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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스크랩 중요민속자료 제3호 광해군내외및상궁옷(光海君內外및尙宮옷)
靜谷 추천 0 조회 44 13.01.14 08: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종    목 중요민속자료  제3호
명     칭 광해군내외및상궁옷(光海君內外및尙宮옷)
분     류 유물 / 생활공예/ 복식공예/ 의복
수량/면적 4착
지 정 일 1965.10.12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해인사
시     대 조선시대
소 유 자 해인사
관 리 자 해인사
일반설명
조선시대 광해군(재위 1608∼1623)과 그의 비(妃) 유씨, 그리고 궁중의 정5품 상궁이 입었던 의복 4점이다. 1965년 해인사 장경판고(藏經板庫)를 수리할 때 남쪽 지붕 아래 구멍에서 건물 완공에 대한 기록과 상궁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이 의복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발견된 의류는 담청색 직령 1점, 백삼 1점, 홍삼 1점, 자주저고리 1점 등 4점이다.

이 의복들은 재봉질 못지 않은 정교한 바느질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 세련되었던 바느질법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의복 습관을 잘 나타내고 있어 복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전문설명

팔만대장경판(八萬大藏經板)을 안치(安置)한 현(現) 장경판고(藏經板庫)는 조선 성종18년(成宗18年)(1488)에 수습한 것으로 그 후 몇차례의 중수(重修)을 거듭하면서 1965년 대중수중(大重修中) 남각(南角)(수다라장) 중앙(中央) 중도리 받침 장혀 하면(下面)에 길이 130cm 넓이 9cm 깊이 7.5cm의 구멍이 패여 있는데 그속에 의류(衣類) 4점(4点)과 지본 상량문(上樑文)과 상궁(尙宮) 명단(名單)이 들어 있었다. 여기 나타난 상궁(尙宮)의 명단(名單)은 궁중(宮中)의 불교신앙(佛敎信仰)을 뒷받침해주며 임금의 가장 총애(寵愛)를 받아온 여인(女人)들이 아닌가 하며 장혀 공간(空間)에서 발견(發見)된 옷은 광해군(光海君)의 의대(衣대)로 확인(確認)되었으나 중간(中間)에 중수(重修)한 날자 기록(記錄)이 없어 광해군14년간(光海君14年間)(1608∼1622) 어느 해였던지는 확실(確實)치 않다.

광해군(光海君)은 1575년(을해생(乙亥生)) 선조(宣祖)의 둘째 왕자(王子)로 태어나 1608년(무신(戊申))에 즉위(卽位)하여 1622년까지 14년동안 재위(在位)하였다. 해인사(海印寺)에 보존(保存)되어 있는 광해군(光海君) 내외(內外) 및 상궁(尙宮)의 옷을 분설하여 설명(說明)하면 다음과 같다.

(1) 담청색직령(淡靑色直領) 1착(着) 광해군(光海君)이 의대(衣대)나 관복(冠服) 속에 받쳐 입었던 옷으로 담청색(淡靑色) 운문단(雲紋緞)에 백명주로 안을 받치고 얇게 솜을 넣었다. 치수는 길이 115cm, 화장 94cm, 뒷품 49cm, 진동 28.5cm, 수구 18cm, 무넓이 19.5cm, 겉섶넓이 43cm, 안섶넓이 28cm, 앞깃 40cm, 고대 18cm, 깃넓이 9.5cm, 야편 옆트기 59cm, 겨드랑은 터지지 않도록 3cm 정방(正方)의 무와 배래기를 걸쳐 꿰매어 있다. 동정은 넓이 5cm, 깃끝 6cm, 깃코 9.5cm, 깃과 동정사이 17cm, 안깃과 동정사이 11cm, 겉고름길이 77cm, 넓이 3.5cm, 안고름의 길이는 59cm, 넓이는 3cm이다.

(2) 백삼(白衫)(배자(褙子)저고리) 1착(着) 백삼(白衫)의 길이는 72.5cm, 화장 90cm, 뒷품 58cm, 진동 33cm, 수구 27cm, 겉섶아래 나비 28cm, 안섶아래 나비 17cm, 앞깃 길이 38cm, 고대 18cm, 안깃 길이 38cm, 깃끝 6cm, 깃코 10cm, 깃넓이 10.5cm, 옆트기 31cm, 고름의 길이가 34cm, 넓이가 3cm이다.

(3) 홍삼(紅衫)(대홍배자(大紅褙子)저고리) 1착(着) 비(妃)가 착용(着用)하였던 옷으로 홍색(紅色) 명주에 백(白)명주 안을 넣었음. 대홍배자(大紅褙子)저고리의 치수는 길이 78cm, 화장 98.5cm, 뒷품 59cm, 진동 32.5cm, 수구 22.5cm, 겉섶 28cm, 안섶 17cm, 앞깃 38cm, 고대 18cm, 깃끝 6cm, 깃넓이 10cm, 동정넓이 5cm, 깃과 동정사이 19.5cm, 안깃과 동정사이 18cm, 옆트기 38cm, 고름길이 36cm, 넓이 2.3cm, 안고름과 겉고름이 동일하다.

(4) 자주 저고리 1착(着) 상궁(尙宮)이 입었던 옷으로 자주 명주에 백(白)명주 안을 넣은 겹저고리이다. 치수는 저고리 길이 59cm, 화장 74cm, 뒷품 57.5cm, 진동 34cm, 수구 19cm, 겉섶 19cm, 안섶 15cm, 앞깃 36cm, 고대 18cm, 안깃 40cm, 깃넓이 10cm, 동정넓이 5cm, 깃과 동정사이 18cm, 안깃과 동정사이 23cm, 고름의 길이가 33cm, 넓이가 2cm이다.

이 옷들은 임란(壬亂)이후 왕실(王室)에서 평소(平素)에 입던 옷으로 중단(中單)은 도포(道袍) 밑에 입는 중치막과 비슷하면서 옆이 트이고 소매가 좁고 깃은 목판깃으로 되어 있다.

중치막(中致莫) 안자락에는 '을해생조선국왕수만세(乙亥生朝鮮國王壽萬歲)' 안고름에는 '을해생주상전하수만세(乙亥生主上殿下壽萬歲)'라고 묵서(墨書)되어 있다. 백(白)명주로 된 백삼(白衫)은 저고리 위에 입었던 속 적삼이다.

비(妃)의 홍삼(紅衫)은 옆이 트이고 소매가 길고 깃이 목판 깃이면서 넓기는 하지만 상시(常時) 웃옷으로 착용(着用)하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옷 안자락에는 '병자생중궁유씨명의무병만세신여금강천령설소만복영창소원여의심신안녕성신손계계승승(丙子生中宮柳氏命衣無病萬歲身如金剛千靈雪消萬福永昌所願如意心神安寧聖神孫繼繼承承)'이라는 축원문(祝願文)이 묵서(墨書)되어 있다.

자주 저고리는 길이가 약간 길어 남자 저고리와 비슷하면서 소매가 짧고 깃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제도(制度)로 현(現) 저고리의 안깃 모양과 같으며 그 중턱에 고름이 달려 있다. 옷 안자락에는 '권시 을유생'이라고 묵서(墨書)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왕(王)은 용포(龍袍) 밑에 입는 중단(中斷)을, 왕비(王妃)는 백삼(白衫)(배자(褙子)저고리)을, 상궁(尙宮)은 그대로 저고리를 입었으니, 이는 궁중(宮中)의 평상시(平常時)에 입던 겉옷 저고리일 가능성이 많다.

왕(王)의 저고리는 31cm, 왕비의 홍삼(紅衫)(대홍배자(大紅褙子)저고리)은 38cm의 트임이 있고, 왕의 저고리 길이는 72.5cm, 왕비의 것은 길이 78cm, 상궁(尙宮)의 저고리는 59cm로서 다 60cm 정도 이상(以上)의 기장으로써 후대의 저고리와 다르고, 오히려 배자(褙子)나 당의(唐衣)와 가깝기 때문이다. 강원도(江原道) 월정사(月精寺)와 상원사(上院寺) 저고리도 대개 이 정도의 치수이므로 조선초(朝鮮初)의 제도(制度)를 광해군대(光海君代)까지 전(傳)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광해군내외및상궁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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