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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
전도서 9 : 1 - 6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우주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을 그의 형상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우리 인간은 그의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그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못하던 간에 우리의 운명이 그의 손 안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다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특별히 그의 택함을 받을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요한 복음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여기 나는 물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인 내가 저희들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너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하였습니다.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고, 그 다음에 와서 다시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도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 아버지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 아기가 세상에 나서 어떻게 자랍니까? 어린애가 그냥 내버려두면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린애가 그냥 내버려두면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핏덩어리로 세상에 나서 어떻게 자라납니까? 거기에는 한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손이 이 핏덩어리를 거들어 주고 젖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목욕시켜 주고 재워 주고 어머니의 손이 모든 것을 다해 줍니다. 이 어머니의 손 때문에 핏덩어리 어린애가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어린 심령, 아무런 힘도 없는 심령이 어떻게 자라서 구원을 완성할 수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을까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계십니다. 이 아버지의 손이 어린 심령을 붙들어 줍니다. 이 아버지의 손이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생명수로써 먹여 주십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공급하여 주십니다. 우리를 해치려는 원수 마귀가 올 때는 능력의 팔로 막아 주십니다. 시험에 빠지려고 할 때는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까지 우리의 믿음을 보존하고, 이렇게 연약한 심령이지마는 아주 멸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하늘나라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한번은 예수님께서 밤에 물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왔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있다가 물 위에 무엇이 보이니까 처음에는 무슨 요물인 줄 알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나다, 두려워말라” 하셨습니다. 예수 선생님의 음성인 것을 알아차린 제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때 성미 급한 베드로는 너무 반갑기도 하고 흥분이 되어서 “아, 선생님이세요. 그러면 저도 물 위로 걸어가게 해주세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럼, 이리 오게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베드로에게는 담대한 믿음이 생겨서 감격한 가운데 예수님만 쳐다보고 물위로 걸어갔습니다. 아 그런데 갑자기 큰 물결이 밀어닥치는 바람에 예수님은 안보이고 물결만 보이니까 성난 물결에 그만 겁이 질렸습니다. 겁에 질리는 순간 그러니까 예수님 잊어버린 순간 베드로는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소리쳤습니다. “주님, 저를 살려주세요” 그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에 빠져 들어가는 의심 많은 믿음을 잃어버리고 타락해 가는 사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게 된 베드로를 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체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죄악 세상에서 무서운 죄악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새로운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고 나아가지만 갑자기 죄악의 큰 물결이 밀어닥치면 그 순간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겁이 나서 무서워서 그만 그 물결에 빠져들어 가는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붙들어 주시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주 죄악의 물결에 휩싸여 멸망한 것밖에 없습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이 말씀이 얼마나 사실인 것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구약 예레미야서를 읽어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예레미야가 어떤 곳엘 가니까 토기장이가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뭐 여러 가지 그릇 이런 것 저런 것을 만듭니다. 토기장이의 손은 진흙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령한 토기장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손으로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그릇을 만드십니다. 혹시 우리의 인격이 파괴되고 잘못되어 더럽혀졌다고 해도 하나님의 손은 그것을 회복시켜서 온전히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좋은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이 한곳 파손되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우리의 신앙이 한 곳 깨어졌다고 해서 아주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맡기세요. 하나님 아버지의 손이 우리의 파괴된 인격, 깨어진 신앙, 상한 심령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기에 시편 37편 2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하나님의 자녀도 믿음있는 사람도 때로는 넘어집니다. 그러나 아주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엎드려지지는 아니합니다. 일곱 번 넘어지나 여덟 번 일어납니다. 어떻게요? 내 힘으로요? 하나님의 손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짤라졌느냐? 내가 네게 말하는 이 말이 응하는 것을 네가 볼 때가 있으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손이 짧지 아니하십니다.
저 멀리 천왕성, 해왕성의 운행까지도 하나님의 손이 주장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봄 동산의 꽃 봉우리 하나 하나를 어루만지시는 손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옛날 애굽이나 바벨론, 파사같은 큰 나라들의 흥망 성쇠만 주장하시는 손이 아니십니다. 나일강변 갈대밭 사이에 버림받은 어린 핏덩이 모세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그 어린것을 친히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이십니다.
죽지 않겠다고 살겠다고 먼저 애굽에 갔다가 불행의 불행을 만나서 남편을 잃고 또 아들 형제 다 잃고 외롭게 돌아오는 불쌍한 나오미의 발길까지도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손은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손은 옛날 4천년 전 아브라함의 생활만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생활만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생활만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쳐 있는 우리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저녁에도 예배당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철의 장막 뒤에 있는 북한의 성도들도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의지할 만 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우리 원로 목사님이 자신의 간증을 하시는 것을 들었어요. 신의주에서 교회 일을 보실 때인데 교회에 무슨 일이 생겨서 하도 마음이 상하고 낙심이 되고 어떻게 피곤한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정신없이 댁에 돌아와 그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일어날 기력도 없이 쓰러져 있는데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한 것을 보셨습니다.
목사님 자신을 보았는데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길이 어떻게 험한지요. 또 어떻게 피곤한지 도무지 발을 옮겨 놓기조차 힘이 들어서 허덕이다가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그만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갑자기 어떤 큰 손이 나타나서 오른편을 붙들어 일으켜 세우더래요.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왼편으로 또 쓰러지니까 또 다른 손이 나타나서 왼편으로 넘어지지 못하게 붙들더래요. 그 다음은 앞으로 꼬꾸라지니까 또 두 손이 앞으로 와서 붙들어 꼬꾸라지지 못하게 하더래요. 그러면서 그 힘있는 손이 붙들어서 그 험한 길을 계속 가게 하는 것을 보셨다고 합니다. 그런 자신을 보다가 깨어서 성경을 읽으니까 이상하게도 에스라 7장 9절 말씀이 눈에 띄더랍니다.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이것은 에스라의 이야기입니다. 에스라가 멀리 바벨론에서도 포로로 잡혀간 자기의 동포와 같이 정월 초하룻날 예루살렘을 향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먼 광야 길입니다. 원수가 많은 험악한 길입니다. 그런 힘든 길인데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힘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말씀이 한 평생 목회를 했는데 정말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벌써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주님을 따라가는 길도 말하자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과도 같습니다. 황막한 광야의 길은 강이 가로놓이기도 합니다. 함정도 있습니다. 때로는 원수들이 나타나 우리의 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이 길을 다 마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 길을 갈 수 있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들어보세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저는 지난 한달 동안에 두 가정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축복의 길을 걷게 된 것을 실제로 보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한 가정은 지금 제일 병원 소아과 과장으로 일하시는 본 교회 전 세종 집사님 댁입니다. 이 분이 담석으로 세 번째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혈압이 40까지 떨어져서 외과 의사가 친구인데도 아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그 상태에서는 누구도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그날이 바로 우리 교회 제직회 날이고 그래서 교회에서 그 집사님을 위해서 특별 기도를 하였습니다. 원장님도 젊은 의사가 그냥 죽는 것은 너무 애처로워서 이왕 희망 없는 것이니 본인도 알고 있으니까 칼이라도 대보자고 합의하고 수술을 했는데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수술하는 도중에 (다른 경우면 도중에 절명했을 것인데) 점점 혈압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퇴원하고 집에서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심방을 갔더니 제 손을 머리에 대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한참 우시면서,
“저는 기적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저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한 주일에 하루는 의사의 손길이 아쉬운 고아원에 가서 봉사하겠습니다. 사실 그 동안은 골프를 치는데 주일이나 시간이 있으니까 수금 차례가 되면 그 시간에만 참석하고 골프 클럽에서 복킹을 여덟시에 하면 예배당도 못나오고 골프치러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면서 “이제부터는 그저 온전히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겠습니다” 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집사님을 사랑하셔서 능력의 손으로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의사의 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의 손입니다.
어제 오후에는 죽다 살아난 댁을 심방 했습니다. 이 봉찬 집사님과 신 현복 권사님 가정입니다. 며칠 전 친구 의사가 제천에서 개업을 한다는 연락을 받고 꼭 참석해야 할 형편 되어서 가셨다가 돌아오시는 길인데 길이 미끄러워서 그만 자동차가 다리 난간을 넘어서 2.5m 밑으로 다이빙을 해버렸습니다. 집사님 내외분과 기사가 탄 채 다리 밑으로 내려박는 바람에 자동차는 아예 수리도 할 수 없이 납작해지고 타셨던 분들은 한참 정신없이 차 속에 끼여 있는데 밖에서 30분 전에 같은 장소에서 사고나 나서 나와 있던 분들이 문을 제치고 사람들을 끄집어냈는데 세 사람이 한 분도 머리칼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툭툭 털고 일어났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너무 놀라서 “하늘에서 낸 사람들이라”고 하더랍니다. 잠시 후에 순경이 와서 조사를 하는데 차를 보고 죽은 사람은 어디에 감췄나? 고 해서 아무도 다친 사람도 없고 다만 차만 저렇게 됐다고 하니까 곧이 듣지 않더래요. 다행히 밖에서 목격한 사람들이 증인이 되어 주어서 잘 처리가 되었는데 아무튼 이렇게 순경이 차를 보고 저 정도의 사고면 꼭 인명 피해가 있었겠는데 말할 정도로 짜부라졌는데도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지켜 주신 것을 믿습니다.
제가 그래서 그 댁에서 감사한 예배를 드리면서 시편 91편을 읽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는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그저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집사님이 그래요. “저는 지난 1월 7일 이미 죽었습니다. 지금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나를 살려주셔서 삽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면 무엇이나 하겠습니다. 제 집사람은 감사 헌금을 좀 많이 내자고 하는데 저는 헌금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 모든 것 저 위해 쓰지 않고 하나님 위해 쓰겠습니다” 눈물로 서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집사님 늘 믿기는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으면 했는데 어쩌면 그렇게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사랑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교회를 축복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친히 체험한 분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체험들을 통해서 개인이나 가정 뿐만 아니라 교회가 점점 뜨거워집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기억하십시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심령을 부탁하십시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세상을 떠나실 때 그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고 하였습니다. 살 때도 하나님의 손에 부탁하고, 세상을 떠날 때도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영혼을 부탁하십시다.
우리 인간은 너무 약합니다. 나를 믿다가는 실패합니다. 언제 넘어질는지 모릅니다. 마귀는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손에 튼튼히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금년 일년 모든 일이 형통하시기를 바랍니까? 하나님의 손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적은 일이나 큰 일이나 하나님의 손에 맡기세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성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의 손이 지켜야 안전하고, 건축가가 집을 짓는 것도 하나님의 손이 지어야 바로 지을 수 있습니다. 모사는 재안이요 성사는 재천입니다.
무슨 소원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매달리세요. 아버지의 손은 자녀가 눈물 흘리며 매달릴 때 이루어 주시는 손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눈물로 아뢰세요.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소원이 성취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장래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세요. 평안한 마음으로 담대하게 승리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세요. 남편을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세요. 중한 병으로 고생하십니까? 하나님 아버지 손에 맡기세요. 작고 큰 일 모두를 그의 손에 맡기시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