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 섯
여름 나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었다.
아, 그 때의 느낌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에 몸을 떨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칼의 노래'는 대여기간이 끝나면 다시 가서 빌려다 보았고, 또 다시 대여 받아서 읽기를 반복했었다.
그래서 역사속의 '충무공 이순신'이 내게 와서 부활했고, 나는 반했고, 사랑하게 되었다.
누구는
"소설을 사실인 양 착각하면 안된다." 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이순신의 '함경도 일기,난중일기',해군사관학교 임원빈 교수의 '이순신 병법을 논하다'.서강대 지용희 교수님의'경제 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그분에 관련된 많은 책을 읽었다.
모두 놀랍고, 기가 막힌 사실들이였다.
'우리 앞 시대에 정말 근사한 남자, 아니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멋진 인격체가 다녀 가셨구나'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어느 인터뷰에서 감명깊게 읽은 책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대통령은 김훈의 '칼의 노래'라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그 때까지 인간 노무현을 잘 알지 못했다.
국회청문회, 그리고 선거유세 때 그 분이 쏟아 놓았던 언어들이 참으로 날카롭고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었고 영남사람이 겁도없이 호남의 당이라 할 수 있는 DJ와 끝까지 뜻을 같이 하는 걸 보고
'참 줏대가 있는 사람이구나.'
'의리가 있는 사람이구나.'
'괜찮은 남자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통 정치인과 다른 고집이 있는 인간 노무현을 보았을 뿐이였다.
그러나 '칼의 노래'를 감명 깊게 읽었다는 그분의 한마디에 단번에 그 분을 좋아 하게 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해가 될까? 아니 믿어줄까?
2009년5월23일 갑작스런 대통령의 서거, 정확히 말하면 자살 소식에 나는 불현 듯 이순신이 스쳤다.
늘 사람들이
"이순신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을 하면
"그 분을 모욕하는 그런말을 어떻게 할 수 있냐?"
고 흥분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날 나는 왜
'충무공 이순신도 자연사가 아닌 건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었을까?
노무현대통령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세상의 잣대와 의심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나 보다.
그 심정을 헤아리다 보니 안타까움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 분의 노제가 열리는 서울시민광장을 찾았다.
조국을 온몸 던져 사랑했던 사람, 너무도 인간적이였던 사람, 직선적이라 사람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솔직했던 그 분이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간절히 빌어드리고 싶었다.
'서울시민광장' 그 노랗게 물결치는 인파속에서 진심으로 빌었다.
격동의 세월을 치열하게 살다간 한 남자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해 달라고 천지 신령님께 간절히 빌었다.
그런데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던가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시민광장'에 들어서고 흰 상여가 향불을 지피는 의식행사가 시작되자 누군가 소리쳤다.
"하늘을 보세요!"
하늘에는 오색영롱한 빛깔의 오로라가 동쪽하늘에서 불꽃처럼 피워올랐다.
한 10분정도 였을까? 나는 그 오로라가 사그라질때까지 목을 젖히고 쳐다보면서
'아,나는 인간 노무현을 과소평가 했구나 이분은 정말 이 땅에 큰 뜻을 전하려 오신분이 였구나 !'
하는 생각과 동시에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아, 그 분이 가셨다.
나는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자연사했다고 믿는다.
노무현대통령도 봉화마을에서 자연사했다고 믿고싶다.
난세의 영웅 이순신과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노무현 대통령. 온몸을 던져 나라를 사랑했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두남자!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랑해도 되냐고 묻고싶다. 아니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살아생전 한 번 뵙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다.
"좋은 곳에서 이제는 편히쉬세요.
당신이 사랑했던 조국 살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