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작가와의 만남
9월 12일
우리나라라고 안전할 순 없다는 걸 상기시켜 주기라도 하듯 제법 강한 지진이 나고, 북한 핵 위협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려도 나는 지난 8월에 있었던 작가 이기호의 강의나, 부실한 수업준비로 내 뒷꼭지가 더 시렸던 하루가, 현장학습 장소를 놓고 겪었던 그리 유쾌하지 못했던 소동 같은 것들에만 온통 마음이 가 있다.
나는 지난 8월에서야 비로소 이기호라는 작가와 제대로 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72년생, 같은 동년배라는 사실이 그렇게 친근할 수 없었다. 79년에 초등학교 입학,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랐던 80년대, 88년 올림픽, 이선희와 변진섭의 히트곡을 들으며 자랐을, 서태지가 나왔고, 김영삼대통령이 당선되고, 김지하시인이 운동권 학생들에게 미친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악담을 퍼부었던, 그 때만 해도 대학생들의 시위나 집회가 너무나 흔했던,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졸업하고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열려 있었던 그런 시대였다. 지금은 응답하라 시리즈로 TV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역사가 되어 버렸고, 아득한 황색톤 같은 시절이지만, 과거를 아름답게 치장하려는 욕심 때문일까? 순박해서 아련했던 시절이었다. 답답해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저 그런 일상들이었지만 과거는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는 사람이 가진 색깔에 달려 있는 것 아닐까?
단순히 동년배였기 때문에 단박에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치면 고등학교 동기, 대학 동기에게서 느끼는 그 먼 간극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세대는 386과는 다르고, 조금 더 개인주의적인 그 뒷세대와는 다른 그 사이에서 나라는 인간은 하나가 통하지 않으면 좀처럼 다가서기 힘들어하고, 다가올 여지도 잘 두지 않는 것 같다. 그 하나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이란, 뭐 책에 들어 있는 것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지만 자신을 지탱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잘 찾아지지 않는 것들...... 하지만 상대방에게서 그 하나를 알아채고 난 후에는 급속도로 친근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의 작품을 좀 더 찾아 읽기 시작했다. <원주통신>, <웬만해서는 아무렇지 않다>,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김박사는 누구인가> 등
그도 역시 많은 독서와 글쓰기 과정을 거친 작가이기 때문에 물론 필력도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한글자 한글자에 묻어나는 작가의 분신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소심하고 유약하고,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루저, 백수 내지는 이혼남, 뭘 착각하고 실수하는 사람들이지만 나름의 진실함은 있는 사람들. 누구나 제 가슴 속을 흐르는 강물의 양은 똑같지 않은가. 모든 사람의 글에는 쓴 사람의 냄새가 배기 마련이지만 유독 그의 캐릭터들은 그가 그런 사람이지 않으면 쓸 수 없을 것 같은 실랄함이 있다.
<원주통신>은 박경리선생님과 한 마을에서 살았던 소년의 이야기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동네에서 살았지만 작가는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고, 동네사람 역시 그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드라마 <토지>의 원작자로서 저명해지게 되자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작가와의 인연을 강조하게 되고, 소년 역시 학교에 가서 자신이 얼마나 작가와 친분이 많은지, 나중엔 그런 소문이 부풀려져 소년이 외손자라는 이야기까지 돌게 된다. 나중엔 그 엉터리 소문 때문에 곤혹스런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시종일관 키득거리게 만드는 문체가 독자를 유쾌하게 만든다. 소년은 박경리작가의 집 담장 밑에서 담배를 피우며 항상 불이 켜진 방을 본다. 소년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도 선생은 <토지>를 쓰고 있었다. 늘 불이 켜진 그 방을 보면서 그를 휩싼 것은 알 수 없는 슬픔이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요?” 나는 그 느낌이 그를 작가로 만든 작은 씨앗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나 역시 긴 백수의 시간이 있었다. 학원강사를 하기도 했지만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시간에 그 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기호 작가 역시 부모님의 한숨과 눈치를 받아가며 방바닥과 일체가 되어 생활할 때 집에 꽂혀 있던 세계문학전집을 내리 읽었다는 부분에서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의 삶에 있어 여백이란 그토록 유용한 일이기도 하다. 견뎌낼 수만 있다면.
기약 없는 작가지망생 시절을 거쳐 그는 현재 대학교수이다. 생활의 안정, 아이 셋의 가장, 40대 중년에 접어든 그는 여러 가지 직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작가라는 사람에게 여러 타이틀은 글을 쓰는데 방해되는 요소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는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퇴근 후 다시 고시원이나 원룸 등을 얻어 그 곳으로 출근하여 새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8월의 여름밤, 딱딱한 강연회가 아닌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 그는 할 말이 많아보였다. 보여지는 부분보다 보여지지 않는 부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닌 그는 겸손하고 또 유머스러웠다. 박경리선생과의 인연으로 통영에 오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서울에서 독자와의 만남 중 스쳐가는 말로 약속을 하여 그 약속을 지켜 준 사람이었다.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덜어내었을지는 작가도 아닌 나도 공감할 수 있었다.
김탁환 작가와의 시간도 무척 뜻깊은 시간이었다. 아직 다 읽지 못한 <거짓말이다>를 읽고 나서 그와의 만남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나는 저명인사의 강연이 유익하지만 그 중 작가와의 시간이 최고인 듯 싶다.
이 글을 시작한 시간과 마무리한 시간 차이가 5일 정도 난다. 그 사이 일상 속에서 유쾌하지 못한 일들은 이렇게 저렇게 마모되어 찌꺼기는 거의 사라졌고, 작가와의 만남을 통한 감동은 그대로이다. 좋은 강연, 좋은 시간을 갖는 일의 여운은 아마 평생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