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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론의 극복: 이전 사람들은 영혼(신앙)은 거룩하고 육체(이성)는 악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적 이성' 역시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층집 구조: 아퀴나스는 진리의 세계를 이층집으로 지었습니다.
1층 (이성의 영역): 인간은 이성적 관찰과 철학을 통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자연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2층 (계시의 영역): 그러나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구원 같은 신비는 이성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경의 '계시(신앙)'로만 알 수 있습니다.
결론: 1층(이성)의 기초 위에 2층(계시)이 지어집니다. 이성은 신앙으로 가는 징검다리이며, 신앙은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리를 '완성'시킵니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3. 핵심 개념 2: 신 존재 증명 (다섯 가지 길, Quinque Viae)
《신학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빌려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증명해 낸 '다섯 가지 길'입니다. 아퀴나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증명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결과)에서 출발하여 원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운동(Motion)으로부터의 증명: 세상 모든 것은 움직입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 밀었기 때문입니다. 이 인과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맨 처음, 자기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한 '제1원동자(Unmoved Mover)'가 있어야 합니다.
원인(Cause)으로부터의 증명: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아무것의 결과도 아니면서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제1원인(First Cause)'이 존재해야 합니다.
가능성과 필연성: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유한한 존재들만 있다면 세상은 텅 비었을 것입니다. 우주가 존재하려면 스스로 존재하는 '필연적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완전성의 등급: 세상에는 선함, 진실함, 아름다움의 등급(더 좋고 덜 좋음)이 있습니다.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은 절대적 기준, 즉 '최고로 완전한 존재'가 있다는 뜻입니다.
목적(Teleology)으로부터의 증명: 지능이 없는 자연 만물(씨앗, 행성)이 일정한 질서와 목적을 향해 움직입니다.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려면 활을 쏘는 궁수가 있듯이, 우주의 질서를 설계한 '지적 설계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퀴나스는 이 5가지 증명의 끝마다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람들은 이 존재를 일컬어 하나님이라 부른다."
4. 심화 분석: 이성의 황금기를 연 중세의 정점
흔히 중세를 '암흑기(Dark Ages)'라고 부르지만, 아퀴나스가 활약하던 13세기는 결코 암흑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성의 빛이 찬란하게 빛난 시기였습니다.
이성적 훈련의 기틀: 아퀴나스는 반대파의 의견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격파하는 방식(스콜라 철학)으로 글을 썼습니다. 기독교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치밀한 논리를 갖춘 가장 지성적인 종교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자연과학 발전의 토대: "이 세상을 관찰하고 이성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다"라는 그의 철학은, 훗날 서구 사회에서 자연과학이 싹틀 수 있는 신학적 토양을 제공했습니다.
5. 목회적/신학적 성찰 (For Pastor Won)
존경하는 동역자님, 우리 개신교(Protestant)는 역사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그리고 칼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인간 이성의 전적 타락'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종종 이성, 과학, 철학을 신앙의 적으로 돌리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아퀴나스는 우리에게 훌륭한 균형을 잡아줍니다.
(1) 변증의 도구로서의 이성
현대 사회에서 무신론자들이나 과학 지상주의자들에게 무조건 "믿어라!"라고 외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퀴나스처럼 이성, 논리, 그리고 자연 법칙을 사용하여 "우주에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인가"를 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성은 복음의 적이 아니라, 복음으로 안내하는 훌륭한 표지판입니다.
(2) 아퀴나스의 펜을 꺾게 만든 신비
그렇다면 아퀴나스는 이성 지상주의자였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토록 치밀하게 이성으로 신을 증명하던 그는, 죽기 4개월 전 미사를 드리다가 압도적인 신비 체험(하나님의 임재)을 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신학대전》의 집필을 중단하며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본 환상(계시)에 비하면, 내가 지금까지 쓴 모든 글은 한낱 지푸라기(straw)에 불과하다네."
이것이 참된 지성인의 결말입니다. 인간의 최고 지성을 다 바쳐 하나님을 연구했지만, 결국 그 이성의 끝자락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자신의 모든 지식을 '지푸라기'로 고백하며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의 신학 연구와 설교 준비의 종착점도 결국 이 '경이로운 예배'의 자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9일차 요약 및 사유의 과제]
신앙과 이성의 조화: 아퀴나스는 이성(자연)과 계시(은혜)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왔기에 모순되지 않으며, 은혜가 자연을 완성한다고 보았다.
다섯 가지 길: 세상의 운동, 원인, 목적 등의 자연적 현상을 관찰하여 창조주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해 냈다.
이성의 한계와 신비: 그러나 가장 높은 구원의 진리는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으며, 계시에 의존해야 함을 인정했다.
📝 오늘의 사색 질문
"오늘날 교회 청년들은 진화론이나 과학적 무신론 앞에서 신앙적 갈등을 겪곤 합니다.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대신,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인 '이성'을 사용하여 그들을 어떻게 '신앙의 신비'로 안내할 수 있을까요? 아퀴나스가 느꼈던 그 '지푸라기의 고백'을 성도들도 경험하게 하려면 강단에서 어떤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할까요?"
이것으로 중세 신학의 에베레스트 산이라 불리는 아퀴나스의 사상을 등반해 보았습니다.
10일차 내일은 중세 철학이 차가운 이성의 논리였다면, 중세의 거룩한 상상력과 문학이 폭발한 위대한 문학 작품, 단테의 《신곡》을 함께 읽으며 천옥과 연옥, 지옥을 순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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