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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개혁주의 전천년설" (10)
게시일 : 2016-11-06
4. 개혁주의 전천년설의 종말관
여기서 저자는 개혁주의 전천년설의 종말관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이 여러 문제들에 관한 해설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개혁주의 전천년설은 그 출발이 역사적 전천년설에 그 발판을 두고 있다. 지금의 역사적 전천년설의 개혁주의 신학노선에서 어긋난 중요한 몇 가지 사항을 보완하여 성경적인 천년설로 정립하는 과정을 거쳐 정리된 전천년설이 개혁주의 전천년설임을 밝힌다. 이 개혁주의 전천년설이 역사적 전천년설을 새로운 전천년설로 거듭나게 하여 개혁주의 신학 안에서 하나가 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1. 종말에 등장할 짐승에 의해 열강과 더불어 맺어지는 한 이레의 언약이 주 재림의 결정적 징조다.
우리는 인류의 종말을 알리는 7년 환난이 언제 우리들 앞에 닥쳐올지 전혀 알 수 없다. 이 일을 안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재림의 시일을 알 수 있다는 말과 같음으로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 일에 대해 주님은 마24:36절에서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여러 가지로 말씀해 주셨는데 성경을 보면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시대적 징조에 대해 언급해 주고 있는 말씀을 찾을 수 있다. 짐승에 의해 열강 간에 맺어지는 한 이레의 언약이 메시아의 재림의 징조적 시기로 계시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9:27절 말씀에는 한이레의 언약에 대해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이 말씀에서 ‘그가’라고 지칭하는 인물은 한이레의 언약을 맺을 주역으로 종말에 예루살렘에 침노하여 유대인들에게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키는 짐승(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루살렘에 임할 이런 유대인들의 환난은 한 이레의 절반인 후반부에서 이루어질 일이다. 그리고 그 끝에 이르면 유대인들이 대망하는 메시아가 출현하는데 이 일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나타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한 이레가 도래하는 시기만 알면 우리는 주 재림의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짐승이 언제 등장하며 언제 열강과 더불어 한 이레의 언약을 맺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이 일은 장차에 이루어질 일이란 사실밖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 시일은 모르지만 마치 예수님이 장차 언제인가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하는 기대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69 이레에 성취될 메시아의 초림의 경우를 보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게 된다. 구약시대에 살아가든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그가 언제 오실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주신 70 이레의 계시를 통해서 예루살렘 중건령을 시작으로 하여 69 이레에 이르면 ‘기름부음 받은 왕이 일어날 것’이란 말씀을 주셨다. 이 말씀은 메시아 초림의 시기를 말씀해 주신 게 아니라 그 초림의 시기의 징조를 말씀해 주셨다는 점에서 한 이레의 경우와 비교될 수 있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중건령의 역사적 시기만 이르게 되면 그때부터 69 이레가 지난 483년이 지난 그 시점에 이르면 기름부음 받은 왕이 일어나며 끊어져 없어질 사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어 중건령이 있은지 69 이레가 지난 483만에 초림의 메시아가 오셨고 곧 이어 십자가에서 끊어져 없어졌다.
이 사건은 우리가 초림의 메시아가 언제 오실지의 일시는 알 수 없었지만 징조를 통해서 그 시기를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일로 재림의 메시아에 대한 징조적 시기를 알리는 한 이레의 계시를 해석하는 일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준다. 이때 이루어질 69 이레는 중건령의 시기로부터 초림의 메시아로 오실 왕의 등장까지 그 기일이 483년이란 긴 시일이 지난 후에야 성취된 사건이지만 한이레의 경우는 짐승에 의해 체결될 한 이레의 그 시일이 한 이레 곧 7년이란 짧은 기간 안에 성취된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창3:15절에서 최초로 계시해 주신 메시아의 초림과 재림의 계시를 주신 그 시기로부터 예루살렘 중건령에 이르기까지 3천5백년이 지난 후였고 메시아의 초림부터 짐승이 등장하여 한이레의 언약을 맺는 시기까지는 오늘까지 2천년이 지났지만 아직 짐승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에 의한 한이레의 언약도 맺어진 바 없다. 이처럼 두 사건의 징조와 메시아의 초림과 재림의 시기문제는 동일한 논리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큰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한 이레의 언약을 이해하려면 이 언약을 맺을 주인공인 짐승을 알 수 있어야 하며 그 짐승의 등장여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짐승은 다니엘서 7장에서 그의 등장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자에 의해 맺어질 한 이레의 사건은 누구나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사건(아마도 예루살렘 중건령보다 더 유대인들이나 모든 인류에게 부각될 사건일 것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종말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단7장과 9장에 계시된 짐승의 등장모습과 그의 역사에 등장하는 짐승에 관한 성경적인 지식을 갖추어 그 자의 등장과 그 자에 의해 맺어질 한 이레의 언약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마도 다니엘서를 깨닫고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는 성도들은 이 짐승에 의해 맺어지는 한 이레의 언약을 계기로 이 세상에 종말을 알리는 7년 환난의 기간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계11장을 보면 두 증인이 이 한 이레의 발효시점인 한 이레 시작일 부터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깨어 있는 성도들은 등과 기름을 준비하면서 재림의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밤중에 속한자들처럼 재림하실 주님을 도적처럼 맞이할 사람들이 아니다.
2. 요한계시록은 한 이레 기간에 일어날 종말사건의 계시로 교회를 위해 교회에 주신 종말계시다.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종말계시이다. 다니엘서는 7년 환난 중, 후3년 반 기간에 짐승에 의해 유대인들이 당할 대환난의 계시와 짐승의 심판과 함께 올 메시아왕국의 도래에 대한 계시이다. 요한계시록에는 7년 환난 시기에 있을 교회와 짐승과의 투쟁, 짐승의 최후심판과 함께 올 천년왕국이 계시되어 있다.
이런 사건의 계시의 배경은 모두 단9장의 70 이레의 계시 중, 마지막 한 이레에 있을 종말적인 사건의 계시로 보여 주신 것이다. 한이레의 계시는 유대인들이 겪을 종말적인 7년간의 사건이요 또한 모든 교회가 겪을 종말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다니엘서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입장에서 한 이레(7년 환난) 중에 일어날 종말적 사건의 계시로 보여 주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계시의 내용과 그 적용을 전 교회시대로 확대시켜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에 수록된 내용은 계1:19절에 나와 있는 말씀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에 대란 내용의 기록이다. 네가 본 것은 요한이 계시를 받을 당시 본 현상으로 1장,4장,5장의 내용이다. 요한은 1장에서 계시자의 영광을 보았고 4장에서 계시를 집행하는 하늘의 총본부인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으며 5장에서 이 계시를 집행할 심판권 자이신 어린양을 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일은 2장과 3장에서 보여주시는 일곱교회의 모습이다.
장차 될 일은 6장부터 22장까지로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핵심적 내용이다. 그리고 장차 될 일의 계시인 6장-22장까지의 내용은 교회시대의 상황과 역사적 사건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종말에 한 이레 중에 일어날 사건만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장차 될 일의 사건의 범위는 한 이레 중에 일어날 사건에 국한되어 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대할 때 먼저 이런 계시의 본질을 알아야 해석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고 바른 신학적 체계를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해석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계시록에는 육적인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에 관한 계시는 단 한곳도 언급된 곳이 없다는 것과 한이레 중에 발생하고 진행되고 성취될 종말적 사건 외 그 이전의 사건에 대한 계시는 개입이 안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계6장에서 7인의 사건의 계시를 본다. 7인의 계시는 요한계시록의 총론적인 사건을 계시한 것이다. 특히 그 중, 넷째 인까지의 네 말의 등장은 7년 환난 중에 전개될 모든 사건의 총체적인 동향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계시는 이 네 말의 활동이 주축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첫째 인의 개봉으로 등장하는 흰말의 계시는 7년 환난의 시작점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하며 장차 이 땅에 임할 인류의 대 환난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종들의 예언사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계시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에게는 짐승에 의한 한 이레의 언약의 성사로 종말의 시기를, 그리고 교회에게는 하나님의 종들의 종말적인 예언의 사역으로 인류의 종말인 7년 환난의 도래의 시작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계시이다. 그리고 그 전 내용은 한 이레 중에 일어날 사건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만약에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어느 한 가지라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면 요한계시록은 방향을 잃고 종말계시는 무산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우리에게 주신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요즘 이 같은 요한계시록 해석으로 종말계시의 본질에서 떠나 우리가 바라는 주 재림의 소망을 허공의 구름을 잡는 허황된 이야기로 무산시켜 버리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 것인가?
3. 계6장의 흰말 탄자의 투쟁은 계11장의 두 증인의 예언사역이며 이들은 그 대상이 계7장의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며 이들의 자격은 계14장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신실하고 충성된 종들이다.
흰말의 정체를 알려면 요한계시록 전체의 세밀한 관찰이 필수적이다. 계19장에서 흰말은 두 가지로 구분되어 나오고 있다. 하나의 경우는 계19:11절에서 ‘백마와 탄자’로 그리스도의 경우가 나온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은 이 하늘의 백마를 타고 내려오실 것이다. 그러나 백마가 이 경우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 곳에 또 있다. 계19:14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그를 따르는 하늘의 군대들이 있는데 그들이 하늘의 백마를 타고 따를 것이라고 했다. ‘하늘에 군대들이 있고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처럼 계6장의 흰말은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르는 하늘의 군대들과 연결되는 계시이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천사들이 아니다. 천사들이 지상의 적그리스도의 군사들과 싸우는 하늘의 군대들이 될 수 없다. 계17:14절 말씀을 보면 “...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첫째부활 자들인 순교성도들인 것이다.
다음에 흰말 탄자는 면류관을 쓰고 있다. 이 면류관은 ‘스테파노스’라는 이름의 면류관이다. 이 면류관은 옛날 올림픽경기 때 우승자에게 씌운 월계관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경에서는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에게 약속된 하늘의 상급의 표시이다. 이 같은 ‘스테파노스’의 상급은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적그리스도와 전쟁을 하다가 순교하는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받을 상급에 대하여 첫째부활자로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상급이 약속되어 있다. 흰말은 바로 이들의 등장과 활동을 의미해 주는 계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흰말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 선발된 144000의 사명자들과 연결되며 계11장에서 예언의 사역을 이루는 두 증인과도 연결된다. 이 셋, 곧 흰말과 144000과 두 증인은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종말사역을 하는 하나님의 종들이며 원래가 하나이다. 두 증인은 두 명의 증인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종말에 하나님께서 추수의 일군으로 쓰실 마지막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등장하는 모습이 계7장에 나오며 그 수효에 대해 144.000명이라고 했으며 이들의 자격이 계14장에 나와 있다. 이들은 인류의 최 종말에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하나님의 종들이다. 이들은 전3년 반 기간, 예언의 사역을 하다가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하므로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며 주님 오실 때 주님과 함께 올 첫째부활자의 영광을 누릴 성도들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첫째 인을 떼시는 일에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받아 적그리스도와 싸우는 하나님의 종들을 등장시키신 것인가? 그것은 곧 나타날 무서운 대환난의 도래到來와 적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한 경종을 세상에 알리고 하나님의 교회로 회개케 하여 신부의 단장을 시키시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흰말의 등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의 활동 기간이 1260일간이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개시는 7년 환난의 환산점換算點이 된다는 점에서, 지혜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들의 등장을 통해서 7년 환난에 이르렀다고 하는 시대의 징조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흰말이 언제인가 반드시 등장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흰말, 144000, 두 증인 이들 셋의 관계와 이들의 종말사역을 설펴보면 다음과 같다,
㉠ 흰말의 정체는 7장에서 천사에 의해 그 이마에 인 침 받으므로 사명자로서의 권능을 받는 144000이다.
㉡ 이들 하나님의 종들이 10장에서 작은 책을 받아먹고 예언전파의 사명을 받게 된다.
㉢ 이들은 11장에서 1260일간의 전3년 반 기간 다시 예언하는 사명으로 전 세계적으로 주 재림의 복음을 전한다.
㉣ 이들은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한 후, 첫째부활자가 된다. (계11:12. 계20:4).
㉤ 이들은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새 노래를 부르며 주 재림의 날을 기다린다(계14:1-5).
㉥ 이들은 주님과 함께 하늘의 백마 탄 군대로 아마겟돈에 내려오게 된다(계2:26,27.계19:14,15).
㉦ 이들은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입은 자들로 종국적으로 승리한다. (계17:14.고전15:23.유14).
4. 첫째 화는 전3년 반 끝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황충이로부터 두 증인의 예언사역을 이루는 144000명을 제외한 종말의 촛대교회가 당하는 5개월간의 환난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세 가지 화가 있고 이 화는 7년 환난 중에 있을 종말적인 환난을 가리킨다. 그 첫째 화가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불 때 일어나는 환난으로 이 환난을 ‘5개월 황충이 환난’이라고도 부른다. 황충이 떼들이 다섯 달 동안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환난을 주기 때문이다. 종말적인 계시로 볼 때 ‘첫째 화’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사탄이 인류의 종말에 하나님의 교회에 최종적으로 도전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첫째 화의 가해자에 대해서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악령들의 영적지배를 받는 황충이 떼들로 명시되어 있으나 그 피해자에 대해서는 대상자에 대한 계시가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고 있다.
이들 황충이 떼에게 내려진 첫 번째 명령은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 황충이 떼들은 메뚜기 떼들이 아니기 때문에 땅에 있는 풀 종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을 그 피해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 인간 황충이들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을 괴롭힐 자들이다. 황충이 떼를 이룬 이들은 사탄에 의해 무저갱 속에서 풀려 나온 악령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불신자들이다. 이들은 적그리스도가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왕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많은 권세를 제공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투쟁대상은 결코 불신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 세상은 이미 등장한 적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아로 영접하고 있으며 그의 등장을 놀랍게 여겨 그를 따를 것이라고 계13:3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황충이 떼들이 자기들 편에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섯 달 동안이나 괴로운 고통을 줄 것인가? 온 세상이 적그리스도를 환호하며 그를 메시아로 높이는 일에 동조하지 않고 진리를 따르며 가짜 메시아를 배격하고 진짜 메시아를 기다리는 무리가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키며 그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무리’들이다. 황충이 떼들은 바로 이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핍박을 가하는 것이다.
해 입은 여자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이들 사탄의 무리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시기는 전3년 반이 마쳐지는 시점에서 거꾸로 다섯 달간이 되는 기간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가 황충이 떼들에 의해 박해를 받는 환난으로 첫째 화로 불리는 5개월 황충이 환난이다.
그러면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계시록7장으로 되돌아가야 이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왜냐 하면 그 곳에 ‘이마에 인침 받은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과연 ‘이마에 인침 받은 사람들’로 나타난 144000이 누구인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필요하다. ‘이마에 인침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란 바로 이 사람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이라고 밝혀 주는 피해자란 누구인가? 첫째 화란 곧 적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진리를 따르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7년 환난 중에 당하는 시련과 연단의 기간으로 이들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이 떼들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사건이다. 이 박해에 대해 계2:10절에서 ‘10일 동안의 환난’이라고 말씀해 주며 계7:14절에서 ‘큰 환난’이라고 했으며, 계12:13절에서는 ‘용이 땅으로 내어 쫓긴 후,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아 두 증인의 사역을 하고 있는 144000은 전3년 반 동안 불사신의 권능을 가지고 예언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박해할 수는 없음으로 성도들에게 박해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 첫째 화를 불신자들이 당하는 재앙으로 해석하느냐하면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144000을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로 보기 때문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을 성도들이 아닌 불신자들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때 이들 황충이 떼들로부터 박해를 받기는 하지만 결코 죽임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이 기간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의 연단으로 시련을 받을 뿐, 죽음을 주는 재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에는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첫째 화의 시험을 통하여 우리들로 죽음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 환난을 잘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시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장차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황충이들로 인하여 7년 환난 중에 이 같은 첫째 화를 만날 것이다. 이 황충이 화는 교회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황충이 떼들의 핍박으로 가라지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하나님은 이 첫째 화의 기간을 다섯 달 동안으로 제한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박해가 가장 혹심할 때 독수리의 큰 날개에 얹혀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호 장막으로 우리를 옮기실 것이다.
5. 전3년 반에서 등과 기름을 준비한 성도는 후3년 반의 대 환난에서 예비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는다.
7년 환난 중에 예비처가 있느냐는 문제는 환난을 만날 수밖에 없는 교회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후3년 반에 들어서자 이 세상은 곧 핵전쟁인 유브라데 전쟁을 만나게 되며 이 전쟁으로 세계인구의 1/3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성도들이 이 무서운 재앙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면 모든 성도들은 죽임을 당하는 그 1/3속에 성도들도 1/3이 포함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의 날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소망은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인가? 후3년 반에 들어서면 짐승에 대한 경배와 짐승의 표를 강제적으로 받게 한다. 만약 누구든지 짐승에 대한 경배를 거부하거나 짐승의 표 받기를 거절하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성도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후3년 반에 들어가면 곧 셋째 화가 이르게 된다. 이 셋째 화는 물대신 피를 마셔야 하고 해의 뜨거움으로 많은 사람이 죽게 되며 세계적인 기근과 물품의 부족으로 살아갈 길이 막히게 된다. 만약 성도들이 이런 모든 환난과 곤경과 박해와 기근을 겪는 과정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겪어야 한다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야 재림의 주님을 맞을 수 있다면 누가 주의 재림을 큰 기쁨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기다릴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몇%나 살아남아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의 환난 전 휴거설이 설득력을 얻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해 성경에서는 무엇이라 말씀해 주고 있는가? 후3년 반에 성도들은 공중으로 휴거되는 방식으로 교회를 보호한다는 말씀이나 아니면 모든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환난의 시기를 모두 겪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후3년 반에서 교회를 보호하실 하나님의 예비처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약속해 주고 있는 것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3:10).
시험의 때란 종말에 이 세상에 임하는 재앙의 때로 이런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여 주시겠다고 하셨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는 방법이 예비처로의 인도이다. 예비처는 후3년 반 하나님의 심판기간 하나님의 교회가 피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장막이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12:6).
여자(교회)가 광야(예비처)로 도망(피신)하게 되는데 그 기간이 1260일 동안이라고 했다. 이 기간은 7년 환난 중 후3년 반을 가리킨 기간이다. 14절에서도 여자가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는다고 했다. 여자가 양육 받을 광야 자기 곳이란 후3년 반의 예비처를 의미한다.
계7:16-17 말씀은 후3년 반에 교회를 양육할 하나님의 장막이 계시되어 있다.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7:15-17).
흰옷 입은 수다한 무리들에게 친 장막은 예비처를 말하며 그 예비처에서의 보호하심을 말씀해 주고 있다. 그 예비처의 장소는 하나님의 장막,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 광야 자기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그 장소를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라고 하셨으니 그 장소는 확실하다. 이 장막은 슬기 있는 신부(처녀)가 들어갈 혼인잔치 자리이며(마25:10), 이곳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옮겨지게 된다(계12:14).
누구든지 만약에 이런 예비처의 계시를 상징으로 보고 무시한다면 요한계시록 해석에 큰 오류를 가져올 것이다. 오류는 분명히 계시된 내용을 부인하거나 오해할 때 나오는 것이지 계시된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6. 짐승에 대한 경배와 짐승의 표는 7년 환난기간에 일어나며 표를 강압적으로 받는 일과 경배나 표 받기를 거역하는 자를 죽이는 일은 후3년 반중에 일어난다.
'666'이란 수는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되는 수이며 어느 면으로 보면 두려움을 주는 수이기도 하다. 666이란 말은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수효인데 이 수에 대해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로 나오며 이 수는 표와 연관되는데 이 표를 '짐승의 표'라고 말하고 있다.
이 표가 두려운 것은 이 표를 받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로 비유된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받아 둘째 사망에 들어간다는것과 종말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짐승(적그리스도)으로부터 이 표를 받지 아니하면 '매매를 못하게 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계13:16-18,계14:9-12).
그런데 이 표는 언제나 주거나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는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표는 인류의 최 종말인 7년 환난 중에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 표를 주는 자가 그때 가서야 세상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모양이건 어떤 이유에서건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기 전에는 이 무서운 짐승의 표(666표)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잘못된 이단이나 시한부 종말론 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 표를 받을 줄로 오해하며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 표를 신앙과는 관계없이 은행거래나 베리칩이나 심지어는 주민등록증에 기재되는 어떤 표시로 받게 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 표는 그 받을 대상자가 이미 작정되어 있다. 계14:9절에 있는 말씀,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종말에 우리 앞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에게 신적인 경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만 이 멸망의 표를 주게 되며 이 표를 받을 자들에 대해 계13:8절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했다.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적그리스도를 신적인 존재로 섬기지도 않으며 경배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표를 받을 염려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가 등장하고 그 표를 받는 일에는 다음과 같은 수순이 필요하다.
(1) 짐승의 표는 그 표의 이름대로 짐승(적그리스도)이 실제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을 때에 받게 된다. 짐승이 없는 짐승의 표는 무슨 이유에서든 짐승의 표가 아니다.
(2) 짐승의 표는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받게 하는 표가 아니다. 짐승이 다스리는 국가기관에서 짐승이나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짐승을 메시아로 섬기는 자에게 그 증거로 받게 하는 표가 짐승의 표이다.
(3) 짐승의 표를 받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짐승의 통치를 거역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되며 결국은 죽임을 당한다. 짐승의 표는 짐승의 통치와 관계되는 표식이지 아무 시대에나 더군다나 짐승도 등장하지 않고 짐승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는 표가 아니다.
(4) 짐승의 표는 사람을 기계적으로 로봇화 시키는 표시가 아니다. 짐승의 표는 그 표를 받는 사람이 자기 의사나 의지에 반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에서 받는 표도 아니다.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은 자기가 짐승을 따를 것과 그 신상 앞에 경배할 것을 자의건 강제건 스스로 자기 의지로 결정함으로써 받게 된다. 자신의 의지나 신앙적인 결정과 상관없이 받게 된다면 그런 표가 어찌 짐승의 표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표가 어떻게 지옥에 가는 표가 될 수 있겠는가?
(5) 짐승이 등장한 후에 그 자에 의해 베리칩이 짐승의 표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베리칩은 짐승의 표가 아니다.
(6) 앞으로 짐승이 등장하여 세계평화를 가장하는 7년간의 평화조약(한이레의 언약)이 성사될 것이다. 짐승은 그의 권세가 전 세계에 강력하게 미치는 전3년 반에 거짓 선지자와 음녀로 미혹하여 세상으로 짐승을 경배케 하고 그 표를 받기를 강권함으로 거듭나지 못한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이에 미혹되어 짐승에게 경배함으로 짐승의 표를 받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후3년 반에 이르기 전에 이미 짐승을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는 일에 서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짐승이 한 이레의 후반부인 후3년 반에 들어가 짐승이 전 세계를 통치하는 제5제국의 왕으로 오르게 될 때 짐승을 신적인 존재로 경배케 하고 짐승의 표를 강압적으로 받게 할 것이다.
처음에는 이 표를 받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거짓 선지자가 등장하여 거짓 이적과 짐승의 우상으로 말을 하게 하는 등 각가지 유혹으로 미혹할 것이며 검은 말의 등장으로 기아와 기근상태에 놓여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짐승의 표가 없으면 물건의 매매를 금하는 법도 시행할 것이다. 그리함으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인류들에게 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하여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7) 짐승의 표는 받는 사람이 그 표가 분명히 짐승의 표인 사실을 인지하고 받을 것이며 그때 그 표를 받는 사람은 자기 의지에 따라 받은 짐승의 표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져야 한다. 그 책임이란 그 표를 받은 사람은 불과 유황불이 붙는 둘째사망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7. 주 재림 시까지 생존한 모든 성도들은 살아 있는 육체의 몸으로 공중으로 휴거된다.
성도의 공중휴거 문제는 요한계시록 해석에 중요한 문제이며 천년왕국 문제나 첫째부활 문제 해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지극히 조심하고 우려해야 할 부분은 첫째부활 문제와 공중휴거 문제에 있어서 세대주의 종말론과 역사적 전천년설의 견해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 시기에 있어서 세대주의에서는 7년 환난전 휴거설을, 역사적 전천년설에서는 환난 후 휴거설을 주장한다는 사실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휴거 시에 죽은 모든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이 변화 받는다는 주장에 있어 둘 모두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런 공중휴거 시의 부활과 변화 사건을 첫째부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해석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천년설의 당연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사실 주님이 오실 때에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고 모두 변화 받는다면 천년왕국은 존재할 이유나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은 부활체나 변화체가 살아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활체나 변화체가 살아갈 곳은 천년왕국이 아니라 새 예루살렘인 것이다. 부활하거나 변화 받은 육체로는 자손을 번식할 수 없다. 그래서 기발하고 기막힌 발상을 했는데 그것이 세대주의에서는 유대인들만이 육체로 들어가 자손을 번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역사적 전천년주의 자들은 주 재림 시 살아 있는 불신자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가 자손을 번식하며 곡과 마곡의 세력을 형성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과 해석은 도에 지나친 억측이다.
그러면 왜 이 같은 주장이 신학적 이론으로 머리를 쳐들고 오늘까지 종말관을 휘어잡고 있었을까? 그것은 성도들의 마지막 부활과변화의 시기를 잘못 이해한데서 나온 아주 중대한 실수에 기인한다. 공중휴거 시에 부활할 성도들은 죽은 모든 성도가 아니라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할 순교자들로 성경에서는 이들의 부활을 첫째부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변화는 천년왕국이 끝난 시점 곧 백보좌 심판 시에 있을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시에 성도들의 변화가 있게 되며 이때에 이들과 함께 천년왕국을 거쳐 온 일반 성도들의 생명의 부활이 있게 되는 것이다.
8. 첫째부활 자는 순교자들이며 이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 흰말 탄 하늘 군대로 주님과 함께 내려온다.
성경에는 첫째부활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 있다. 계20:4절에서 두 종류의 성도들로 그 대상자를 말씀해 주고 있는데 이들 모두 순교자들이다. 먼저는 환난 전 순교자요 두 번째는 환난 중에 순교한 성도들인데 이 둘이 첫째부활자로 주님이 강림하실 때, 주님께 붙은 자로 주님과 함께 지상에 내려올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내려올 부활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킴이 아니요 그리스도 강림 하실 때 함께 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곧 순교자들인 첫째부활 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계20:5절을 보면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이들은 첫째부활에 속한 순교자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를 말씀해 주고 있다. 이들을 불신자들의 둘째부활의 대상자로 해석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이 없는 오류이다. 천국에서 영적 안식을 누리고 있는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을 지옥에 갈 불신자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19:14절에는 주님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밝혀 주고 있다. 이곳에서 밝혀 주고 있는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천사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어 주님과 함께 내려올 순교자들 곧 첫째부활 성도들인 것이다. 이에 대해 계17:14절에서 하늘 군대의 정체를 성도들이라고 밝혀 주고 있다.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한 바로 그들이다.
9. 천년왕국은 공중 휴거된 성도들로 이뤄지며 첫째부활 자들인 순교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일곱대접 심판 직전에 휴거될 성도들은 세 종류에 속한 무리들로 이들이 천년왕국 백성이 된다.
(1) 예비처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성도들(흰옷 입은 무리들).
(2) 후3년 반에 떨어진 성도 중에 일곱대접 심판 직전까지 살아남은 성도들.
(3) 유대인들 중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유대인의 남은 자들.
위에서 언급한 세 종류의 공중으로 휴거된 성도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룬 이 땅에 내려와 천년왕국 백성이 되어 천년왕국에서 살아가게 된다. 공중 휴거된 성도들 외에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일곱째 대접심판 시에 불의 심판으로 소멸되어 버린다.
성도들은 공중휴거 시,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육체를 그대로 지닌 채 휴거 된다. 변화되는 게 아니다. 변화는 천년왕국이 끝난 후 백보좌 심판 시 마지막 부활 때에 살아 있는 성도들의 변화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공중으로 휴거 되었던 성도들이 새롭게 형성된 회복된 에덴인 새 땅에서 천년 동안의 생애를 누리게 되며 가정을 형성하는 가운데 자녀를 번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첫째부활 자들은 그 나라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는 복을 받는다. 왕 노릇이란 천년왕국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최상의 영광을 말한다. 하늘에도 천사들 외 천사장이 있고 그 보다 급이 더 높은 그릅이란 영물이 있다. 천년왕국에는 수많은 성도들이 존재하며 또 천년 동안 확장되어 나간다. 첫째부활 자들은 그들 위에서 다스리는 위치에 있게 된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일을 그리스도와 더불어 첫째부활 자들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천년왕국이 끝날 때까지 지금 그대로 낙원에서 영적 안식을 누리게 된다. 천년왕국에는 주 재림 때에 주님을 살아서 맞이한 성도들, 일곱째 대접심판을 피하고 공중으로 휴거된 성도들만이 살아 있는 이대로의 몸을 가지고 천년왕국 백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후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짐승의 표를 거부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순교자의 영광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들에 대하여 계13:10절에서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은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마땅히 칼에 죽임을 당할 자들이며 순교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계14:13절에서 그들의 죽음은 낙원에서 영적안식을 취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위로해 주고 있다.
두 증인은 짐승과 대적하여 예언의 사역을 하다가 짐승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 20:4절에서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할 자들"이라고 한 말씀은 짐승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했다는 표현이지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이 여기에 개입된 것은 두 증인의 순교는 짐승이 인류들에게 경배를 시키고 표를 주는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의 순교의 시기가 바로 짐승이 세상을 통치하는 종말의 시기란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들은 전 세계를 향하여 짐승에게 경배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으면 둘째사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란 메시지를 외쳤다(계14:9-10).
10. 흰 보좌 심판 시, 죽은 성도들의 마지막 부활과 천년왕국을 거친 생존성도의 변화가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부활은 고전15장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처럼 천년왕국이 끝나고 그 나라를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에 있게 된다. 그리스도 재림 시에도 성도들의 부활이 있기는 하지만 이 부활은 순교자들이 받는 상급부활로 첫째부활이다. 이 첫째부활 외의 부활은 흰 보좌 심판대에서 이루어질 마지막 부활이다. 마지막 부활은 생명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함께 있게 되며 성도들에게는첫째부활 다음에 있게 되는 두 번째의 부활이 되며 악인들에게는 마지막이자 한 번의 부활이 된다.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그리스도인들)이나 행위책에 기록된 사람들(불신자)이나 이 때 모두 부활하게 된다(요5:28-29).
천년왕국은 그 존속기간이 천년이다. 이 천년이 지나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살아져 버리게 된다. 그리고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하늘에 펼쳐진 횐 보좌 심판대에 모이게 된다. 이 때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체로 나오게 되고 천년왕국에서 생존한 모든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 받아 살아 있는 몸으로 부활의 영광을 누리는 변화체가 되어 흰 보좌 앞에 서게 된다. 모든 인류의 운명이 이 흰 보좌 심판대에서 결정 나게 되며, 주 재림 전에 죽은 성도들은 부활한 몸으로, 주 재림 때까지 살아 있었던 성도들은 천년왕국을 거쳐서 변화 받은 영광의 몸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 복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계21장과 22장의 계시에서 전개된다.
11.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며 이로써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구원이 완성되며 새 예루살렘에서의 영원한 생활이 이루러진다.
새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기업이다. 이 나라의 영광은 그 어디보다도 더 영화롭다. 그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계시가 계21장과 22장에 나와 있다. 이곳은 물론 육체를 가지고 들어가는 곳도 육신으로 살아가는 곳도 아니다. 그렇다고 영으로 살아가는 곳도 아니다. 영과 육이 하나가 된 신령체가 살아가는 곳이다.
천국에는 아직 이런 곳이 없었다. 그런 영화로운 곳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섭리하시고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기 위해 그 아들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셨으며 크신 사랑과 은혜로 우리들을 아들들로 삼으시고 영원한 우리의 처소로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 성을 준비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부활이 이렇게 영광스럽고 소중하다. 우리의 바라는 장차 나타날 소망이 이토록 놀랍다. 이 모든 소망의 실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무릎 꿇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기도할 수 있는 성도가 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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