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3: 4 배신하며 - 딤후 3: 5 경건의 모양
딤후 3: 4 배신하며 -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15] 배신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 눅 6: 16 -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 요 13: 21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 행 7: 52 -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사람들은 배반하여 팔 것이다. 그것은 의리를 깨뜨리고 배신하고 반역하는 것을 말한다. 배신은 일반적으로 악한 일이다. 특히 가룟 유다처럼 의로운 선생을 배신하는 것은 큰 악이다.
16] 조급하며
말과 행동이 경솔하여 분별력없이 서두르는 행위를 가리킨다.
* 행 19: 36 -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사람들은 조급할 것이다. 지혜 있는 자는 모든 일을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겠지만, 지혜 없고 어리석은 자는 조급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17] 자만하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튀포메노이(*)는 '자기 중심', '자만' 혹은 '허세'를 뜻한다(conceited, NIV).
* 딤전 3: 6 -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 딤전 6: 4 -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사람들은 자고(自高)할 것이다. 자신을 높이는 것이 곧 교만이다. 교만하고 높은 마음을 가진 자는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또 남에게 무례한 말을 하고 무례한 행동을 한다.
18]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보다 더'에 해당하는 헬라어 '말론'(*)은 '...보다 오히려'라는 뜻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마음으로 쾌락을 사랑함을 뜻한다.
* 요 3: 19 -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 행 4: 19 -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사람들은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할 것이다. 쾌락이 다 나쁜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즐거움들이 있다.
* 전 5: 18 -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사람들은 경건 생활을 위해서보다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쓸 것이다.
딤후 3: 5 경건의 모양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
19]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름이나 교회 다니는 모양이나 교회의 직분은 가지고 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정한다. 정말 진지하게 믿고 기도하고 순종하지 않는다. 그들은 실제적 무신론자이다.
(1) 경건
성경에서 경건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는 것을 말하며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는 경건하게 살아야 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야고보는 참된 경건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어려운 중에 있는 자를 도와주는 태도라고 말한다.
* 약 1: 27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하나님께 자기의 전부를 드리려는 절대귀의의 감정 또는 의지로써 경건은 의무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연스러운 미덕이며, 이로써 그리스도를 드러내게 된다.
경건이라는 말은 도덕이나 신앙고백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생활과 말씀에 충실하려는 심정까지도 포함한다.
* 딤전 4: 7-8 -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행 22: 12 -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그렇지만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 핍박이 있을 것을 말한다(딤후 3: 12).
(2) 경건의 모양
'경건의 모양'은 외형적이며 가식적인 것으로서 혹자는 유대인의 율법주의를 뜻한다고 본다(Scott).
(3) 경건의 능력
'경건의 능력에 대한 부인'은 '복음'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갖지 못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행위이다(Hendriksen).
따라서 본문은 종교적인 외형은 갖추고 있으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
20]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돌아서라'의 헬라어 '아포트레푸'(*)는 '등을 돌리다'라는 의미로 '거짓 교사들'과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본 구절은 디모데 개인이 사악한 집단과 멀리 떨어진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디모데가 그러한 자들을 잘 분별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바울의 권고로 볼 수 있다(Guthrie).
즉 디모데는 지도자로서 교회 공동체를 순수하게 유지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열아홉 가지 내용들을 열거한 후에 디모데에게 “이런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교훈했다.
돌아서라는 말은 ‘그들을 피하라, 그들과의 교제를 끊으라, 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참된 성도가 아니므로 우리의 교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며, 우리가 악에 감염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더럽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진리 운동은 숫자 운동이나 재력 운동이 아니다. 진리 운동은 사람들을 죄로부터 건져내고 그들로 하여금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인격자가 되게 훈련시키며 오직 천국에만 소망을 두게 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숫자가 많든 적든이 문제가 아니고 재정이 많든 적든 이 문제가 아니다. 땅 위의 참된 교회가 항상 외적 영광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남을 악하게 비난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않으며 거룩하지 않으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으며 거짓말로 남을 비난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신을 높이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이다.
이런 시대가 벌써 왔다.
진실한 종들과 성도들은 오늘 시대를 분별하며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야 한다.
종말의 징조에 대한 성경적 견해를 알고자 하는 성도들은 본인의 성경종말론 제 7 장 재림에 대한 징조를 살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