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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7장 한국의 미래, 세계의 미래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쓰는 한반도
나는 고향이 그리워 꿈속에서도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내 고향은 서울을 지나 저 멀리 산과 바다가 있는 북한 땅 정주입니다. 내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과 생명이 있는 그곳에 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의 혈통을 받고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받아 먹고 자랐기에 그 사랑이 그대로 녹아있는 고향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그곳에서 출발했으니까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겁니다. 사람은 근본을 떠날 수 없습니다. 2004년 나는 34년간의 미국 활동을 마치고 천운이 함께하는 한반도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아침이 낮으로 바뀌는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 또 저녁이 언제 밤으로 넘어가는 지도 알지 못합니다. 어느 순간에 지나가버리는지 하늘의 일을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 인생도 그러합니다. 성공과 실패의 순간들은 모두 우리 모르게 지나가버립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에 길흉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천운을 알지 못합니다. 천운이란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며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해도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섭리하는 천운이란 게 분명 있습니다.
우주는 그 나름의 질서에 딱 맞게 움직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물들은 존재하기 이전부터 어떤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눈을 뜨고 숨을 쉽니다. 억지로 그렇게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저절로 되는 것’이 우주의 비밀을 푸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자연에는 저절로 되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저절로’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저절로 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현상들 속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방향성이 있습니다. 우주의 운, 천운이란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할 뿐 우주가 순환하는 과정에 큰 운이 닥치는 시기가 분명 있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 우주의 원리를 알면 우리나라에 닥칠 미래도 미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주의 법도와 박자를 맞춥니다. 역사에 길이 남는 사람들은 모두 우주의 법도와 박자를 맞춘 사람들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 집 앞의 허드슨 강에서 낚시를 많이 했습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고기 잡는 선수인데도 어느 날은 피라미 한 마리도 못 잡고 머쓱하게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고기들도 지나는 길과 때가 있습니다. 물이 있다고 항상 고기들이 지나가는 게 아니지요. 그걸 모르고 밤낮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려 봐야 헛수고입니다. 천운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보는 눈이 없으면 천운이 내 눈 앞에 와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천운을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한 겁니다.
세계문명의 방향은 줄곧 서진西進 하면서 발달해왔습니다. 즉 이집트의 대륙문명과 그리스·로마의 반도문명을 거쳐 영국의 도서문명이 발달했고, 다시 미국의 대륙문명으로 옮겨갔습니다. 문명은 계속 서진하여 태평양을 건너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렇지만 인류문명의 이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일본을 크게 키워준 힘이 이제는 한반도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이 한반도에서 결실을 맺을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도서문명이 대륙과 연결되려면 반드시 반도를 거쳐야 합니다. 물론 아시아에는 인도차이나 반도도 있고 말레이 반도도 있지만 그들 나라는 현대문명을 이어받을 만한 배경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오직 한반도, 우리나라만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습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참 절묘한 위치에 있습니다. 태평양 바다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일본을 대하고 있는가 하면,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연하여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의 요지가 되어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와 목숨을 건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 강국들의 관심과 이해관계가 얽혀 분단국이 된 채 완전한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4대 강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접점에 있는 한반도는 이제 강대국들의 충돌을 막아가면서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협력을 이끌어내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천운에는 반드시 막중한 책임이 따릅니다. 이제 천운을 맞이한 한반도는 이들 나라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베어링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베어링은 회전하는 기계의 축을 일정한 위치에 고정하면서 동시에 축을 자유롭게 회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제 우리 한반도가 바로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유지하면서 세계평화를 발전시키는 베어링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 역할을 위해 나는 오래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면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서둘렀고, 덩샤오핑의 중국 개혁개방 정책을 198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엔볜대학에 공과대학 설립을 후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국 땅에 발을 디딘 후, 톈안먼 사태로 중국에 투자하려던 외국자본들이 속속 중국을 떠나갈 때에도 우리는 중국에 남아 광둥성 후이저우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여 중국의 개혁개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에서 한 일이 아닙니다. 나는 사업가가 아니라 종교인입니다. 종교인은 앞날을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까지 한반도를 통해 서로 협력하고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한반도가 세계평화의 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와 소련 및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일하다가 보니 가장 기본적인 러시아어 사전, 중국어 사전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서로의 말도 모르면서 무슨 일을 함께 하겠습니까? 그때 앞날을 내다보는 뜻있는 교수들이 중한사전과 러한사전출간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 연구소의 홍일식 교수가 추진하던 중한대사전 프로젝트와 러시아어학과 교수들이 준비하던 러한사전 출간사업이었습니다. 나는 이 두 사전 편찬을 지원해주었습니다. 이 사전들이 지금까지 한중교류와 한러관계에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높은 산꼭대기에 놓인 돌일지라도 떨어질 때는 골짜기로 떨어집니다. 서양문명의 끝이 바로 그러합니다. 과학의 힘을 빌려 눈부시게 발전했다고는 하나 정신적인 몰락으로 이미 골짜기를 향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골짜기가 바로 수천 년 동안 정신문화를 쌓아온 동양입니다.
그중에서도 한반도는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만나는 장소요, 대륙문명과 해양문명이 만나는 곳입니다. 역사학자 슈펭글러는 일 년에 춘하추동이 있듯이 문명 또한 흥망성쇠를 되풀이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동안 흥했던 대서양 문명시대가 지나가고 새롭게 환태평양 문명의 시대가 열리는 시점입니다. 환태평양 문화권의 중심은 아시아입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가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전 세계 인류의 3분의 2가 아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종교가 발원한 곳도 아시아입니다. 아시아는 오랫동안 인류의 정신적인 근원이었습니다.
서양문명과 동양문명은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에서 합쳐질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천운도 점점 더 빠르게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상이 완전히 뒤집히는 변화의 시기에 한반도가 세계를 이끌 막중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편견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과거를 버리고 맑은 눈과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고난과 눈물의 땅에서 평화와 사랑의 땅으로
우리 민족이 그동안 겪었던 비참한 역사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평화의 전진기지가 될 운명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겪었던 것입니다.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은 오랫동안 고난과 역경을 참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숱한 고난을 겪었지만 그 누구도 원수로 만들어 미워하지 않은 민족입니다. 우리를 괴롭힌 이웃들이 여럿 있었지만 철천지원수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다스려야 합니다. 제 속이 다 곪아터진 다음에야 비로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법인데 우리 민족이 바로 그런 마음을 가졌습니다.
핍박받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장 가깝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에는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던 사람도 나라를 잃게 되면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하나님한테 매달려 통곡합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눈물을 흘리며 울 수 있는 마음은 복됩니다. 눈물로 젖은 마음에 하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한민족의 마음속에 눈물이 많았기 때문에 한반도가 천운을 받을 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조상을 숭배합니다. 아무리 밥을 굶고 힘들어도 조상의 묘 자리를 팔아 밥을 구하지 않은 우리 민족입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하늘을 우러르는 경천사상敬天思想을 지키며 살아왔고, 세 끼 밥보다 정신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문화민족입니다.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여 찬란한 종교문화를 꽃피웠으며 기독교를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전 세계를 대표하는 기독교의 전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러한 종교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서로 융합하며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독특한 민족으로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본래부터 종교적인 마음을 가진 종자宗子들로서 언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는 영특함을 지녔습니다. 그 우수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 우리말과 한글입니다. 이는 하늘이 내려준 보물입니다.
우리말에는 사람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갖가지 형용사와 부사가 대단히 풍부합니다. 이 세상 어떤 나라의 말도 사람의 복잡한 마음을 우리말만큼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말은 곧 그 사람입니다. 말이 섬세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섬세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한글은 또 얼마나 훌륭합니까? 나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말을 참 좋아합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니, 이렇게 아름다운 의미를 지닌 글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니 한글의 우수성이 더욱 크게 드러납니다. 자음과 모음의 단순한 조합만으로 인간이 세상에서 내는 모든 소리를 다 적을 수 있으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나는 이미 30년전부터 외국의 우리 식구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한국어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소위 한류라는 바람을 타고 한국말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일본이나 몽골, 베트남, 아프리카까지 세계 어디서나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말에는 혼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그토록 우리말을 없애려고 한 것은 우리 민족의 혼을 없애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우리말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의 혼이 널리 퍼져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문화적 영향력이 그만큼 높아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절대로 남한테 신세를 지지 않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한국사람들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여러 가지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만 우리 한국사람들은 도통 그런 것에 의지하려 들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에 기대지 않고 어떻게든 내 손으로 벌어 자식을 키우고 부모를 모시려고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자주성이 강합니다. 전 세계에 선교사를 보내보면 그런 기질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낯선 나라에 파견되어도 별다른 두려움이 없습니다. 선교사들뿐 아니라 상사직원들도 그렇습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지 사명을 받으면 모든 것을 떨치고 갑니다. 망설이고 주저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누구보다 부지런합니다. 한 자리에 머물러있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닙니다. 세계 어느 곳도 한국사람이 없는 데가 없을 정도로 진취적입니다. 또한 어느 한 가지에 매이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능력을 발휘합니다. 한 가지 일이 막히면 좌절하기보다 용기 있게 다른 일을 찾아 뛰어갈 만큼 적응력도 뛰어납니다.
마을에 큰 잔치가 열리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난리가 나지요. 그럴 때 아무 말 없이 말석에 가서 앉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시대의 주인입니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을 먼저 챙기는 사람은 다 낙제입니다. 밥 한 술을 먹을 때도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반도에 찾아오는 천운을 맞이하려면 나보다 더 소중한 남이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빼앗겻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소중한 나라를 빼았겼고, 뒤이어 국토가 두 동강이 나사랑하는 부모 형제들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는 눈물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향해 울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를 위해 울던 것보다 더 진실하고 절박하게 세계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것이 천운을 맞이한 한반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한반도의 천운이 세계로 뻗어나가 한민족 중심의 세계평화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21세기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점
20세기는 격동의 세기였습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보다 더 많은 일들이 1백 년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전쟁을 치르며 공산주의가 거세게 일어났다가 사라진 세기입니다. 또 하나님을 저버리고 물질에 매몰된 세기였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어떨까요? 과학이 발달하면서 더 이상 종교가 필요 없어졌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간의 정신세계가 없어지지 않는 한 종교의 역할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종교의 세계로 전도하려고 노력하는 까닭은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세상은 더 이상 전쟁과 분란이 없는 평화세계가 됩니다. 궁극적으로 종교가 갈 길은 평화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원하여 이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자기의 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라고 우기며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평화와 화해, 상생을 위해 열심히 일하길 바라십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 때문에 집안에 분란이 일어난다면, 나는 주저없이 가정을 먼저 지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하나님의 완전한 세계에 들어서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갈라진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충돌하는 문명의 합치점을 찾아낼 것입니다. 앞으로 인류를 이끌어갈 사상은 그동안의 모든 종교와 모든 사상을 다함께 아우르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난날처럼 한 나라가 앞장서서 인류를 끌고 나가던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민족주의의 시대도 끝이 났습니다.
지금처럼 종교와 인종을 앞세워 같은 무리들끼리 뭉치는 시대가 계속된다면 인류는 전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습과 전통을 넘어서지 않으면 평화의 시대가 결코 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을 조종해온 그 어떤 주의나 사상, 종교도 다가올 미래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미래에는 불교도 넘어서고 기독교도 넘어서고 이슬람교도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나와야 합니다. 내가 수십 년 동안 종파도 넘어서고 종교도 넘어서야 한다고 목이 터지도록 주장해온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지구상에는 200개가 넘는 나라들이 있고 그 나라들마다 모두 국경을 갖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서로를 구분하는 국경이 있습니다. 국경으로 나뉜 나라들은 영속할 수 없습니다. 국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종교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야 할 종교가 수많은 종파로 나뉘어 저희들끼리 싸우기에 바쁩니다. 자기 종교, 자기 교파 제일주의에 빠져 세상이 변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종교의 담을 허물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평화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종단과 종파들은 부질없는 싸움을 그치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가면서 하나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한 종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의 길로 나서야 합니다. 행복한 미래는 물질적인 번영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종교간의 이해, 정신적인 화합을 통해 사상과 문화, 인종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게 시급합니다.
나는 전 세계의 다양한 종교인들을 향해 세 가지 부탁을 합니다. 첫째는 다른 종교의 전통을 존중하고 종교 간의 분쟁이나 충돌을 힘써 막을 것, 둘째는 모든 종교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며 세계에 봉사할 것, 셋째는 세계평화를 위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모든 종교 지도자가 참석하는 조직으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오른쪽 눈은 왼쪽 눈을 위해 있고, 왼쪽 눈은 오른쪽 눈을 위해 있습니다. 또한 두 눈은 인간 전체를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 몸의 사지가 다 그렇습니다.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종교도 자기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를 위해 존재합니다. 세계평화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점은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현실세계에서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평화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차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교육사업에 정성을 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채 자립도 하기 전에 선화예술학교를 설립했고,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선문대학교 등 여러 학교를 세웠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에 미국의 브리지포트 대학을 비롯한 많은 학교를 세웠습니다. 나의 교육 이념은 선화예술학교를 세울 때처럼 하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인재를 키우는 것입니다.
학교는 진리를 가르치는 성소와 같은 곳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알아 그 존재를 현실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 존재의 근원을 알아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세계의 운명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인류의 존재 목적을 깨달아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가르쳐야만 비로소 알게 됩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경쟁에서 이긴 자가 행복을 독차지하는 승자 독식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닙니다. 교육은 인류가 함께 잘 사는 평화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 온 교육의 이념과 방법을 인류 공동의 목표를 위한 것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미국이 미국만을 위한 교육을 하고 영국이 영국의 이익만을 위한 교육을 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뿐입니다.
교육자들은 저 혼자 잘 사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온갖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종교학자들의 역할은 더 중요합니다. 종교학자들이 가르쳐야 할 것은 자기 종교의 복잡한 이론이나 우월성이 아니라 인류를 사랑하고 평화세계를 이루는 지혜입니다. 그들이 앞장서서 인류가 한 형제이며 세계는 한 가정이라고 하는 평화의 원리를 후손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결코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혜 중의 지혜는 하나님의 심정과 이상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하늘을 찌를 듯한 21세기에도 종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따라서 전 세계의 종교는 인류의 나아갈 바를 정확히 알고, 지금 당장 크고 작은 이익 싸움을 그만 두어야 합니다. 체면을 앞세운 명분 싸움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 이상세계를 건설하는 일에 부지런히 나서야 합니다. 갈등과 증오로 얼룩졌던 지난날은 이제 그만 잊고 평화로 풀어야 합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습니다. 인류를 이상세계로 이끌어 가는 종교인들은 스스로가 평화의 사도인 것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화 사업으로 실천하는 창조의 역사
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세계적인 냉전구도를 결정적으로 바꾸는 평화의 제전이 될 것을 예감하고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우리 식구들을 서울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 선수단을 안내하고 응원하는 일을 맡기고, 한국의 기념품을 선물하고 음식도 대접하도록 했습니다. 예측대로 서울 올림픽은 중국과 소련이 모두 참가하여 공산진영, 자유진영 모두가 화합하는 평화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개막식 당일, 나는 잠실 주경기장 일반 관람속에 앉아 평화와 화합의 잔치를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올림픽이 끝난 직후 그 열기를 이어받아 일화천마 프로 축구단을 창설했습니다. 일화천마팀은 우승도 여러 차례 하면서 축구팀으로서 명성을 쌓아오고 있습니다. 그 후 몇 년 뒤에는 또 삼바축구의 본고장인 브라질에서 세네와 소로까바라는 프로 축구단을 창단하여 지금껏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스포츠 중에서 특별히 축구팀을 만든 것은 내가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복싱도 하고 한국 전통 무술도 했지만, 나이를 먹어서까지 좋아서 찾게 되는 스포츠는 단연 축구입니다. 학창시절에는 학교 운동장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공을 찼지만 지금은 보는 것을 즐깁니다. 서울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는 텔레비전 석 대를 나란히 놓고 중계하는 모든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특히 한국이 나오는 경기는 한 게임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축구는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내가 아무리 공을 잘 몰아가도 나보다 재빠르고 솜씨 좋은 상대팀 선수가 순간적으로 내 공을 채가면 결국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공을 잘 몰아가서 슛을 날리게 되더라도 골대에 맞고 튀어나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공을 몰아가는 것은 내가 할 일이지만 공을 넣는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박지성 선수와 같이 절묘한 순간에 도움을 주는 동료도 있어야 하고 악착같이 상대팀을 따돌리는 이영표와 같은 선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람은 경기장 밖에서 팀 전체를 살펴보는 감독입니다. 직접 뛰며 공을 넣지는 않지만 감독의 힘은 선수들 전체를 합한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감독은 마치 하나님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보시며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는 것처럼 선수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감독의 사인에 잘 따르기만 하면 경기는 백발백중 이깁니다. 그러나 감독이 아무리 사인을 보내줘도 어리석은 선수가 알아듣지 못해 제멋대로 공을 몰고 다니면 경기에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축구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이지만 국가 간의 평화와 협력 증진에도 큰 힘을 미칩니다. 전 세계 스포츠인들의 잔치인 올림픽보다 월드컵 중계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두 배나 많다고 하니 인류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굴러가는 공 하나를 놓고 나라와 인종, 종교, 문화를 넘어선 화합의 장을 만드는 힘이 축구에 있습니다. 축구와 인류의 평화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의 파트너입니다.
브라질의 체육부 장관까지 지냈던 축구황제 펠레가 한남동 우리 집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펠레를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기억하지만, 내가 만난 그는 훌륭한 평화운동가였습니다. 그가 축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세계평화였기 때문입니다. 나를 만난 펠레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예전에 아프리카 가봉에서 축구경기를 치른 적이 있는데, 당시 그곳은 전쟁중이었습니다. 폭탄이 쏟아지는 속에서 어떻게 경기를 했을까요? 고맙게도 경기를 하는 동안은 휴전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축구가 단순히 공을 가지고 뛰는 스포츠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축구는 세계평화를 만들어가는 인류 공통의 훌륭한 수단입니다. 그 이후 저는 축구를 통해 세계평화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펠레 선수가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나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경쟁이 심한 세상을 살다보면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스트레스는 삶을 긴장시키고 마음의 평안을 앗아가며, 스트레스가 쌓이면 저마다 신경이 곤두서서 공연한 싸움을 벌이기 십상입니다. 그러한 긴장상태를 건전하게 풀어주는 것이 바로 스포츠와 예술 활동 같은 취미 생활입니다. 스포츠와 예술은 인간의 억눌린 욕구를 풀어주는 방법일 뿐 아니라 인류를 하나로 묶는 도구입니다. 내가 축구팀을 운영하고 발레단을 이끄는 이유는 그러한 활동이 바로 평화를 가져오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펠레는 이미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뜻을 함께한 우리는 그 자리에서 국제적인 규모의 새로운 축구경기인 '피스컵Peace Cup'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부터 2년마다 피스컵 대회를 열어 세계의 유명한 축구팀을 우리나라로 불러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2009년에 열리는 제4회 대회부터는 개최지를 세계 여러 나라로 바꿀 계획입니다. 우선 2009년에는 축구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열 예정입니다. 스페인 최고의 클럽 팀인 레알 마드리드 팀과 세비야 클럽 팀, 프랑스의 리옹 팀을 비롯해서 영국의 명문 클럽 팀이 출전해서 세계 제일의 축구경기를 펼칠 것입니다. 피스컵을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사정이 어려운 여러 나라의 유소년 축구 프로그램을 돕는 경비로 씁니다. 특히 신체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 축구를 통해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UN난민기구와 함께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에서 유소년 축구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라이베리아는 15년 넘게 계속된 부족 간의 전쟁으로 사람들의 삶이 무척 고달픈 곳입니다. 잦은 전쟁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바람에 UN의 특별보호를 받는 그곳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축구를 하며 평화를 노래했습니다. 공을 차면서 즐기는 동안 부족 간에 서로 화합하는 정신을 저절로 몸에 익히는 겁니다.
우리가 정성들여 준비하는 일이 또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의 한가운데 멋진 축구장을 짓는 일입니다. 두 나라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유럽의 유명한 코치를 불러다 축구 아카데미도 열 계획입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어른들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더라도 어린이들은 축구장에 모여 공을 차게 하려고 합니다. 모두들 비현실적이라며 머리를 내젓지만 우리는 반드시 해낼 겁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장관은 축구장을 이스라엘 쪽에 지어야 한다고 하고 팔레스타인 장관은 또 자기네 지역에 지어야 한다고 고집하지만 나는 반드시 두 땅을 잇는 곳에 지을 겁니다. 나는 주위의 압박에 밀려 꿈을 접는 사람이 아니라 고집불통 같은 의지로 꿈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 중의 하나가 발레단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발레 스타까지 생겨났습니다만 내가 발레단을 만들던 당시는 정말 발레의 불모지나 다름없었습니다. 발레를 볼 때마다 나는 하늘나라의 예술이 바로 저러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발레리나가 발끝으로 꼿꼿이 서서 머리를 하늘로 치켜들면 그 자세만으로도 완벽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됩니다. 그렇게 간절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발레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아름다운 몸을 이용해서 그분께 사랑을 표현하는 최고의 예술입니다.
1984년에 창설된 유니버설 발레단은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을 시작으로 <돈키호테>와 <지젤> 그리고 순수 창작발레인 <심청> <춘향전>을 공연하면서 이제는 국제적인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유명 무대에서 초청을 받고 있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무용수들은 역동적인 서양 발레에 한국인 특유의 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해 동서양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연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미국 워싱턴에 발레 학교도 갖고 있습니다. 나는 또 '뉴욕시티 심포니오케스트라'와 국제합창단인 '뉴 호프 싱어즈'도 만들었습니다.
예술은 하나님의 창조사업과 닮아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듯이 하나님도 자신이 지으신 인간과 세상을 위해 온 마음을 쏟으셨을 것입니다. '물이 있으라 하니 물이 있었다'란 성경 말씀은 말 한마디에 물이 저절로 생긴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물을 만들고 땅을 만드는 일에 가지신 모든 힘을 쏟아부으셨던 것처럼 무대 위에 선 발레리나의 몸짓도 죽을 힘을 다한 후에 탄생한 창조의 열매입니다.
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90분 동안 축구선수는 죽을 힘을 다합니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을 향해 달려가며 골대를 향해 내지르는 발길질 한번에 생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을 때와 같은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100퍼센트 완전히 쏟는 일, 한순간을 위해 나를 송두리째 바치는 일은 무엇보다 위대합니다.
바다의 주인이 세계를 장악한다
바다를 장악하는 나라가 세계의 주역이 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일입니다. 16세기의 영국을 생각해보십시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해양정책을 강화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모두 동원해 튼튼한 배를 만들고 용맹스러운 사람들을 배에 태워 바다로 내보냈습니다. 그들은 바다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영국은 원래 바다에 강했던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바이킹에게 침략을 당하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다를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양권을 강화한 엘리자베스 1세의 피나는 노력으로 영국은 바이킹과 스페인을 능가하는 해양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대서양의 작은 섬나라 영국은 5대양 6대주에 무수한 식민지를 거느린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문명은 과학기술을 발달시켰습니다. 나침반을 들고 세계의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깃발을 꽂아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세상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을 중요시한 동양세계는 물질을 위해 정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물질과 정신이 충돌하면 차라리 물질을 버리는 곳이 동양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동양은 서양에 비해 사는 게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정신이 물질에 의해 지배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양의 물질문명이 타락의 길을 걸으면서 동양에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 로마에서 발달했던 문명이 영국과 미국을 거쳐 한반도를 둘러싼 태평양 지역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태평양 문명권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문명시대의 주역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강국으로 급성장한 것은 아시아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결코 우연이 아닌 역사적 필연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것을 미국이나 러시아가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미국과 일본, 러시아, 중국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 대비해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선 일본과 미국을 엮고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거대한 띠를 만들어 우리를 지켜야 합니다. 무엇으로 그 나라들을 엮을 수 있을까요? 하나 되는 사상이고 하나 되는 마음입니다. 지구촌의 인류가 인종과 국가와 종교를 넘어 하나라는 사상만이 국가 간의 전쟁을 막고 평화세계를 이루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위험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나 되는 평화사상을 세상에 심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대비해야 할 것은 해양시대에 살아갈 힘을 갖추는 일입니다. 태평양은 바다입니다. 바다를 다스릴 힘이 없다면 태평양 문명권의 주역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천운이 도래한다 해도 내가 미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중심이 된 해양시대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마땅히 해양시대의 주역이 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바다에는 물고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바다의 더 큰 보물은 바로 에너지원입니다. 석유의 매장량이 감소하면서 에너지원을 둘러싼 위기감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석유가 바닥이 난다면 인간의 문명세계는 그대로 암흑이 되고 맙니다. 옥수수를 이용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한다지만 인류가 먹고 살 식량도 부족한 형편에 그것이 가능할 리 만무합니다. 진정한 대체 에너지는 바다에 있습니다. 바다 속에 묻힌 수소 에너지에 인류의 미래가 있습니다.
지구의 3분의 2가 바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류를 먹여 살릴 원자재의 3분의 2가 바다에 묻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바다를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고는 미래를 열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미 선진국들은 바다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캐내고 심층수를 끌여올려 비싼 가격에 팔고 있습니다. 바다 속에서 자원을 찾아내는 일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바다에 매달려 온 인류가 먹고살 날이 머지않아 곧 닥치게 됩니다.
해양시대는 저절로 열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바다로 나가야 합니다. 바다로 달려가 배를 타고 파도와 싸워야 합니다. 그런 용기가 없어서는 결코 해양시대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바다를 점령하는 나라가 이 세상의 패권을 쥘 수 있습니다. 바다를 점령한 나라의 문화와 언어가 세계의 언어와 문화가 되는 세상이 곧 옵니다. 따라서 바다를 창조주의 뜻에 맞게 관리하고 바다의 자원을 잘 운용해야 합니다.
바다는 세계를 결속시키는 구심점이 될 것입니다. 바다의 주인이 되려면 그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나는 고기를 잡는 일을 훈련시킬 때 커다란 배 한 척에 작은 배 열 척을 함께 내보냅니다. 항구를 출발할 때는 큰 배에 딸려 나가지만 넓은 바다에 닿는 순간 작은 배를 탄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책임져야 합니다. 바람이 어디서 어디로 부는지, 바다 밑의 상황은 어떠한지, 고기들은 어느 길로 가는지를 스스로 학습해 해결해야 합니다.
해양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기회
나는 알래스카 정신이란 말을 즐겨 씁니다. 알래스카 정신이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바다에 나갔다가 밤 열두 시를 꼬박 넘기고 이튿날 새벽에 돌아오는 겁니다. 그날 잡아야 할 책임량을 다 못하면 채울 때까지 고기를 잡아야만 돌아옵니다. 그렇게 지독하게 견디는 법을 배워야만 뱃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고기를 잡는 것은 유람이 아닙니다. 바다 속에 고기가 아무리 지천이라 해도 저절로 잡히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지식과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물을 꿰맬 줄도 알고 닻줄을 맬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지독한 훈련을 받은 사람은 고기잡이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든지 새로운 환경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합니다. 고기잡이 훈련은 그런 리더를 키우는 일입니다.
바다에서 패권을 쥐려면 세계를 누비고 다닐 만한 배와 잠수함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고의 조선국입니다. 해양대국이 될 수 있는 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므로 이제는 바다에 직접 나가는 사람이 늘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해상왕 장보고의 후예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파도와 싸워 이기던 전통이 우리에게 있으니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파도를 무서워합니다. 파도는 바람을 타고 물결을 만듭니다. 바람이 불어 바다에 물결이 일어야 바다 속에 산소가 생깁니다. 바람이 불지 않고 물결이 없는 잔잔한 바다가 계속되면 바다는 죽고 맙니다. 파도가 귀한 것을 알고 나면 더 이상 파도가 무섭지 않습니다. 거센 바람이 불고 파도가 사나워도 그것이 바다 속의 고기들을 살리는 길인 것을 알면 오히려 그것을 바다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바다 밑으로 30미터만 내려가도 파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잠수함을 타고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선선합니다. 적당한 온도의 잔잔한 물 속에서는 온갖 고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 다니며 춤을 춥니다. 마치 리틀엔젤스처럼 색색이 예쁜 옷을 입고 살랑살랑 지느러미를 흔듭니다.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곧 올 것입니다.
해양시대가 다가온다는 것은 우리나라에 세상을 바꿀 기회가 온다는 말입니다. 모든 생명체를 양육하고 품어주는 바다는 여성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육지는 남성을 상징하지요. 바다에 떠있는 섬나라는 여성을 나타내지만 대륙의 끝자락에 붙은 반도 국가는 남성을 나타냅니다. 반도 국가의 국민들은 바다와 대륙의 온갖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서 살아온 터라 남달리 용맹하고 민족성이 강인합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반도 국가에서 인류의 문명이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대륙으로 뻗어나가고 거친 해양을 헤쳐나가는 진취성과 강인한 탐험정신이 있었기에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울 수 있었습니다.
흑조黑潮에 대해 들어보았습니까? 흑조는 달의 인력에 의해 태평양을 중심으로 일 년에 4천 마일을 도는 물줄기를 말합니다. 태평양을 휘돌리는 물줄기니 그 힘은 거대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흑조가 돌아가는 힘에 의해 5대양이 움직이니 만일 흑조가 없다면 바닷물이 돌지 않아 모두 죽고 맙니다. 아무리 크고 유장한 강물일지라도 결국은 바다로 가듯이 아무리 크고 웅장한 바다라도 흑조의 힘찬 물줄기를 따라 움직입니다. 우리 민족은 세계를 이끌 흑조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의 생명력을 한 곳으로 응집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태평양 문명권의 중심이 될 곳을 찾으려 여러 차례 남해안 일대를 돌아본 후에 마침내 여수와 순천을 선택했습니다. 거울처럼 잔잔하고 맑은 여수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일본을 크게 물리쳤고 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바다를 끼고 있는 여수는 영호남이 만나는 곳이며 지리산의 끝자락과 맞닿아 6·25사변 후에는 좌익과 우익이 맞서 싸웠던 민족의 아픔이 서린 땅이기도 합니다. 갈대밭으로 유명한 순천만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리아스식 해안을 가진 아름다운 바닷가입니다. 맑은 물이 출렁이는 바다에 나가면 온갖 물고기가 잡히고, 잔잔한 만에서는 전복과 미역이 자랍니다. 또 드넓은 갯벌엔 꼬막을 비롯한 각종 조개와 세발낙지가 지천인 곳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보고 산에 올라가 살펴보아도 다가올 해양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거점으로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는 아름다운 땅입니다.
나는 지금 여수를 중심으로 남해안을 개발 중입니다. 그 준비를 위해 거문도를 비롯해서 여러 섬들을 돌며 여러 달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 마을에서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으며 살아온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고 허름한 여인숙에서 먹고 자면서 세밀하게 조사했습니다. 입으로만 조사하지 않고 눈과 발로 일일이 보고 다니며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바다에 어떤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어떤 바다에 무슨 그물을 던져야 하는지, 어디에 무슨 나무가 자라며 어느 집에 중풍 걸린 노인이 혼자 사는지'를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남해안에 대한 조사가 모두 끝나던 날, 그때까지 나를 도와주었던 마을 이장을 비행기에 태우고 알래스카로 갔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으니 나도 내가 아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낚시를 하며 알래스카에 무슨 물고기가 살고 어떻게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지식이라도 그렇게 서로 나누어야 내 마음이 편합니다.
내가 여수 개발을 시작하자마자 여수시는 2012년 해양엑스포 개최지가 되었습니다. 세계박람회EXPO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축제입니다. 엑스포가 열리는 6개월 동안 전세계 154개 회원국들이 각종 전시회를 벌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이목이 여수에 집중되는 것은 물론이며 선진 기술과 문화가 한꺼번에 여수로 모여듭니다. 여름날 구름이 사나운 속도로 몰려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한번 바람을 타기 시작한 구름은 삽시간에 산을 넘고 바다를 넘습니다. 우물쭈물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구름 떼가 몰려오듯 세계가 여수를 향해, 우리 한반도를 향해 모여들게 됩니다.
나는 남해안에 있는 섬과 섬을 모두 연육교로 연결하고 세계 각국의 배를 타는 사람들을 먹이고 재울 콘도미니엄을 지을 계획입니다. 먹고 놀자는 콘도미니엄이 아닙니다. 미국인, 독일인, 일본인, 브라질인, 아프리카인들이 비록 서로 다른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더라도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은 한집에서 하도록 만들어 인류가 한식구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습니다.
해양시대는 우주시대이기도 합니다. 머지않아 항공과학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다가옵니다. 그때 가서 우주산업을 준비하는 것은 늦습니다. 나는 지금 김포에 항공산업단지를 조성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콜스키 헬리콥터를 우리 손으로 만들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태극 마크를 단 헬리콥터가 전 세계의 바다와 하늘을 누비는 날이 올 것입니다.
민들레 한 포기가 황금보다 귀하다
현대사회의 3대 난제는 공해와 환경보전, 그리고 식량입니다.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소홀해도 인류는 멸망하고 맙니다. 지구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물질에 대한 끝없는 탐욕이 자연을 해치는 심각한 공해를 불러일으켜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인류를 보호해주는 오존층까지 파괴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인류는 자신이 만든 물질문명의 덫에 걸려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나는 브라질의 판타날 지역을 지속·보전하기 위한 활동을 20년 가까이 해오고 있습니다. 판타날은 브라질과 볼리비아, 파라과이에 걸쳐있는 세계 최대의 습지로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록돼 있습니다. 나는 판타날의 생물체를 하나님이 지으신 원형대로 보전하면서 보호하는 일을 세계적인 환경운동으로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 동물과 식물이 하나로 얽혀 살고 있는 판타날은 참으로 묘한 곳입니다. '아름답다, 대단하다'는 단순한 말로는 결코 그 가치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판타날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집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진책 중 하나입니다. 판타날은 흰목 꼬리감기 원숭이와 짖는 원숭이, 마코 앵무새, 재규어, 아나콘다, 카이만과 같은 진귀한 동물들이 살고 있는 인류의 보물 창고입니다.
판타날을 중심으로 아마존 강 유역의 생물들은 창조 당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판타날은 만물 창조의 원초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수없이 파괴했습니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멸종된 동물이며 식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만 판타날에는 아직도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의 원형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나는 판타날에 새 박물관, 곤충 박물관을 만들어 멸종된 종자와 창조의 원형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판타날은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지일 뿐 아니라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도 합니다. 판타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산소를 만들어내는 '지구의 허파'이자 '자연의 스펀지', 그리고 '온실가스 저장고'입니다. 그러나 이런 판타날이 브라질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한해가 다르게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지구의 주요 산소 공급원인 아마존 지대가 망가지면 인류의 미래는 암흑과 같습니다.
또한 일본 면적의 두 배만한 크기의 판타날 호수에는 3천6백 가지의 물고기가 삽니다. 그 중에는 무게가 20킬로그램도 넘는 황금빛의 '도라도'라는 고기도 있습니다. 낚싯줄에 도라도가 걸리면 내 몸이 강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온 힘을 다해 낚싯줄을 걷어 올리면 황금빛 비늘을 빛내면서 공중으로 힘껏 솟아오릅니다. 그렇게 몇 차례를 솟구쳐도 힘이 남아 버둥거립니다. 물고기가 아니라 곰이나 호랑이처럼 힘이 장사입니다.
판타날의 호수는 언제나 깨끗합니다. 물 속에 무얼 던져넣어도 벼락같이 깨끗해집니다.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어느새 깨끗하게 만들어버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 물고기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기들은 저마다 먹는 게 다릅니다. 그런 고기들이 뒤얽혀 살면서 물을 더럽히는 것들까지 다 먹어치웁니다. 먹이를 먹는 자체가 물을 깨끗이 하는 청소작업이기도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 인간들과 다른 점입니다. 물고기들이 사는 목적은 자기를 위해 사는 게 아닙니다. 주변을 깨끗이 하면서 보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서로를 위해 살아갑니다.
판타날 호수의 부레옥잠 잎 뒷면을 보면 벌레들이 새까맣게 들러붙어 있습니다. 벌레만 있다면 부레옥잠이 살 수 없겠지만 그것을 잡아먹는 물고기가 있어서 벌레도 살고 부레옥잠도 살고 물고기도 삽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모두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살아갑니다. 자연이 이렇게 위대한 걸 가르쳐줍니다. 판타날에 아무리 고기가 많아도 자꾸 잡아들이면 어족이 줄어듭니다. 고기를 보호하려면 양식을 해야 합니다. 판타날의 고기가 귀할수록 더 많은 양식장을 만들어 고기를 길러야 합니다. 고기만이 아니라 곤충도 기르고 새도 기르고 동물도 길러야 합니다. 곤충을 기르는 일은 세상에 더 많은 새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판타날은 이 모든 것을 키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귀중합니다.
판타날에는 물고기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강가에는 파인애플과 바나나 나무, 망고 나무가 즐비하게 자랍니다. 물이 없는 밭에 벼를 심어도 3모작이 넘칠 정도로 벼가 잘 자랍니다. 그렇게 땅이 좋으니 콩이나 옥수수 같은 것은 씨만 뿌리면 사람의 손을 빌려 가꿀 것도 없이 지천으로 열립니다. 드넓은 초원에는 타조가 성큼성큼 걸어 다닙니다. 타조는 사람이 등에 타도 될 만큼 힘이 좋습니다.
한번은 배를 타고 파라과이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강가의 민가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배가 고프다는 걸 눈치 챈 그곳에 사는 농부가 금방 밭에서 고구마를 캐주었는데 그 크기가 수박만했습니다. 더구나 한번 캐내고 그대로 넝쿨을 놔두면 몇 년이고 다시 고구마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심지 않아도 해마다 고구마가 열린다니 먹을거리가 부족한 나라에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습지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경제적인 이익을 내세웁니다만 실제로 판타날은 습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경제적인 가치가 높습니다. 판타날에는 검은 소나무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데 얼마나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한지 나무에 말뚝을 박아도 백 년을 넘게 산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흑단'이라고 불리는 고급 목재인데 잘 썩지 않아 쇠보다 수명이 길다고 합니다. 그렇게 귀한 소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 숲을 이룬 경관을 상상해보십시오. 나는 판타날 4백 헥타르의 땅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심은 나무들로 판타날이 더욱 아름다워지고, 거기서 만들어진 풍부한 산소가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것입니다.
자연을 망가뜨리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입니다. 지금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지구 환경이 훼손된 것은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크게 더 빨리 성공하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지구가 훼손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자연을 구하는 일에 종교인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인류를 위해 주신 선물입니다. 자연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창조 당시의 풍요롭고 자유로운 상태로 되돌리는 일을 미룰 수는 없습니다.
판타날이 자연의 보물창고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판타날을 둘러싼 싸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보호하고 가꾸어야 할 곳이 탐욕스런 인간들의 전쟁터로 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는 10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판타날로 불러 '자연을 보호하고 지구를 지키는 법'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세계의 환경전문가와 학자들도 모두 모아 판타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합니다. 판타날이 더 이상 인간의 무자비한 욕심 때문에 파괴되지 않도록 파수꾼이 되어 지키고 있습니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지자 환경운동을 하는 단체가 많아졌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좋은 환경운동은 사랑을 전파하는 정신운동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면 무엇이든지 좋아하고 아낍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은 아끼고 사랑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자연을 주셨습니다. 자연을 이용해서 먹을 것을 얻고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뜻입니다. 자연은 나만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아닙니다. 자연은 대대손손 우리 자손들이 계속해서 먹을 것을 얻고 몸을 기대 살아가야 할 터전입니다.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지름길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풀 한 포기를 보고도 눈물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붙들고 울 수 있어야 합니다. 바윗돌 하나, 바람 한 점에도 하나님의 숨결이 숨어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를 사랑의 대상으로 느껴야 합니다. 박물관에 있는 작품 하나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작품을 당할 수 없습니다. 길가에 밟히는 민들레 한 포기가 신라의 금관보다 귀합니다.
가난과 기아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법
배고프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릅니다. 배고픈 시간이 하나님 앞에 제일 가깝게 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배고플 때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행여나 저 사람이 내 어머니가 아닌가, 내 누님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 누구든지 나를 도와줄 사람을 기다리는 거지요. 그럴 때 선한 동정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배고픔은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에 갔을 때 내가 가장 처음 한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줄 트럭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인 미국에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니 빈곤한 나라의 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합니다. 전 세계를 돌아보며 느끼는 가장 다급한 위험은 식량문제입니다. 식량문제야말로 한시도 미룰 수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루에만 2만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고, 내 아이가 아니라고 모른 척 해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굶주림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더욱 근본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나는 두 가지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값싼 비용으로 먹을거리를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을 이기고 나올 기술력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식량문제는 앞으로 인류에게 매우 심각한 위기를 안겨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한된 육지에서 생산되는 것만으로는 지구상의 인류를 모두 먹여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바다는 미래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내가 수십 년 전부터 끊임없이 바다를 개척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이상적인 평화세계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알래스카에서는 15인치 이하의 명태를 모두 비료로 만들어버립니다. 훌륭한 음식이지만 그걸 먹을 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비료로 만드는 겁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서양 사람들은 우리가 쇠꼬리를 달라고 하면 거저 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이 즐겨먹는 고기의 뼈며 내장을 먹을 줄 몰랐던 것입니다. 생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으로 잡은 물고기의 20퍼센트 이상이 그냥 버려집니다. 나는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픕니다. 생선은 쇠고기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고급 단백질입니다. 그런 걸 어묵이나 소시지로 만들어 아프리카에 나눠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본격적으로 생선을 저장하고 가공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고기를 아무리 많이 잡아도 뒤처리를 잘못하면 다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생선이라도 신선한 상태로 8개월 이상을 넘기지 못합니다. 냉동 창고에 잘 얼려두더라도 얼음 사이에 바람이 들어 고기에서 물기가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생선에 물을 끼얹어 다시 얼리지만 이미 제맛을 내기는 어려우니 사실상 버린 물건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깝게 버려지는 고기들을 모아 가루로 만드는 일을 성공했습니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도 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해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선가루, 즉 '피시 파우더fish powder'라고 부릅니다. 생선을 가루로 만들면 무더운 아프리카에서도 손쉽게 보관하고 운반할 수 있습니다. 피시 파우더는 98퍼센트가 단백질 덩어리인 고단백 중의 고단백으로 굶어죽는 인류를 살릴 수 있습니다. 피시 파우더로 빵도 만들 수 있습니다. 살아서 펄펄 뛰는 고기가 10분도 채 되지 않아 가루가 되어 나옵니다. 이렇게 신선한 피시 파우더는 르완다와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아프가니스탄, 수단, 소말리아 등에 공급되어 배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피시 파우더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앞으로는 더 많은 곳에 생선 가공공장을 세울 참입니다.
바다 속에는 무궁무진한 식량이 들어있지만 인류를 식량문제에서 구원할 가장 훌륭한 열쇠는 '양식'입니다. 도시의 고층 건물들처럼 앞으로는 물고기를 양식하는 빌딩이 생길 겁니다. 파이프를 이용하면 높은 빌딩이나 산 위에서도 양식을 할 수 있습니다. 양식으로 전 세계 사람을 모두 먹이고도 남을 식량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바다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복덩어리입니다. 나는 바다에 나가면 얼굴이 새까맣게 타도록 고기잡이에 열중하며 철갑 상어도 잡고 청새치도 잡습니다. 내가 직접 고기를 잡는 이유는 고기 잡을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입니다. 고기를 잡을 줄 몰랐던 남미 사람들을 데리고 강을 따라 배를 타고 몇 달을 떠돌며 낚시하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내가 직접 엉킨 그물을 걷고 서너 시간씩 걸려 푸는 방법을 보여주면서 가르쳤습니다.
값싼 비용으로 먹을거리를 충분히 공급받기 위해서는 인류의 마지막 보물창고인 바다와 아직 원시림인 채 버려져 있는 대초원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무덥고 습한 그곳에 직접 들어가 나를 던져 헌신하는 수고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열대지방의 대초원을 개발하는 것은 인류를 사랑하는 열정과 헌신 없이는 해낼 수 없습니다.
브라질의 자르딘은 생활하기에 무척이나 불편한 곳입니다. 날씨는 덥고 이름 모를 벌레들이 사정없이 물어뜯습니다. 나는 그런 곳에서 새들과 친구가 되고, 뱀을 친구 삼으며 살았습니다. 신발을 신지도 못했습니다. 맨발로 자르딘의 붉은 흙을 밟고 다니는 내 행색은 영락없는 농부입니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나는 또 영락없는 어부입니다. "어,저 사람 진짜 농부다! 진짜 어부다!" 이런 소리를 들어야만 원시림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깨끗하고 안락한 잠자리에서 여덟 시간씩 잠자고 세 끼 밥을 찾아 먹고 시원한 나무그늘에 누워 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파라과이를 개발할 때의 일입니다. 올림포에 게딱지만 한 집을 얻어서 우리 식구들 여럿이 같이 살았습니다.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아침이면 식구들끼리 차례를 정해야 했지요. 거기서도 나는 새벽 3시만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운동을 하고 낚시를 나갔습니다. 그 바람에 같이 지내던 식구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새벽에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 낚싯밥을 만드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그런데다 배를 타러 나가려면 남의 목장을 여러 개 지나쳐야 했습니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목장의 잠긴 문을 따려니 금방 열지 못하는데 그것을 보고 내가 벼락같이 소릴 질렀습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내가 들어도 깜짝 놀랄 정도로 무섭게 소리를 질러대니 식구들이 참으로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일분 일초가 급한 사람입니다. 허투루 흘려보낼 시간이 잠시도 없습니다. 평화세계가 이뤄질 때까지 해야 할 일들이 계산기에서 영수증 찍혀나오듯 눈에 선하니 내 마음이 무척 급했습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강에서 낚시를 하려면 모기가 새카맣게 몰려듭니다. 모기 침이 얼마나 센지 청바지도 뚫고 들어와 사정없이 물어뜯습니다. 동이 트기 전이라 낚시의 찌가 보이지 않을 때면 낚싯대에 흰 비닐봉지를 묶어 던져야 할 정도였지만 나는 마음이 급해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자르딘이 그립습니다. 눈을 감으면 자르딘의 후끈거리는 열기가 내 얼굴로 달라붙는 것처럼 자르딘의 모든 것이 그립습니다. 몸이 조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몸이 겪는 고통은 금세 다 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행복입니다. 자르딘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빵보다는 빵을 만드는 기술을 제공하라
인류의 기아문제를 해결하려면 씨를 뿌리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씨는 흙 속에 뿌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흙 속에서 발아하고 싹을 틔우는 동안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아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한테 당장 빵 한 덩어리를 주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힘들고 빛나지 않아도 밀을 심고 거두어 빵을 만드는 기술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으로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지역의 풍토와 흙, 사람들의 기질을 함께 연구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에는 '만추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콩고 사람들은 소를 팔기 전에 영양이 풍부한 만추카 나뭇잎을 먹여 소의 살을 찌웁니다. 사람들도 만추카 잎을 절구에 찧고 기름을 넣어 반죽한 뒤에 지져 먹습니다. 그러니 만추카 나무를 많이 심어서 독성이 있는 뿌리만 잘라낸 뒤 나무 전체를 가루로 만들어 빵이나 떡을 만들 때 넣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또 고구마와 모양이 비슷한 "뚝감자'는 땅에 심으면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다른 구황작물보다 수확량이 3배나 많습니다. 뚝감자를 많이 심는 것도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자르딘에서는 큰 지렁이를 이용해 농사를 짓기 때문에 땅이 비옥합니다. 그 지렁이는 상파울루의 캄피나에서만 서식하는데 생태 습성을 연구해서 다른 곳에서도 기른다면 농사에 유용할 것입니다. 마토 그로소 지역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출해서 누에를 연구합니다. 누에를 치면 값비싼 실크도 얻고 영양제를 만들어 팔아 식량을 살 수도 있을 겁니다.
인류의 기아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나라마다 사람들의 식성과 습관이 다르고 또 자라는 동식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웃에 대한 관심입니다. 내가 배부르게 밥을 먹을 때 누가 굶주리는지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이 우선입니다. 인류가 기아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는 없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배가 고파 죽어가는데 평화놀음은 사치일 뿐입니다.
식량을 직접 나눠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식량을 자급할 수 있는 기술을 보급하는 것입니다. 기술력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낙후된 지역에 학교를 세워 문맹을 퇴치하는 일과 함께 기술학교를 세워 당장 먹고살 수 있는 실력을 키워줘야 합니다. 아프리카와 남미대륙을 정복한 서양 사람들은 그들에게 기술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땅에서 자원을 캐가고 그들을 일꾼으로만 부렸습니다. 그들에게 농사짓는 법도, 공장 돌리는 법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건 옳지 못한 일입니다. 우리는 일찍부터 자이르와 콩고, 가이아나, 파라과이, 브라질 등지에 학교를 세우고 농업과 공업 기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몸이 아파도 가난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선진국에서는 사람들이 약물 과잉으로 병들어가지만 배고픈 이들은 간단한 설사약이나 감기약이 없어 죽어갑니다. 그래서 기아추방운동을 벌이면서 한편으로는 의료지원도 함께 해야 합니다. 무료 진료소를 만들어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그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나는 인류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델로서 브라질의 자르딘 지역에 새소망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드넓은 땅을 갈아 농토를 만들고 고원지대에는 소를 키우는 목장입니다. 새소망농장은 브라질에 있지만 브라질 사람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들은 누구라도 새소망농장에 와서 일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오색인종 2천여 명이 항상 먹고 잘 수 있는 곳입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교육기관도 함께 설립해 농사도 가르치고 소를 키우는 방법도 알려줍니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법, 고기를 잡고 가공해서 판매하는 것까지도 가르칩니다. 농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 주변의 수많은 호수를 이용해서 양어장도 만들고 낚시터도 만들었습니다.
파라과이 국토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차코는 오랫동안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바다가 솟아올라 육지가 된 차코는 지금도 땅을 파면 짠물이 솟아나옵니다. 나는 칠순이 넘어 파라과이에 들어갔습니다. 오랫동안 버려진 땅에서 살아온 그들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피폐했습니다. 그들을 보는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돕고 싶었지만 그들은 얼굴색이 다르고 말이 다른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에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석 달 동안 파라과이 강을 따라 그곳 사람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잠을 잤습니다.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에 일흔이 넘은 내가 뛰어든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도 낚시할 줄을 몰랐습니다. 내가 낙시로 물고기를 잡아올리는 것을 본 그들이 신기해하며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낚시법을 가르쳐주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렇게 석 달 동안 함께 배를 타면서 우리는 서로 친해졌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열자 나는 세계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또 말했습니다. 처음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그렇지만 차코의 사람들은 해마다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뜨거운 마음으로 세계평화축제를 열 만큼 달라졌습니다.
파라과이 강은 바다처럼 깊고 넓습니다. 나는 파라과이 강에 큰 배를 띄우고 고기를 잡았습니다. 할 일이 없어 굶주리던 차코 사람들은 이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으면 그냥 썪혀서 버리는 일이 생길 정도여서 강가에 냉동창고도 지었습니다. 피시 파우더를 만들 수 있는 공장도 세웠습니다. 배를 타는 것을 겁내는 사람들은 냉동 공장에서 고기를 저장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굶주림으로 인해 절망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고 당장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굶주림이 해결된 뒤에는 평화와 사랑에 대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는 자르딘과 차코 같은 지역에 학교를 많이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소를 치게 했습니다. 소와 친구가 되어 노는 것도 좋지만 학교 교육을 받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는 말로 꾸준히 설득한 결과 지금은 학생이 많이 늘었습니다. 목장이 잘되면 간단한 기술을 이용해 물건을 만드는 경공업 공장을 만들어주었고, 학생들은 공장에서 일하려고 학교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굶어죽는 사람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그러니 굶어죽는 사람을 우리가 나서서 구해야 합니다. 분명한 책임감을 갖고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잘사는 사람은 좀 더 낮은 자리로 내려오고, 못사는 사람은 조금 더 높이 올려주어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여, 뜻을 세우면 인생이 달라진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너는 누구냐?" 하고 묻듯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물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는 청년입니다"라는 대답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아름다울 때가 청년시절이기 때문입니다. 청년시절은 미래를 위한 안식의 터가 되어야 하며 새 시대를 여는 초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청년들에게서는 열정을 찾아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삶의 목적을 찾지 못한 채 여기저기 쓸데없이 두리번거리는 불쌍한 젊은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는 모두 어렸을 때부터 삶의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 가슴에 품은 목적을 평생 간직하고 그것을 이루려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잠을 자고 눈을 뜨고 친구를 만나는 모든 삶의 행위가 미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위대한 사람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아무런 뜻도 없이 여러분이 세상에 나온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사랑을 쏟아부어 우리를 만들어내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니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보다도 인류를 더 사랑하고, 나와 내 가족의 문제보다 인류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사랑하려 애썼습니다. 산에 있는 나무도 사랑하고 물에 있는 고기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려고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에 맞춰 바꾸는 한편, 사명을 다하고자 내가 갖추어야 할 강건한 몸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언제 어느 때 하나님이 부르시더라도 단숨에 달려나갈 채비를 한 것입니다. 축구, 복싱,한 국 전통무예와 내가 직접 만든 원화도로 체력을 길렀습니다. 원화도는 마치 무용을 하듯이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는 원형운동으로 직선일 때보다 회전할 때 더 큰 파워를 낼 수 있다는 원리를 활용한 것입니다.
지금도 나는 근육과 뼈 마디마디를 펴주는 스트레칭을 하고 내가 직접 개발한 호흡법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느라 그마저 할 시간이 없으면 화장실에 있는 틈을 이용해서라도 반드시 운동을 합니다. 젊을 때는 하루 30분이면 족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하루 한 시간으로 운동량을 늘렸습니다.
지난해 타고 가던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헬기가 검은 비구름에 휩싸이더니 순식간에 산꼭대기에 처박히고 말았지요. 헬기가 뒤집히면서 내 몸이 안전벨트에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렸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양쪽 팔걸이를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만일 내가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했다면 거꾸로 매달린 순간 허리가 부러지고 말았을 겁니다. 몸은 건강한 정신이 담길 그릇입니다. 몸을 단련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부가 좋아서 학교에 가는 학생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부모가 다니라 하니 학교에 가는 것이지 공부하고 싶어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멋도 모르고 학교에 다니다보면 공부의 맛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공부도 스스로 하고 자기 길도 알아서 찾아갑니다. 철이 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모님들은 자식이 철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공부해라,제발 마음잡고 공부해라" 하고 닦달을 해댑니다. 공부를 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걸 부모님들은 잘 알기 때문입니다. 행여 공부하는 시기를 놓쳐 아무런 대비 없이 미래와 맞닥뜨리게 될까봐 걱정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공부해서 미래에 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뜻을 세우는 일입니다. 무조건 공부에 내몰리기 전에 장차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정하고 내가 얼마나 쓸모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대부분 뜻은 세우지 않은 채 공부에만 매달립니다.
하루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 있기에 내가 물었습니다.
"무엇하려고 그렇게 영어를 열심히 하느냐?"
그러자 그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대학 가려고요."
이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대학은 목적이 아닙니다. 대학은 무슨 목적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겠다고 할 때 가는 곳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 돈을 얼마나 벌 것인지에 인생의 목표를 걸지 마십시오. 나는 지금껏 월급 한 푼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밥을 먹고 삽니다. 돈은 무슨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돈을 벌면 쓸 데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 없이 돈만 손에 쥐게 되면 그 돈은 곧 쓸모없이 사라져버립니다.
직업은 전적으로 자신의 소질과 취미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소방수가 되건 농부가 되건, 축구선수가 되건 정치가가 되건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내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직업을 넘어선 이야기입니다. 축구선수가 되어 어떤 삶을 살 건지, 농부가 되어 어떻게 살 건지를 묻는 것입니다.
뜻을 세운다는 것은 자기가 살아갈 삶의 의미를 정하는 겁니다. 농부가 되려 한다면 새로운 농법을 실험하면서 보다 좋은 품종을 만들어 인류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뜻을 세워야 합니다. 축구선수가 되더라도 우리나라의 이름을 세계 만방에 떨치고 축구를 하고 싶지만 형편이 되지 않는 어린이들을 위한 축구교실을 열어 꿈을 키워주고 싶다는 의미있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려면 피눈물 나는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마음에 품은 뜻이 분명치 않다면 세계 정상에 설 때까지의 고된 훈련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뜻이 있어야만 자신을 지켜나갈 힘이 생기고, 남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글로벌 리더는 세계를 한품에 껴안는 사람
뜻을 세우는 일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집 뜰에 대추나무를 심으면 집 안에 대추가 열리고, 뒷동산에 사과나무를 심으면 뒷동산에 사과가 열립니다. 무슨 뜻을 어떤 곳에 심을 건지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뜻을 세우고 어디에 심느냐에 따라 서울의 대추나무도 아프리카의 사과나무도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남태평양의 야자나무도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심은 과일나무처럼 미래에 여러분의 뜻이 열매를 맺을 겁니다. 부디 그 열매가 어디에 맺히면 좋을지를 생각하면서 뜻을 세우십시오.
뜻을 세울 때는 마음을 넓게 갖고 반드시 전 세계를 다 돌아보십시오. 가난과 질병이 떠나지 않는 고통의 아프리카도 보고, 종교문제로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보고, 마약의 원료인 양귀비를 재배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아프가니스탄도 보십시오. 극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세계 경제를 구렁텅이로 빠뜨린 미국도 보고, 지진과 해일이 끊이지 않는 인도네시아도 보십시오. 그리고 그 나라들 사이에 자기 자신을 세워보십시오. 내가 어떤 나라, 어떤 사정에 적합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어쩌면 새로운 종교분쟁이 일어나는 인도가 적합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가뭄과 기아로 허덕이는 르완다일 수도 있습니다.
뜻을 세우는 데 있어서 우리나라의 좁은 국토를 탓하는 어리석은 일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에 따라서 우리나라는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고 어쩌면 국경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활약하면 아프리카는 우리나라가 됩니다. 그러니 세계를 무대로 놓고 할 일을 찾아보십시오. 아마도 지금까지 여러분이 꿈꿔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일에 던지십시오. 모험을 하지 않고는 보물섬에 갈 수 없습니다. 부디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무대로 뜻을 세우기 바랍니다.
1980년대에 나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일본과 미국으로 내보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이 터지는 조국을 떠나 더 넓은 세상,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밖에 더 넓은 세상이 있는 줄을 모릅니다.
나는 글로벌이라는 말도 모를 때 글로벌을 꿈꾼 사람입니다. 일본유학을 떠난 것도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광복 후 하이라얼에 있는 만주전업에 취직해서 몽골어와 중국어, 러시아어를 배우려 한 것도 세계인으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하루에 한 나라씩 바쁘게 다녀도 전 세계를 다 돌아보려면 반 년이 넘게 걸립니다.
세계 어느 곳에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상황은 천차만별입니다. 밥을 지을 물이 없는 곳도 있고 물이 너무 많은 곳도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고 만들어낸 전기를 미처 쓰지 못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한쪽은 넘치고 한쪽은 모자라는 일이 세상에는 흔합니다. 문제는 넘치고 모자라는 것들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역할을 할 사람이 적다는 겁니다.
원자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나라에는 석탄이며 철광석이 산더미같이 쌓였습니다. 석탄을 캐러 땅속에 들어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산더미같이 쌓인 석탄 더미에서 삽으로 떠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석탄과 철광석의 매장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무연탄이라도 좀 얻으려면 목숨을 내걸고 수십 미터씩 갱을 파고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기술도 그렇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바나나가 저절로 잘 자라는 곳이 많으니 바나나만 마음껏 먹어도 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바나나 농장을 만들어 대량으로 바나나를 키우는 기술이 없어 굶습니다. 우리나라는 바나나에 적합한 기후가 아닌데도 훌륭하게 바나나를 재배합니다. 우리의 이런 기술은 아프리카의 빈곤을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옥수수 재배기술이 북한의 기아를 해결해준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글로벌 리더란 것이 있습니다. 영어를 능숙하게 배워서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 글로벌 리더가 되는 길은 영어실력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 진정한 글로벌 리더는 세계를 자기 품에 껴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계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영어로 소통할 수 있다고 해서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글로벌 리더는 지구상의 모든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개척자 정신을 지녀야 합니다.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소득에 연연하거나 퇴직 후의 연금과 편안한 가정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앞날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잘 모르지만 세계가 다 나의 나라이고 전 세계 인류가 모두 내 형제라는 의식이 있어야만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형제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형제를 주었을까요? 형제는 전 세계의 인류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경험을 통해 인류를 사랑하는 인류애, 동포애를 배웁니다.형과 누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넓어지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는 가정의 모습은 인류가 서로 화합하는 형상과 같습니다. 비록 내가 배고프더라도 형제를 위해 밥을 남길 줄 아는 사랑이 형제애입니다. 글로벌 리더는 바로 인류를 상대로 형제애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지구촌이란 말조차 옛말이 되었습니다. 지구는 이미 하나의 생활권입니다. 삶의 목표가 대학을 나와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에 취직해서 안정되게 살아가는 것이라면 강아지만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난민구호에 목숨을 걸고 나선다면 호랑이만한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하루도 쉴 새가 없습니다. 세계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며 문제를 일으킵니다.나는 그런 문제들이 있는 어둡고 구석진 곳들을 찾아다닙니다. 내가 찾아가는 곳은 경치 좋고 편안한 곳이 아니지만 나는 어둡고 힘들고 외로운 곳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리더가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유엔을 이끌어가는 정치 리더가 나오기를 바라며 분쟁 지역의 소요사태를 막아주는 외교 리더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길거리를 배회하다 죽어가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마더 테레사와 같은 구원의 리더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처럼 사람들이 돌보지 않는 땅과 바다를 개척하여 새로운 세계를 넓혀가는 평화의 리더가 나오길 바랍니다. 꿈을 꾸고 뜻을 세우는 게 그 시작입니다. 부디 모험심과 개척정신을 갖고 남들이 꾸지 못한 꿈을 꾸고 의미있는 뜻을 세워 인류를 위한 글로벌 리더가 될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 모든 물건은 하늘에서 빌린 것입니다
나를 두고 세상에서는 세계적인 부자니 백만장자니 하는 말들을 합니다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나는 평생을 열심히 일해왔지만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없는 사람입니다. 내 아내의 이름이나 자식들의 이름으로 돌려놓은 재산도 없습니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감도장 하나 없습니다.
남들 잘 때 자지 않고, 남들 먹을 때 먹지 않고, 남들 쉴 때 쉬지 않으며 일한 대가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돈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인류를 위해 가난으로 죽어가는 이웃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 돈은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은 세계를 사랑하고 세계를 위해 일하는 데 쓰여야 마땅합니다.
나는 선교사를 외국으로 내보내면서도 많은 것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선교사들은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잘 살아갑니다. 먹고 사는 데는 아주 기본적인 살림살이만이 필요합니다. 슬리핑 백 하나만 있어도 너끈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물질의 풍요가 행복한 삶의 조건은 아닙니다. 잘 산다는 말이 어쩌다 물질적인 풍요를 이르는 말이 되어버렸는지 슬픈 일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예배나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면 넥타이를 매지 않습니다. 격식을 갖춘 정장차림도 잘 하지 않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보통 스웨터 차림입니다.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서양사회에서 넥타이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나 될까요? 넥타이에 다는 핀이며 와이셔츠, 커프스 버튼은 또 얼마나 비싼가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넥타이를 풀고 그 돈을 굶주리는 이웃을 위해 쓴다면 세상은 좀 더 살 만한 곳이 될 것입니다. 비싼 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바깥에 불이 났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스웨터 차림의 나와 넥타이를 맨 사람들 중에 누가 먼저 뛰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언제든지 뛰어나갈 채비가 된 사람입니다.
나는 매일같이 목욕하는 것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목욕은 사흘에 한 번이면 족합니다. 양말도 매일 빨아 신지 않습니다. 저녁이 되면 양말을 벗어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둡니다. 다음 날 신기 위해서입니다. 호텔에 가면 욕실에 널린 수건 중에서 가장 작은 것 한 장만 쓰고 나옵니다. 소변은 세 번 본 후에야 화장실의 물을 내리고 화장지는 한 장을 세 번으로 접어서 씁니다. 이런 나를 보고 원시인이니 야만인이니 해도 상관없습니다. 밥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나는 평생 반찬 세 가지 이상을 놓고 먹지 않습니다. 내 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지고 오만 가지 디저트가 놓여있어도 손이 가지 않습니다. 밥도 수북이 담아 먹지 않습니다. 밥그릇의 5분의 3 정도만 담기면 알맞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제일 즐겨 신는 구두는 대형할인점에서 4만9천 원에 산 것입니다. 매일 입는 바지는 산 지 5년도 훨씬 넘은 것들입니다. 미국에서 내가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맥도널드입니다. 부자들은 정크 푸드라고 해서 잘 안 먹지요.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맥도널드를 좋아합니다. 값이 싸고 시간이 절약되니까요.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을 할 때도 맥도널드를 찾아갑니다. 내가 맥도널드를 자주 간다는 게 어떻게 알려졌는지 맥도널드 회장이 해마다 연말이면 연하장을 보내올 정도입니다.
"돈을 아껴 쓰고 무엇이든 절약하라."
해마다 우리 식구들에게 강조하는 말입니다. 아이스크림이니 음료수 같은 것도 사 먹지 말고 물을 마시라고 합니다. 그렇게 아끼고 모아서 저 혼자 부자 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 인류를 살리기 위해 아끼라는 겁니다. 어차피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얼 그렇게 움켜쥐려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나는 평생 벌어들인 것들을 다 내놓고 홀가분하게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금은보화가 지천으로 널렸는데 지상에서 무얼 더 가져가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지상의 것들에 연연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평생을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저 남들도 다 아는 흘러간 유행가입니다만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고향집 들판에 누워 있는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눈물이 자꾸 납니다.
백금에 보석 놓은 왕관을 준다 해도
흙냄새 땀에 젖은 베적삼만 못하더라
순정에 샘이 솟는 내 젊은 가슴 속엔
내 맘대로 버들피리 꺾어도 불고
내 노래 곡조 따라 참새도 운다
세상을 살 수 있는 황금을 준다 해도
보리밭 갈아주는 얼룩소만 못하더라
희망의 싹이 트는 내 젊은 가슴 속엔
내 맘대로 토끼들과 얘기도 하고
내 노래 곡조 따라 세월도 간다
행복은 항상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행복을 찾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욕심이 앞길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에 어두운 눈은 앞을 보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 땅바닥에 떨어진 황금 부스러기를 줍느라 그 앞의 커다란 황금 더미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주머니에 집어넣기에만 급급해 주머니가 터진 것도 알지 못합니다.나는 지금도 흥남감옥에서 생활하던 것을 잊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천한 곳도 흥남감옥보다 편하고 풍요롭습니다. 모든 물건은 공적인 것이며 하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관리인일 뿐입니다.
행복은 위하는 삶에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피와 살을 받아 태어납니다. 부모가 없으면 자식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 저 혼자 태어난 것처럼 개인주의를 부르짖습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만이 개인을 주장하고 개인주의를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자기 하나만을 위해 탄생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서로를 위해 탄생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있고 너는 나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이기적인 삶처럼 어리석은 삶은 없습니다. 이기적인 삶은 자기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를 파괴하는 삶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하여, 가정은 민족을 위하여,민족은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내가 세운 학교에는 어디나 세 가지 표어가 걸려있습니다. 첫 번째가 "낮 12시처럼 그림자 없는 삶을 살아라"입니다. 그림자가 없는 삶이란 곧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는 삶입니다.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영계에 들어가면 평생 자신이 살아온 삶이 녹화테이프가 돌아가듯 좌르륵 펼쳐집니다.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는 자신의 삶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니 그림자 한 점 없이 말끔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살아라"입니다. 인간이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은 거짓이 없습니다. 모두 진실입니다. 그렇지만 나를 위해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은 무의미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은 남을 위해 흘려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One Family Under God!"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인류는 한 형제들입니다. 언어와 인종과 문화의 차이는 0.1퍼센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머지 99.9퍼센트는 모두가 똑같은 인간입니다.
남태평양에는 모두 14개의 섬나라들이 있습니다. 그중 마셜 아일랜드에 가서 대통령을 만났을 때 내가 물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땅이지만 나라를 이끌어가기는 어려움이 많으시겠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인구라야 고작 6만 명뿐이고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미터에 불과해 파도가 1미터만 들이쳐도 온 나라가 물바다가 되어버립니다. 그렇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육입니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은 모두 미국이나 유럽에 나가 교육을 받고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학교가 없으니 아무리 똑독해도 지도자가 될 소양을 쌓을 수 없지요. 결국 우리 같은 섬나라의 고민은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기르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마셜 아일랜드 대통령의 탄식을 들은 나는 곧바로 하와이 코냐에 섬나라 아이들을 위한 '하이스쿨 오브 퍼시픽'이란 학교를 지었습니다. 각 나라에서 뽑혀온 아이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고 필요하면 대학 진학도 도와줍니다. 하와이를 오가는 비행기값이며 학비, 기숙사비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컴퓨터도 사주면서 최고의 교육을 시킵니다. 섬나라의 학생들을 공부시키는 데 조건은 단 하나, 학업을 마치면 반드시 자기 나라에 돌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조건입니다.
위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때때로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의 선교사가 남미를 순회하는 중에 큰 지진이 난 적이 있습니다. 선교사의 부인이 낯빛이 하얗게 변해서 나를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좋아요, 선생님. 너무 걱정이 되어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해주기는커녕 호통을 쳤습니다.
'지금 너는 네 남편을 걱정하는 거냐? 아니면 네 남편이 아수라장에서 몇 사람의 생명을 구해낼 것인지를 걱정하는 거냐?"
남편의 안위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선교사의 부인이라면 그 이상을 걱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을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남편이 더욱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자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 존재하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 존재합니다. 자연은 사람을 위해 있고 사람은 또 자연을 위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상대를 위해 존재하고 작용합니다. 그러니 상대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입니다.
행복은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에서만 성립됩니다. 평생을 성악가로 살아온 사람이 무인도에 가서 목이 터져라 노래를 한들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내가 어떤 상대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삶의 기준을 바꾸는 대단한 일입니다. 내 삶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길을 가야 합니다.
행복은 남을 위해 사는 삶에 있습니다.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봐야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나를 위한 일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아무리 작고 하찮은 일이라도 상대를 위해, 남을 위해 일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은 위하는 삶을 살 때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분쟁 없는 세계를 꿈꾸며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종교가 하나 되고, 인종이 하나 되고, 나라가 하나 되는 세계를 주장해왔습니다. 수천 년 인류의 역사는 세계를 쪼개고 또 쪼개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종교가 변하고 권력이 변할 때마다 국경이 나뉘고 전쟁이 일어났습니다만 지금은 세계주의 시대입니다. 앞으로 세계는 국제평화고속도로를 통해 완전히 한몸이 되어야 합니다.
국제평화고속도로는 한국과 일본을 해저터널로 연결하고 러시아와 북미대륙을 가르는 베링해협에 바닷길을 잇는 다리를 놓아 온 지구를 하나로 만드는 대역사입니다. 그러면 아프리카의 희망봉에서부터 칠레의 산티아고까지, 또 영국의 런던에서 미국의 뉴욕까지 자동차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막히는 곳이 없이 실핏줄처럼 연결되는 것입니다.
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바뀌면 누구든지 쉽게 국경을 넘어 오갈 수 있습니다. 너나없이 넘어다니는 국경은 더 이상 경계로서의 의미가 없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에 왕래가 빈번해지면 서로 간에 이해심이 생겨 충돌이 없어지고 종교 간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또 온 세계 다양한 인류가 하루생활권에 들어 살다보면 인종의 벽도 무너집니다. 생김새가 다르고 말이 다른 인종 사이에도 소통이 이루어져 그야말로 세계의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문화혁명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실크로드는 단순히 비단을 팔고 향료를 사는 무역길이 아니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인종이 만나고 불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가 만나는 자리였으며 그들의 서로 다른 문화가 뒤섞여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자리였습니다. 이제 21세기는 국제평화고속도로가 그 일을 해낼 것입니다.
로마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길이 중요합니다. 길이 열리면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문화가 지나갑니다. 사상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길이 생기면 역사가 바뀝니다. 국제평화고속도로가 완성되면 세상은 물리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길이 그렇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엮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내가 너무 앞서 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종교인은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시키는 사람이니 앞서가는 게 당연합니다. 그 때문에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고난을 당할지언정 종교인이라면 당연히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러나 국제평화고속도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많은 나라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경험이 있는 중국은 일본과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중국을 거치지 않고 세계와 통할 수는 없으니 중국의 마음을 돌이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누가 합니까? 21세기 국제평화고속도로의 주인이 될 우리가 나서서 해야 합니다.
베링해협에 다리 놓는 일은 또 어떻습니까? 엄청난 돈이 들겠지만 그것도 염려할 게 없습니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쏟아부은 돈만 있어도 충분히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전쟁을 일으켜 인류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전쟁을 일으켜 수백조 원의 돈을 날려버리는 일은 패악입니다. 이제 우리는 '총칼을 녹여 쟁기와 보습을 만들 때'입니다.
국제평화고속도로는 세계를 하나로 묶는 글로벌 통합 프로젝트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서로 떨어진 대륙을 해저터널과 다리로 이어 붙이는 것을 넘어 세계가 평준화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술을 독점하고 그 이익을 독차지할 때 세상의 균형은 깨어집니다. 국제평화고속도로는 세계의 지하자원과 인적자원의 불균형을 조절해 골고루 잘사는 부의 평준화를 이루어줍니다. 평준화란 높은 것은 조금 낮은 데로 끌어내리고 낮은 곳은 조금 높게 끌어올려 서로의 높낮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이 가진 사람, 좀 더 많이 아는 사람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평화세계를 건설하는 일은 일회성 선심이나 기부로 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희생하며 자기가 가진 것을 다 내어주는 진실한 사랑만이 평화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평화고속도로를 놓는 것은 세계를 물리적으로 소통시키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하나 된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도 물리적인 소통과 더불어 정서적인 소통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완전한 통일이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창설된 유엔은 그동안 세계평화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창설 60주년을 넘긴 지금 유엔은 그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힘이 센 나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곳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은 한쪽의 이익이 아닌 세계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내세우고 힘으로 억누를 때 분쟁은 또 다른 분쟁을 불러올 뿐인데도 지금의 유엔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려면 앞으로 유엔은 상원과 하원의 양원 체제로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각국의 정치외교적인 대표들이 세계 문제를 논의하는 하원과 초종교적인 대표들이 모여 평화문제를 논의하는 상원이 있어야 합니다. 초종교적인 대표는 반드시 여러 종교에 대해 충분히 공부를 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종교지도자라야 합니다. 그들은 정치인들처럼 좁은 시각으로 특정 국가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인류를 껴안는 사랑의 마음으로 인류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초종교 지도자들이 세계 각국에 파견된 외교대사들과 힘을 합쳐 더 이상 분쟁이 없는 세계, 사랑으로 하나된 세계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종교인들이 왜 세계 문제에 뛰어드느냐' 하며 반대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세계는 종교를 통해 깊은 자기 성찰을 이룬 종교인들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입니다. 세상에 만연한 불의와 죄악에 맞서 참사랑을 실천할 사람들이 바로 종교인입니다. 세계 정세에 대한 분석력을 지닌 정치 지도자들의 지식과 경륜이 영적인 안목을 지닌 초종교지도자들의 지혜와 합해질 때, 세계는 비로소 참다운 평화의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종교와 이념, 인종의 벽을 넘어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거듭날 것을 기도하며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길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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