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gaH(216)_사도행전 묵상(10)_성령이 충만하면 4 가지가 기존의 삶을 대체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행2:37-42)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에스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제사함을 얻어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려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랑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예로말로 확정하여 권하여 가루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며 이날의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맨 초대 교회 4가지 기둥에 대해서 나누길 원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이제 드디어 공동체가 생깁니다. 성령이 임하시니까 성령이 충만하게 되니까. 이 네 가지의 일이 여기서 42절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이 네 가지가 원래의 삶을 대체하게 됩니다. 기존의 삶이 완전히 대체가 됩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 바로 성령사역이라고 우리가 볼 수가 있는데, 성령에 임하면 정확하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알 수가 있고 교회가 생기고 공동체가 생기게 되는데 네 가지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현재로 이루어져 누리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요. 주로 삼고 살아 가게 되면 이런 일들이 반드시 일어난다라는 거죠. 불같이 임하니까 기존에 있는 나가 다른 나로 대체가 됩니다. 이게 바로 성령의 역사예요.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들. 성령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자들의 삶이 42절부터 47절까지의 내용이 그게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그랬죠. 지난 시간에. 그렇죠? 영생을 얻고 영생을 누린다고 했는데 그 영생을 누리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생겨요. 영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느냐. 그게 42절부터 47절까지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3천 명의 신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새로운 영적인 가족이 되는 거예요. 영적인 공동체가 형성이 되는데 42절에 내용이 건강한 영적인 공동체가 할 네 가지 필수 요건이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잘 보시면 첫 번째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첫 번째로,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게 사도의 가르침은 보낸 자, 파송을 받은 자니까 맨 먼저 파송된 자들은 구약의 선제자들로부터 잔뜩 있고 신약에 와서 파송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가요? 예수 그리스도어로 예수님이 말씀이니까. 예수님을 보시면 되겠죠. 파송받은 자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파송된 자는 바로 성령님이죠. 그런가요? 성령님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와 계시잖아요.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가르친다는 다 가르친다고 그랬죠. 뭘 가르친다고 그랬죠?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죠 그런가요?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가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복음을 증계하게 돼요. 복음.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죠. 이걸 가르치게 된다는 거예요.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잘 들으세요. 오늘날 교회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특징 네 가지 초대 교회를 지탱하고 있었던 네 가지 기둥이 여기에 나와 있어요. 가르침을 받는데 이게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 가르치고 그게 복음이죠. 그러니까 이 구원사건이 공식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런 것들을 교회에 선포하게 되는 걸 말해요. 전승복음은 고린돈서 15장 1절에서 6절 사이에 잘 나와 있죠. 그것이 복음이고 그것을 가르치게 되고 성경에 오시면 그걸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그 사건에 연합하게 될 때 영생을 살게 된다고 그랬죠. 되게 중요한 내용이고 그런 부분들은 정확하게 깨닫고 알고 있어야 돼요.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바로 그 4가지 사건에 참여하게 함으로 영생이 복음이 내 안에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다고 누누이 제가 말씀을 드렸죠. 그 사건에 참여하게 될 때 우리에게 실제화된다. 그래서 영생이 실제화되고 영생이 실제화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실제화되는 거죠. 영생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이잖아요. 그런가요? 그게 그대로 이루어진다라는 거죠. 그걸 가르친다라는 거죠. 교회는 이걸 가르쳐야 돼요. 더 이상 다른 걸 가르칠 게 없어요. 사실은. 모든 말씀이 여기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러죠. 지금 시대의 사도는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누군가를 통해서 말씀하겠죠. 요한일서 2장 27절의 김윤범이 너에게 모든 것을 가르친다. 결국은 말씀과 성령이죠. 그런가요? 성령에 오셔서 말씀을 가지고 에스크리스도를 증가하고 복음을 증가하게 된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고 성령이 충만하게 되니까. 이 방언을 하고 막 이런 어떤 감정적인 육체적인 체험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되고 그다음으로, 단계로 나아가서 진리의 말씀 위에 서게 되는 걸 말이에요. 진리 복음이죠. 그게 교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어떤 진리가 선포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이 말씀이 성령을 통해서 개시되어져서 우리에게 들어와서 내 삶에 임하지 않고 존재로 거하지 않는 상태에서 신앙생활에 열정을 내는 것은 맹목적이 돼요. 그러니까 딸랑딸랑하면 그냥 간다고요. 딸랑딸랑 이쪽으로 가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뿌리가 없는 신앙이죠. 그래서 제일 성령 충만하게 되어서 예술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영생을 살게 되고 이 패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얻게 된다. 그랬죠. 회개하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제상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데 영생의 삶을 시작하게 되고 누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은 하는 것이 첫 번째 이 가르침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복음이라는 거죠. 여러분도 복음을 철저하게 알고 있어야 돼요. 멋대로 사는 걸 복음이라고 생각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는 거예요. 그러죠. 그게 영생의 실재화라고 그랬죠. 그건 말씀이 없이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령에 오시면 예수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계시하고 가르친다고 그랬죠. 말씀을 우리에게 계시하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말씀이 열린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바뀌게 되어 있는 놀라운 역사가 성령의 임하심을 통해서 일어난다 라는 거죠. 그게 가르침을 받고 두 번째 보세요. 두 번째 두 번째는 서로 교제하고 성령이 이제 임해서 천국의 생명,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누리게 되니까. 맨 먼저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으로 새롭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그다음에 그 생명을 가진 자들끼리 이제 교제합니다. 교제가 일어납니다. 이게 코인원이야. 뭐라고 할까요? 이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죠. 하나님과의 말씀 안에서 가르치니까 이건 수직 코이노니아. 하나님과 이 코이노니아즈 그렇죠. 이거는 수평 수평 코이노니아 성도들 간에 이거는 교인들 간에가 아니고 성도들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들 간의 코이노니아 교재예요. 교재는 함께 친하게 지내기죠.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기는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방 교제, 골방 교제 하면 그걸 이제 그걸 혼자 하는 거죠. 그 사람들이 이제 나오면은 서로 공동체가 교회라는 게 영성의 공동체죠. 영성의 공동체는 천국 백성들의 모임이에요. 천국 백성들의 모임은 뭔 이야기할까요? 그래요. 너무 간단한가요? 당연한 천곡의 교재 이거죠. 이 교재 한 걸 가지고 여기서 나누게 되는 거예요. 나눌 때 배고프면 좀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떡도 떼고 이런 거. 이게 교재는 교재의 코이노이니아의 핵심은 뭔가 하면 신과의 연합 이게 핵심이에요. 교재라고 하면 맨 먼저 이게 이거라고 이걸 말해요. 교재는 신과의 합일 하나가 되는 상태를 교재로 그러면 이게 두 번째 서로 나누는 교재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해요. 교재라는 단어 코이노니아에 이것들이 다 포함이 돼요. 이게 두 번째예요. 교재하게 된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교회 오면 교제하죠. 어떤 교제를 합니까? 밥을 안 먹으면 교제가 안 되는 줄 알죠. 그래서 이 교회는 교제가 없다. 이런 말을 하는데 제가 아주 속이 뒤집어져요. 그건 교인들이 하는 교제고요. 아시겠어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교제는 하나님과 교제하듯 서로 생명 간의 교제를 하는 거예요. 교제하는데 필요하면 떡도 먹고 술도 한잔하고 포도주 포도주는 기쁨이죠. 기쁨을 서로 나누는 거예요. 여기서 일어나는 그 삶의 놀라움을 여기서 성도들 간에 선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디 식당에 가서 밥 먹으면서 세상 이야기하면서 이런 걸 교제라고 하시면 큰일 납니다. 사교단체. 가 아닙니다. 교회는 아시겠어요? 세상 사람들이 동호회 이런 게 아니에요.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와서 그런 걸 하려고 그래요. 그런 교재를 이 교회에는 왜 교재가 없냐. 그건 교제를 하면 안 돼요. 여기서는 세상에 가서 하는 거지. 성령 안에서. 이거 전부 성령 안에서 하는 거죠. 성령이 임하시니까. 성령의 임하심으로부터 시작됐죠. 전부. 그럼 전부 성령 안에서 하는 거예요. 성령의 임하심으로 새 생명을 어디 있죠? 이 새 생명 안에 그거는 성령 안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교제하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 수평 교제, 수직적인 교제, 수평적인 코이노니아를 하는 거예요. 성령 안에서의 삶을 서로 나누는 거예요. 천국의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천국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나누는 시간이에요. 교회 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간밤에 안녕하셨습니까? 이걸 나누는 게 아니고 여기서는 우리는 안녕이 어디 있어? 항상 평안 가운데 있는데, 맞나요? 이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나눔이에요.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방 교제가 그 핵심이죠. 그리고 이제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모여서 만나면은 아 어제 나 이런 경험을 했어. 그러면서 생명 하나님과 이 교제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교제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삶을 누렸는지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이게 천국의 삶이잖아요. 그런 걸 서로 누리는 거예요. 우리 집에 고양이 새끼 몇 마리 낳는데 이런 거 누리는 곳이 아니고 아시겠어요? 아면 그런데 이걸 누리다 보면 배도 고프잖아요. 떡도 떼고 이렇게 하는 거지. 그건 곁다리예요. 곁다리. 그러다 보면은 그 사람이 고통과 괴로움, 아픔도 있고 부족함도 있고 이런 것들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들을 서로 도우고 이런 것들이 영적으로 부족하고 고통을 당하고 이런 것들이 어떻게 하면 회복되고 이런 것들을 나누는 거예요. 이해가시나요? 복음을 통해서 얻은 생명, 그 생명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요한일서 1장 3절에 나오죠. 맞나요? 여왕에서 1장 3절 그건 엄청 중요하죠. 함께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 하면 우리의 사김이다. 사귀게 하신 하나님을 믿으시다. 이런 내용들이 거기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영적인 가족으로서의 결속을 말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형제자매죠. 같은 피를 나눠 가졌잖아요. 전국에서 잠깐 여기 여행 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맞나요? 오라면 얼른 가야죠. 여기 와서 천국에 일어나는 일을 서로 나누는 거예요. 우리가 마치 형제자매처럼. 그러다 보면 육적인 필요에 대해서도 채워주고 이런 역사가 일어나겠죠. 그게 바로 45절이에요. 44절. 45절. 모든 물건을 동요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고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이런 일들이 천국에 있는 형제자매들끼리 교제가 그런 것들까지도 일어난다라는 거예요. 서로의 표를 채워주고 이게 천국의 삶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거기 안에 이제 두 번째가 교재하고 세 번째가 세 번째가 뜨을 때며 이게 이제 뜨을 된다라는 것은 사실은 이수님의 성만찬을 말해요. 그 당시에는 성만찬을 수시로 했던 것 같아요. 정기적으로, 부정기적으로 이런 게 아니고 수시로 한 것 같아요. 필요할 때.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서로 모이면 그걸 주식이 떡이잖아요. 빵. 빵을 먹으면서 포도주 빵과 포도주가 주로 많이 먹는 주식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게 마치 성만찬처럼 예수님이 기념하라고 했으니까 그걸 가지고 서로 이렇게 나누고 있는 거죠.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면서 성찬을 먹고 서로 나누고 이렇게 매일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기념하는 이런 삶이 되는 거죠. 이해가시죠? 그러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자매들처럼 이렇게 나누는 것들이 일어나. 이게 영적이고 육적인 교재까지 다 확대되어서 일어나는 모습들을 말해요. 이런 교재가 일어나요. 신과협일뿐만 아니라. 연합해서 자기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주고 손해보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가지면 다 가지고 있지는 않잖아요. 누구는 이거 가지고 누구는 저거 가지고 이런 것들이 서로 맞게 되어 있다라는 거죠. 그런 교재까지 다 합쳐서 고위논의야라고 그래요. 하나님과의 교제, 수평적인 성도들 간의 교제 이런 것들을 말하죠. 그게 다 포함되고 그다음에 네 번째가 뭔가 하면 네 번째가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여러분? 저희가 기도한다고 그러죠.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쓴다. 이 기도는. 그러니까 세 사람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가 되겠죠. 당연히. 그러지 않는가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난 후 가진 자들끼리 이렇게 만나서 서로 기도하게 되고 혼자 기도하게 되기도 하고 모였으니까 모여서 기도하게 되겠죠. 그게 교회라는 거예요. 교회가 이게 4가지예요. 4가지. 3개. 4개. 이 기도인데 이 기도는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를 말하고 개인 기도로의 차원을 넘어서 합심해서 이렇게 왜 이걸 하고 나면은 이 교제를 하고 나면은 이제 각자에 대해서 뭔가가 아 이 사람은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하겠다. 라는 것 알게 되잖아요. 이 사람은 영적으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고 이런 것들을 서로 나눌 거 아니에요. 육적으로 물론 부족한 것들, 일어나는 일들 이런 것들도 물론 이야기하게 되겠지만, 그런 걸 통해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통해서 그것들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고 이런 것들을 기도하지 않겠어요. 그렇죠? 그런 기도가 일어나겠죠. 당연히 교제하면서 배운 것들이 교제하면서 배운 것들을 서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나에게도 이루어지고 상호 간에 같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하게 된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거기에는 분명히 성령의 역사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그 나라와 을을 구하는 기도가 당연히 제일 먼저 나오겠죠. 성령이 교제하면 뭘 가르치겠어요? 내 안에 아직도 그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계속 들춰내어서 알게 하잖아요. 회개하게 하고 그거를 내보내게 하고 돌이키게 하고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일어나게 되고 상대방의 서로의 교재를 통해서 나는 어떤 부분이 이렇고 저렇고 이런 것들이 서로 왔다 갔다 할 거 아니에요. 영적으로 교재 안에서 그런 것들을 가지고 서로 기도를 부탁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게 되고 그런 일들이 일어나겠죠. 왜냐면,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기도를 하게 된다라는 거죠. 이 네 가지가 초대 교회의 기둥이에요. 지금도 당연히 성령이 충만한 교회나 단체는 이 네 가지가 일어나요. 분명히 일어나게 되죠. 우리도 일어나는 것 같아요. 이건 우리가 사랑방 교제를 통해서 다 하고 있는 거죠. 다 하고 있는 거잖아요. 기도하잖아요. 우리 다 하죠. 이것도 하다 보면 육적으로도 서로 피로를 채워주기도 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죠. 그런가요? 그러면서 기도하게 되고 이런 것들은 교회의 핵심이에요. 초대교회의 교회로 돌아가자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사실은 이건 시간 안에 있는 게 아니라고 시간 안에 산물이 아니고 물론 시간 안에서 지나간 사건이긴 하지만 우리는 영원 안에 있잖아요. 영원 안에서 지금 성령이 동일하게 그때 성령이나 지금의 성령에 동일한 거죠. 동일하게 성령이 임하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제3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모일 거 아니에요. 모이면 이런 일이 당연히 일어나야지. 모여서 너 어제 잘 먹었니? 이런 이야기는 좀 안 하겠죠. 만나니깐 안 그러던가요? 사담이나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하고 그러지 않죠. 아멘 그거는 공동체이긴 한데 그건 사교. 그렇죠? 4개 집단은 아니죠. 우리가 교회를 그렇게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보세요. 성형의 이마시움을 통해서 이렇게 형성되어 있는 생명의 공동체 안에는 당연히 일을 일어나요. 우리도 만나니까 맨날 그런 거 주고받잖아요. 일어나는데 이게 아니고 율법 안에서 있는 공동체들은 그런 이야기가 없어요. 교제를 해봤어야지. 할 말이 있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더니, 복 받았어. 이런 이야기밖에 할 게 없는 거야. 이렇게 기도 열심히 했는데 얘가 좋은데 철컥 붙었어. 이런 이야기밖에 할 게 없는 거야. 그래서 그런 것 그런 게 믿음이 좋은 거죠. 심각한 거예요. 그거는 그러면은 철컥 못 벗고 맨날 골방에서 기도만 하는 사람들은 바보죠. 그러니까요. 여러분 율법 안에서는 성령의 역사 아니에요. 그러면 이런 교재가 있을 수가 없어요. 성령과의 교재. 성명 안에서 들어가 봤어야지. 그 생명의 기쁨이 행복이 능력이 어떤 건지 여기 안에 들어가 있어 봐야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게 어떤 건지 경험을 해봤어야지 나누지. 그러니까 열심히 와서 기도하고, 막 전도 열심히 하고 헌신봉상이 나올 게 그거밖에 없는 거야.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열심히 일해서 잘 됐어. 그러면 그거 이제 믿음이 좋은 거죠. 그런데 열심히 일을 열심히 했는데도 운이 좋아서 안 됐어. 그러면 이제 그러면 할 말이 없는 거죠. 찌그러져 있어야죠. 그런 공동체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교제를 이상하게 생각 먹고 서로 잡담하면서 우정을 서로 쌓아가고 이런 걸 교제라고 착각하시는데 그건 제발 밖에서 하세요. 교회 와서까지 그거 하지 마시고 교회 와서 정치 경제 이야기하고 취미 이야기하고 우리 아들이 이렇게 됐다고 이런 이야기 그만하시고 아멘 못된 이야기만 하세요. 이렇게 해서 실패했어요. 내가 하나님 말씀을 안 따라가지고 이렇게 쫄딱 망해서 이런 거 해야 돼요. 원래 저처럼. 아시겠어요? 그래서 37절, 42절 물론 그 위에도 쭉 있지만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42절까지 요약하면 이런 거예요. 부활하신 예수를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모신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예수가 주가 되고 그리스도가 된 자죠.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 자들이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회개하고 서로 교제하고 서로 나누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해 가는 것. 그게 교회예요. 그게 초대 교회에 일어났던 일이에요. 그때 교회하고 지금 교회하고는 달라야죠. 많이 그 시대하고 이 시대하고 어떻게 똑같아요? 한 성령 안에서 한 음료를 마시고 한 가지 세례를 받고 한예수 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당시의 성령하고 지금 성령하고 많이 다르죠. 똑같아요. 지금 이 교회는 생명의 공동체여야 해요. 그냥 구원받고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에요. 그건 그냥 생명 없는 교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형식만 있는 교회도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서 주로 나누는 거 보면 우리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이렇게 잘 됐어. 이런 걸 막 나누잖아요. 강단에서 그런 걸 간증하잖아요. 그걸 생명을 나누는 건가요? 그건 좀 곤란하죠. 물론 생명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긴 하죠. 그거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 와서 막 간장하고 그러잖아. 잡사들 모시고 와가지고 안 그래요. 뭔가 뭔 간정하는 거예요? 잘 나가는 간정하잖아요. 그게 잘 나가는 건가요? 그런 사람들한테는 그게 잘 나가는 거지. 심각한 거죠. 그건 오늘 이 본문이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이 정확하게 되어야 돼요. 나는 과연 이 말씀의 가르침, 진정한 교제 떡을 떼면서 스님을 기억하고 기도해 모든 것을 먹고 있는가? 그걸 점검해 봐야 돼요. 아닌가요? 그게 교회 모습이라고요. 내가 교회고 우리 생명을 가진 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의 생명이 공동체인데 그 공동체에서 일어난 일은 이거라고 그런가요? 성형이 불가침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야 돼요. 왜 그런가요? 성령이 장악해서 새 생명 말씀과 성령으로 새로 나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리스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제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령과 연합되어서 새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달라요. 삶의 방식도 다르고요. 사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니까요. 그러니까 기존에 살던 사람들은 없어졌어요. 이미 이전 것은 다 지나간 세 사람이 세 사람끼리 서로 나누는데 옛날 사람이 하나 끼어들어와요. 아주 머리 아프죠. 말이 안 통하죠. 세상 이야기 막 해봐요. 머리 깨질 듯 아프고 그러지 않던가요? 그러죠? 여기 예배할 때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세상에 막 이렇게 다니다가 여기 앞에 떡 앉아 있으면 어떤지 알아요? 제가 모를까요? 할까요? 여기서 말해도 잘 안 흘러요. 기도할 때 평소에 그냥 찬양 한 곡만 해도 불같이 임하던 게 안 나가요. 내가 아주 낑깅대야 됩니다. 머리 아파 죽어요. 여기서 막 화살이 날아와요. 그 한 사람 때문에 실제로 그런다니까요. 영이 그렇게 파급력이 커요. 옆 사람들 막 졸고 난리야. 옆 사람들도 빌빌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서로에게 책임이 큰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런 게 있다. 그러면 밤새 청소하고 오셔야 돼. 아시겠어요? 청소하고 오셔야죠. 내가 다른 사람에게 민폐 안 끼치게. 제일 thinking대다니까요. 실제로 이런 것은 다 지나가고 새 사람들끼리 이제 단체가 막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좀 이렇게 힘들 수는 있지만 성경이 역사하면 아유 그거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걸 가지고 오래 교회 다녀. 오히려 오래 교회 다니는 게 더 힘들어요. 성경이 인도하신 분에 따라서 공동체 생활을 한 게 아니라 자기 힘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이고 힘들어요. 무지하게 힘들어요.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고 충만하게 역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게 일어나야 돼요. 그렇죠? 이게 일어나고 있어야 돼요. 여기 이게 성경이잖아요.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죠. 그렇지 않으면 옛날에 그대로 있는 사람들이 자기 나 나 나가 똘똘 뭉친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이렇게 몽돌 몽돌 몽돌 1, 2, 3, 4, 5, 6, 7, 8 앉아 서로 부딪치고 날이 깨지지도 않아 네가 더 크냐? 막 부딪치고 불이 번쩍 나죠. 그런 거 치마는 막 불이 번쩍 나 안 깨져. 거기서 교제 한번 해봐야 어떤가? 목소리 큰 사람이 무조건 큰 몽돌이 무조건 이겨 아멘. 거기에는 오래 신앙, 오래 교인인 사람들이 제일 소리가 율법으로 막 지식도 많고 그렇죠? 영어로 변한 게 아니고 율법적인 지식이 잔뜩 있으니까 머리가 몽돌이 큰 몽돌을 가지고 머리가 암에 그래서 헤딩하는 거예요. 서로 쥐어박는 거요. 그러면 작은 사람, 맨날 깨갱이 방금 들어온 사람 지식이 별로 없잖아요. 치박아버리고 왜 그따위로 하냐고 박아버리고 숨을 못 쉬는 거예요. 처음은 좋았는데 한 23주 지나면 그때부터 교회가 치러지기 시작해요.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오기가 있잖아. 조선족들은 우리 백의 민족들은 오기가 있잖아요. 꿋꿋하잖아요. 어디 보자. 나도 1년 만기 내가 와신상담 이를 갈면서 성경을 내가 외워가지고 되어드는 거예요. 이런 게 교재예요. 안 그래요. 그러죠 제가 그랬는데요. 이런 게 안 나타난다 그러면은 율법과 지식이 충만한 거예요. 교회만 다니고 있을 뿐일 수도 있어요. 교인이 교인 생명이 없다라는 증거예요. 생명이 없으면 생명이 있으면 무조건 이 일이 일어나야 돼요.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영화 생명의 교제가 일어나게 돼요. 그래서 끼리끼리 모이죠? 안 그러던가요? 말 통하는 사람끼리 모이잖아요.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 그런데 말 안 통한다고 무조건 핑계치면 되겠어요? 얼마 안 됐잖아요. 그럼 봐줘야죠. 들이받으면 되겠어요? 생명이 없으면 그러죠. 이게 이제 성령 안에서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이런 일이 일어나야 되는 거죠. 그러면 지금 우리 시대에 지금 이 시간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교회의 코이노니아가 반드시 실현되고 있어야 되죠. 그러겠죠? 그러니까 교제라는 걸 자꾸 음식 먹고 서로 나누고 식사를 하거나 동호회나 하는 일은 교회도 끝나고 나면 동호회 하잖아요. 축구 동호회도 하고 볼링 동호회도 하고 골프 동호회도. 그래서 골프 예배를 하는 거예요. 또 뭐 있어요? 잡담 동호회도 있나요? 떡볶이 동호회도 있고 그런 거 하잖아요. 그거는 말 그대로 동호회나 하는 거고, 교회에서는 코이노니아 그런 게 아니에요. 사조행전 2장을 잘 보시면 사조행전 2장 안에서의 진정한 코이노니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야 돼요. 이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그 생명을 나누어 가진 운명공동체예요. 마치 우리 가족이 하나의 핏줄에서 난 것처럼 그런 형태의 공동체가 바로 예수생명공동체예요. 그 안에서 교제가 이루어져야 돼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와 주가 되셨으니까 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여야 해요. 현대교회가. 목표를 삼고 달려가야 할 부분이 바로 이 교회 공동체가 이런 공동체여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서 어떤 그런 세상적인 이런 것들을 도입해서 교재를 이런 이런 거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교회가 아니에요. 그거는 사집단이지. 그래서 그리스도회 안에서 예수생명공동체, 영원한 생명공동체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영적인 진리가 원리가 필요해요. 첫 번째가 바로 수직적인 코인원이에요. 이게 없으면 그 다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재 친목도모, 인간적인 친목도모를 절대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이건 반드시 요한일수 1장 3절에 기초를 두고 해야 돼요. 요한일서 1장 3절 다시 가서 확인해 보죠.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김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김은 아버지와 그 아들 에스크리스트와 함께하며 여기 사김이 지금 두 개 나와 있죠. 우리 너희로 우리와 사김이 있게 하는 것 이거죠. 보세요. 이거 너희로 우리와 사김이 있게 하는 것 그다음에 우리의 사김은 뭐냐?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함께 함께 함이라 이게 사김이라고 하는 단어죠. 구약에는 야다. 그러니까 이게 영생의 삶의 핵심이죠. 사귀미, 야다, 코이노니아 이긴 아나님과 함께라는 거예요. 계속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거. 그거 안에서 이게 이루어진다는 거죠. 이게 이루어진다는 거죠. 이거없이. 성도 간의 교제. 이건 그냥 친목회예요. 친목회로 전락하는 거예요. 여기는 서로 잘난 것들끼리 난리가 몽돌몽돌 그런 일이 일어나죠. 친목되는 거 봤어요? 기분 나쁘면 친목 안 되잖아요. 기분 좋을 때는 좋은 끼리 친목되고 그렇죠? 여기는 그게 있어요. 여기는 이전에 몽돌 같은 나가 없어요. 여기는 이미 세례를 받고 죄상을 받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서로 나누고 있는 형제 참외 피를 나누는 것보다 실제로 이게 더 진합니다. 여러분. 이건 영원히 안 끊어진다고. 이게 이 땅의 형제자면 죽으면 끝이죠. 누군가 이별하면 끝이잖아요. 여기는 아니에요. 영원히 영원히 이게 훨씬 진한 거예요. 사실은. 그렇죠? 그래서 첫 번째 지금 현재 우리 교회에서 코이노니아의 핵심 원리 첫 번째가 바로 이 수직적인 이게 먼저 이루어져야 돼요. 이걸 통해서 계속 생명으로 충만해져야 되는 거죠. 계속 충만해지고, 말씀으로 충만해지고, 성형과 능력으로 기름부음으로 충만해지고, 그렇게 되면 결국은 나 옛날의 나는 없어지고 새로운 나 그리스도의 성품 안에서 서로 교제가 되기 때문에 이 교재는 완전한 천국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가 일어나게 되죠. 원리는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수직적인 코이노니아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재 사람과의 관계 안 됩니다. 그건 그냥 일반적인 사회적인 통념 안에서 형식적인 교재 안에서 이루어지죠. 그런가요? 부부관계도 그래요. 정략개론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여러분 결혼할 때 사랑해서 결혼했나요? 뭐 좀 가진 게 많아서 결혼했나요? 아니면 이 남자 같으면 괜찮겠다. 이래서 결혼했나요? 여자 같으면 괜찮겠다. 생활력도 좋고 아멘 돈 금방 까먹지는 않겠다면 날라리는 아니겠다. 이렇게 해서 결혼했나요? 혹시 눈을 안 마주치시네. 여러분 어떻게 결혼하셨어요? 하나님께서 결혼하라 해서 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아무도 없어요. 놀라운 일이네요. 예수 믿고 결혼하신 분 예수 믿고 결혼하신 분? 예수 믿고 결혼하셨잖아요. 안 믿고 결혼하고 믿으세요. 여기도 아니에요. 시치미 뚝 따고 있어요. 진짜 안 다녔어요. 어쨌든 그러면 사회적인 통념 안에서 결혼했겠네요. 삐걱 소리가 많이 나죠. 저는 예수 믿고 결혼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아멘 하라고 해서 했어요. 그래도 삐걱거리는 거 많았어요. 당연히 있죠. 남남이 만났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은 부부관계는 그냥 바로 회복됩니다. 그건 그냥 물 흐르듯이 흘러요. 가족관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흘러갑니다. 그게 막혀 있으면 인간 서로의 관계도 이건 진짜 힘들어요. 진짜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 안에는 여기 안에 있으면 나라는 존재가 없고 예수님의 성품으로 많이 나오잖아요. 예수님의 성품은 남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그런 성품들이 있잖아요. 주로 핵심은 사랑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다르지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이잖아요. 그런 교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수평교재에도 그 사람을 위해서 손해보고 위해주고 오래 참아주고 이런 것들이 서로 일어나겠죠. 그럼 거기에 교제가 잘 되겠죠. 그런데 여기서 이게 안 되고 몽돌몽돌하면 자기가 아주 단단하잖아요. 그럼 여기 오면 어떻게 되겠어요? 단단한 드론끼리 서로. 그래서 부부관계는 다를 것 같아요. 똑같죠 여러분? 그래서 부부 관계 안에 한 사람이 안 믿는다. 진짜 힘든 거예요. 한 사람이 안 믿는다 하죠. 다 믿는다 하는데 믿지 않죠. 교회만 다니는 거죠. 이 교재 안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이거 진짜 안 쉬워요. 잘 되던가요? 잘 되죠? 거기 잘 돼요. 요즘 여기 안에 있잖아. 우리한테 잘 되냐고 물어보세요. 아니 교재를 나누는 거야. 지금 교재를 약오르지롱 이 진정한 사김의 핵심은 핵심은 사랑이잖아요. 이거기 때문에 여기에서 당연히 이게 일어나겠죠. 그래서 점점 더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본성이 점점 닮아가잖아요. 그래서 이제 남편을 보던 막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여지죠? 점점 그러죠. 조금요. 그러니까 기적이잖아요. 옛날에는 몽돌끼리 조 인간 말 안 듣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안 그러죠. 남편도 안 그런다면서요. 흘러간 거예요. 이제 그게 영이잖아요. 영은 물처럼 흐르거든요. SQL스에 47장에 보면은 보좌회사 여기 보좌역이 있잖아요. 흘러가는 거예요. 조금씩 흘러가다가 점점 많아지잖아요. 그럼 그게 흘러가는 거예요. 흘러가면 여기로 들어가죠. 상대방에게 들어가죠. 안수를 자주 하라는 이유가 그거예요. 기분 안 좋을 때는 하지 마세요. 왠만하면 아주 충만할 때 하는 게 좋아요. 더러운 게 충만해서 하면은 큰일 나고 기분 좋을 때 많이 하세요. 아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안 되면 인간관계는 형식이에요. 부부관계도 형식이고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안에서 도덕률과 어떤 사회적 통념 그 안에서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에요. 애들만 없었으면 벌써 따로 살 텐데. 그렇죠? 이런 것들이 그런 거죠. 예를 들면 그거는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관계와는 차원이 다르죠. 이 땅의 사람들이 관계잖아요. 여기는 천상의 사람들끼리 관계이기 때문에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가는 거예요. 평강이. 사람 관계도 안 깊어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생명 안으로 들어온 지 꽤 오래 됐기 때문에 대구로 가시면 아주 많이 힘들죠. 서로 막 부딪히는 게 많을 거예요. 그런데 그건 어떡하겠어요? 흘려보내야죠. 예수님이 나한테 흘려보낸 것처럼 그 십자가를 통해서 생명을 전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거 외에는 답이 없어요. 여러분. 그래야 그 십자가를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잖아요. 그러면 그 아래 하나님이 굴복하게 하시고 이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같이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영적인 원리가 그래요. 그래서 수직적인 코이노니아가 먼저 이루어지는 게 영적인 원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먼저 있어야 사람과의 관계도 부드럽게 이루어지고 전부 다 제자리를 찾아간다고 했죠. 이 일 반드시 일어납니다. 반드시 일어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똑바로 하게 되면 분명히 일어나요. 왜? 한숨을 쉬고 그래? 안 일어나고 있어요? 일어나고 있잖아요. 거기도 일어나고 있잖아요. 이걸 실현하는 방법이 수직적인 코에니아를 실현하는 방법이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방 교제와 골방 교제예요.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아시겠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서로 이렇게 모이면 이게 일어나기 시작하겠죠. 그래서 소집단 안에서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은 점점 힘들어져요. 그 관계 안에서 말씀 안에서 교제하고 그다음에 성형 안에서 교제하고 이런 것들을 서로 나눠야 돼요. 나누면 4개의 그게 와서 생명이 됐잖아요. 그럼 나누면 상대방에게도 생명이 되는 거예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교재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걸 하라니까 율법이라고 하네. 미칠 일이죠. 뭔지도 모르고 그걸 우리는 은혜를 나누는 거라고 그래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 안 돼요. 그래서 그러니까 이 공동체가 모이면 요즘 어떻게 지내 이런 말을 하는 것보다 준이가 뭐 일이 있었어? 이렇게 하는 게 맞죠. 이해 가시나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다 알잖아요. 뭐 물어봐요? 그래서 이 수지기 코이노니아가 오늘날 교회에서 코이노니아를 실현하는 핵심이 첫 번째, 두 번째는 당연히 수평적인 교재가 있어야 되는데 초대 교회가 그게 그렇게 강력했던 이유는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 안에서 교제를 했기 때문에 너무 잘하는 거예요. 상대방은 논의할 때 내 것을 먼저 터놓으라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죠. 말씀을 보고 나에게 비춰진 것 아니면 산 가운데 이 말씀이 나에게 어떻게 역사했는지 이런 것들을 먼저 말하라고 제가 아주 말씀을 먼저 드렸잖아요. 방장님들에게. 그렇죠? 그러다 보면 어때요? 이게 이 안에 있기 때문에 허물이 안 돼요. 여가 안에 있을 때는 그거 못 드나요? 절대로 여기 안에 있을 때는 이렇게 치장한 것만 서로 자랑하게 돼 있어요. 몽돌. 그런데 이 안에 있으면 절대로 안 그래요. 왜냐하면, 서로 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죠. 그런데 여기 안에는 벗었으나 부끄러워서 안 돼. 절대로 못 나눠요. 자기의 허물과 약점, 죄를 절대로 고백 못한다니까요. 이게 사랑방 교제가 얼마나 강력한지 아셔야 돼요. 그 교제를 하라니까 왜 그걸 서로 내 잘못을 서로 왜 나누냐고 그러니까 여기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지식 안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게 쪽팔리는 거예요. 그러면 평생 그 사람은 거기서부터 못 보잖아요. 하나님에게도 이게 안 이루어졌는데 어떻게 그게 하나님과 교통이 되겠어요? 안 일어나죠. 그건 실패하는 거예요. 신앙생활요. 야구부서 5장에 보면은 조금 앞으로 넘어가면 야구부스 5장 기가 막힌 말씀이 있죠. 우리 야구부스 했죠? 야구부스 5장 13절부터 보죠.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오.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성할지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를 청할 것이오. 그들은 저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두는 병든 자를 구원하려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움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의 죄를 서로 고백하며 거기에 표시하시지요. 이러므로 너의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제가 여기 다 했습니다만 여기 너의 죄를 서로 고백하고 병 낫기 병도 서로 고백하는 거죠. 죄를 고백하라 라는 게 죄를 고백하라 라고 써놨는데 이게 율법인가요? 서로 나누라 이게 율법인가요? 이게 그거잖아요. 토이노니아라고 그러잖아요. 그게 율법이죠. 그렇죠?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내 죄를 왜 고백하겠어요? 죄를 고백하고 기도를 하는 거예요. 서로 그 죄라는 게 뭔지 잘 모르니까 고백도 할 게 없죠. 아나린과의 수식 교제가 이루어져야 성령의 말씀을 통해서 나를 비추어서 그렇죠. 영과 혼과 유혹을 낱낱이 찔러 쫑에서 다 드러나게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게 하죠. 그걸 나누는 거잖아요. 그러면 내가 이런 게 드러났다라고 나눔 그러면 그게 그렇게 그걸 이제 코인원이야 사랑방에서 코인원이야 하면은 부끄럽던가요? 안 그러죠 저도 고백하잖아요. 그러면은 서로의 필요가 뭔지 서로의 죄가 뭔지 이런 것들을 알기 때문에 서로 기도해 줄 수 있잖아요. 그 죄로 인해서 병이 올 수도 있고요. 그래서 서로 기도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게 코인노니아예요. 그게 수평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이미 없기 때문에 자신의 죄 자신의 그런 숨겨져 있는 것들을 털어놓으면 말씀이 오면 그게 드러나잖아요. 내가 이런 게 있었구나 이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통을 받았구나 상처 때문에 이렇게 힘들었구나 이런 것들을 터놓게 되고 터놓고 나면은 이게 확 가벼워져 버려요. 마치 묵은 짐을 그냥 툴툴 틀어놓은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러지 않던가요?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그게 그리스 안에 있는 그런데 여기에 있는 친목회에 가서 그걸 고백하면 큰일 납니다. 절대 말하면 안 돼. 그걸 고백하는 순간 사방팔방 다 퍼져가지고, 저랬다. 저랬다가 눈덩이처럼 불어가지고 거기 건너가서 뭐가 되는지 알아요? 강도짓 하다가 잡혀서 이렇게 가버려요. 그러니까 여기 안에서 해야 돼요. 그래서 여기 안에서도 이 코이노니아, 수직적인 코이노니아가 잘 안 되는 사람은 고백을 잘 안 해요. 잘 못해.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강한 사람은 더 안 돼요. 내가 그래도 누군데 내가 그래도 목사잖아. 어떻게 잠사들하고 이걸 나누겠어. 내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내가 장로인데 안 나누는 거예요. 장로가 돼서 그런 말 해봐요. 쪽팔려서 못한다고 하지. 그런데 부엉의 역사는 장로들이 회개하면서 이루어졌어요. 평양에서 모장로님께서 그때부터 이루어져요. 그러니까 자기 거를 터놓지 않으니까 지식적으로 다 안다고 하고 가만히 있는 거야. 듣기만 하고 얘는 이렇고 얘는 저렇고 얘는 저렇고 쟤는 저렇고 이런 속으로 아이고 저놈 저는 제일 좋구나 이렇게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면은 그 사람은 여기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 안으로 못 들어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안 비춰주거든요. 왜? 그거 자기의 외적인 어떤 그런 잘난 모습이 이 코이노니아 안으로 들어가면 다 드러나거든요. 그게 교만이잖아요. 그게 들어가면 하나님이 맨 먼저 성령이 맨 먼저 말씀을 가지고 드러나게 하는 게 내 자신을 찔러 쪼개서 벌구충이 같이 벗기는 거잖아요. 상대방을 벗기는 게 아니고 그래서 말씀 묵상을 평소에 안 하면 코이노니아가 안 되는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사랑방 교제가 그렇게 강력한 거예요. 그거 하고 나면 점점 가벼워진다니까요. 내가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워지면은 내 안에 묶여 있던 것들,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 떨어져 나와요. 그러면 그 말씀을 통해서 내가 새롭게 창조되어서 결국은 그리스도의 모습에까지 점점 자라가게 되는데 여기에 참여 안 하고 그냥 다 한다고 그래봐요. 어떻게 되는가? 평생을 그냥 교회만 교인이죠. 교인. 안 된다고요. 그게 그래서 죄도 고백하고 내가 이렇게 실수해서 죄를 지었다 이러면 하면 되지 안 되면 할 수 있는 것까지만 안 되면 하나님한테 고백하고 그러다가 드러나면 또 이런 게 있었어요. 이렇게 드러나고 그래서 방장님들이 먼저 하잖아요. 우리는 아멘 제가 여기서 먼저 하잖아요. 안 그러던가요? 지난번에 부흥할 때도 했잖아요. 이렇게 해서 내가 죄를 지었다. 예를 들면 그런 거죠. 이런 것들이 영적인 원리가 뭔가 하면 이 교재 안에 있으면 빛 가운데 있는 거잖아요. 있으라 성령이 역사할 때 말씀을 비추어서 역사죠 우리 성막에서 성령이 쫙 말씀을 떡상을 비춰서 떡상을 우리가 떡을 먹잖아요. 그런 그 비추어진 드러난 말씀 바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열린 말씀이 비치잖아요. 그러면 그게 내게 들어오면 분명히 나를 비추거든요. 그걸 가지고 나누잖아요. 오늘 말씀을 보니까 내가 이런 것들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면서 빛 가운데 있으면 숨길 게 없죠. 그럼 드러났다라는 것은 뭔가 하면은 그거를 하나님이 수술하겠다라는 뜻이에요. 왜 수술해요?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요. 교재 안에서 이 교재 안에서 이걸 누리게 하려고 왜? 내가 꽁꽁 숨겨놓은 거 그것 때문에 그만큼 그게 나잖아요. 그만큼 내가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교재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만물이 정렬이 안 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내가 묶이는 거예요. 거기에. 죄를 숨겨놓고 있는 것들이 묶이는 거라고요. 그래서 그 안에서 비친 게 내 연약함, 내 실패한 것 이런 것들을 막 이렇게 드러날 때 서로 나누고 오픈하고 이렇게 되면은 그 여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에이 못된 놈이 이렇게 합니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 기도합시다. 이렇게 하죠. 여기 하시는 그거 하면 안 돼요. 여기는 교인들끼리는 하면 안 돼요. 그거.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교회에 열심으로 다니는 사람들끼리 하면 큰일 납니다. 지식쟁이들, 율법쟁이들은 그걸 막 공격해요. 그런데 이 생명 성령 안에서 그래서 이 사랑방 교제를 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 먼저 기대하라고 그랬죠. 제가 상향을 하고 성령이 임해서 우리를 감동할 때까지 하라고 제가 분명히 말씀을 드린 이유가 그거예요. 그럼 그 안에 있을 때는 성령의 감동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보면은 내게도 저런 일이 있었지. 그러면서 서로 고백해요. 서로 고백하고 그걸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하고 서로 기도하고, 이렇게. 그래서 그게 상처가 씻어져 나가고 그걸로 인해서 생긴 것들이 쪼개져 나가고 질병이 치유되고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요. 판단하고 정제하는 게 아니라 서로 기도하면서 중보하면서 이 안에서 회복되기를 기도하죠. 그게 비밀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정제받지 않는다는 거죠. 그리고 밖으로 이게 안세나가 그래서 리더가 먼저 성숙한 자들이 먼저 자신의 실패와 아픔이나 재기 이런 것들을 먼저 오픈하고 그러면은 다른 사람들도 그 앞에서 이제 무화과를 벗는 거죠. 가면을 벗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야 살아나요. 내가 그게 하나님 앞에서 내가 그대로 벌거벗겨지는 거잖아요. 상대방 앞에서가 아니라 그 교재를 통해서 그러면 이 안에서 치유받는 역사회는 치유받는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게 그냥 막 일방적으로 기도만 하다 가보세요. 위기 침묵회는 똑같아. 그러면 아니라고요. 그래서 내가 먼저 그렇게 터놓게 되면 상대방도 이제 가면을 벗을 용기가 생기기 시작하죠. 쟤도 아는데 뭐 별일을 그러고 나서 가벼워지고 훌훌 날아가는 것 같고, 이러거든요. 그러니까 나도 얼른 벗어버려야 되겠다. 이게 되는데 몽돌끼리는 안 돼요. 그건 조심해야 돼요. 그럴 때 입을 다 물어야 돼요. 혹시 몽돌이 옆에 있다. 그러면 조심해야 돼요. 그때는 내가 이렇게 잘해서 이런 거 내가 옛날에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을 수십 번 하고 이래서 환상도 팔라풀라하게 보고 이런 이야기 제발 하지 마세요. 거기서는 알겠어요? 다 쓸데없는 거. 그거. 그런 거 하지 마시고 말씀을 가지고 낙에게 비춰서 드러난 거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게 사랑방 안에서 말씀 안에서 교제하는 거라고 제가 수십 번을 수천 번을 말씀을 드렸는데 그게 또 내가 옛날에 말이야. 있잖수 내가 환상을 이렇게 많이 받고 이런 이야기 또 하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다고? 그래서 니꾸라지가 좀 나아졌어. 자택이 없는 이야기를 또 하고 있어. 거기서 내가 이렇게 옛날에 기도해서 우리 아들이 어디 취직하고 어디 가고 이런 이야기 왜 하냐고 지목회 가서 하고 여기는 생명의 공동 예수 그리스도를 서로 나눠 가진 공동체잖아요. 그럼 아직 6적이 남아있는 부분들이 드러나면 그걸 가지고 나누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그게 나에게 없어지기를 위해서 서로 기도하고, 서로 기도하고, 그게 얼마나 강력한지 알아요? 정보기도라는 게. 그래서 그런 걸 통해서 상대방이 어떤 게 필요하겠구나. 이 성령 안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게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가 되는 거예요. 결국 그럼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 그거 응답이 돼요. 놀랍게도 응답이 돼요. 빠르게 아주 순식간에 응답이 될 때도 있고요. 되게 중요한 거죠. 그래서 그래서 이 말수만에서 기도하면서 나누는 교재, 사랑방 교재가 그렇게 강력한 거예요. 그걸 꼭 하셔야 돼요. 그래서 그걸 율법이라고 난 안 한다고 하지 말아야지. 그럼 어떡하겠어? 그거는 보세요. 그분의 영적인 성장이 어떻게 가나 한번 보세요. 자신이 묶임에서 못 벗어나요. 일생 못 벗어난다니까. 교회만 다니고 못 벗어나요. 죽어도 못 벗어나요. 아라님 안에서 교재가 안 이루어졌는데 어떻게 자신이 안에서 비춰진 내 모습을 들춰내고 그걸 댓글로도 쓰잖아요. 우리가 그게 그렇게 위력이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댓글 쓰지 말라 한다고 하대요. 있어요. 그런 사람이 그건 코이노니아의 한 방법이에요. 그럼 거기에다가 또 서로 응원도 하고 그러잖아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함을 통해서 내가 점점 없어지는 거거든요. 내 안에 하나님 나라 생명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니까요. 그러면서 그럼 나는 다 안다고 그걸 왜 하냐고 그러고 앉아 있어 보세요. 일생 못 벗어나요. 거기서 왜요? 자기를 안 버텨보고 머리로 지식으로 다 아는 것처럼 진짜 다 아는 거야. 몇 년 다니면 다 아는 것 같지 않아요? 다 아는 것 같죠? 아는 것 같은데, 모르죠 모르는 것 같은데, 하나도 모르죠. 그러니까 여러분 진짜 다 안다고 하는 분들은 많이 들어서 뭔가 아는 것 같은데, 자신을 비춰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걸 못 누리는 거예요. 이걸 죽어도 못 누리는 거예요. 그래서 오래 다녔는데 이게 율법이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자기를 비춘 적이 없기. 안 비추면 율법이에요. 그것도 영적인 지식에 불과해요. 비추어서 들춰내고 그게 히브리 4장이잖아요. 그리고 이 안에서 1장 구절이고 그렇게 해서 파르시아, 코이노니아 해서 지속적으로 비춰서 떨쳐내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점점 새롭게 창조 되어서 가서 연합 그 안에 들어가서 누리게 돼야 되는데 지식적으로 10년 전에 한 거하고 지금하고 제가 틀린 말을 안 해요. 절대로 예수구리스트밖에 없으니까요. 또 들은 것 같죠. 십자가 부활 또 들은 것 분명히 들은 것 같죠. 수없이 했어요. 여러분. 그런데 막 들어서 다 아는 것 같은데, 자기는 그대로거든요. 그래서 들어서 알고 이걸 안 한 거예요. 코에노니아 수직 코에노니아. 그래서 한 번도 변할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이해가시나요? 그래서 실패한 거예요. 자기가 해봐도 안 되니까. 자기는 안 하고 안 되는 건데 해도 안 된다 라고 하고 율법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시겠어요. 여러분? 이 안에서 한 여러분들은 다 되고 있잖아요. 지금 흘러가고 있고 회복되고 있고 다 되고 있잖아요. 그런데 하기 싫어서 안 하고 들은 거는 많아서 아는 것 같은데, 모르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모른다고 한 거예요. 자신을 비춰서 내가 이랬다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 그러면서 다 안다고 그래 그러니까 속에서 여전히 나면서부터 묶여 있는 그 육적인 자아 마귀로부터 내려온 그런 것들이 잔뜩 있죠. 지식은 충만하지만 그래서 이 안에 회치라고 무덤이 돼요. 계속 가라는 거예요. 뭔가 찾는 거예요. 아 여기도 별 수 없구나. 3년 만 해서 3년 만에 있었는데, 아이고 별 수 없구나. 이렇게 가는 거예요. 안 비춰보니까 그래요. 이해 가시나요? 그럼 실패하는 거예요. 목사님도 실패하신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다 안다고 그랬잖아요. 저한테 제가 보기엔 하나도 모르는데 다 안다고 그런 거예요. 다 들은 거고, 지금 이제 당장 가르칠 수 있다라는 거예요. 제가 보면 갑갑하죠. 그래서 조만간에 안 나오시겠구나. 그래서 한참을 헤매시더니, 갈 데 없어서 또 다시 왔어요. 깔려고 한 게 아니고 목사님이 계속 그렇게 가셨더라면 여기 절대로 못 들어와요. 절대로 안 풀어집니다. 그건 제가 지금 이걸 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잖아요. 여러분 이전에부터 했으니까 그동안에 쌓여진 데이터베이스가 얼마나 많겠어요? 10년 넘는 데이터베이스가 이게 쫙 있어. 누구누구는 몇 단계에서 아웃? 누구누구는 몇 단계에서 아웃? 전부 다 가지고 있어요. 머릿속에 다 있어요. 그거 모르겠어요. 제가 이거를 지식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고 제가 온몸으로 터득해서 삶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그걸 모르겠냐고요. 그런데 와서 다 한다고 막 한번 겨뤄보자 이거지 안타깝죠? 그런데 목사님 존경합니다. 제가 그 험한 것을 뚫고 얼마나 낮아졌는지 몰라요. 그렇죠? 마치 평신도처럼 하시잖아요. 저는 저렇게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막 회복되고 계시잖아요.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수직적인 코이노니아 다음에 이 수평 코이노니아는 그 안에서 서로 낮아지는 거예요. 그렇게 됨을 통해서 점점 회복돼서 올라가 연합되는 거예요. 이걸 안 비추는데 어떻게 내가 회복이 돼요? 내 안에 회복할 수 없는 몽돌 자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게 무너지지 않고는 이걸 절대로 못 누리거든요. 영생. 성령이 오셔서 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안 드러내려고 하는 거예요. 그 작업을 하는데 제가 여기서 말한 걸 자꾸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 아는 것 같지. 머리로는 그런데 심령은 그대로 안 비춰져서 한 번도 자기를 들춰내 본 적이 없는 회복이 안되죠. 그러니까 그걸로 인해서 나타나는 고통과 괴로움 질병, 영적인 혼적인 질병, 육적인 질병 이걸 취급할 기대감 성령이 역사에도 그게 안 고쳐집니다. 본질은 그 안에 있는 거기 때문에 그걸 드러내버려야 순차적으로 이게 회복이 되는데 드러난 것만 자꾸 고치려고 하니까 이게 답이 옵니다.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이 수직적인 코이노니 안에서 자신을 비추어서 들춰내고 그걸 히브리스 4장 12절에 말씀처럼 다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면 어떡하라고 그랬어요. 그다음에 16절로 가면은 죄를 고백하고 파레시아 하라고 그러죠. 그때 십자가에 보열이 우리를 덮어서 죄를 산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고백과 제사 부열이 같이 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파르시아 하는 거예요. 이 안으로 들어가는 거기서 생명의 능력을 다시 넘치도록 받는 거예요. 그래서 회복이 점점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놓쳐버렸어. 계속 안 하는 거예요. 자기는 완전하다고 그러고 다 한 거라고 그러고 떼굴떼굴 거르는 것도 다 해본 거라고 그러고 촌스럽다고 그러고 이렇게 말하고 해본 적이 없으니까 봐서 알기는 하지 뭐하는지 알기는 하지 실제로 그 안에서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답답하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이게 얼마나 엄청난 건지 아시겠어요? 그래서 열린 말씀은 여러분 우리를 새롭게 창조합니다. 말씀 우리를 창조하는 거지 내 머리에 만족을 주는 게 아니에요. 기도할 때 이용하는 어떤 수단이 아니에요. 나를 새롭게 창조해서 성령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만들어 창조해내서 하나님과 연합한 이 모든 것을 천상의 것을 누리게 하는 생명의 실재예요. 그걸 영생이라고 그러고 그걸 복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내가 내게 복주리다 할 때 그 복을 그거라고 10평 복을 명하였으니 영생이라 그게 영생의 복이라고요. 복의 핵심은 수크리스도고요. 그와 연합하는 게 복 안으로 있는 들어가 있는 거죠. 이게 되게 중요한 거예요. 우리 사랑방교제, 새벽에 하는 골방교제. 보다 이게 훨씬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새벽에 하는 그 골방교제도 물론 그때 말씀을 비추어서 나를 창조하는 역사도 많이 일어나지 말씀을 가지고 계속 이렇게 나에게 게시할 수 있잖아요. 거기에서는 지금 당하고 있는 이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것도 많이 일어나죠. 이거는 그 교재는 24시간 확대하기 위한 훈련이었죠. 그러니까 24시간 내가 성령 안에서 살기 위한 훈련이고 이건 나를 창조하는 능력이라니까요. 둘이 완벽하게 같이 가야 돼요. 이거 없이는 이거 새벽에 골반 교제 무지하게 힘든 거예요. 왜냐하면, 그거를 이게 마귀 음성인지 내 소리인지 성형의 음성인지 구분을 못한다니까 이거 없으면 말씀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구분을 합니까? 그게 진리가 없는데 진리에 서 있어야 거짓을 금방 구분하죠.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걸 먼저 한 거고, 이제 이미 그 정도로 많이 열려 있기 때문에 이게 들어가니까 금방 되는 거예요. 지금 엄청 짧은 시간이 얼마 안 됐어요. 제가 몇 년 한 거라니까 올해 몇 개월 해보세요. 이제 어떻게 되나? 엄청 역사에 일어난다니까요. 진짜로. 그래서 수직, 그 다음에 수평코에노니아를 통해서 서로를 들춰내고 드러난 것을 가지고 서로 기도할 때 바로 파레시아 하는 거죠. 그때 그 안으로 파리시아 들어가면 세 가지 역사가 일어난다고 그랬죠. 세 가지 기대하라고 그랬잖아요. 때를 따라 돕는 그 다음에 완전한 권 상을 받는 것 하나님 자신을 받는다니까요. 거기 안에서 그 세 가지가 우리 삶의 모두예요. 우리 삶의 천국을 사는 이 땅에서 천국을 사는 전부라니까요. 아닌 것 같아요. 엄청난 거는 이거 이거 이래주는 거예요. 이거. 엄청나게 우리에게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죠. 수평적인 교제. 그러면서 이제 다음에 떡을 떼는 교제. 이건 이제 서로 짐을 나누어지는 교재 이 안에서 이게 그 다음에 단계로 서로의 짐을 나누는 교재가 유명해요. 슬픈 걸 서로 감당하고 서로 같이 울고 기쁜 걸 서로 나누고 필요한 걸 서로 나누어. 왜냐하면, 여기는 이제 드디어 나라는 소유에 대한 개념이 점점 없어지거든요. 이 교재 안에 있게 되다 보면 성령께서 누구누구 도와주라. 예를 들면 누구누구 밥 한 끼 사줘라 이런 것들이 수시로 와요. 저 사람이 무지하게 힘들다 이런 것들이 온다니까요. 그러면 도와주라는 뜻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일어나요. 그 다음 단계에서. 그러면 그 다음에 이제 세 번째 교재가 일어나는 거예요. 나누는 코인노니아. 그 코이노니아 안에는 서로 나누는 게 포함이 돼 있어요. 그 단어 안에 옛날에 코이노니아 했던 기억나죠? 프린트해서 나눠드렸잖아요. 거의 일어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전부 사랑 안에서 일어나죠. 성품이 사랑이기 때문에. 그래서 서로 사랑으로 충만해지면서 필요를 서로 채우는 거예요. 서로 공급하게 되고 그래서 서로 나누게 되고 팔아서 다 팔아서 그 발 앞에 갖다 놔서 나누게 되고 이러니 그다음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게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손해 보는 것도 기뻐하게 되고 남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도 기뻐하게 되는 게 사랑의 표현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이제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게 코에노니아의 능력이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도 나누고 물질도 나누고 에너지도 나누고 슬픔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고 이런 것들을 그냥 잘 되면 엄청 좋잖아요. 옛날엔 시계질도 했는데 지금 안 그러죠. 아닌가요? 속으로는 그건 아니겠죠. 설마 그래서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고 이런 고통의 자리에 함께 하게 되고 피로를 따라 이렇게 돌봐주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고 작은 거지만 흘려보내기도 하고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거예요. 그냥 본석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거죠. 거기까지 가는 게 진짜 교회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걸 지금 다 하고 있는 거 알아요? 다 성령께서 기가 막히게 이렇게 인도해 오셨어요? 왜냐하면, 제가 성령이 인도함을 받아 어떠한 목표도 안 세운 거 알죠? 올해 우리 교회의 목표는 이겁니다. 슬로건 건적 있어요? 없어요. 올해는 부흥회 몇 번 합니다. 이런 거 안 해요. 절기에 뭐합니다. 그 율법 교회 가면 어떤지 알아요? 1년 시간표가 쫙 나옵니다. 여기 딱딱 빈틈 없어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돌아가야 돼요. 우리는 그거 없잖아요. 성령님의 시간표고 성령님이 행하시는 대로 저도 다 하기 위해서 엄청 기도합니다. 인도함을 받으려고 그래서 이런 것들도 다 이런 과정, 지금 새벽에 하는 골반 교제도 부흥회를 기점으로 해서 일어났던 거예요. 제가 골반 교제를 하려고 해서 시작한 게 아니고 부흥회 때 성령이 나타나심을 하라. 그 다음에 골반 교제를 하라고 그랬어요. 아시겠어요? 그 골반교제까지 계획하고 한 게 아니라니까요. 이 시점에서 골반교제를 하게 하신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제가 그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옛날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했으면 될 텐데 왜 안 했냐고? 아니요. 감동을 주셔야 하지. 계속 그 말씀 열기 그거 기초공사 그거 쪽으로 먼저 갔던 거예요. 아니 진리도 없는데 무슨 골반 교제를 하냐고. 생명도 없는데 무슨 골반 교제를 하냐고요. 생명이 있어야 하는 교제잖아요. 이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끼리 교제잖아요. 그런데 그게 없는데 무슨 교제를 하냐고. 그건 악한 영화고 그냥 잘못하면 넘어가 버려요. 그래서 막 신비주의를 쫓고 그렇게 해서 엉뚱한 길로 가고 많이 봤잖아요. 한 쌍 봤다. 그러고 예언하고 이루어진 거 봤나요? 저쪽에서 예언 하루에 막 수 책 한 권을 할 거예요. 저기서 하는 거 하나도 이루어지는 걸 못 봤어요. 제가 진짜로 하나도 못 봤다니까요. 저는 거기서 예언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안 이루어질까 하기 때문에 시렵지 않은 예언을 막 쏟아내가지고 확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여 그렇게 예언하더니, 이제 그만 가라 합니다. 이렇게 예언하더라고. 또 그게 뭐야? 그게 지 원하는 대로 내뱉는 거지 거기에는 말씀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입만 열면 예언이 된대. 자, 입을 열어봅시다. 시작. 상대방을 향하여 예언합시다. 사랑하는 자여. 내가 영원히 너와 함께하노라. 그거 성경에 다 나와 있잖아. 물 가운데 지날 때도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게 하리라. 알렐루야. 그거는 양반이고 내가 큰 가마솥이 보입니다. 뚜껑을 엽니다. 개대가리가 올라옵니다. 개를 삼고 있는 거잖아. 그런 예언하는 걸 옆에서 들었다니까요. 개대가리 같은 애가 그렇게 개대가리가 올라옵니다. 이렇게. 나를 괴롭힌 애가 했던 예언이야. 그걸 그렇게 해서 반장 세워놓고 안수하라는 거야. 개 대가리가 올라옵니다. 안수하라는 거야. 이게 열린 말씀, 생명의 말씀도 없지 이런 말씀한 회사의 교재도 없지. 그러니 뭐가 나오겠어요? 그 안에 있는 영이 뭐예요? 개영이지. 개구리 영이지 그게 나올 수밖에 없죠. 그게 마귀예요. 마귀. 그것들이 뭘 이용하겠어요? 상대방을 죽이는 예언을 해요. 예언 듣고 나면 안절부절못해서 어떡하지? 쟤 어떻게 살지? 다 그래. 난리야. 사람을 콕콕 찔러. 자기하고 사이 안 좋은 사람이 왔다. 그러면 그 사람이 후벼파. 이렇게 좀 사이에 좋은 사람이 왔다 그러면 막 뛰어오죠 애울이 막 나와 신기하죠.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주님이 이거 지금 하게 하는 거예요. 옛날부터 제가 못하게 했죠. 이유가 있는 거예요. 주님이 못하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안수. 그거 하지 말라는 거. 금요일날 했던 거 그거 집단적으로 안수하는 거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거 낭패예요. 그게 그래서 하지 말라고 했던 거예요. 그거 하러 여기 왔는데 그래서 한 무리가 가셨죠 그런 거예요. 그래서 이 코이노니아 수직적으로 그다음에 수평적으로 가서 그다음에 나누는 코이노니아가 있는 세 가지 코이노니아 하나님과 코이노니아 관계 안에서 서로 나누는 수평적인 코이노니아 그다음에 6적으로 이런 것들까지 함께 나누는 코이노니아 여기까지 가야 돼요. 이게 오늘날 교회의 가장 뭐라고 할까요? 전형 이렇게 돼야 되는 게 진짜 교재라는 거죠. 그래서 서로 교재 안에 있어야지 혼자 두면 안 돼요. 외톨이 힘들어요. 자신을 볼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그런 관계 안에서 서로 나누는 게 반드시 있어야 돼요. 그래서 처음 온 사람은 그런 게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처음 온 사람들은 이렇게 1대1로 이런 것들도 해줘야 되고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이렇게 계속 해줘야 돼요. 처음부터 잘 안 되잖아요. 시간들이 필요하죠. 그런 것들을 해줘서 같이 들어와서 이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해야 돼요. 그게 교회예요. 그래도 그래야 한 사람이라도 생명 안으로 다시 세워지고 그 사람을 통해서 그 가정이 회복되어서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게 핵심이에요. 우리가 우리 하는 사회의 핵심이 바로 그거라고요. 그래서 1대1까지 되면 좋겠죠. 여러분도 빨리 많이 장성하셨지만, 점점 더 강력하게 세워지셔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끼리 코이노니아가 되지 밖에서 교회 열심히 다닌다고 코이노니아 되는 거 아니에요. 교제가 안 되는데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죠. 그래서 우리가 이것들을 적용할 수 있는 코이노니아를 위해서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이 바로 이 소그룹 우리가 하고 있는 사랑방입니다. 사랑방 그 사랑방을 그래서 성경 공부하는 시간으로 착각하시면 안 돼요. 아시겠어요? 나눔이라 사랑방이라. 옛날에 사랑방 가면 고구마 구워 먹으면서 잡담하고 그래서 사랑방이라 한 거예요. 그래서 교제하면서 말씀을 비추는 걸 가지고 서로 잡담하듯이 나누라는 거예요. 가족처럼 친구처럼 나누라는 거예요. 성경공부 시간으로 하면 안 돼요. 그거는 삶을 나누는 시간이에요. 그건 빚춘 걸 나누고 내 삶이 어떤 걸 나누고 이런 걸 나눠야 되는 거지. 거기서 상대방을 충고한다든지 조언한다든지 이러면 이제 이게 사단이라는 거야. 그러면 안되고 제가 이미 말씀을 드린 거지만 그거는 이제 말씀 안에서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그럴 때 이제 그것도 나누는 것처럼 하는 게 되는 건 당연한 거지만 성경 공부 시간으로 착각하시면 안 된다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사랑방 교재가 되게 중요한 거예요. 그 안에서 생명이 충만함이 점점 일어나는 거예요. 점점 우리가 다 경험하셨지만, 그래서 많이 들어줘야 돼요. 상대방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많이 이렇게 듣는 걸 많이 해줘야 돼요. 그래야 그 사람이 회복이 돼요. 그렇죠? 들어주는 것만 해도 치유가 일어나잖아요. 그런 것들을 많이 들어주면서 이렇게 해서 나는 이렇게 해서 회복이 되었다. 이렇게 해보는 거 어떻겠느냐? 기도합시다. 이렇게 하는 거죠. 나누는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서 공동체 안에서 터놓게 되면 그걸 가지고 필요한 게 뭐다 그러면 서로 피로회를 보충해주기도 하고 연락해서 밥을 같이 먹기도 하고 예를 들면 그런 거죠. 여기는 친목회관 가면 먹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일단 먹고 시작하죠.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잡담으로 끝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서 나누면서 이제 상대방을 위해서 모임 안에서 기도를 하는 거죠. 기도 시간이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고 그러죠. 그게 우리가 하는 기도고 골방 기도를 통해서 성녀님과 직접 교제를 하면서 계속 성 가운데 내 자신의 모습을 비추면서 하나님 정렬되는 거죠. 점점 그게 얼마나 강력한지 이제 아시겠죠? 삶이 점점 정렬되지 않던가요? 이게 뭔가 점점 이렇게 질서가 잡혀지죠.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진짜로 일어납니다. 각자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그건 그 사람에게 가장 맞는 시간이기 때문에 쟤는 빨리 가고 나는 늦게 가고 아니에요. 전부 다 빨리 가는 중이야 이해 가시죠?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해요. 그리스도 안에서. 내 안에서 하면 절대 안 돼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게 비밀이에요. 이게 바로 영원의 현재화죠. 여기 안에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내가 먼저 그 안에 있어야 돼요. 그럴 때 나눔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안에 있으면 영원 안에 있는 삶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 삶을 살아나는 걸 통해서 나눌 것이 생기기 시작하죠. 지금 이 땅에서도 영원을 나눌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 이 땅에서도 서로 영원 안에 있는 생명을 나누게 되어서 생명으로 충만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회복되는 거예요. 엄청나게 중요한 거죠. 서로 나누다 보면 답이 보이죠. 답이 안 보이던가요? 답이 보이죠? 그러면서 영적으로 알게 모르게 성장해 있어요. 어느 순간에 가면 성장해 있어요. 그렇죠?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42절이 코이노니아 오늘날 교회의 코이노니아를 가장 잘 표현한 본문이에요. 그래서 결론을 말씀을 드리면, 첫 번째 성령님을 통해서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두 번째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성령이 우리의 교시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해서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죠. 그 안에 내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교제가 일어나요. 거하는 걸 함께 사는 거라고 그랬죠. 성령을 통해서 첫 번째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과 교제 하게 되면 세 번째 교제하게 되면 네 번째 모든 것이 회복이 되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다음에 다섯 번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실현되는 거예요. 그게 교회예요. 초대 교회. 성령이 임하셨을 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니까 자연적으로 그렇게 공동체가 형성이 된 거예요. 그게 교회의 원형이에요. 오늘날도 성령충만 없는 교회는 교회라고 보기 힘듭니다. 여러분들. 그 안에 있어야만 교회예요. 그래야 하나님과의 교통이 가능하고 나누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현재화가 이루어지는 그 영생을 하나님 나라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세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일어났던 영생의 교제, 영원 안에 사는 삶을 서로 나눈 것을 또 댓글에 쓰고 그걸 다른 방에서 또 보고 이런 것들을 보게 되면서 나를 비춰보게 되고 내가 또 다른 활력과 생명을 얻게 되고 거기에 대해서 반응하게 되고 이런 게 바로 교재 한 부분이 외적으로 나타나 있는 그래서 그런 것들이 보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해하시나요? 그래서 누군가가 거기에다가 답을 달아놓은 거 보면 좋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에요. 그러니까 함께 있으면서 서로 나누는 거죠. 영생을 나누는 거예요. 천국을 나누는 거라니까요. 천국의 삶을. 그게 되게 우리에게는 어떻게 보면은 강력한 능력이 되는 거예요. 그게 자신을 드러내놓는 것도 되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이 또 다른 걸 얻게 되거든요. 이런 것들이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이루어지는 게 교제예요. 실제로 영적인 교제죠. 그게 그게 점점 발전하게 되면은 이제 육적인 교제도 일어나고 같이 지내는 시간도 많아지고 이런 것들이 일어나면서 그게 교회의 모습이요. 그렇게 가야 돼요. 그건 율법이 아닙니다. 교재하고 댓글을 쓰는 게 율법이라고 그래요. 그럼 교회에 나와라. 이것도 율법이죠. 교회에 나오지 말라. 이것도 율법이죠. 아닌가요? 교제하지 말라. 이것도 율법이죠. 아닌가요? 성령 안에서 율법이 어디 있습니까? 성령 안에서는 S급일 수밖에 없어요. 율법도 보험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절대로 그런 거에 속아 넣지 넘어가지 마세요. 제발 세 사람은 세 사람의 삶의 방식이 있어요. 우리는 영혼 안에서 생명을 얻은 사람
1. 사도의 가르침과 성령의 역사 이해 1-1. 사도의 가르침과 그 의미 - 사도의 가르침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됨 - 이 선물로 받은 성령은 성령을 통해 신앙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됨 - (중요) 사도의 가르침은 성령을 증거하게 되고, 이를 통해 복음이 전해짐 - 복음이 전해지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게 됨을 의미함 - 성령에 의해 개시된 복음은 구원의 역사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로 만듬 1-2. 성령의 역사와 그 결과 - 성령이 임하면 기존의 삶이 대체되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남 - 성령의 역사에는 말씀을 통해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는 교제가 포함됨 - 성령의 충만함은 성령을 선물로 받음으로써 이루어짐 -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면 영생을 누리는 자들의 삶이 변화하게 됨 - (중요) 이러한 변화는 영생의 실재화를 의미하며, 이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이 됨 1-3. 성령 충만함의 결과와 교회 구성 - 성령 충만함은 영생의 삶을 누리게 하고 패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얻게 함 - 이로써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어, 영생의 삶을 시작하게 됨 -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천국의 생명,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누릴 수 있음 - (중요) 이러한 변화는 성도들 간의 교제를 통해 이루어짐 - 성도들 간의 교제는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에서 나옴 2. 초대 교회의 4가지 요소 2-1. 교제와 나눔 -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이들의 수평적, 수직적 교제를 통해 존재함 - 성령의 임재로 인해 성령 안에서 새 생명이 있음 - 교회는 세상과 다른 곳에서 나눔을 주체로 삼아야 함 -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는 수평적 교제를 통해 영적 회복을 이룸 - 이는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성령 안에서 교제한다는 의미임 2-2. 기도 - 교회는 교제와 나눔을 통해 영적, 육적 교제를 함 - 이는 초대 교회의 기둥이며, 개인 기도로도 이어짐 - 성령 안에서 교제하며, 서로의 형제자매를 아끼고 나눔 - 이를 통해 배움과 고통을 나누고, 영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기도함 - 이 기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어짐 2-3. 성령의 역사 -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함 - 성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함 - 개인 기도로도 이어지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눔 - 상대방의 교제를 통해 영적으로 회복되고, 육적으로는 피로를 채움 - (중요) 이러한 교제와 기도는 교회의 핵심이 되어야 함 3. 생명의 공동체 3-1. 영적 삶과 교제 - 우리는 영적 삶을 영속적으로 이어가려 함 - 성령의 동일한 임재로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선물을 받음 - 이는 모임과 교제를 통해 이루어짐 - 믿음은 교제 외의 일에 국한되지 않음 - 열심히 일해서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하루아침에 벌어지는 일이 아님 3-2. 성령의 역사와 공동체 - 율법 안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음 - 성령의 역사와 성령 안에서의 교제, 나눔, 사랑,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함 - 초대 교회가 성령과 함께 성령을 나누고 실현해 나가는 것에서 시작됨 - 지금의 교회는 생명의 공동체, 즉 성령 안에서 한 사람, 한 음료, 세례, 하나님을 섬겨야 함 - 이를 통해 교회는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함 3-3. 교회의 진정한 의미 - (중요) 성령의 역사로 새 생명을 누리는 사람은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이 달라짐 - 기존 사람들은 사라지고, 새 생명을 누리는 사람은 달라짐 -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일어나야 함 - 성령의 역사가 충만할 때, 영적 삶의 공동체가 이루어짐 - 이를 통해 교회에서 교제와 나눔, 사랑이 이루어짐 4. 코이노니아 4-1. 코이노니아의 핵심 - 성령을 받으면 영화 생명의 교제가 일어남 -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 안의 영생을 얻은 사람들이 모여야 함 - 사도행전 2장에서 말하는 진정한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나누어진 운명공동체임 - 그리스도와 주 되셨으니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여야 함 - 세상적인 것들을 도입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를 해친다는 점에서 옳지 않음 4-2. 수직적인 코이노니아 - 요한일서 1장 3절에 기초를 두고, 그리스도와의 수직적인 코이노니아를 이해해야 함 -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과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 영생의 삶의 핵심임 - 성도 간의 교제는 친목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서로 나누는 형제 참외 피를 나누는 것임 - 교제가 잘 이루어져야 영생으로 충만해질 수 있음 - (중요)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서로 교제되어야만 교회 공동체가 완전한 천국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가 일어남 4-3. 영적인 진리 - 성령을 받아야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일어남 - 성령을 받으면 생명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서로 나누어짐 - 수직적인 코이노니아가 먼저 이루어져야 교회 공동체가 성립됨 - 수직적인 코이노니아를 통해 생명으로 충만해지고, 말씀과 성령과 능력과 기름부음으로 충만해짐 -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서로 교제되어야만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관계가 성립됨 5. 관계와 영성 5-1. 수직적인 코이노니아 - 관계 회복이 우선되어야 인간관계도 형식이 되어버린다고 설명함 - 도덕률과 사회적 통념 안에서 관계를 맺을 뿐, 본질은 아님을 강조함 - (중요) 영적인 원리로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와 차이가 있음을 알려줌 - 생명을 전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성령이 역사하듯, 수직적인 코이노니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함을 설명함 -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먼저 이루어지면 분명히 수직적인 교제가 따라옴을 강조함 5-2. 사랑방 교제의 중요성 - 소집단 안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대신 말씀, 교제, 성형 안의 교제 등을 나누어야 함을 설명함 - 이러한 교제가 서로에게도 생명이 되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다고 함 - 공동체에서 서로 모이고, 말씀 안에서 교제하고, 성형 안에서 교제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줌 - 교제가 강력한 초대 교회의 예를 들어, 성령의 충만함 안에서 교제했음을 강조함 - 서로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고, 말씀을 통해 비추어 상대방을 알 수 있는 수직적인 교제의 중요성을 역설함 5-3. 수직적인 코이노니아 - 율법인 '수직적인 코이노니아'를 실현하는 것이 사랑방 교제의 핵심임을 설명함 - 성령의 충만함 안에서 교제할 때,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고백을 통해 기도할 수 있음을 알려줌 - 죄를 고백하고 기도하는 것이 수직적인 코이노니아이며, 이는 사랑방 교제의 핵심임을 강조함 - 장로들이 회개하면서 수직적인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졌음을 설명함 - (중요) 부끄럽던가 고백하기 어려운 사람은 더욱 수직적인 코이노니아를 실천하기 어려우며, 장로들의 회개가 수직적인 코이노니아를 이룸을 강조함 6. 사랑방 교제 6-1. 사랑방 교제의 중요성 - 자기 지식만 있고 속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코이노니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함 -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 안으로 들어가려면 외적인 잘난 모습이 아닌 말씀 묵상을 통해 내 자신을 찔러 쪼개야 함 - 교만한 모습은 하나님에게 비쳐지지 않음 - 말씀 묵상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내 안에 묶여 있던 것들을 떨어뜨리고, 창조되어 그리스도의 모습에 자라감 - 사랑방 교제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자신이 지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함 6-2. 사랑방 교제의 효과 - (중요) 사랑방 교제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 재기 등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야 함 - 숨겨놓은 것이 드러날 때, 하나님이 수술하겠다는 뜻이 되어, 행복하게 살게 하고 교제 안에서 빛을 비춤 - 성령이 감동을 주고, 드러난 것을 보며 치유받고, 상처가 씻어지고, 질병이 치유되는 일이 일어남 - 서로 기도하며 중보하며, 자신이 드러난 것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함 - 조심해야 할 부분은 몽돌이를 조심하고, 교제 시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해야 함 6-3. 기도와 나눔의 중요성 - 사랑방 교제는 교회에서 하는 것보다 강력함 - 성령의 감동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실패와 아픔, 재기를 고백하고, 상대방의 필요를 기도함으로써 치유받을 수 있음 - 상대방의 필요를 알기 위해, 먼저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를 고백해야 함 - 위기나 침묵은 상대방의 가면을 벗는 용기가 없음 -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드러난 것을 통해 상대방의 필요를 알 수 있음 7. 창조의 역사 7-1. 내적 변화의 시작 - 내적 변화 시작은 수직적인 코이노니아, 변화를 드러내는 단계임 - 내적 변화를 통해 파르시아를 통해 지속적으로 비춰지고 떨쳐내는 과정을 거침 -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 내적 변화의 핵심임 - 변화를 드러내지 못하면 영적인 지식에 그치게 됨 - (중요) 변화를 드러내고 히브리서 4장 12절에 따라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야 함 7-2. 죄와 파레시아의 교제 - 내적 변화는 수직적인 코이노니아를 통해 이루어짐 - 죄를 고백하고 파레시아를 통해 회복되어야 함 - 파르시아를 통해 생명의 능력을 넘치게 됨 - 변화를 드러내지 못하면 고통, 괴로움, 질병, 영적인 혼란이 생김 - 변화를 드러내야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회복이 가능함 7-3. 연합과 복의 실재 - 수직적인 코이노니아를 통해 서로를 들춰내고 드러난 것을 기도해야 함 - 드러난 것을 토대로 파레시아를 통해 생명의 능력을 넘치게 됨 - 변화를 통해 연합되고 복이 되어 영생을 누리게 됨 - 말씀을 통해 내적 변화가 이루어지며,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창조가 이루어짐 - 창조의 핵심은 수크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임 8. 코이노니아 8-1. 코이노니아란 무엇인가 - (중요)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정체성은 사랑으로 가득해야 함 -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서로 나누고 필요를 채워야 함 - 교회는 서로 나누고 공급하며 나누는 공동체여야 함 - 손해를 보거나 기쁨을 얻을 때, 사랑으로 표현해야 함 -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과 물질, 에너지를 나누고 기쁨을 나눔 8-2. 코이노니아의 능력 -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서로 나누고 공급하게 됨 -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으로도 일어나는 진화의 과정임 - 사랑의 표현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교회는 이를 통해 공동체를 이룸 - 진정한 교회는 그리스도 안의 사랑과 생명으로 서로 나누고 돌봄 -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표현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음 8-3. 코이노니아의 실천 - 교회는 코이노니아가 되기 위해 서로 나누고 교제해야 함 - 처음 온 사람은 어려움을 겪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로 이끌어짐 - 교회에 안수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도 코이노니아가 되는 것이 아님 - 코이노니아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방을 통해 나눔과 교제가 필요함 - 성경 공부 시간으로 착각하지 말고, 사랑방을 통해 가족과 친구처럼 나눔 9. 성령과 영생 9-1. 영생의 교제 -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 통해 성령 안에서 거함으로써 두 번째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 -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고, 동시에 교제가 일어남 - (중요)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동시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의미함 -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중요함 -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 회개의 역사와 성령을 선물로 받음으로써 교회가 형성되었음 9-2. 나눔과 회복 -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삶을 나누고, 필요한 것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회복이 이루어짐 - 상대방을 듣고, 많은 시간을 들여 주고, 들어주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함 - (중요) 상대방이 회복될 수 있도록 많이 들어주고,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함으로써 치유가 일어남 - 나눔과 공유를 통해 피로회를 보충하고, 함께 밥을 먹음으로써 친목을 다지고, 기도를 나눔 - 교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하나님께 돌아가며, 자신의 영생이 정렬됨 9-3. 성령과 영생의 삶 -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중요함 - 성령님을 통해 성령 안에서 거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 - 영생의 교제를 통해 자신의 영생을 나누고, 생명을 얻게 되고, 반응하게 됨 - 영적인 교제가 발전함에 따라 육적인 교제도 이루어지고, 교회의 모습이 됨 - 교회에 나와라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함께 거하며 영생을 나누는 것이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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