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민정문서' 닥나무 우수성 입증 중국 후한 이전부터 종이로 활용, 신라가 日에 기술전수 기록 남아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가는 생명체는 분명 행복할 것이다. 어떤 생명체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죽으려 하겠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게 삶이다. 나무 중에도 자신의 소리를 내면서 죽는 존재가 있다. 바로 닥나무이다. 어떤 나무든 부러뜨리면 소리가 날 테지만, 닥나무는 유달리 소리가 크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나무에게 닥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잎 떨어지는 키 작은 닥나무의 한자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저(楮)이다. 저는 나무에 글자를 적어 넣는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종이는 중국 후한(後漢) 때 채륜(蔡倫)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닥나무로 종이를 만든 시대는 그 이전이다. 닥나무로 만든 종이는 저폐(楮幣) 혹은 저화(楮貨)에서 알 수 있듯이 화폐를 말한다. 닥나무의 또 다른 한자 이름은 저상((楮桑) 혹은 구상(桑)이다. 닥나무를 의미하는 한자어에서 이 나무가 뽕나무과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종이 만드는 기술이 아주 뛰어나 다른 나라에까지 전했다. 신라에서 일본에 종이 기술을 전수한 내용은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한 사람은 고구려의 담징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 닥나무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실물은 '신라민정문서'이다. 문서는 교토의 동대사(東大寺) 뒤편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되어 있지만 건물 안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 나도 지난 여름 학생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지만 멀리서 사진만 찍고 돌아서야만 했다.
고려시대에는 종이의 쓰임이 한층 많아졌다. 특히 고려의 종이 제조 기술은 뛰어나 중국에서도 고급종이로 여겼다. 고려의 종이는 견지(繭紙)라 불렀다. 이는 종이가 비단처럼 뛰어나다는 뜻이다. 닥나무가 많이 자랐던 일본의 종이기술도 형편없었다. 조선 태종 16년(1416)에 일본 사신이 팔만대장경 중 '대반야경'을 인쇄해 줄 것을 청할 정도였다. 이처럼 우수한 제지기술 전통을 가진 우리는 종이로 만든 수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 그것을 읽고 발효시킬 인재는 드물다.
강판권(계명대 사학과 교수 · '나무세 기'대표)saam4@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