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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 4: 10 선한 청지기 같이
벧전 4: 10 선한 청지기 같이 -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
넷째,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재능과 건강과 재물을 주셨다. 우리가 처한 가정환경이나 사회 환경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다.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그것들을 우리의 것인 양 우리 마음대로 쓰지 말고, 하나님의 것들을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서로의 유익과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리는 기꺼이 드리는 심정으로 서로 봉사해야 할 것이다.
1]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서로 봉사하라.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로서 다양하다.
* 롬 12: 6 -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 고전 12: 4 -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다 할지라도 그 은사는 서로 비교되거나 자기의 유익과 자랑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 고전 4: 7 -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다양한 은사들은 교회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Cranfield).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서로 봉사해야 한다. 이 '봉사'는 '상대를 섬기는 것'이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2] 성령의 은사들(카리스마타)
카리스마타(성령의 은사들)란 용어는 베드로전서 4: 10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울이 사용한 말이다.
카리스마(단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 구속이나 구원을 의미한다.
* 롬 5: 15 -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 롬 6: 23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교회에서 특별한 사역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특별한 은사이다.
* 고전 12: 28-31 –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바울은 로마서 12: 6-8, 고린도전서 12: 4-11, 28-30, 에베소서 4: 7-12에서 영적인 은사들에 관해 교훈하고 있다. 영적인(신령한) 은사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일상적인 형태나 비범한 형태로 특별히 나타난 것이었다.
* 롬 12: 6-8 –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 고전 12: 4-11 –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 엡 4: 7-12 –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영적 은사는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은사를 통하여 도덕적인 신령한 삶을 이룩하지는 못하지만 이 영적 은사를 행사하는 목적은 언제나 다른 신자들을 교화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영적(신령한) 은사들을 행사하는 것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의미했다. 영적 은사들의 사용에 있어서 이와 같은 실제적인 면은 신약성경에서 언제나 예외가 없다.
신약 성경에서 영적 은사들은 종종 이적 은사와 비이적 은사로 구분된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특별한 임무들과 동의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은사들은 한편에서는 말씀을 전파하는 은사와 또 한편에서는 실제적인 은사라는 의미로 구분되어야 한다.
(1) 능력(이적) 행함의 은사(고전 12: 10, 28-29)
이적이란 뒤나메이스(능력들)를 행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뒤나메이스란 악령들을 쫓아내고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 것을 가리킨다.
* 행 8: 6-9, 13 –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행 19: 11-12 –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것은 능력 행함에 대한 설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병 고치는 은사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능력 행하는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보다 더 놀라운 것으로서 죽은 자들을 살리는 것까지도 의미했던 것 같다.
* 행 9: 36-42 –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 행 20: 9-12 –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바울 자신도 이 능력 행하는 은사를 행사했지만,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그의 사도권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 고후 12: 12 -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또한 그가 전파하는 복음과 복음 전파에 대한 그의 권한을 확증해 주는 것이었다.
* 롬 15: 18-19 –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 병 고치는 은사(즉, 신유의 은사, 고전 12: 9, 28, 30)
이것은 이미 앞에서 본 것과 같이 능력(이적) 행하는 은사와 비슷하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사역(마 4: 23-24)과 열두 제자(마 10: 1)와 칠십인(눅 10: 8-9)의 사역에도 나타난다. 또한 병 고치는 은사는 오순절 이후의 교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 행 5: 15-16 –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 약 5: 14-15 – 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은사들 이라는 복수형은 병 고침 받은 사람들의 질병들의 다양함과 병을 고치는 데 사용된 수단들의 다양함을 나타내 주고 있다. 병 고치는 은사를 행사했던 사람과 병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한 가지 공통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었다.
고대 교회의 교부들이 기록한 글들을 통해서 입증되는 사실은 병 고치는 은사들이 사도 시대 이후에도 몇 세기 동안 계속 교회에서 행사되었다. 이후 이 은사는 교회에 있어서 간헐적으로 나타났었다. 오랫동안 병 고치는 은사는 중단되어 왔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이 은사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믿는 유력한 교파들이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의 행동은 악평을 받고 있다.
신약 시대에 병 고침을 받은 그 병들의 종류와, 신앙의 성격이나 위치,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고난이 의미하는 것과 잠재의식의 중요성, 그것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병 고치는 은사와 오늘날 의학과의 관계(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다녔던 사람들 중에는 의사도 한 명 있었다)는 오늘날에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있다.
병 고치는 은사들(신유의 은사들)은 성령께서 교회에 주신 영구적인 은사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성령의 사람, 겸손과 믿음의 사람만이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는 은사이다.
(3) 서로 돕는 은사(고전 12: 28)
이 은사는 사도행전 20: 35에도 나타나 있다. 여기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약한 사람들을 돕고", 주님이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말씀을 끊임없이 기억하라고 간곡히 권고하고 있다.
바울은 이러한 권고를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모범을 보였다. 초대 교회는 교인들 중에 가난한 자들을 특별히 배려했던 것 같고 이러한 궁핍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은 그 일을 위해서 성령님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간주 되었다.
장로들의 직책이 다스리는 은사로부터 유래했던 것처럼 집사의 직책과 직무도 돕는 은사에서 유래했던 것 같다. 집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 행 6: 1 -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4) 다스리는 은사
* 고전 12: 28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 롬 12: 8 -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교회의 조직은 아직도 유동적이었다. 고정화된 직책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며, 정식으로 임명된 직임자가 교회를 다스리지도 않았다. 따라서 지교회의 교인들 중의 어떤 사람이 다스리는 은사를 받아서 지교회의 교인들을 다스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 다스리는 은사는 교회의 제반 문제들을 지시함에 있어서 건전하게 권고하고 지혜롭게 판단하는 형식으로 시행되었을 것이다. 물론 교회 제반 사항을 다스리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영구적인 직분자로 간주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들은 교회에서 정식적인 직분자로 인정되어 일정하게 규정된 직무들을 수행하면서 교회를 다스렸을 것이다. 이 다스리는 일에 덧붙여서, 공적인 예배를 드리는 데 있어서 실제적인 문제들은 지혜와 통찰력을 필요로 할 것이고 다시금 다스리는 은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받아 왔던 사람은 자신이 이러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법적으로 규정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5) 믿음의 은사
* 고전 12: 9 -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이 은사는 신앙생활과 교회의 확장과 밀접하게 관련된 은사들 속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의 은사라는 이 영적인 은사들은 당연히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우어 주었을 것이고, 불신자들에게는 교회에서 전파된 메시지의 진정성을 확증해 주었을 것이다.
믿음의 은사는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능력 있는 일들이 이루어졌다.
* 마 17: 19-20 –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이를 통하여 신자들은 박해 중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
(6) 사도직의 은사
이 은사는 말씀 전파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바울은 이 은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자랑한다. "하나님께서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고전 12: 28).
'사도'라는 칭호는 신약성경에서 열두제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 특히 바울에게 - 적용되었다. 그는 성령께서 자기에게 주셨던 사도직의 은사를 매우 고귀하게 평가하여 어떤 경우에는 그 사도직 은사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다.
* 갈 1: 12 -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 고전 9: 1 -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사도들은 자기들이 신령한 은사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사역을 완수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무 것도 이 중대한 임무를 완수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 행 6: 2 -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우리가 바울 서신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도직의 은사는 주로 불신자들 가운데서 행사되었던 반면에, 다른 영적인 은사들은 신자들의 필요와 보다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었다.
* 고전 1: 17 -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사도직은 이방인들 속에서 완수되었다. 반면 베드로의 사역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 갈 2: 7-8 –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사도직이라는 은사는 엄격하게 제한된 어떤 집단, 즉 사도직의 은사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나 권위를 가진 특수한 집단이라고 생각되는 그러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기능은 말씀전파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에 틀림없으나, 그들이 가진 은사는 많은 신령한 은사들 가운데 한 가지 은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교회는 사도들뿐만이 아니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것으로(), 선지자들은 교회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이고, 사도들은 비기독인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는 자들이다.
* 엡 2: 20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러므로 사도직의 은사는 신령한 것이었기 때문에 사도들의 권위도 역시 그러했다. 사도직의 은사는 성령이 주권적으로 주신 것이었기 때문에 사도직을 가진 사람이 그 은사를 임의로 다른 사람에게 넘겨 줄 수 있는 그런 직임이 결코 아니었다. 사도들은 그 권위를 민주적으로 행사했고 권위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 행 15: 6, 22 –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사도들은 교회에 공문을 보낼 때 자기 명의로만 보낸 것이 아니고 '장로들'과 '형제들'의 명의를 포함해서 보냈다. 바울은 자기가 친히 설립했던 교회로부터 법규를 제정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조차도 자신의 권위를 사도직에 두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두었다.
* 고전 7: 10 -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7) 예언의 은사(선지직의 은사)
바울은 신령한 은사들의 순서에 있어서 사도들 다음에 '선지자들'(예언자들)을 둔다(고전 12: 2 이하). 예언의 은사(선지직의 은사)는 사도직의 은사와 구별되었다. 그 이유는 은사들의 영역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민수기 11: 29에서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소원했다.
* 민 11: 29 -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소원은 신약 시대의 초대 교회에서 실현되었다.
* 행 2: 17-18 –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 행 19: 6 -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 고전 11: 4-5 –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의 은혜를 체험했지만 특히 몇몇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인한 예언의 은사가 주어졌던 것 같다.
* 행 11: 28 -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 행 15: 32 –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 행 21: 9-10 –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신약시대의 교회에 있어서 이러한 선지자들은 종종 지교회들을 순회하는 설교자이었던 것 같다. 즉 그들은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써 신자들을 믿음 위에 굳게 세웠다. 그들의 사역은 자발적이었다는 점과 권능이 있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역 가운데는 계시를 말하는 것이 포함되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 고전 14: 6, 26, 30-31 –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30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어떤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알리셨다.
* 행 13: 1-3 –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기도 하셨다.
* 행 11: 28 -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 행 21: 10-11 –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선지자의 특별한 은사는 지교회의 신자들을 가르치고 권고하고 위로하고 교훈하는 것이다(고전 14장).
(8) 영 분별의 은사
* 고전 12: 10 -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예언의 은사는 언제나 거짓 선지자들의 위험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있는 청중들 중의 어떤 사람들에게 그 선지자들의 예언이 참인가 거짓인가를 분별할 수 있는 은사를 주셨다.
이러한 능력은 타고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어떤 통찰력이나 예리한 판단력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은사였다. 바울은 이 영적인 은사를 '영분별의 은사'라고 표현했다. 참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것과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것은 겉모양만 보아서는 거의 분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예언을 멸시치 말고 모든 것을 헤아리라고 했다.
* 살전 5: 20-21 –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영분별의 은사는 필수적이었다. 지교회들을 돌아다니면서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영감을 받아서 계시를 말하노라고 할 때 신자들은 그 예언이 참인가 거짓인가를 분별했다.
* 고전 14: 29 -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9) 가르치는 은사(교사직의 은사)
* 고전 12: 28-29 –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 롬 12: 7 -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가르치는 은사는 예언의 은사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지만, 분명히 그것과는 구별되는 은사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설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교사는 그 선지자가 선포한 것을 교인들에게 설명해 주고, 체계적으로 교리화하며, 그 교회가 처한 상황에 맞게 적용시켜서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교사들은 조직적으로 체계를 통해서 각 지교회들을 교육했던 것 같다.
* 딤후 2: 2 -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10) 권위(勸慰)하는 은사
* 롬 12: 8 -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이 은사는 예언의 은사나 가르치는 은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은사가 그것들과 다른 점은 신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것들보다도 더 개인적(개별적)이라는 점이다.
권위하는 일이 성공적인 것이 되려면, 권위하는 자는 사랑과 이해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설득력 있게 신자를 대해야 한다. 권위하는 일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더 고상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과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더욱 깊이 헌신케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주신 '권면'(exhortation. 해당 항목 참조)의 은사란 영적인 설득력과 감화력을 가리킨다.
(11) 지혜의 말씀의 은사
* 고전 12: 8 -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이 은사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성령님께서 주신 은사이다. 이 은사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깨닫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 롬 11: 33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신 일들과 말씀들의 대부분은 신비스러운 것들이기에, 일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것을 그리스도인 각자의 상황에 투사해 볼 수 있는 어떤 말씀이 종종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어떤 사람을 택하여 이 임무를 성취하도록 성령을 통해서 지혜의 말씀을 주신다. 계시에 대한 감각과 예리한 통찰력 때문에 이 은사는 예언의 은사와 흡사하다.
(12) 지식의 말씀의 은사(고전 12: 8)
이 은사는 오랫동안 주의깊게 연구한 후에 지식적인 말씀을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지식의 말씀이란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교사, 선생)이 일상적으로 가르치는 말을 뜻한다. 물론 교사들의 지적인 활동은 교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데, 여기서 가리키는 요점은 성령께서 특별한 사람(교사)에게 주시는 지식과 깨달음과 통찰력과 같은 것으로서 직관(直觀)이라고도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은 모두 성령을 통하여(혹은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강조점은 성령님께 그 말씀을 받는다는데 있고 말씀을 해석하는 데 있지 않다.
(13) 방언의 은사
이것은 바울이 언급한 영적 은사인데 성령께서는 각종 방언을 주신다고 했다.
* 고전 12: 10, 28 –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이 은사의 성격은 고린도전서 14장에 잘 설명되어 있다. 즉 방언이라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을 듣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이나 어떤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 고전 14: 2-4 –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이 방언(글로싸)이란 외국어(포네, 10-12절)가 아니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보통 기도와 찬양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다(14-17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운다(4절).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지적인 규제를 초월해 버리며(14-15절), 그 단어들이 고도로 함축된 의미를 지니고, 고도로 축약되어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연결성이 비상하며, 황홀경에서 구사되는 말을 한다. 또한 이것은 교회의 역사상 간혹 발생되었던 영적인 각성 시기에 나타났던 방언과 유사하다.
(14) 통역의 은사(고전 12: 10, 30)
어떤 선지자가 계시를 말할 때 영분별의 은사가 필요했듯이, 방언을 말하는 데 있어서도 방언 통역의 은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통역(해석)하기도 했다.
* 고전 14: 13 -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그러나 일반은 다른 사람이 통역(해석)했다.
* 고전 14: 26-28 –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바울이 고린도전서 14: 13에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한 충고는 매우 흥미롭다. 이는 황홀경에서 구사되는 의미없는 말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라는 말인데 이는 마치 예술 비평가가 연극이나 교향악이나 그림을 초보자에게 해석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물론 방언 통역(해석)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지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3] 하나님의 여러 가지(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본 절은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은사를 통해 서로 섬겨야하는 자세를 나타낸다.
'각양'(포이킬레스)는 여러 가지 특색의 은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은 한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주시지 않고 각 사람마다 다양한 종류의 은사를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서로를 위해 섬기고 봉사하여 필요한 부분을 채우도록 하신다.
'청지기'는 본래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는 하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각양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은사를 사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청지기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며, 관리하는 자로서 자신이 받은 은사를 통해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익과 멋을 추구해야 한다(Robertson, Bl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