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재기 해역문

[정태진]

◎ 장덕재기(章德齋記)

(소재지 :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절골)

진양(晋陽) 고을 용암리(龍巖里)의 앞산 기슭에 있는 장덕재(章德齋)는 불우헌처사 정공(不憂軒處士鄭公)을 추모(追慕)하기 위하여 건립(建立)하였다.

공(公)의 휘(諱)는 상점(相點)이요 자(字)는 중여(仲與)이다.

바로 해주 세가(海州世家)이니, 곧 충의공 농포 선생의 현손(忠毅公農圃先生玄孫)이다.

본래(本來) 타고난 천품(天稟)이 영리(怜悧)하고 총명(聰明)하여, 일찍부터 아버지의 훈육(訓育)을 입어 나이 겨우 칠 팔 세(七八歲)에 시(詩)의 운(韻)을 부르면, 문득 응대(盼應對)할 때에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구(詩句)가 많았다.

십 오세 전(十五歲前)에 경서(經書)와 역사서(歷史書)에 두루 통(通)하니, 문중(門中)의 어른들이 모두들 이 아이가 반드시 문호(門戶)를 다시 일으킬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이 이 십 세(二十歲)가 되자 몸가짐이 맑고 엄숙(嚴肅)하며 예(禮)로써 가정(家庭)을 다스리니, 온 집안의 규범(規範)이 마치 조정(朝廷)과 같이 엄숙(嚴肅)하였다.

효성(孝誠)과 우애(友愛)가 돈독(敦篤)하고 예의(禮儀)와 법도(法道)가 정제(定制)되어, 도내(道內)의 사람들이 모두 공(公)의 가풍(家風)을 유가(儒家)의 표준(標準)으로 삼았으니, 대개 공(公)이 평생(平生) 동안 이룩한 허다(許多)한 아름다운 업적(業績)은 비록 옛날의 현덕(賢德)이라고 일컬어지던 분들이라도 공(公)보다 더 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공(公)은 성품(性稟)이 염직 준결(廉直峻潔)하여 전혀 아부(阿附)를 하거나 가식(假飾)하는 태도(態度)가 없었다.

일찍이 과거 공부(科擧工夫)를 멀리하고 산림(山林)에 은거(隱居)하여 심신(心身)을 기르며, 사물(事物)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였으니, 세상의 부귀영달(富貴榮達)에는 담박(淡泊)하였다.

작호(作號)를 불우헌(不憂軒)이라고 한 것은 주역(周易)의 ‘낙천지명(樂天知命)(자기의 운명을 알고 처지를 편안히 여김)’의 뜻을 취(取)한 것이니, 이로 미루어본다면 공(公)의 인격(人格)을 대체로 상상(想像)하여 추앙(推仰)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공(公)이 세상을 떠난 지 대수(代數)가 이미 오 대(五代)가 되어 유고(遺稿)도 이미 간행(刊行)하였으며, 또 자손(子孫)들이 공(公)을 추모(追慕)하는 재사(齋舍)도 건립(建立)한 지가 오래되었으나, 아직 기문(記文)이 없어 육대손(六代孫) 관석(瓘錫)과 유석(儒錫)이 문중(門中)의 의논(議論)을 모아 나에게 기문(記文)을 부탁(付託)하는지라, 나와 정씨 문중(鄭氏門中)은 대대(代代)로 지내는 정의(情意)가 깊으니, 감(敢)히 이 일을 어찌 사양(辭讓)하겠는가?

지난 정미년(丁未年) 시월(十月)에 내가 마침 이 곳을 방문(訪問)하여 문중(門中)의 어른들을 따라 이 재실(齋室)에 올라 이 곳의 경치를 감상(感想)한 적이 있었다. 그 때가 서리와 이슬이 내린 지가 이미 늦었는데 누런 국화(菊花)가 아직 피어 있었고, 이 일대(一帶)를 바라보니 주위가 선경(仙境)을 이루어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기이(奇異)한 바위와 깎아 자른 듯한 절벽(絶壁)이 주위를 감싼 것이 마치 구름 병풍(屛風)을 두른 듯 하고, 마을과의 거리는 활 한바탕이 채 못 되나 서북쪽의 우뚝한 산봉우리들이 용(龍)이 서린 듯 아름다워, 인간 세상(人間世上)이 아득히 끊어진듯하여 한 점 티끌도 볼 수 없으니 참으로 신선(神仙)이 사는 별천지(別天地)라 하겠다.

이 재실(齋室)로써 해마다 조상(祖上)의 제사(祭祀)를 받드는 장소(場所)로 삼으며, 이 재실(齋室)로 때맞추어 일가(一家)들을 모으고 손님들을 접대(接待)하는 장소(場所)로 삼으며, 이 재실(齋室)로 자손(子孫)들이 학문(學問)을 익히는 장소(場所)로 삼으니, 일거삼득(一擧三得)의 일이 구비(具備)되었다.

아! 사람의 도리(道理)가 어버이에게 효도(孝道)하고 어른에게 공경(恭敬)하는 일보다 더 소중(所重)함이 없는데, 효도(孝道)와 공경(恭敬)이 지극(至極)하여야 신명(神明)도 감응(感應)하는 법(法)이다.

자손(子孫)들이 조상(祖上)에게서 비록 백 대(百代)가 멀어진다하여도 혈기(血氣)가 이어져 있으니, 마치 서로 한 몸과 같다.

‘제사(祭祀)를 지낼 때에는 마치 신(神)이 계신 것 같이 한다’라고 하신 공자(孔子)의 가르침은 정녕(丁寧)한 것이요, 증자(曾子)께서 말씀하신 ‘신종추원(愼終追遠)(장례(葬禮)를 당하여 예절(禮節)을 정중(鄭重)히 하고 돌아가신 조상(祖上)을 추모(追慕)함)’은 후인(後人)들에게 장례(葬禮)를 후히 해야 함을 명백(明白)하게 보이신 것이다.

오직 정씨(鄭氏)들은 부조(父祖)들의 마음을 자신들의 마음으로 삼아 제사(祭祀)를 지낼 때에 마치 조상(祖上)께서 그 자리에 계신 듯한 정성(精誠)을 가지며, 돌아가신 먼 조상(祖上)을 추모(追慕)하고 그 사모(思慕)함이 독실(篤實)하여 대(代)를 내려가도 정성(精誠)이 줄어들지 말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불우헌공(不憂軒公)께서 후손(後孫)들에게 기대(期待)하고 바라는 바라, 자손(子孫)들이 이에 부응(符應)하여 공경(恭敬)히 제사(祭祀)를 받들어야 할 것이니, 장차 이를 버리고 어디에서 구(求)하겠는가?

또 공(公)의 문학(文學)과 행의(行義)는 사람들이 추중(推重)하고 모범(模範)이 되기에 충분(充分)한데, 더구나 자손(子孫)들에게 있어서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진실(眞實)로 공(公)의 이런 유덕(遺德)으로 인하여, 자손(子孫)들은 공(公)의 뜻과 사업(事業)을 부지런히 잘 이어서 공(公)의 당시 풍유 문채(風猷文采)를 더욱 빛나게 잇고 확대(擴大)시켜야 한다.

이것이 정씨(鄭氏)들이 오늘날 해야 할 급(急)한 일이면서, 나도 이렇게 하였다는 말을 즐거이 듣게 되어야 나의 이 기문(記文)이 아마도 허언(虛言)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

여러 정씨(鄭氏)들은 부디 힘써야 한다.

병인년(丙寅年) 초여름에 전주인 이우섭(全州人李雨燮)은 기문(記文)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