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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가 구원의 '뿌리'라면, 성화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진짜로 칭의(뿌리)를 받은 성도라면, 반드시 그 삶에서 더디더라도 성화(열매)의 과정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2. 성화의 동력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화는 내가 이를 악물고 도덕적으로 착해지려고 노력하는 율법주의적 수양이 아닙니다. 앤서니 후크마(Anthony Hoekema)는 개혁주의 성화론의 핵심을 '성령과 신자의 역동적인 협력'으로 정립합니다.
수동적 정숙주의의 오류: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주실 거야" (Let go and let God)라는 태도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적 성화 (빌립보서 2:12-13의 역설):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능동적 명령)"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성령의 주도권)"라고 설명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맹렬하게 역사하시고 거룩한 소원을 불어넣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힘을 공급받아 피 터지게 죄와 싸우며 거룩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3. 성령 세례(단회적)와 성령 충만(반복적)
현대 교회에서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개념 중 하나가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의 차이입니다. J.I. 패커(J.I. Packer)와 웨인 그루덤(W. Grudem)은 이를 명쾌하게 정리합니다.
성령 세례 (Baptism of the Spirit):
예수를 처음 믿고 거듭날 때, 그리스도의 몸(교회) 안으로 연합되어 들어가는 단 1회적이고 영구적인 사건입니다. (고전 12:13) 다시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 (Filling of the Spirit):
에베소서 5장 18절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현재 진행형 명령)"고 말씀합니다. 이는 물 컵에 물이 채워지듯 성령의 '양'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 감정, 의지의 통제권(Control)을 성령님께 얼마나 온전히 내어드리는가의 문제입니다.
어제 충만했어도 오늘은 바닥날 수 있기에, 매일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구하고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내가 성령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더 많이 가지시는 것(사로잡으시는 것)'입니다.
💡 [목회 및 강단 적용] 성도들의 삶을 바꾸는 설교 포인트
목사님께서 이 제9강의 성화와 성령 충만의 진리를 선포하실 때, 성도들을 거룩한 삶으로 일깨울 세 가지 강력한 적용점입니다.
1. 반복되는 죄의 넘어짐으로 절망하는 성도에게 주는 위로
"목사님, 저는 구원받았다면서 왜 어제 지은 죄를 오늘 또 짓고 무너질까요?"라고 우는 성도들에게 성화의 교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칭의는 단번에 완성되지만, 성화는 평생에 걸친 영적 전투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비정상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회개하게 하시고, 결국은 예수님의 형상으로 빚어내시고야 만다는 사실입니다!" 완전주의의 좌절에서 벗어나, 다시 십자가를 붙들고 일어서게 하십시오.
2. 율법주의와 도덕주의를 박살 내는 '성령 충만'
교회 안에서 내 의지로 억지로 봉사하고, 남을 판단하는 바리새인 같은 신앙인들에게 경종을 울리십시오. "내 힘을 쥐어짜서 착하게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금방 지치고 위선자가 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생수의 강이 터져 나와야 억지가 아닌 기쁨으로 죄를 이기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성령께 인생의 운전대를 넘겨드리는 기도를 강조해 주십시오.
3.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소원: "거룩" (데살로니가전서 4:3)
세상의 성공이나 복을 구하는 데만 혈안이 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구원의 목적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우리를 부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쏙 빼닮은 거룩한 사람(작은 예수)으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원종민 목사님! 이것이 바로 타락한 본성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게 하는 성령의 위대한 빚으심, [제9강: 성화(Sanctification)와 성령의 충만]의 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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