...... 욕심쟁이야, 사람들은 조금 나누어 먹을 줄도 몰라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그물망 울타리를 빙빙 돌며 침만 삼키다 돌아가는 고라니 “세상인심 변했네!”
새 집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내 방이 생겼다 동생 방도 생겼다
할머니가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자랑하고 싶다 내 방 동생 방
3부 꽃씨의 방학
별들이 쏟아지는
물소리가 구르는 냇가 조약돌 주우며 거기 살자 누나야
갈대 자라면 그 안에 물새알 낳고 은비늘 피라미 뛰는 곳 저녁놀을 등에 지고 노래에 발걸음 맞추며 손잡고 돌아오는 그 곳에 살자 누나야 고라니 눈망울을 닮은 샘물 솟고 개망초 꽃 흐드러지게 피고 한적하기만 한 곳 거기에 살자 누나야 밤마다 별들이 쏟아져 내려 꽃으로 피면 꽃잎 같은 얘기 만들어 내며 거기에 살자 누나야
꽃씨의 방학
겨울은 꽃씨들의 방학이다
커텐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을 받으며 선생님은 혼자서 아이들 맞을 준비하신다 “저요, 저요” 하고 나올 아이들을 위해서 햇살 곱고 바람 따뜻해지면 저요, 저요 꽃씨들도 방학이 끝나 꽃밭 학교로 모일 것이다 지금은 겨울 꽃씨들의 방학이다.
이름 좀 불러줘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제 이름을 제가 불러본다
개구리는 개굴개굴 까치는 깍깍 성질이 급히 빨리 부르려다 이름이 줄어버렸다 내 이름도 줄여서 불러볼까?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많이 불러주는데 줄여 부를 필요가 없지
강아지와 잠자리
빙빙 도는 잠자리를 쳐다보던 강아지 제 꼬리를 잡을 듯 잡을 듯
강아지 보던 잠자리 “제 꼬리도 못 잡아” 시범을 보이겠다고 강아지풀 꼬리 끝에 살며시 앉으려 할 때 바람이 살짝 밀어 실수만 두 번 세 번 어찌나 무안했던지 몸까지 빨개진 고추잠자리
눈 온 날
꽃 지고 잎도 떨어지고
온 산이 너무 쓸쓸하다고 하얀 솜으로 꽃을 피웠어요 포근해졌어요
숨바꼭질
호수에 달이 잠겼다
밤새 물을 빼면 건져올려질까? 어느새 새벽 산그늘 뒤에서 얼굴 내민다. 호수 속 젖은 달이 언제 다 말랐나 맑은 얼굴 되어 있다
시끄러운 인사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도 아닌데 겨우 한 밤 지났는데 그렇게도 반가운가?
아침인사가 시끄럽게 즐겁다 참새들의 아침 인사.
뿌리를 내리려고
단풍나무 씨는 헬리콥터가 되어 사뿐히 내려앉고
민들레 씨는 낙하산에 매달려 실바람을 탄다 내 마음은 뭉게구름을 타고 자꾸만 올라간다. 꿈을 키울 자리를 찾아 뿌리를 내리려고
그림자
그림자는 따라 다니며 언제나 나를 이끌어준다 밝은 곳에 바르게 가라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나를 외면해 버린다 그곳엔 가면 안 된다고 그래 항상 밝고 바르게가 그림자의 생각이다.
겨울이 온다 창밖을 보던 엄마가 “겨울이 오는구나!”
엄마 옆에 다가가서 “무슨 차를 타고 오는데?” “저 눈송이를 타고 오지” 눈송이는 하늘을 날아오는 데 왜 비행기처럼 빠르지 않을까? 아직 겨울 준비 못한 사람들 너무 서둘지 말라고 천천히 내려온다.
긴 의자 한가로운 오후
공원 긴 의자에 내려앉은 단풍잎 “네 자리가 아니야!” 바람이 밀어버리고 하얀 머리카락 할머니가 앉으면 살랑살랑 귀밑머리 만지며 “편히 쉬세요”
새만 하늘을 나나? 누렇게 벼가 익는 들판 위로 참새 무리가 난다.
고추잠자리는 맨드라미 위에 날고 나뭇가지 사이 산새도 날아 내려온다. 하늘에는 그들만 나나? 뭉게구름 뜬 위에 내 마음도 난다.
바람은 어디서 잠을 자나? 나뭇가지 흔들어 잎들을 놀라게 하고 모래흙 뿌려 아기 울려놓고 모른 척 꽃가지에 올라 앉아 딴청부리는 개구쟁이 바람 소낙비로 혼내주려 천둥 쳐 소리 지르면 무섭게 내달리며 나무, 곡식, 다 뽑고 뭉개며 도망치다가 어느 샌가 코스모스 허리 간질러주며 해해 웃고 해넘어 가는 줄도 모른다 바람의 집은 어디기에 잠도 안자고 밤새 온 동네 대문 흔들고 다니며 재워 달란다. 바람은 누구네 집에서 잠을 잘까?
바람 꽃소식 가지고 어서 오라고 풀잎들을 살짝 눕혀 길을 내 준다.
한여름 매미 노래 소리 듣고 흥겹게 춤 춰 보라고 꽃가지 살짝 밀어 흔들어 준다. 아기 손 고운 단풍 짝짝꿍 잼잼 예쁘게 흔들어 가르쳐 준다.
맹꽁이
맹꽁이 부부는 참으로 맹꽁이다
맹, 맹...... 밖에는 할 줄 모르고 꽁, 꽁...... 밖에는 할 줄 모른다 맹, 꽁, 맹, 꽁...... 그래도 맹꽁이 부부는 맹꽁이가 아니다 맹이는 꽁 밖에 할 줄 모르고 꽁이는 맹 밖에 할 줄 몰라 맹이는 꽁이만 꽁이는 맹이만 부른다 맹이는 꽁이를 꽁이는 맹이만을 부르는 맹이와 꽁이가 되고 싶어지는 것은 그래도 맹이와 꽁이는 맹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깊은 골 누구라도 와 놀아달라고 바위 위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바위나리
누구라도 들려서 놀다 가라고 시원하고 맑은 물 흘러 내려 노래 부르고 은빛으로 튀는 물방울 단풍잎 쳐다보며 흰 이 드러내고 혼자 웃는 웃음소리 골 안에 꽉 찬다
소금 파도 소리 타고 온 소라의 노래 갈매기 울음 고래가 뿜어낸 분수 다 뫃았지
그리고 하얗게 빨아 걸러내고 말렸지 바다를 다 담은 소금 알갱이가 되었지
그 때는 안 늙었었지
“할아버지가 교장선생님 한 거 맞아요?” “그래, 그런데 왜?”
“할아버지는 츄리닝 입고 넥타이도 안 매고 우리한테 장난 걸고......” “거기다가 그렇게 늙었는데 어떻게 교장선생님을 했어요?” “그 때는 안 늙었었지”
다행이다
준호가 뛰어가다 저만큼에서 넘어졌다.
‘저 정도면 울지 많이 아프겠는 걸’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얼굴이 되어 쫓아갑니다. 두리번거리며 일어선 준호 “어휴! 엄마가 못 봐서 다행이다” 할아버지 얼굴이 환해졌다.
산새 알 산골 집 외진 뒷들 대나무 숲에 꼭지머리 예쁜 산새 둥지를 틀면 스스스스 댓잎이 소리를 내어 없다 없어 이곳엔 아무도 없다.
토끼도 고라니도 친구를 찾아 살금살금 뒷산으로 내려 오며는 스삭스삭 스스삭 소리를 내어 없다 없어 이곳엔 아무도 없다.
벌집 쑤셔놓고 땅벌 집 쑤셔놓고 저만치 도망가서 언덕에 엎드려 숨어 보는 민호
아무것도 모르는 영희 누나 땅벌 집 옆을 지나다 떼로 몰려오는 벌에 놀라서 달렸다 정신없이 뛰어가던 누나 모래 한줌 쥐어 돌아서며 핵 뿌렸다 앗! 따거워 민호가 눈을 감싸 안고 벌에 쏘인 것처럼 나뒹굴었다.
한금산 시인의 제4동시집 <그냥 두렴>을 읽고 임 교 순 1 나는 한금산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한금산 시인과 나는 고향이 같다 . 지금 영동고속도로 소사휴게소(횡성휴게소) 터가 우리 집과 한금산의 집이 이웃하여 있었다. 나는 춘천사범학교 학생이었고 한금산은 내 동생 또래의 초등학교 어린이었다. 성장기의 자연환경이 같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우연히도 같은 아동문학의 길에서 동행하는 후배가 되었다는 친근함 때문이다, 둘째로 아동문학은 어른이 동심으로 돌아가서 쓰는 문학, 할아버지가 손자의 마음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유년의 경험을 오랜 세월 속에 농축시킨 사고를 반추하여 아주 쉽게 써서 어린아이들과 성인들도, 노인들까지 즐겨 읽는 가장 독자가 많은 문학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이다. 셋째로 시인의 감성이 어디서 자랐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라면서 자연과 친하며 자연 속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인성이 자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동문학가들 대부분이 산골마을과 바닷가마을에서 어린 시절 자랐다. 자랄 때 자연과 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정서의 바탕이 돼 주었다. 그런 점에서 한금산과 나는 산동네 이웃형제이기 때문이다.
한금산의 세 번째 동시집<별 씨 뿌리기>에서 엄기원이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동시)라고 했는데 이번 네 번째 동시집 <그냥 두렴>은 할머니 말씀을 시집의 제목으로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을 보여주는 시들이다. 2 환갑이 넘으신 할머니가 문학공부 하신다며 대학에 다니시더니 시를 쓰셨다. 그런데 내용은 이제 겨우 옹알이 하는 동생 얘기를 썼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더니 할머니가 애기가 됐나보다. -동시<할머니가 쓴 시>전문- 얼마나 멋진 할머니인가! <환갑 넘으신 나이에 문학공부 하신다며 대학에 다니시며 쓴 시가 옹알이 하는 동생 얘기를 쓰셨다고, 할머니가 애기가 됐나 보다 >생각할 만큼 노년을 행복하게 사시는 가정의 모습을 눈앞에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가 사셨던 세상은, 오늘날 아이들이 이해 못할 외계인 세상과도 같다. 찰각 찰각 베 짜는 소리에 새벽닭이 울었대. 바느질 하다 손가락 찔려 피가 나면 입으로 빨고 송진 붙였대 할아버지는 나귀를 타고 한양까지 다녀오셨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할머니는 그게 사실 이래 할머니 얘기는 외계인얘기. -동시 <할머니 얘기는 외계인 얘기>전문- -석호는 할아버지 보고 할아버지는 석호 보고 둘이는 서로 같다 이 빠진 것이 그래서 서로 친하다. -동시 <앞니가 빠졌다.> 후반부- 이런 차이와 공통점을 가지고 한집에서 같이 사는 모습은 시로써 뿐 아니라 핵 가정화 돼 가는 오늘날, 우리 모두 부러워해야 할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이다. 동그랗고 까만 아가 눈 속엔 무슨 생각 있는지 아무도 몰라 엄마만 알고 있지 아가의 생각. 동그란 두 입술이 벌름거리면
무슨 말을 하겠나, 아무도 몰라 엄마만 알고 있지 아가의 할 말. - 동시<비밀>전문- 엄마 아빠의 사랑을 먹고 아이들은 커 간다. 아가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엄마, 아가의 몸을 가장 잘 아는 엄마, 우리는 엄마의 몸에서 갈라져 나오는 아픔으로 탄생 되었다. 밀알이 썩는 아픔을 겪어야 싹이 트듯, 생명체의 탄생은 고통을 참는 것이다. 엄마는 모성 본능으로 자식들을 자기 생명으로 키워간다. 이러한 사랑 속에 우리는 커 왔고 키워 간다. 이슬비 내리더니 백일홍 싹이 쏘옥 나왔다 소낙비 내리치더니 텃밭에는 작은 돌이 굵은 돌로 자랐다.
가을비 내리더니 고구마가 머리통처럼 굵어졌다. 얼마나 크고 싶은지 동생이 비 맞으며 웅덩이 물 밟고 다닌다. - 동시<비 맞으면 크는 놈들>전문- 비는 생명체의 젖이다. 젖은 어린 것들의 성장의 밥이다. 곡식밭에 비가 오면 콩 싹이 꿈틀 꿈틀 커 나온다. 고구마도 흙을 비집고 벌건 살을 내 보인다. 씨앗을 흙에 심고 물을 주어 싹 티 우고 키워봐야 비가 얼마나 생명체의 소중한 생명 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동생은 엄마의 젖을 먹고 컸지만, 비 오는 날 동심은 물웅덩이를 밟고 다니고 싶은 것도 생물본성 때문일 것이다. 비 맞고 텃밭에 돌도 크고 ,곡식도 크고, 동생도 커 간다는 한금산의 생각은 예리한 관찰력의 소산이다. 붉은 노을 속에서 지는 해 아무리 얼굴 붉히며 산 너머에 숨어도 나는 다 알아 내일 아침이면 웃는 얼굴로 다시 떠오른다는 것을 말다툼 하고 얼굴 붉히며 헤어졌지만 아침마다 웃는 얼굴 내 짝궁처럼. -동시<다 알아>전문- 아이들은 자랄 때 친구와 노느라 해가 지는 줄도 모를 때가 많다. 그만큼 친구를 좋아한다. 오늘 말다툼이나 코 피 터지게 싸웠어도 밤 자고 다음 날이면 노을 속에 지던 해님이 맑은 얼굴로 다시 떠오르듯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만나게 된다. 그것이 어른들과 아이들이 다른 점이다. 동심은 맑고 깨끗하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신 방정환 선생님의 마씀처럼 이 순수한 동심은 자라가면서 지식이 늘어나고 꾀가 생기면서 마음이 혼탁해진다. 욕심도 생긴다. 미워하는 마음도 생기고, 경쟁심도 생긴다. 동심이 성인의 마음으로 변해 가면서도 항상 깊은 곳에는 동심이 남아 인간 본심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동시는 시중에 시라는 자부심으로 쓴 한금산의 시를 어른들도 많이 읽어보라고 권한다. 동시라고 얕잡아 보는 어른들은 없을 것이다. 돌부처는 눈으로만 웃는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보고 웃다 소리는 목이 쉬어 눈으로만 웃는다. 웃으며 인사한다. -동시<눈으로만 웃는다.>전문- 소리 안 나는 웃음을 미소라고 한다. 미소는 사랑이 담긴 웃음이다. 사랑은 마음이 하기 때문에 돌처럼 굳은 속에서도 눈으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볼 수 있다. <소리 안 나는 웃음, 눈으로 보는 웃음>을 창작한 한금산의 시적 혜안을 나는 부러워한다. 산골 집 외진 뒷들 대나무 숲에 꼭지머리 예쁜 산새 둥지를 틀면 스스스스 댓잎이 소리 내어 없다 없어 이곳엔 아무도 없다. 토끼도 고란이도 친구를 찾아 살금살금 뒷산으로 내려 오며는 스삭스삭 스스삭 소리를 내어 없다 없어 이곳엔 아무도 없다. -동시 <산새 알>전문- 대나무 숲에 나은 꼭지머리 산새 알을 보듬어주는 자연의 공존공생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없다 없어 이곳엔 아무도 없다>는 대나무의 말이 참으로 은근한 사랑의 의성어 <스스스스, 스삭스삭 스스삭>는 댓잎 소리를 적절하게 찾아냈다. 모파상의 스승 플로베르는 <일물 일어설>을 주장했다. 한 가지 사물은 꼭 한 가지 말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만큼 적절한 언어의 선택이 시인의 시적 표현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한금산의 표현력이 참으로 부럽다. 물소리가 구르는 냇가 조약돌 주우며 거기 살자 누나야 갈대 자라면 그 안에 물새알 낳고 은비늘 피라미 뛰는 곳 저녁노을 등에 지고 노래에 발걸음 맞추며 손잡고 돌아오는 그 곳에 살자 누나야 고라니 눈망울을 닮은 샘물 솟고 개망초 꽃 흐드러지게 피고 한적하기만 한 곳 거기에 살자 누나야 밤마다 별들이 쏘다져 내려 꽃으로 피면 꽃잎 같은 얘기 만들어 내며 거기서 살자 누나야 -동시<별들이 쏟아지는>전문- 그리움의 이상향 아름다운 고향이 눈앞에 펼쳐졌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한 소월처럼 우리는 살고 싶은 그리움의 고향을 지니고 산다. 세상살이 힘들고 어려울 때는 마음속에 그려지는 살고 싶은 곳이 있기에 그곳에 마음을 쉬어 간다. 또 영원히 살고 싶기도 한 이상향이다. 겨우내 찬바람 이겨낸 시금치 까치가 와서 고갱이만 남기고 뜯어 먹었다. 아빠는 말뚝을 박고 그물을 쳤다. “까치에겐 보릿고개인데, 그냥 두렴” 옥수수가 수염 색깔이 변하기 시작할 때 까치가 파고 뜯어 먹었다. 아빠는 또 그물을 쳤다. “나눠 먹고 살게, 그냥 두렴” 동생이 책상에 매달려 아빠가 쓰던 원고를 망쳐 놓았다. “저도 쓰고 싶은 게지, 그냥 두렴” 할머니 마씀은 하나뿐이다. - 동시 <그냥 두렴 >전문- 세상을 오래 사신 할머니는 까치가 농작물을 해치는 것을 막는 아빠에게 “그냥 둬라, 같이 나누어 먹고 살라”고 하신다. 동생이 아빠의 쓰던 원고를 망쳐 놓아도 “저도 쓰고 싶은 게지 그냥 둬라” 고 하신다. 그냥이란, 자연 그대로, 조건 없이 따지지 않고, <그냥 둬라>는 말씀은 방림이 아니라 관대하라는 교훈이다. 내가 한금산의 시를 좋아 하는 것도 지금까지 따져 온 말들 없이 <그냥 좋은데>, 다른 분들도 <그냥 한번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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