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박스
이번 주는 발렌타인 주간이다.
우리 대이케어에서는 이번 주를 '감사 주간'으로 정하여 부모님, 아이들 그리고 동료끼리도 서로
감사의 마음을 나누도록 작은 행사를 열게 되었다.
교사들에게는 어릴 적 사진을 가져오게하여 게시판에 붙여놓고 그 사진의
주인공이 지금의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였다.
워낙 눈설미가 없는 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유년시절의 얼굴을 학부형의
도움으로 그나마 14개의 사진 중 10개를 맞히는 성적을 내었다.
제일 성적이 좋은 사람에게는 게임기가 상으로 주어지는 큰 게임이었다.
다음 행사로는 아이들이 한주간 동안 발렌타인 선물을 만들고 준비하는데
신발을 살때 가져오는 상자를 예쁘게 꾸며서 그속에 선물을 담는 일이다.
이십 여개가 넘는 상자가 모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순서를 정하여 상자를 장식하게 하였다.
여러 가지 색의 하트 모양 조각과 꽃 무늬 스티카 그리고 마커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하였더니 아주 근사한 발렌타인 박스가 만들어졌다.
박스를 여러 가지 하트로 장식하는 여자 아이들이 있는가하면
달랑, 스티카 하나만 붙여놓는 남자아이도 있다.
핑크색과 붉은 색으로 만든 하트들이 교실 안을 장식하고
아이들은 날마다 하트를 만들어 나누어 갖는다.
자연스럽게 소꿉 놀이영역에 우체국을 만들어 놓으면 아이들이 카드와 선물을 배달하게 된다.
동료교사 매리안은 아이들에게 줄 연필과 카드를 가져왔고 크리스틴은 아주 작은 수첩을 가져왔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하나?
한국에서 어린이 날, 아이들에게 주었던 하트 모양의 카드가 생각났다.
조금 큰 붉은 색 종이로 하트모양을 오리고 톱날 가위로
핑크 색 작은 하트를 붙인 후 아이들 사진을 동그랗게 오려서 붙였다.
가운데 구명을 뚫어서 줄을 매다니 아주 근사한 발렌타인 목걸이가 되었다.
사진이 없는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들 얼굴을 그리게 하여 만들어주었다.
박스가 다 만들어진 다음 날부터 아이들은 카드며 사탕 그리고 자기가 손수 만든
그림들을 가져와 상자에 넣는다.
해일리가 봉투에 카드를 담아오던 날 아침은 해일리의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등
온 가족이 총출동을 하였다.
"애나, 해일리가 아주 많이 익사이트(흥분)해서..."
내가 보기에는 해일리보다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이 더 행복해하고 더 익사이트 한 듯 보인다.
오늘은 '발렌타인 마이스' 를 만드는 날이다.
하트를 반으로 접어서 눈을 그리고 수염도 그린 뒤 엉덩이에 실을 매달면 영락없이
그 모습은 쥐가 된다.
아이들은 쥐를 만들어 '스퀵, 스퀵'하며 쥐 소리를 내며 놀이를 하였다.
우리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미치는 쥐를 내게 가져와
"애나, 쥐에 귀를 달아주세요" 하고 요청하였다.
정말 귀를 붙여놓으니 쥐 모습이 더욱 그럴듯하였다.
그러더니 한마리 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치의 부모가 요즈음 별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일주일에 반은 아빠 집으로
나머지 반은 엄마 집으로 두 개를 만들어 나누어 가져갈 생각인 것이다.
언제나 맑고 웃기를 잘하는 그 아이가 어쩌다 울면서 심술 부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놀이를 나가다가 후드코트에서 아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할 때 미치도 한국말로 "안녕"하고 인사한다.
"애나, 한국말로 하이가 안녕맞지요?" 가슴에 꼭 안아주면 그 아이의 심장 소리가 콩닥콩닥하고 들려오는
아이이다.
어느 덧 발렌타인 박스에 카드가 수북히 쌓여가고 초코렛과 사탕들이 들어가 묵직해지고 있다.
오늘은 집으로 상자를 가져가는 날!
문 가에서 부모들이 자기 이름을 부르면 얼른 뛰어가 안기던 아이들이 오늘은
묵직해진 발렌타인 상자를 들어 올리며 힘겨운 표정을 짓는다.
아이들이 더욱 밝아보이고
'해피 발렌타인'을 외치며 돌아가는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금요일에는 포트 락을 하기로 하였다.
각자 음식을 한 가지씩 해오는 것인데 나는 야채와 새우를 듬뿍 넣은 볶음밥을 해가져갔다.
한 접시 씩 해 온 음식이 둥그런 테이블에 가득하다.
중국 향이 나는 두부 조림과 해물, 아프리카 커리 향이 가득한 닭고기 요리,
그리고 레바논 요리사가 만든 야채 샐러드...
선물과 음식을 나누면서 사랑에 대해서 한번더 생각해보는 발렌타인 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