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적응이 안 되어 그런지 새벽3시까지 속닥속닥 얘기를 하고도,
모닝콜(오전 6시)이 울리기도 전에 거뜬하게 일어났다.
우리 나라 초가을 날씨 같은 느낌이다.
여행을 자주 해본 이규희 선생님은 옷 입는 것도 프로, 짐 싸는 것도 프로,
술 마시는 것도 프로, 노는 것도 프로....글 쓰는 것도 프로다.
나도 여행이라면 할말이 많은 사람이지만, 글쎄 프로는 아직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어떤 것이 프로일까? 잠시 생각을 해본다.
8시 출발, 폴란드로 넘어가는 국경까지는 대략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유럽의 화장실은 대부분 유료(50센트 정도-우리나라돈 650원 정도)이기 때문에
깨끗한 화장실이 딸린 휴게소가 나타나자 모두 나가서 볼일을 보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분위기파인 이규희 선생님이 여기서 빠질 수가 있겠는가.
이규희 선생님은 진한 에스프레소를 나는 달콤한 카푸치노를 마셨다.
(각각 1유로이니 커피값은 싼 편이다)
10시 40분 경 국경에 도착했으나 느릿느릿 유럽인들은 여권을 거둬가더니 소식이 없다.
말이 국경이지 그냥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다.
버스에 앉아 여권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게임을 하기로 했다.
버스 밖에 한 무리의 동양인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양이다.
이규희 선생님은 "저 사람들은 한국인이다!"
박선표 기자는 "중국인이다."
그렇게 해서 저녁 술내기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게임은 여행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다리게임, 007게임 등등. 그런데 마지막날 밤에는 내가 빠져서 어떤 게임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박기자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 중국인 아녜요. 중국인들 머리는 까치집처럼 부스스하고 안 감아 덕지덕지 붙었거든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나 박기자는 들은척도 안 한다.(결국 그는 내기에 져서 술을 사야 했다)
폴란드는 러시아 다음으로 최다 감자 생산량 국가이다.
그러니 모든 음식에는 감자가 빠질 수 없겠지.
이름만 낭만적인 레스토랑 '카사블랑카'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네모난 빵조각이 들어있는 양파스프. 맛이 꽤 괜찮다.
추운 지방의 음식은 고열량의 기름진 음식이 많다. 그래서 느끼한 맛을 없애기 위해
양배추와 무, 당근을 식초에 절인 샐러드 '카푸스타 키쇼나'를 곁들여 먹는다.
감자 2위 생산국 답게 감자 으깬 것과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구운 포크 찹
(우리 나라 돈가스랑 똑같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폴란드 음식은 대체로 우리 입에 잘 맞는다고 한다.
폴란드 음식은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웰빙에 민감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일 듯....
카사블랑카를 나와 오슈비엥침으로 출발하였다.
우리가 구경할 수용소는 1수용소(특별기술자들이 모아 놓은 곳)와 2, 3수용소라고 한다.
특히 2수용소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라고 한다.
1979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우슈비츠'에 가장 많이 오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는 폴란드인, 둘째는 유태인, 셋째는 놀랍게도 독일인이다.
그들, 독일은 교과서에도 있는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무릎까지 꿇는다고 하는데 이웃 나라 일본은 어떠한가.
그들은 인정하기보다는 변명하기에 바쁘고, 도리어 왜곡까지 일삼지 않는가.
나는 문득 지금까지 안일하게 슬슬 동화를 써온 내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나찌의 만행에 대한 동화가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가.
일본이 36년간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은 나찌, 그들보다 과연 덜할까.
아이들은 재미난 동화, 술술 잘 읽히는 동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 동화작가들은 다시 한번 역사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지금도 늦은 건 아니다.
나부터라도, 철저한 역사의식을 갖고 동화를 써야겠지.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는 뜻의 강압적인 간판 'ARBEIT MACHT FREI'가 크게 보인다.
수용소 4, 5, 6, 7 ,11동에는 당시 사진, 대량학살에 사용한 사이클론 가스통, 가방, 빗,
안경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심지어는 머리카락까지도 산더미처럼 모아 놓았는데 그 머리카락으로 실도 만들고
옷감도 만들었다고 한다.
고압전류가 흐르던 이중 쇠창살과 음산하게 줄지어 선 막사...
이곳에 보내어진 사람 가운데 70~80%가 도착과 동시에 학살당했으며,
나머지는 감금, 기아, 중노동, 실험, 사형 등으로 죽어갔다.
가장 슬픈 것은 수용소에 도착한 사람에게 죄수복을 입혀 일일이 사진(옆 앞 사진)을 찍었고, 온 몸에 죄수번호를 문신으로 새겼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손등에까지도...
수용소를 돌아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인간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진다.
인간이 아니라 동물, 아니 그보다도 더 못한 대접을 받았던 유태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유태인이 비록 그 당시 고리대금업자 노릇 등으로 다른 나라 사람의 눈총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살륙할 수가 있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교수대
이 곳으로 수많은 사람이 끌려들어가 화장당했다.
저기 보이는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와 시체 썩는 냄새가 온 도시와 하늘을 덮었다고 하니...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도 보면, 수용소 사람들이 시체 태우는 냄새 때문에
코와 입을 막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가슴이 먹먹하여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을 것 같고, 자꾸만 수용소 안에서 본 광경들이 떠오른다.
박기자는 유태인의 머리카락, 안경, 빗, 법랑냄비 등 적나라한 실상들을 모두 찍었다.
아마도 그가 사진을 보내준다면 이곳에 올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그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두들 침울하게 서 있자 폴란드 가이드(유머러스한 한국 청년)가 말했다.
"오늘은 지옥에 오셨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지금부터 구경할 곳, 그리고 내일 구경할 소금광산은 천국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하시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
이 무거운 맘이 새털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이지 그랬다.
크라카우 시가지로 들어가는 순간 그 무겁던 마음은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어찌나 멋있던지.
크라카우 시가지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아우슈비츠 때문이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구시가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워진 건물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덕분에 크라카우는 1978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 12대 유적지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유럽의 문화도시로 지정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말 두마리가 끄는 멋진 마차를 타고 시내 관광을 나섰다.
왕이 순찰하던 그 길을 따라 시내를 돌아보는 코스로 30유로 정도 주면 된다.
말을 타고 구불구불 구시가지를 도는 동안 마음도 한결 좋아졌다.
이곳 크라카우에서는 동양인을 잘 볼 수 없어 그런지 우리가 구경거리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우리를 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우리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니, 마치 여왕이나 공주가 된 기분이다.
마침 오늘은 8월 15일 성모승천축일이어서 온 거리가 축제 분위기다.
시내를 마차로 돌고나서 사진 한 장 찰칵~(증거를 남겨야 해, 어쩌구 하면서)
성 마리아 성당, 구시청사 탑과 대성당이 압권이다.
사진이 다 어디로 갔지?
구경하느라 바빠 사진도 찍지 못했나 보다.
중앙광장에서 폴란드 부엉이를 한 마리 샀다.
(30유로-조금 비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우리나라 인사동에 가 보라. 꼴같지 않는 부엉이도 3-4만원 달라고 한다. 이 정도 부엉이면 아마도 7-8만원 정도 달라고 하지 않을까.)
이 녀석, 이규희 선생님 못지 않게 패셔너블하다.
아유슈비츠 때문에 우울했던 기분은 어느새 사라졌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잊어버릴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먹을 것이 눈앞에 떡 하니 차려져 있어 행복했다.
아무 것도 못먹을 줄 알았는데....역시 산사람은 살아야겠지.
저녁이 꿀맛이다.
토마토 스프와 감자를 곁들인 생선까스, 그리고 생야채가 나왔다.
폴란드 맥주 오고칭을 꿀꺽 한잔 하니, 온갖 시름이 다 날아갔다.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보다 훨씬 부드럽다.
아, 행복한 폴란드의 밤이여....... -3편에 계속-
* 3편 예고- 아우슈비츠가 지옥이라면 천국으로 비유되는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과 동구의 알프스라 일컬어지는 슬로바키아 타트라 국립공원 이야기입니다.
첫댓글 아우슈비츠 사진보며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생각했습니다. 참 슬픈 세계사를 기억나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은 아름다워' 얘기를 했지요. 구경을 마치고 다시 버스 안에서 '쉰들러 리스트'를 보았더니, 그곳 그 장소가 그대로 나오더군요. 참 기가 막혔습니다.
그렇지요... 인간만치 잔인한 동물이 없어요..
더 끔찍한 사진은 스포츠조선 박선표씨가 찍었어요. 사진 정리하는대로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어른들에게도) 그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머리카락과 안경, 가방 같은 것들...
장거리 여행이 안 되는 제게 선생님 여행기가 기쁨이네요. 꾸벅^^ 아, 브라우스가 소녀 같아요. ㅎㅎㅎ 저 답죠?!!!
건강 때문에 그런가요>? 아니면 입시생 때문에? 하여튼, 언제 시간 되면 가까운 곳이라도 함께 여행하자구요...그 날을 기다리며...
여행은 참 많은 걸 느끼게 해주지요. 같이 따라 못 간것이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저한테도 기회는 오겠지요.ㅠ.ㅠ
나리야, 부럽지? 그러니까 다음에는 꼭 같이 가자! 하지만 여행기를 보면 반쯤 가 본거나 마찬가지일 거야. 안선모선생이 워낙 자세히 써서. 이렇게 사진과 글을 함께 해놓으니 나도 새삼스러워.
핑크리 선생님과의 여행은 어디를 가도 즐거울 거예요.^^
부럽습니다. 저는 언제나 훌훌 털고 다니려나. 구경잘합니다.
부럽기도 하지만 워낙 생생하게 써놓으셔서 덤으로 따라붙어다녀온 기분이에요. 아, 마냥 부러워요... 쉰들러리스트... 용기내서 혼자 극장 가서 보았던 기억이 새롭네요..
여행하고 나서 버스 안에서 다시 쉰들러 리스트를 보았는데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어요. 방금 보고 온 그 장소들을 선명하게 봐서요.
함께 하면 즐거움이 배가되는 여행일 것 같다는 생각이...^^
예, 맞아요. 작품 얘기도 하고, 고민도 얘기하고. 정말 좋았어요.
저도 이런여행을 떠날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요?
그럼요! 아이가 조금 클 때를 기다리세요...(이제 6학년인가요? 그럼, 한 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