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지막 푸른 겨울- 국방일보 10912호 3월 3일 자 실린 글
퍼온 글입니다. 꼭 읽어주세요
-내 마지막 푸른 겨울…
이제 며칠만 지나면 34년간 몸담아 오면서 보람과 회한의 순간들이 애증으로 얽혔던, 그리고 또한 내 인생의 전부였던 군문을 떠나게 됩니다.
`유종의 미'라고, 마지막으로 떠날 때는 명예로운 전역식을 하여 남아 있는 후배들에게 멋진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은 병마로 인해 성치 못한 모습으로 군문을 떠난다는 게 몹시도 안타깝고 한스러울 뿐입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류마티스로 온몸의 관절이 쑤시고 아프지만 내 모든 애증과 회한을 한 순간에 눈 녹듯이 씻어준 일이 있기에 남들에게도 알리고 싶어서 펜을 들었읍니다.
몇년 전부터 류마티스와 시력 저하로 사회에 있는 여러 병원들을 다니다가 작년 겨울에 국군광주병원 정형외과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원 초 어느날 병동 화장실에 갔다가 옆에 있는 세면장에서 물소리가 나기에 무심코 안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세면장 안에서는 병동 담당간호장교인 우경원 대위가 다리에 석고 깁스를 하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등병 환자의 발을 정성을 다해 씻겨주고 있더군요.
그 순간, 그 감동이란…. 몸이 아파 대학병원, 개인병원 등 여러 병원을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지만 사회 어느 병원에서도 간호사가 직접 지극정성으로 환자를 씻겨주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환자 옆에 있는 보호자가 씻겨 주거나 본인이 직접 씻는 모습은 봤지만….
더욱이 군병원은 사회병원과 달라 보호자들이 상주할 수도 없고, 간호장교 한명이 6~60명 되는 환자들의 간호업무를 전담하고 있지요. 환자치료, 간호기록 정리, 개인면담 등등 일상 간호업무만으로도 벅찰 텐데, 거기에 더해서 정성을 다해 발을 씻겨 주는 모습이라니….
그 순간이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서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데 제가 지켜본다는 것을 눈치 챈 우대위는 쑥스러워 하더군요. 제가 고맙다고 하니까 모든 환자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지만 워낙 바쁜 간호업무 때문에 개개인에게 다 해주지도 못하는데 원사님이 그렇게 칭찬하시면 더 민망스럽다고 하면서 오히려 몸둘 바를 몰라하더군요.
제가 입원해 있는 병동은 정형외과 환자들만 6~70명 입원치료를 받는 곳인데, 그 후에도 우대위가 거동불편한 환자들을 지극정성을 다해 씻겨 주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답니다. 우리 병실 병사환자들도 우대위의 헌신적인 봉사에 너무나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도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데,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 입장에서도 걱정이 없어지더군요. 내 아들이 훈련중 다치게 되더라도 우대위와 같은 분이 있는 한 염려할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되더군요.
지금 이 순간도 전후방 각지에서 묵묵히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 전우 여러분! 모레면 34년간 정들었던 푸른 제복을 벗게 되지만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 해도, 추운 날씨에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내 마지막 푸른 겨울, 그 해 겨울은 따뜻했구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