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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일 4:18)
요한 웨슬리, 논문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평이한 해설(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 (1766, 1777)
요한 웨슬리, 표준 설교 제40편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요한 웨슬리, 표준 설교 제43편 〈성경적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서론: 웨슬리 신학의 정점이자 가장 오해받은 진리
요한 웨슬리는 감리교 운동의 존재 목적을 묻는 질문에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다음과 같이 천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소디스트를 일으키신 특별한 목적은, 특정 교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성결(Scriptural Holiness)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성경적 성결의 정점에 서 있는 교리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 즉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입니다.
이 교리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신학자들로부터 가장 격렬한 비난과 공격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제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완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교만이며 망상이 아닌가?"
제9강은 웨슬리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성경과 목회 현장을 통해 갈고닦아 정립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참된 실체와 신학적 비밀을 파헤칩니다.
1. '완전(Perfection)'이란 무엇이 아닌가? (부정적 규명)
웨슬리는 이 교리가 불러일으킬 오해를 막기 위해, 완전이란 "무엇이 아닌가"를 먼저 철저히 규명했습니다.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은 천사나 아담의 타락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절대적 완성이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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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아닌 것 4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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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절대적 완전 (Absolute Perfection)이 아니다 . │
│ - 절대적인 완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속한 속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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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오류성 (Infallibility)이 아니다. │
│ - 인간은 육신의 한계로 인해 여전히 무지하고, 판단을 그르치 │
│ 며, 비고의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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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죄 없는 완전주의 (Sinless Perfection)라는 용어의 배격 │
│ - 웨슬리는 이 용어가 교만을 낳는다고 보아 사용을 기피함. │
│ - 율법의 모든 조문을 오차 없이 100% 만족시키는 상태가 아님 │
│ │
│ 4. 은혜에서 타락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다. │
│ - 온전한 성화에 이른 자라 할지라도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
│ 언제든지 유혹에 넘어가 은혜에서 떨어질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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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는 인간이 육체를 입고 호흡하는 한, 신경의 연약함, 질병, 지식의 결함으로 인한 실수와 부지중의 허물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성화를 이룬 자라 할지라도 날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주기도문과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1분 1초도 빠짐없이 의지해야만 합니다.
2. 그렇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무엇인가?
웨슬리는 철저하게 성경 본문에 근거하여 '완전'을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철학적·도덕적 무결점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Perfection in Love)'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모든 악한 생각과 성품이 사라지고, 온 마음이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가득 차서 그 사랑이 삶의 모든 언행을 지배하는 상태다."
—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평이한 해설》
웨슬리는 완전의 실제적인 두 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1) 고의적 범죄로부터의 해방 (Freedom from Outward Sin)
웨슬리는 요한일서 3장 9절("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을 인용하며, 참되게 성령으로 거듭나고 온전해진 신자는 하나님의 법을 알면서도 고의로 반역하는 죄(Wilful violation of a known law)를 짓지 않는다고 선포했습니다.
죄의 권세(Power of Sin)가 완전히 파쇄된 상태입니다.
2) 내면적 부패의 정결 (Cleansing from Inward Sin)
거듭난 신자의 심령 깊은 곳에 여전히 웅크리고 있던 시기, 교만, 분노, 자아 숭배, 세상에 대한 집착과 같은 '뿌리 깊은 내면의 죄의 성향(Inbred sin)'이 성령의 불로 태워져 순수한 사랑으로 대체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품으셨던 그 마음(빌 2:5)이 신자의 심령을 온전히 지배하는 상태입니다.
3. 성화의 여정: 점진적 성장인가, 순간적인 은혜인가?
웨슬리 신학의 가장 독창적이고 위대한 통찰은 '점진성(Gradual)'과 '순간성(Instantaneous)'의 신비로운 결합입니다.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성화는 평생 자라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단번에 받는 것입니까?" 웨슬리는 둘 다라고 대답합니다.
[칭의 / 거듭남] ──(점진적 성화)──> [온전한 성화] ──(더 깊은 성화의 전진)──> [영화]
(순간) (평생의 씨름) (순간) (무한한 성장) (부활)
점진적 성화 (Gradual Work):
칭의를 통해 영적 갓난아이로 태어난 신자는 말씀, 기도, 금식, 고난, 은혜의 방편들을 통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죄를 죽이며 성숙해 갑니다.
순간적인 온전한 성화 (Instantaneous Entire Sanctification):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 훈련의 축적만으로는 심령 속 깊은 '자아(Self)'의 뿌리를 뽑을 수 없습니다. 신자가 자신의 내면적 죄의 깊이를 처절하게 자각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한 산 제물로 드릴 때, 성령께서 벼락처럼, 순간적으로 임하셔서(Like a flash of lightning) 심령의 모든 찌꺼기를 불태우시고 순수한 사랑을 쏟아부으시는 제2의 은혜의 역사가 임합니다.
이후의 지속적 성장:
순간적인 온전한 성화를 받았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깨끗해진 그릇에 날마다 더 많은 사랑을 채워가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무한히 자라가야 합니다.
4.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화: 오늘, 바로 지금!
웨슬리는 표준 설교 제43편 〈성경적 구원의 길〉에서 폭탄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칭의)을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면, 거룩해지는 것(성화) 역시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웨슬리는 교회가 성화를 '인간이 죽을 때까지 도달할 수 없는 아득한 이상'으로 유예시키는 마귀의 궤계에 속았다고 질타했습니다. 신학자들은 "육신을 벗고 죽는 순간에야 거룩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반문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인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육체적 사건인가?"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가 '바로 지금,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선포했습니다.
갈망과 자복: 내 안에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교만과 정욕이 있음을 애통해하는 가난한 심령.
전적 헌신: 나의 시간, 재정, 육체, 자아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 제단에 조건 없이 불살라 바침.
단순한 믿음: 약속하신 주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나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고(요일 1:9), 지금 그 일을 행하신다는 절대적 신뢰.
웨슬리의 긴급한 촉구:
"기다리지 마십시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믿는 그 순간, 바로 지금(Expect it by faith; expect it as you are; and expect it now!) 하나님께서 당신의 심령에 그 온전한 사랑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제9강의 결론: 오늘 우리를 향한 부흥의 원리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근본적인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성결)'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무기력한 타협에 빠진 우리를 향해 부흥의 불방망이를 휘두릅니다.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패배주의적 핑계를 찢어버려라: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과 성령의 전능하심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죄를 이기고 다스리게 하는 권능입니다.
신앙의 지향점을 '사랑의 완성'에 두어라:
차가운 율법주의적 완벽주의자가 되지 마십시오. 참된 완전은 남을 정죄하는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예배하고 원수까지도 품어 안는 불타는 사랑입니다.
온전한 성화를 간절히 구하라:
적당한 신앙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심령의 은밀한 죄까지도 성령의 불로 완전히 태워주시고 오직 주의 사랑으로 충만케 해달라고 부르짖으십시오. 거룩에 목마른 자들이 일어날 때, 그 땅에 다시 한번 하늘의 대부흥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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