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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 강원일보)
물안개 자욱한 날 -평창강 섶다리
홍 준 경
싸릿대 잔솔가지 얼기설기 얽어 입고
옷자락 나부끼던 그 세월 어찌 났을까
거칠은 진흙을 덮고 평창강 지키고 있다
물안개 자욱한 날, 강물 그리 흘러 보내고
새벽 국밥 한술 뜬 눈빛 순한 사람들이
저마다 봇짐을 지고 분주하게 오며 가네
장돌뱅이 허생원도, 누렁소도 건너가고
세상이 흔들리면 섶다리도 휘청거린다
이따금 마파람 불면 헹가래 치듯 들썩인다.
※섶다리=강원도 평창군 평창강에 놓여있는 다리. 소나무 및 싸리 가지를 얽은 다음 그 위에 진흙을 덮어 섶다리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지나 다닌다.
강여울<본명:홍준경·양구군 양구읍 학조리>
<당선소감>
섶다리를 찾아 평창강에 갔었다.
홍 준 경
검푸른 강물 위에 부표처럼 놓여있는 섶다리는 선사(先史)의 비밀과 민중의 애환을 간직한 채 묵묵히 평창강을 지키고 있었다. 그 여울목에는 심한 어지럼증과 흔들림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강원도의 끈질긴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끊어질 듯 이어가는 한반도의 힘이 그 강물에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응모작 `물안개 자욱한 날'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날을 평창강에 매달렸다. 수백리 산길, 들길을 달려가서 강물에 발 담그고 섶다리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무언(無言)의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결과가 당선의 영예를 안겨준 것 같다. 시조는 어느 문학 장르보다 언어의 조탁이 뛰어나야만 좋은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조만이 가지는 형식 미학의 특성 때문에 그러하다. 절제된 언어의 미학(美學), 그 매력과 깊이는 입문해 보지 않고는 감칠맛을 느껴볼 수 없을 것이다. 시조에는 우리 민족의 살아 숨쉬는 `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시조는 민족 정서를 대변하는 문학의 정수인 것이다.
우선 창간 60주년을 맞은 강원일보에 축하를 보내며 회갑을 맞은 신문사의 신춘문예(시조부문)에 당선하게 되어서 더없이 기쁘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로운 각오로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졸작을 당선시켜 주신 심사 위원님들께 큰절로 인사를 드리며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면서도 구김 없는 가정을 일구어낸 아내와 식구들에게도 가슴 뭉클한 온정을 느낀다. 나를 아껴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프로필
△1954년 전남 구례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과 졸업 △재단법인 구례장학회 운영이사(현) △대평 주택 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 △감사원 주최 부실공사 방지 전국 수기공모 대회 입선(감사원장상 수상)
<심사평>
시조부문 응모작품 경향을 분석하면,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구획 지을 수 있다. `뼈다귀의 시조’와 `껍데기의 시조’가 그것이다.
`뼈다귀의 시조’는 글 속에 담을 이른바 사상이란 것을 미리 설정해 두고 거기에다 격에 맞지 않은 미사여구를 짜 맞춘, 그러므로 문맥이 자연스런 유기체가 되지 못하고 앙상한 뼈대만 드러낸 정형시를 말한다. 김진실씨의 `생존’과 이기준씨의 `부활’이 여기에 해당된다.
`껍데기의 시조’는 표현 형식에만 매달려 감동적 내용을 담아내지 못한, 알맹이 없는 시조를 의미한다. 박진아씨의 `우수절’과 이석구씨의 `꽃집 앞에서 꽃을 심다’와 같은 작품이 이 계열에 든다. 외중내졸(外重內拙) 즉 겉모양(형식)에 치중하게 되면 내용이 치졸해진다.
당선작 `물안개 자욱한 날’(강여울)은 앞에서 지적한 `뼈다귀 시조’와 `껍데기 시조’의 함정을 절묘하게 극복한 작품이다. 따로 떼어두면 별 의미 없는 이미지들이지만 그것이 제 짝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의미망을 확충하는, 마치 퍼즐 같은 언어 조립의 미학이 격렬하게 펼쳐진다. 평창강에 놓여 있는 섶다리를 소재로 하여, 이 고장에 뿌리내리고 사는 백성들의 정서를 강물 푸른 빛깔로 풀어낸 것이다. `새벽 국밥 한술 뜬 눈빛 순한 사람들'을 떠올리는가 하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허생원과 장돌뱅이도 불러들이고 있다. 긴장을 늦출 틈을 허락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시조 특유의 순간적 임팩트(충격)를 느낄 수 있다.
■심사위원/김영기(강원일보논설고문·문학평론가), 윤금초(시조시인·민족시사관학교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