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사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봉두산 서쪽자락
대한불교조계종 제 19교구본사 화엄사 말사
전북 순창 쪽에서 곡성 동부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달려온 섬진강 물줄기가 곡성 서부에서 흘러온 보성강 물줄기를 ‘압록’이라는 합수머리에서 제 몸에 붙이고, 여기서 구례 쪽으로 빠져나가는 섬진강 본류를 뒤로 하고 보성강 물줄기를 따라 난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의 중심 사찰 태안사(泰安寺)가 나선다.
울산에서 01시에 출발하여 새벽을 뚫고 달려 4시경 도착한다.


능파각
동리산에서 흘러나온 계류를 건너는 다리 역할을 겸하고 있는 능파각. 태안사의 첫 경치이다. 능파각은 계곡 양쪽에 있는 자연암반을 이용해 낮게 석축을 쌓고 그 위에 큰 통나무 두 개를 잇대어 걸친 뒤 세웠다.



일주문



경내에서 밖으로 보이는 일주문 모습




새벽 4시. 법당안은 벌써, 기도하는 불자들의 모습이 대단한 성불이다.





주요전각으로는 대웅전, 보제루, 해회당, 선원, 능파각, 일주문 등의 당우가 있다.








신라 경덕왕 원년(742)에 선승 3인에 의해 중창되었다. 이후 통일신라 문성왕 9년(847) 혜철국사에 의해 선종사찰로 거듭 개산되어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형성하게된다. 그 뒤에 고려 태조때 광자대사 윤다가 머물면서 132칸의 건물을 짓고 대규모 절을 이룩하여 동리산파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고려초에는 송광사, 화엄사가 모두 이 절의 말사였다. 고려중기 송광사의 수선결사로 크게 사세를 떨치는 바람에 위축되고, 조선 초기 억불정책에 밀려 거개의 절들이 그랬던 것처럼 쇠락했다.

1925년에 최남선이 찾아와 신라 이래의 이름있는 절이요, 또 해동에 있어 선종의 절로 처음 생긴 곳이다. 아마도 고초(古初)의 신역(神域) 같다고 평했다. 6.25 때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15동의 건물이 불탔다. 그 뒤 다시 수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능파각에서 약 200m 되는 긴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가 화려한 다포집인 일주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부도밭이 보인다. 태안사를 중창해 크게 빛낸 광자대사 윤다의 부도(보물 제274호)와 부도비(보물 제275호)를 비롯해 석종형 부도 3기, 팔각원당형 부도 2기가 서 있다.
적인선사 혜철국사의 사리 사리탑(보물 273호)와 부도비는 한국전쟁 뒤 다시 지은 대웅전 건물 뒤쪽의 높은 터에 자리잡고 있다.

부도밭 앞쪽에는 새로 만든 연못 중앙에 삼층석탑 하나가 서 있는데, 비록 새로 만들어 끼운 부재가 더 많지만, 통일신라 석탑의 균형미가 사그라지지 않은 고려 초기의 석탑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주변에 만들어놓은 지나치게 큰 연못은 천년 고찰의 고요함을 무너뜨리는 듯해 아쉽다.







불기 2560년 5월 7일 어두운 새벽,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서 부처님전에 향 공양 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