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돋보기로 보는 세상
심 영 희
새벽 4시면 배달되는 신문을 보기 위해 제일 먼저 돋보기를 사용한다. 다른 사람들은 대충 큰 제목만 본다고 하던데 나는 지방신문에 난 지역의 세세한 이야기까지 거의 읽어본다. 그러니 돋보기를 안 쓰면 신문을 읽을 수 없다. 책도 마찬가지다. 물론 찌푸려가며 읽으면 읽을 수 있겠지만 눈이 더 나빠질까 염려되어 돋보기를 꼭 쓴다. 돋보기를 써도 약이나 화장품의 설명서는 정말 보기 힘들다.
오래 전 처음 돋보기를 마련할 때 돈을 좀 들여 좋은 제품을 구입했다. 돋보기케이스도 금속으로 된 그럴싸한 물건이었는데 거실바닥에 놓인 돋보기를 내 실수로 바닥에 앉는다는 게 무거운 엉덩이로 돋보기케이스를 깔고 앉은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돋보기도 있었으니 함께 부상을 당해 뒤틀렸다.
안경점에 가서 고쳐달라고 했더니 나사만 갈아 끼우면 된다며 수리비가 만원도 아닌 만원 정도라며 나사를 구입해봐야 안다고 하며 이틀 뒤에 오란다. 이틀 뒤 안경을 찾으러 가서 수리비를 물었더니 직원이 적어놓은 대로 만원 정도라고 대답한다. 도대체 이 만원 정도는 만천 원을 내라는 것인가 구천 원을 내라는 것인가, 일단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고 집으로 왔다.
만원 정도 주고 고친 돋보기가 알은 그대로니 보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돋보기를 쓰고 거울을 보면 한쪽은 내려가고 다른 한쪽은 올라가 있다. 엉덩이 밑에서 곤혹을 치른 대가를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다. 벗어 놓았을 때도 돋보기 다리가 그대로 뒤틀려있으니 아무리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다시 고쳐달라고 할까 하다가 겨우 만원 정도 주고 고쳐온 것을 또다시 고쳐달라기 싫어서 돋보기를 새로 사려고 마트에 갔다. 이름을 말하자 만원 정도의 손님인데도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어 내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눈 검사를 하고 주인이 권하는 대로 보라색 안경테로 바꿨다. 거금을 주고 구입했던 금속 테 안경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새 돋보기를 쓰니 기분도 좋아졌다.
우선 금속 테는 전형적인 돋보기 형태였는데 새로 산 돋보기는 말 안 하면 안경으로 알 정도로 보통 안경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안경케이스도 내가 쓰고 다니는 안경케이스와 사이즈도 같아서 안경케이스 하나로 돋보기를 쓸 때는 안경을 케이스에 넣고, 안경을 쓰고 외출할 땐 돋보기를 넣어서 어디서든지 조그만 글씨를 볼 수 있는 무기로 모시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해 ‘한국수필가협회’ 송년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가려고 남춘천역으로 갔는데 역에서 동생부부를 만났다. 제부가 서울병원에 예약을 해 놓아서 병원에 가는 길이란다. itx열차표를 제만큼 샀으니 동생네는 7호칸이고 나는 3호칸이다. 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동생 얼굴을 쳐다보니 오늘 따라 웬 주름이 그렇게 많은지 나도 몰래 왜 이렇게 주름이 많이 생겼냐고 물으니 글쎄 늘 그대로인데 하는 것이다. 내 눈에는 분명 엄청 굵은 주름이 얼굴을 덮었는데 동생은 늘 그대로라고 한다. 기차에 앉아 생각하니 동생이 안쓰러웠다. 고생은 안하고 사는 사람인데 무슨 일이 있기에 얼굴에 주름이 저렇게 생겼을까,
청량리역에서 1호선으로 종로5가에서 내려 행사장인 교회백주 년 기념관에 도착했다. 언제나 일찍 다니는 습관이 있어 이날도 행사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더 일찍 온 회원 십여 명이 있고, 곧바로 아는 회원들 몇 명도 왔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많이 늙어 주름이 굵게 보이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사이 모두 늙으셨나 하고 생각할 때 사무국장이 “심 회장 오늘 얼굴이 더 환해졌네”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니 이걸 어쩌나 안경을 두고 돋보기를 쓰고 서울나들이를 했으니, 킥하고 웃음이 나왔다. 검은 테 안경에서 보라색 테로 바뀌었으니 얼굴이 밝아 보였던 것이다.
누구보고 돋보기를 쓰고 왔다고 할 수도 없고 웃음을 참으며 행사장에 들어가 앉았다. 돋보기 덕분에 나누어준 유인물은 잘 보여서 좋은데 이 실수를 회원 누군가가 알아차릴까 신경 쓰였다.
행사가 끝나고 인사동에 가서 색한지를 사가지고 오려고 돋보기를 쓰고 색깔을 고른 다음 안경은 그냥 놓고 돋보기만 쓰고 역으로 갔던 것이다. 멀쩡한 동생을 주름 많은 노인으로 둔갑시킨 돋보기, 나는 요즈음도 돋보기 때문에 깜짝깜짝 놀란다. 설거지와 청소를 잘한다고 했는데 급하게 돋보기를 쓰고 주방에 가면 양념 묻은 것이 그대로 있고, 화장실에 가면 바닥에 이물질이 그대로 남아있다. 돋보기로 보는 세상이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돋보기로 보는 세상은 현실과 많이 다르다. 요즘 내년 대선을 앞두고 상대방에게 돋보기를 들이대고 지저분한 것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누가 더 맑은 돋보기로 상대의 이물질을 발견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려 있는 선출 직 후보자들, 돋보기로 보면 안보이던 지저분한 곳도 모두 보이니까 상대가 찾아내기 전에 지저분한 곳이 없도록 평상시 청결하게 청소를 했어야 문제가 안 된다.
돋보기란 조그만 눈알 두 개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한겨울의 하얀 눈처럼 깨끗한 후보자들이 많아야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
(2021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