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경남역사]수정처럼 솟아 있는 거제 옥산성
예로부터 거제시는 왜와 국경을 마주한 탓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외적으로부터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산성을 지었다.
거제 계룡산 자락, 수정봉에 위치한 거제 옥산성(玉山城·경상남도기념물 제10호)을 찾았다.
글 배해귀 사진 거제시청
거제현 읍치(현 거제면)를 지키는 작은 산성
거제시 거제면을 지나다 보면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소가 있다. 바로 거제면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옥산과 그 정상인 수정봉(水晶峰)에 위치한 ‘옥산성’이다. 수정봉성이라고도 불리는 옥산성은 거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룡산에서 거제면 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무더위가 막 시작된 6월 초, 류선영 학예연구사의 안내로 옥산성으로 향했다. 해발 143m의 높이의 수정봉은 동산으로 불릴 만큼 높지 않아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금세 옥산성 동문지에 도착한다.
“옥산성은 산의 정상을 따라 축성된 테뫼식 산성입니다. 수정봉 8부 능선에 있는 이곳에 오르면 멀리 한산도가 다 보일 만큼 산성지로서는 탁월한 요충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류 연구사의 설명처럼 옥산성에 올라가니 시원한 거제 바다가 훤히 보인다. 넓은 거제 평야와 계룡산 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왜의 침략에 대비한 옥산성은 둘레가 450m, 높이가 약 7m로 계룡산 자락에서 돌을 구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동쪽은 폭이 넓고 서쪽은 폭이 좁은 표주박 형태로 되어 있으며, 성안에는 집수지(흐르는 물 또는 빗물을 저장하는 곳)와 군사업무 목적으로 지은 건물터 등도 여전히 남아있다.
‘조선시대 마지막으로 축성된 산성’으로 전해져
옥산성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성 내에 있는 옥산금성축성비의 비문을 통해 알 수 있다.
“1873년 거제부사 송희승이 거제현에 읍성을 쌓기를 아뢰었으나, 고종은 거제읍을 이미 3번이나 옮긴 터라 백성들의 고충이 크다는 이유로 거절했어요. 하지만 송희승은 임의로 마을 주민들을 동원해 거제현 뒷산인 수정봉에 산성을 축조했죠.”
착공한지 8개월 만에 축성을 완공하고 해변 방어의 거점으로 삼았지만, 무리한 축성공사로 백성들의 원성이 커지는 바람에 송 부사는 파직되었다고 한다. 모름지기 산성은 도성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는데, 옥산성은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마지막으로 축성된 산성으로 외침을 막아낼 만한 시대적 배경은 없었다고 한다.
옥산성 발굴 중…축조 시기, 산성의 용도 등 학계 관심
지난 1995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거제시는 2015년부터 연차적으로 추진하는 ‘거제 옥산성 종합정비계획’에 따라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이에 2017년 옥산성내 집수지와 2020년 건물지를 조사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바로 토기·기와·자기·옹기·목기 등 통일신라시대(7세기 후반)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옥산성의 최초 축성시기가 조선시대가 아닌 통일신라시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통일신라시대 유물과 더불어 조선시대에 궁궐이나 사찰의 추녀마루 위에 세우는데 사용된 인명망와(또는 잡상)가 출토되었어요. 옥산성도 그만큼 중요한 건물이 조성되었던 걸로 추정돼요.” 또 건륭통보, 상평통보 등도 발견되어 집수지가 조선 후기에 보축 또는 내부 준설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말하자면 유물 조사를 통해 옥산성내 집수지가 처음 조성된 것은 통일신라시대로 짐작할 수 있고 고려시대에 부분적인 보수작업이 진행됐으며, 조선 후기에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거제시는 다양한 시대별 관련 유물과 체성(바닥에서부터 여장 아래 미석까지의 성벽)이 시대적 변화 양상을 잘 나타나고 있는 옥산성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품격 있는 역사·문화공간으로 정비하고, 연계 역사관광 콘텐츠도 개발할 계획이다.
거제 옥산성
위치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산 28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