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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본문
학인스님
참고자료
오늘 할 부분은 31P
二, 莊嚴입니다.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땅의 莊嚴이라
기지其地가 견고堅固하야 금강소성金剛所成이라 상묘보륜上妙寶輪과 급중보화及衆寶華와 청정마니淸淨摩尼로 이위엄식以爲嚴飾하고 제색상해諸色相海가 무변현현無邊顯現하니라 마니위당摩尼爲幢하야 상방광명常放光明하고 항출묘음恒出妙音하며 중보라망衆寶羅網과 묘향화영妙香華纓이 주잡수포周帀垂布하며 마니보왕摩尼寶王이 변현자재變現自在하야 우무진보雨無盡寶와 급중묘화及衆妙華하야 분산어지分散於地하니라 보수寶樹가 항렬行列하야 지엽광무枝葉光茂하니라 불신력고佛神力故로 영차도량令此道場 일체장엄一切莊嚴으로 어중영현於中影現하니라
오늘은
(2) 菩提樹의 莊嚴이라
땅이 그렇게 장엄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면 참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죠.
무상한 사바세계
이름에 기대지도 말고
성리문전聲利門前에는 고착안高着眼이요.
명성과 이익이 있는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한 번 높~이 쳐들고
시비굴리是非窟裏에는 막회두莫回頭라.
옳니 그르니 하는 쪽에서는 외면해버려라.
내가 이것 하려고 중 된 건 아니다 이거죠.
자~ 오늘은 어제 처음에는
땅이 장엄이 되고
땅이라고 하는 거는
상징적으로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판적으로
저 자갈 모래 깔려 있는 흙더미의 땅도 땅이지만
그게 이판적으로 견주어서 얘기하고자 하는 거는 뭐겠어요?
心地, 마음의 땅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우리 중생이라고 하는 거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라.
중다衆多한 생각이 일어나는 게 衆生이잖아요?
그러면 부처님은 어떻습니까?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無生이다고 하는 거죠.
여러분들이 생각을 끊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생각을 결코 한 번도 끊을 수가 없는 거죠.
생각을 어떻게 끊어.
생각은 끊을 수가 있는 것이 절~대 아니거든요.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영리하게 이걸 알아차린다고
지금 이제 대교반쯤 왔으니까
산중에 와가지고 공부했는 날이 만만찮거든요.
마냥 어린 학인이라 하기에는 책임감이 막중한 것이라.
이 도를 깨치고도
깊이 들어가서 증득하면 더 좋겠지만
그건 아니라도 피상적인 것이라도
라면을 다 맛보면 좋겠지마는
저게 농심 라면이다, 삼양 라면이다,
이게 소주다, 와인이다, 탁주다,
이 정도는 구분이 돼야 되거든.
화엄경을 들으면 화엄경인 줄 알아야 되고,
반야부 경전을 들으면 반야부 경전인 줄 알아야 되고,
능엄경 그 중요한 얘기를 시간이 없어서 다 못 배우면
능엄경 읽는데는 하루만 하면 다 읽어요. 하루만 하면
어떻든지 心地가 끝나고 여기서
菩提樹의 莊嚴이라고 하는 것도
보리수가 상징하는 것은
앞에 땅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의미가 깊은 것이죠.
보리수라고 하는 것은
원래 부처님은 필발라수畢鉢羅樹 그 밑에서 이제 깨치셨지만
소나무 밑에서 깨치면 소나무가 이름이 뭐로 바꿔지게 되겠어요?
보리수
보리수가 되는 거야.
감나무 밑에서 깨치면?
그것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수
운문사 가면 운문사 보리수가 있고
지리산 천은사 가면 그죠?
천은사 보리수도 있고
범어사는 또 범어사 보리수도 있고
중국에 가면
인도에서 보리수를 가져 온 최초의 보리수 나무가 있는 데가
광효사光孝寺라고 하는 중국 광저우, 광주廣州에 가면 있어요.
광주 광효사라는 데가
여러분들이 배운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옛날 법성사法性寺입니다.
육조스님께서 다시 10년이 지난 뒤에 숨어 지내다가
바람이 불기에
스님 둘이 싸우죠?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느냐?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느냐?'
"바람도 깃발도 아니나 그대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니라."
그러니까
"그대는 누구십니까?"
마당 쓰는 행자한테 처사한테 물었죠.
"저는 오조홍인五祖弘忍법사에게 전법을 해서 맥을 이은
육조혜능六祖慧能입니다."
그래서 인종印宗 법사가 수계를 하고 다시 삭발해서
"스님 이래 계시면 안됩니다. 법을 펴셔야 됩니다."
이렇게 된 것 아니에요?
그 절이 있는 데 가면
한 천삼백 년 넘은 보리수 나무가 있죠.
천삼백 년도 더 됐죠.
인도에서 처음으로 달마스님이 건릉 광주로 들어와가지고
머물렀던 절이 광효사거든.
육용사六榕寺에서 하룻밤 주무셨다고 그러기도 하고
광효사 가면 세발천洗鉢泉이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 가면 보리수 나무가 조당祖堂 앞에 육조스님,
우리 대웅전 몇 배나 되죠. 그 조당이
조당이라 해가지고 육조스님의 법당,
불당은 부처님 계신 데고 조당은 조사가 계신 데 아니요.
그 조당 앞에 보리수 나무가 있고
그 옆에 육조스님의 머리카락을 묻고 탑을 세웠다,
이런 얘기도 있고
철탑도 있고, 그렇죠.
보리수 나무가 나중에 그 손자 나무가 어디로 가느냐 하면
남화선사南華禪寺
육조스님께서 37년동안 법을 폈던 남화선사로 옮겨갑니다.
그 남화선사 거기 갔을 때는,
남화선사 가면 육조스님이 중앙에 등신불로 육신불이 모셔져 있고
저번에 내가 살짝 언급했죠?
감산덕청스님이 옆에 좌보처로 계시고
우화스님인가 그분이 오른쪽에 모화스님? 우화스님?
그 분이 오른쪽 우보처로 계시죠.
하여튼 보리수라고 하는 것은
공덕이 무량한 나무다.
이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보다 더 공덕이 무량한 게 어디 있겠어요?
앞에 땅의 장엄이라고 하는 거는
심지의 견고한 것, 금강처럼 단단한 것,
뒤에 이어서 나올 것은
궁전의 장엄이 나오잖아요. 그죠?
궁전에는 누가 산다고 했죠?
왕이 살잖아요. 그죠?
왕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의 중심이고 자유의 상징이다.
자유자재의 상징이다.
남들의 어떤 변화나 자기의 괴롭고 즐거운 변화에 대해서
그렇게 힘들어하고 뻑뻑해하지 않을 때
그 왕의 자격이 있잖아요.
왕이 지 좀 괴롭다고 목 매달아 죽어버리고
왕이 약간의 이익을 위해서 노름이나 하고
이건 왕이 할 짓이 아니잖아요?
왕은 그렇게 가는 게 아니거든.
여기서 우리가 일단 배우는 것들은
정중심의 이판의 세계를 배우는 것이요.
이즉돈오理則頓悟라.
이치는 금방 알 수 있어요. 이렇게 보면
그리고 또 거기에 목적을 두고 우리가 출가를 했기 때문에
하여튼 소나무에 솔향기가 가득한 것처럼
보리수 나무에도 깨달음의 향기가 가득~하다고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보리수 나무가 이제 어떻게 생겼는가?
한 번 화엄경에 나오는
菩提樹의 莊嚴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수보리其菩提樹가 고현수특高顯殊特하니라 금강위신金剛爲身하며 유리위간瑠璃爲幹하며 중잡묘보衆雜妙寶로 이위지조以爲枝條하며 보엽부소寶葉扶疏하야 수음여운垂陰如雲하며 보화잡색寶華雜色으로 분지포영分枝布影하며 부이마니復以摩尼로 이위기과而爲其果하야 함휘발염含暉發焰하야 여화간열與華間列하니라 기수주원其樹周圓에 함방광명咸放光明하며 어광명중於光明中에 우마니보雨摩尼寶하며 마니보내摩尼寶內에 유제보살有諸菩薩호대 기중여운其衆如雲하야 구시출현俱時出現하니라 우이여래又以如來 위신력고威神力故로 기보리수其菩提樹가 항출묘음恒出妙音하야 설종종법說種種法호대 무유진극無有盡極하니라
그것도 또 잘못 끊어 읽어가지고
說種種 法 이러면 안되고
說~ 種種法호대 無有盡極하니라
이렇게 타동사로 딱 뜰 때는 목적어를 받아가지고 앞으로 쭉 뽑아줍니다.
菩提樹의 莊嚴이라
其,
其 이러면 뭐죠?
that 그죠?
그 보리수菩提樹가 고현수특高顯殊特하니라
높이
顯, 현이라고 하는 게
밝을 명자처럼 높고 확 나타났다, 드러났다, 이말이라. 그죠?
높이 삐쭉하게 커다랗게 드러나고
殊라고 하는 거는 수승하다.
特이라고 하는 거는 특별하다.
그 菩提樹가 고현수특高顯殊特하니라
이 보리수 나무가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때는 수특殊特하다고 하는 것이라. 그죠?
정말 여기서 조금 옆으로 좀 가지를 벌려서 설명하자면
보리수 나무만 보리수가 아니라
조금만 시각을 돌려서 보면
세상의 삼초이목이 저 낙락장송과 저 가녀린 풀 한 포기라도
신비롭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화엄경을 읽고 나면
읽는다는 것은 화엄경 속에서 감동을 받아버리면
인생 자체가 그래 되는 것이라.
그 보리수가 高顯殊特하니라
그 보리수는 높이 솟아 아주 특별하였다.
금강金剛으로 위신爲身하며 유리瑠璃로 위간爲幹이라
다이아몬드로 爲身이라, 전체 몸통이 되고
어리석은 사람이 그냥 진짜 금속 물질이라든지 이런 광물질이
보리수 나무로 됐다 하면 안되는 거죠.
여기서는 事를 견주어서
금강이라고 하는 다이아몬드는 어떠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이치를 가지고 있어요?
단단하다, 아주 값어치 있다, 그죠?
어떤 것에도 다이아몬드는 똥물에 빠져도 물이 배이지 않는다.
이런 것 아니겠어요?
밀도가 굉장히 강하다.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야지.
'와~ 그 보리수는 특별한가 보네... 다이아몬드인가 보네...'
그거는 약간 정신 이상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유리瑠璃로 줄기로 되어 있다.
유리의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 거에요?
투명성 그죠?
아~ 이 보리수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사람이 매일 매일 무량하게 자라는,
아까 내가 뭐라 했죠?
공덕이라 했죠. 그죠?
나무는 자라는 생명력이 있잖아?
땅은 유지시키려고 하는 견고함이 있잖아요?
우리 마음의 본체는 흔들림이 없이,
땅이 흔들림이 없잖아요?
마음의 본체가 흔들림이 없고
그 본체에 뿌리를 심은 나무가 매일 매일 자라는데
다이아몬드 같은 몸통으로
유리같은 그런 투명성으로
사람이 청렴, 아주 청정, 무애자재한 모습을
이 보리수 나무 한 그루에서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죠.
그 다음에
중잡衆雜,
여러 雜, 온갖
雜이라는 거는 섞였다는 말 아니에요. 그죠?
우리가 손짓, 발짓, 몸짓, 이 생각짓은
짓이라고 하는 것은 뭘 짓는다, 이것 아니에요?
짓는다. 그죠?
짓, 이러면 명사화 된 거에요.
衆雜이라 하면
온갖 잡짓을 하더라도 모든 것이 바라밀이 돼야 돼.
여기서는 잡이라는 말이 그래 나쁜 말은 아니요.
좋은 말이라.
衆雜, 여러 개 그러니까
妙寶로
산호도 섞고, 진주, 금 덩어리, 금은, 그죠?
우리 세상에 귀하다고 하는 건 다 섞어놓은 것이라.
우리가 사실은 사람끼리 이렇게 모여들 때
우리 열 명 스무 명 모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석처럼 빛나야 되거든.
衆雜妙寶로 以爲는
뭐뭐로 삼다, 이런 말이죠. 그죠?
아주 줄기는 온 몸체는 나무 통채가 다이아몬드로 되고
다이아몬드 중간에 굵은 줄기는 유리로 되고
그 가지들은
가지와 잔 가지 지조枝條,
조금 굵은 가지는 枝고
조금 더 가는 가지는 條죠.
조목조목 條
그것들을 전~부 다 편편히
이런 얘기들이 무슨 얘기냐 하면
사실 보리수를 견주어가지고
우리 마음의 경지가 큰생각도
한 줄기 하루종일 이 마음을 가지고 살면
가마솥에 밥 하듯이 알알이 전부 다 돌 하나 섞이지 않고
쌀이고 오곡 잡곡이 들어가 있다 이거지.
가마솥에 밥 할 때 모래나 자갈이,
능엄경 할 때 배웠지?
상계이선像季已還에 도술道術이 기열旣裂하야
명심지사明心之士는 망인연진妄認緣塵하야
기재무기奇才茂器가 증사미객蒸砂迷客이로다
나오는 것 있잖아. 왜?
증사미객蒸砂迷客이라.
기재무기奇才茂器가, 정말로 우뚝한 근기가 되고
참 수승하고 아주 찬란하고 아름다운 나무가
다 썩어빠져가지고 기둥도 되지 못하고
소나무가 썩어버리면
기둥도 못되고 대들보도 못되고 얼마나 안타까우냐.
기재무기奇才茂器가 증사미객蒸砂迷客이라.
하~! 가마솥도 볼만 하고 참 땔감도 좋은데
거기다 식량거리가 없어가지고
모래나 집어넣어가지고 잔~뜩 밥을 해가지고
능엄경에 뭐라 나오노?
천 년 만 년 불을 때봐라.
뜨거운 자갈이나 모래일 뿐이다.
그래 나오지?
중은 어쩌든지 가는 자죽 자죽이 황금 국토의 발길이 돼야 되고
가지 끝마다 전부 다 잎사귀까지
모두가 황금 가지가 돼야 된다는 거지.
중잡묘보衆雜妙寶로 이위지조以爲枝條하며
그리고 잎사귀는 또 어떠냐?
보배 잎사귀는 부소扶疏하야
보배 잎사귀는 잎은 또 부소扶疏하야
무성하게 그래 툭 터지게 잡고, 유지가 되고,
그 그늘은 어떠냐?
수음垂陰은 여운如雲이라
구름처럼 드리운 것이
보화잡색寶華雜色으로
그 꽃들은 어떠냐?
온갖 보석 같은 꽃 寶華가
雜色으로 무지개 빛깔로 형형색색으로
분지포영分枝布影하며
分枝, 가지마다 그 그림자를 잔~뜩 드리워 있다.
또 다시 復,
다시 부復자
역부여시亦復如是 할 때 부復자
以摩尼로, 마니보배로
摩尼는 상징하는 게 뭐라고 얘기했습니까?
청정 자성이라.
깨끗한 여의주 같은 것
투명한 그런 아주 보배
마니摩尼로 이위기과而爲其果하야
야~ 그러니까 보배,
다이아몬드로 된 몸통에서
유리로 된 줄기에서
보석으로 된 가지에서
또 숱한 보배로운 잎과 꽃에서
열리는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은
뭐 보나 안보나 뻔한 뭐겠어요?
마니로 된 여의주 같은 결과물이 달리죠.
그 여의주 같은 결과물을 우리 흔히 보리수 열매를 뭐라고 하죠?
수다원과須陀洹果
사다함과斯陀含果
아나함과阿那含果
아라한과阿羅漢果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그죠?
거기 뭐 사과 배가 달리겠나...
세속의 유위법이 달리는 게 아니다 이거지.
그리고 경전을 볼 때는 항상 감동할 태세로 봐야 되는 거라.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뭐가 돼냐 하면 소설이 돼버리거든.
이것 사실이거든.
이치에 견줄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구리선에 전기가 흐르지 않으면
희미한 30촉 등불 하나도 못 밝히는 것이라.
단지 선일 뿐이라.
그 전기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심정이나 역대 선지식이
'무슨 뜻으로 우리에게 이 글을 전했을까~'
하는 이 행간의 뜻을 자꾸 살펴야 된다.
글자 이면에 숨어 있는 것
글자 까짓것 해석하는 것 누가 못 해.
글자 해석 이전에 뜻 해석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자~꾸 깊이 보고 깊이 보고
우리가 정말 이 코구멍 두 개 있는 것이 신비로운 것이거든.
피가 뛰고 이 맥박이 뛰는데
사람이 이 신비로움을 모른다면
그건 밥이나 먹는 축생에 가까운 것이지.
하나의 동물이지 그게 인간이냐?
그렇지 않거든.
인간은 인간을 위해야 될 의무가 있거든.
부처님이 그 먼 아득한 거리에서
지금 말뜻으로 전하지도 않고 전화번호도 모르는데도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가슴으로 어떻게 전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그것이 이 경전이라고 했을 때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위패 하나 써놓으면 조상이 달라붙는 건 아니지만
그 위패에 글을 하나 씀으로써 의미가 새겨지잖아.
영가에 대한 의미 그죠?
그것과 똑같은 것이라.
저 법당에 인등 하나 켠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절~대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러나 그 인등을 하나 사물적으로 현상적으로 켬으로 해가지고
속으로 뭔 생각을 해요?
자신감이 생겨진다고
축원 카드에 이름을 하나 올렸는데
그것 올렸다 안 올렸다 무슨 벌 받겠나 상 받겠나 그런 거는 없어요.
그렇지만 축원 카드에 한 번,
부처님은 못 들어도 괜찮지만
축원 카드 이름 올린 자기는 들어야 돼요.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석가모니부처님 아미타불 이름 안 불러준다면
부처님 의미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라. 사실은
머리 깎은 우리가 해야지.
부처님의 제자들은 부처님 입으로 탄생이 된다고 나와.
불구佛口로 생자生子라.
부처님 입으로 부처님 제자가 탄생한다는 건 무슨 뜻이겠어요?
부처님 설법을 듣고 감동을 하고
부처님 귀로 따라 가는 것이 부처님의 제자인데
여러분들 서장 배울 때 배웠죠?
온 몸이 도를 다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녹여가지고 원점으로 돌려라.
통신정안通身正眼,
온몸이 정법안장을 다 갖추고 청정법신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재再, 다시
가단加鍛이라, 다시 가히 녹여야 될 것이다.
아만 피우지 마라 이거죠.
왜냐 하면 허공 같은 번뇌가 있으니까.
해월!
이 허공 같은 번뇌는 어떻게 볼 수가 있죠?
강력한 빛이 들어왔을 때 볼 수가 있지.
부처님의 빛을
일반 중생은 절대 보이지가 않지.
이런 희미한 빛으로 형광등 빛으로 안보이잖아.
강력한 햇빛 줄기가 나왔을 때
능엄경에서는 그런 구절을
객진 번뇌客塵煩惱를 설명하면서 그 대목이 나오지.
여관에 자다가 손님은 떠나고 없지만 주인은 떠나지 않는다.
떠나지 않는 마음에 대해서
그래 얘기하잖아요. 그죠?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 거는 손님이라 하고
객번뇌客煩惱를 그렇게 얘기하고
진번뇌塵煩惱를 얘기할 때
티끌 같은 번뇌를 얘기할 때
일반적인 티끌은 눈에 보이지만
아~주 깊은 허공 같은 티끌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잖아.
창틈 사이로 빛줄기 하나 강하게 들어왔을 때 보이는 것처럼
비로소 무생법인을 얻어야 그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무생법인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녹아서 없어진 것은 아니고
무생법인 부동지를 얻고 난 뒤부터
계속 법에 대한 이치를 파악하고
아주 지혜롭게 견디고
그리고 무량무궁한 공덕으로써
모든 사람을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참 몸통도 소중하고, 줄기도 소중하고, 건강도 소중하고,
부차적인 부수적인 소재들 부재들도 다 잎과 잎사귀와 꽃
이런 것들이 전부 진실됐기 때문에
그 결과물 또한 뭐다?
마니로 결과물로 삼았다.
이것이
함휘발염含暉發焰하야 여화간열與華間列하니라
모든 것이 함휘含暉, 빛나는 것을 함하고, 머금고
우리 토함산吐含山 있잖아?
吐含, 달을 머금었다 달을 토해냈다, 그지?
일출도 좋고 일몰도 좋고 하니까
토함吐含, 吐는 뱉어내는 것이고 含은 머금는 것이지.
토함산 올라가면 달빛도 좋고 햇빛도 좋고 하잖아.
빛을 머금고 빛을 발하며
그러니까 여기는 함발含發 해놨잖아요. 그죠?
含發을 다른 말로 하면 뭐요?
함토含吐, 토함吐含
꽃과 꽃 사이에 나열하여 있었습니다.
與華間列하며
꽃과 더불어서 間列, 사이사이에 나열돼 있었다.
자~ 그 다음에
기수其樹는 주원周圓하야
그 보리수의
周圓, 주위에서는 돌아가면서
한글로 한 번 해석 봐요~
咸放光明이라
그 나무 周圓, 나무 빙~ 둘러 주위에는
咸放, 모두 다 光明을 놓고
그 광명 속에서는
또 무엇을
비 내리듯이
쏟아 붓습니까?
마니보배를 쏟아 붓는다.
우리 절에 살면 매일 목탁 치는 소리
부처님 독경하는 소리가 전부 광명이죠.
그러니까 색성향미촉법을 광명으로 이해해야 돼.
색으로만 나오는 것이 광명이 아니라
향기도 광명이요,
소리도 광명이요,
욕하는 건 광명이 아니고 지버분 하잖아.
맛도 광명이다.
범혜는 이런 소리 들으니까
'그거는 뭐 빛 아닌데요...?'
이러고 싶어?
허망해?
이해가 안 가?
그렇게 자꾸 느껴야 돼.
그러니까 보배,
여러분들이 기존 고정관념으로 돼 있는
금은 보배 보석 이런 정도의 보배가 아니라고
세상 모든 것 따지고 보면
피부 살갗 하나까지 손톱 하나까지 전부 뭐겠어요?
보배스러운 것이라.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눈썹 털 하나까지도 소중한 것이라.
자~ 이 정도가 아니라.
그러니까 이 법을 찬탄하려고 찬탄하려고 하는 마음들이
문장 속에서 막 읽혀져요.
그러니까 그것을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그 자비심이 읽혀지는 것이라.
摩尼寶內에
摩尼 보배 안에 뭐가 있어요?
보살들
최고의 인격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보리살타라 하잖아요. 그죠?
보디사트바
하~!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 나무도 아름다웠는데
나무 가지도 아름다웠는데
나무 꽃 줄기 잎사귀 다 아름다운데
결과물도 아름다운데
더 아름다운 것은 그 마니 결과 열매 속에는 뭐가 있다는 말이야?
보살이 꽉~ 차 있는데
한 두 명도 아니고
하~! 사과 그것 왜 뽈따구니~하게 익어가노?
사과꽃부터 뽈따구니~ 하잖아. 그게
흰꽃에다 빨간 게 묻어 있거든.
배꽃은 속이 왜 하얗지?
배도 이렇게 보면
배 열매의 껍질이나 배나무의 껍질이나 배 잎사귀의 껍질이나
이렇게 모양새를 보면 똑같아요.
감도 그렇고
그런 것 못 느껴요?
감씨 있잖아?
감씨나 이렇게 감 줄기 돼 있는 거는
솔방울이나 소나무 껍데기나 이렇게 보면 똑같이 생겼다니까.
그 뿌리까지
그러면 보이는 사판 것도
물질적으로 형성돼 있는 것도 비슷하지만
거기에 흐르는 이치도 비슷하게 돼 있는 거라.
한국 사람이 이 껍데기 노리끼리하게 이렇게 생겼는데
피 속에도 잡아 당기면서 DNA 해가지고
저쪽 피하고 연결시켜버리면 뭐가 나오겠어요?
노리끼리한 게 나온다니까.
이제 이해 가요?
네
이치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자꾸 간파해야
중노릇 하는 맛이 나는 것이라.
그러면 업이 남아가지고 내부터라도
사람을 바로 잡으려고 하고 나무라고 그런 것도 있지만
거지나 깡패나 이렇게 살인마를 볼 때도
사람의 소중한 것까지 같이 보게 된다고
그러니까 부처님이
앙굴리마라같이 99명을 죽인 사람도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의 불성을 보고
제자로 거둬들여서 이렇게 제접할 수 있는 거지.
우리는 그게 되나... 내한테 좀 괴롭히면
'아이 저 미운 놈 저게 상판이라고... 저놈 쫓아보내버려야지!'
그게 안되는 거야~!
'와~! 신기하네~ 저 도둑놈 저기에게도 불성이 있다.'
이렇게 봐야 되는 거라. ㅎㅎ
摩尼寶 안에 보살이 있다고 하는 거는
야~! 이런 걸 옆에 적어놔.
이걸 心相이라 그래. 심상
아까 金剛으로 爲身했다는 것 있잖아요?
네
그건 心體야. 마음의 본체고
여기는 마음의 모양이라고 하는 거는 어떻게 생겨 먹었느냐?
진짜의 마음의 모양은
생각하고 달리 말이요.~
자성 청정의 마음의 모양은 이렇게 보살심을 가지고 있다.
보살은 뭘 상징합니까?
자리이타自利利他
발고여락拔苦與樂
여민동락與民同樂 그죠?
어떻게든지 남에게 고통을 뽑아주고 즐거움을 주려고 하는 것
그걸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고 얘기하죠. 화광동진
화이부동和而不同
동이불화同而不和는 되면 안되겠지요?
동이불화 하는 거는 아~주 악업장 있는 놈들이
모습만 똑같고 중이고
같이 물에 기름 섞이듯이 섞이지를 못 해.
물하고 기름하고는 얼추 비슷한 것 같지만 섞이지 못하잖아.
同而不和야.
그런데 부처님 입장에서는 和而不同이라.
섞이지만 같이 중생 노릇 같이 하고
똑같이 중생들하고 살지만 중생은 아니라.
不同이야.
和而不同이야.
백 퍼센트 섞여야 돼.
'나는 율사인데 고기 안먹어.'
음...좋아
안 먹는데 다 구워줘.
조화롭게 섞여 살아.
그런데 지는 안 먹어도 돼.
그런데 동이불화同而不和는 어떠냐?
모습만 똑같고
'먹자' 이러면
'나는 안 해. 니하고 다르다.' 고 특별하다고
다른 건 있지만
다른 거야 다 다르지.
같은 게 또 있잖아요?
부처님하고도 한점의 다른 게 없는 우리한테는 불생불멸이 있잖아.
마니보배 안에는
뭐가 있다?
보살이 가득 차 있고
어느 정도로 가득 차 있어요?
그 무리가 如雲, 구름떼처럼 가득 차 있는데
언제 나오느냐?
자! 들려요?
들리냐고?
네
이렇게 그러니까 뭐 대답 안하고 아만심이 높냐고 이러면
안에 대답하기 싫다는 생각이 먼저 팍 일어나버려.
이 아만이라고 하는 거는
우리가 간파할 수 없는 만져지지 않는
모든 아이디어가 말라식이라고 하는 7식이
아이디어도 생각도 영감도 떠오르게 하고
악질적인 것도 떠오르게 하는데
그게 순간적으로 싫다 좋다를 판단해.
안쪽에 딱 배겨서
그게 주인공 노릇해.
바깥으로 딱 떨어져 나오면 어떠냐?
괴롭다 즐겁다로 이렇게 따지고
육식으로 뻗어져 나오고
그런데 턱! 던지면
대답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손 들어라' 하면 안 드는 사람 있거든.
이래 보면 굉장히 아만스러운 사람들이야.
자기 고집이 있는 사람들이야.
그런 걸 놓기 위해서는
즉시에 대답하고
그러니까 대답할 때 대답하고,
손 들 때 손 들고, 입을 때 입고,
이런 것들은 그런 뭐라 할까...
아만심을 끊는데 굉장히 좋죠.
구시출현俱時出現이라, 함께 나왔다.
한 놈만 나온 게 아니다. 그죠?
이러면 니 먼저 가라, 나 좀 있다 갈게, 나 좀 있다 대답할게, 손 들게,
이런 게 아니야.
언제 나와버려?
동시에 나와버려.
이런 걸 화엄경에서,
옆에 써놔요.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이라 하죠.
同時具足相應門
이것 기신론에서는 어떻게 해석했느냐 하면,
거기 써놔요.
구시이유俱時而有라.
함께 이유而有, 말이을 이而자, 있을 유有자,
함께 있는 거야.
同時具足 돼 있는 거야.
내가 여러분들께
'대답하세요~'
이렇게 했는 거는 뭐에요?
내가 한 마디 던졌는데 전체가 어떻게?
같이 가지고 있다고
그걸 구시이유俱時而有를
구시출현俱時出現을 설명하려고 그랬잖아요? 그렇죠?
어떨 때 미국에 전화할 때도 있고
여러분께 전화할 때도 있잖아.
여기 사람이나 저기 사람이나 어때요?
동시구족 돼 있는 거라.
옆에 주변에 중계탑을 이용하고
위성을 이용해가지고 전화는 되잖아요?
전화는 되는데
그러면 내 목소리가 한국에 있는 거요? 미국에 있는 거요?
동시에 있습니다.
天台圓法師自戒천태원법사자계
(천태지원법사가 자신을 경계하는 글)
三界悠悠一囹圄에 羈鎖生靈受酸楚로다
삼계유유일령어 기쇄생령수산초
本來面目久沈埋하야 野馬無韁恣飄鼓로다
본래면목구침매 야마무강자표고
삼계는 끝없는 하나의 감옥
생령生靈을 재갈 물리고 사슬 씌워 혹독한 고통을 받게 하니
본래면목이 오래도록 잠기고 묻혀서
아지랑이는 고삐 없이 제멋대로 뛰놀도다.
欲火燒殘功德林하고 逝波傾入無明塢로다
욕화소잔공덕림 서파경입무명오
紛紛萬類器中蚊이라 啾啾鳴亂沈還擧로다
분분만류기중문 추추명란침환거
욕심의 불길은 공덕의 숲을 모두 태우고
흐르는 물결은 무명의 언덕으로 기울어져 들어가니
어지럽고 어지러운 만류萬類는 그릇 가운데 모기라
웅웅 거리며 우는 소리 어지럽게 잠겼다가 다시 들려온다.
亦曾天帝殿中遊라가 也向閻公鍋裏煮로다
역증천제전중유 야향염공과리자
循環又撞入胞胎하야 交搆腥臊成沫聚로다
순환우당입포태 교구성조성말취
일찍이 천상 제왕의 뜰 가운데 노닐다가
또한 염라대왕의 가마 속으로 들어가 삶기니
돌고 돌다가 다시 포태胞胎로 들어가게 되는지라
비린내 누린내 서로 엉겨서 거품덩이를 이루었다.
一包膿血暫扶持요 數莖白骨權撑拄로다
일포농혈잠부지 수경백골권탱주
七情馳騎不知歸라 六賊爭鋒誰作主오
칠정치기부지귀 육적쟁봉수작주
한 보따리 고름과 피로 잠시 붙들어 지니고
두어 줄기 백골로 임시 버티고 있으니
칠정七情은 치달림에 돌아올 줄을 모르고
육적六賊이 선봉을 다투나 어느 누가 주인이 될까.
春風不改昔時波하야 依舊貪嗔若狼虎로다
춘풍불개석시파 의구탐진약랑호
改頭換面弄機關하야 忍氣呑聲受辛苦로다
개두환면롱기관 인기탄성수신고
봄바람은 옛 시절의 물결을 고치지 않기에
예와 다름없이 탐내고 성냄이 이리와 호랑이 같도다.
머리를 고치고 얼굴을 바꾸어 기관機關을 희롱하며
기운을 참고 소리를 머금어 괴로움을 받도다.
貴賤賢愚我與人이 是非榮辱今猶古로다
귀천현우아여인 시비영욕금유고
金烏玉兎自磨空하니 雪鬢朱顔이 盡成土로다
금오옥토자마공 설빈주안 진성토
귀하고 천하고 현명하고 어리석은 나와 남,
옳고 그르고 영예롭고 수치스러움이 지금도 예전과 같도다.
금가마귀와 옥토끼가 스스로 허공을 갈아 가니
눈 내린 귀밑머리와 붉은 얼굴이 모두 흙이 되었다.
我嗟瞥地一何晩하야 隨波逐浪空流轉이로다
아차별지일하만 수파축랑공류전
追思古聖與先賢컨댄 掩袂令人獨羞赧이로다
추사고성여선현 엄몌령인독수난
내 슬퍼하나니 깜빡 사이에 한 번 어쩌다 늦어서
파도 따라 물결 쫓아 헛되이 흐르고 굴렀네.
옛 성인과 앞선 현인들을 추모하여 생각해 보건대
소매를 가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홀로 부끄러워 붉어지게 하도다.
而今捉住主人翁이면 生死魔來我誰管가
이금착주주인옹 생사마래아수관
昔時伎倆을 莫施呈하고 今日生涯를 須自勉이어다
석시기량 막시정 금일생애 수자면
지금이라도 주인옹을 붙잡아 안주시키면
삶과 죽음의 마군이가 오더라도 나에게 무슨 관계가 될까
예전의 잔재주를 베풀어 바치지 말고
오늘의 삶이나 모름지기 스스로 힘쓸지어다.
是非窟裏에 莫回頭하고 聲利門前에 高着眼이니라
시비굴리 막회두 성리문전 고착안
但於自己覓愆尤언정 肯與時流較長短가
단어자기멱건우 긍여시류교장단
시비의 굴속으로 머리를 돌이키지 말고
명예와 이익의 문 앞에선 더 높은 곳에 눈을 둘지어다.
다만 자기에게서 허물을 찾을지언정
어찌 시류時流와 더불어 즐겨 장단을 비교하겠는가.
一點靈光이 直照西하면 萬端塵事任舒卷이로다
일점영광 직조서 만단진사임서권
不於蝸角竊虛名하고 獨向金臺預高選이어다
불어와각절허명 독향금대예고선
한 가닥 신령스런 광채가 곧장 서쪽으로 비추면
만 가지의 세속 일을 마음대로 펴고 쥘 것이다.
달팽이 뿔 위에서 헛된 이름을 도적질 말고
홀로 금대金臺를 향하여 높은 선발選拔에 참예하라.
從他病死與生老하고 只此一回相括惱니라
종타병사여생로 지차일회상괄뇌
修行이 惟有下梢難하니 竪起脊梁休放倒니라
수행 유유하초난 수기척량휴방도
병들고 죽는 것은 나고 늙는 것과 더불어 내버려두고
다만 이 한 차례에 과감히 힘써 볼 지어다.
수행은 오직 그 끝에 어려움이 있으니
척량골脊梁骨을 곧추세울 뿐 놓아서 쓰러뜨리지 말지어다.
莫敎錯認定盤星하고 自家牢守衣中寶니라
막교착인정반성 자가뢰수의중보
願同法界寃與親으로 共駕白牛遊直道하노라
원동법계원여친 공가백우유직도
정반성定盤星을 그릇되게 인식하지 않도록 하고
자기 옷 가운데 보배를 굳게 지켜라.
원컨대 온 세계의 원수와 친한 이가 더불어
다 함께 흰 소를 멍에하고 곧은 길에 다니기를 바라노라
【난자】
聆=들을 영. 羈=맬 기. 酸楚=苦楚. 韁=고삐 강. 塢=마을, 언덕 오.
搆=끌 구. 遘=만날 구. 媾=성교할 구. 腥臊=비린내와 찌린내.
【문법】
管은 管攝= 지배함.
獨; 홀로 다만. 오직.
令人; 좋은 사람. 착한 사람.
令은 접두사로서 상대방의 가족이나 친지를 높혀 부를 때. 令親=高親; 당신의 친척분.
令堂=慈堂=令慈; 상대의 어머니. 令愛; 따님.
惟有=只有; ꃌ다만. 오직. ꃥ오직---하여야만. ---함으로써만.
莫敎=莫非; 혹시---일지도 모른다. ---하지 못하게하다.
【새로운 단어】
逝波=逝水; 流水(지난 세월)
撞入=突入. 權; 잠시. 임시.
交媾=성교. 腥臊; 찌린내. 비린내.
追思=追念; 추상 추모 추억하다.
聲利; 道의 명성과 이익.
羞赧;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다. 赧=붉힐 란. 赮=붉은빛 하.
時流=그때의 풍습, 유행. 愆尤=허물 잘못.
預高選 높은 選佛場에 참여하다
施呈=施逞=施展=施爲=발휘하다, 보이다, 나타내다.
括; 파악하다. 궁구하다. 단지 이번 한번에(이번생에) 서로 (총괄)총력을 다하여 힘써(고뇌,고민해)보자
放倒; 거꾸로 놓다(하다). 풀어져서 넘어지다.
放倒; 풀어 놓아서 넘어지다. 거꾸로 놓다. 거꾸로 하다.
定盤星; 저울의 0점자리.
【주해】
囹圄; 夏之夏臺와 殷之羑里와 周之圜土와 秦之囹圄는 皆獄名이라 囹者는 令之使聆이요 圄者는 語之使悟也라.
♤夏나라 때의 하대, 殷나라 때의 유이, 周나라 때의 환토, 秦나라 때의 영어 등은 모두 감옥 이름이다. 囹은 명령을 내려 듣도록 하는 것이요, 圄는 말하여서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生天. 하늘에 태어남.
入獄. 지옥에 떨어짐. 鍋=가마솥과.
得人身. 사람의 몸을 얻음.
交遘腥臊; 生肉曰腥臊요 豕犬曰膏臭라 阿難曰欲氣는麤濁하야 腥臊交遘라.
♤날고기의 역한 냄새를 腥臊라 하고, 돼지나 개의 역한 냄새를 膏臭라 한다. 아난이 말하기를 「욕망의 기운은 거칠고 혼탁하여 비린내와 누린내가 엇갈려 마주친다」라 하였다.
七情; 卽七識也라 ♤곧 7식이다. 喜․怒․哀․樂․愛․惡․欲.
六賊; 六識이라 ♤6식이다.
機關; 華嚴䟽에 云機關을 抽之則動하고 息之則無라 鈔에 容物動處를 名爲機요 於中轉者를 說爲關이라.
♤《화엄경》의 踈에 이르기를 「機關은 잡아당기면 곧 움직이고 그만두면 곧 아무런 동작도 없다」라 하고는 그 鈔에, 물건을 받아들여 움직이는 곳을 機라 이름하고 그 가운데 회전하는 것을 關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金烏; 淮南子에 日中에 有踆烏라하니 謂三足烏也라.
♤《회남자》에 「해 가운데 踆烏가 있다」 하였으니, 세발 달린 까마귀를 말한다.
玉兎; 西域記에 云劫初에 有兎狐猿이 異類로 相悅이러니 時에 天帝가 欲試修菩薩行者하야 化爲一老夫하야 謂三獸曰二三者야 善安隱乎老夫가 故此遠尋은 今正飢乏이라 何以饋我오 曰幸小留하라 狐得鯉魚하고 猿採花菓하야 同進老夫호대 惟兎空還하야 謂猿狐曰多聚草木爇火하라하고 兎謂老夫曰身雖卑劣이나 充此一飡이라하며 入火致死하니 是時에 老夫復帝釋身하야 除燼取骸하고 歎謂二獸曰一何至此오 不泯其迹이라하고 寄之月輪하야 傳于後世라하니라.
♤《서유기》에서 말하였다. 「태초에 토끼와 여우와 원숭이가 있었는데 다른 부류였지만 서로 기뻐하며 따랐다. 그 때 천제께서 보살행 닦는 것을 시험해 보고자 한 노인네로 변신하여 세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들 편안히 잘 있었느냐? 이 노인네가 이렇게 멀리 찾아온 까닭에 이제 막 배고프고 피곤한데 무엇으로 나를 대접하겠느냐" 하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한 뒤에, 여우는 잉어를 잡아오고 원숭이는 꽃과 과일을 따와서 함께 노인네에게 올렸는데 오직 토끼만이 빈손으로 돌아와서 원숭이와 여우에게 말하기를
"풀과 나무를 많이 모아 불을 지펴 달라" 하고는 토끼가 노인네에게
"제가 비록 비천하고 용렬하나 이로써 한 끼의 식사로는 충분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뒤 불로 뛰어들어 죽기에 이르렀다. 이 때 노인이 제석의 몸을 회복하고는 깜부기불을 제거하고 해골을 취한 뒤 두 짐승에게 찬탄하며
"한결 같이 어찌 이러함에 이르렀는가, 그 자취를 없애지 않으리다"라고 말하고는 달에 위탁하여 후세에 전해지게 하였다.」
※幸=미안합니다만. 饋=식사 궤. 爇=싸늘 설.
燼=나머지 신. 寄=붙어있게 할 기.
從; 任也라 맡김이다. 從은 縱(놓아둘 종)과 통용.
下梢; 下梢猶云末梢也라.
下梢는 ‘끄트머리’라고도 말한다고 하였다.
定盤星; 秤上第一星이니 以比八識이라.
저울의 제일 첫 번째 별자리이니, 그것으로 제8식에 비유한다.
見法華經 五百弟子授記品하다.
《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을 보라.
三草二木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
『법화경』의 일곱 가지 비유 중에서 세 번째 비유가 「약초유품(藥草喩品)」에 등장하는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다. 이 삼초이목의 비유에서도 우리는『법화경』에서 한결같이 설명하는 방편과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법화경』에는 범본, 티벳본, 한역본 등이 있다. 이런 판본들은 유행하는 과정에 따라 다른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늘상 독송하는 『묘법법화경』과 범본 『법화경』을 비교하면 차이가 있음을 안다. 「약초유품」도 한역본과 범본을 비교하면 차이가 많다. 분량면에서도 한역본보다는 범본의 분량이 많다. 따라서 범본에는 있지만, 한역본에는 없는 내용도 많다. 이번 호에서부터는 주로 범본을 통해 「약초유품」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삼초이목의 비유는 한역본과 범본에서 동일하게 등장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약간의 차이도 발견된다.「약초유품」에서 삼초이목의 비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운우(雲雨)의 비유를 언급하고 있다. “까샤빠여, 이 삼천대천세계에는 풀, 관목, 약초, 수목이 있다. 그곳에 있는 여린, 부드러운 줄기, 가지, 잎, 꽃을 가진 풀, 관목, 약초, 수목, 나무, 큰 나무는 모두 그 큰 구름에서 방출된 빗물로부터 힘에 따라, 영역에 따라 물을 흡수한다. 동일한 구름에서 생긴 동일한 맛의 빗물에 의해 씨앗이 여러 가지 종류로 커지고, 싹이 트고, 자란다. 그와 같이 꽃과 열매를 맺고, 각각 갖가지 이름을 얻는다.”
더운 인도에서 비는 하늘의 축복이다. 40도를 웃도는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줄 수 있는 것도 비요,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것도 비다. 비가 없으면 사람도, 풀도, 나무도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에서 비는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귀한 존재다. 이 귀한 비를 맞고 풀, 관목, 나무, 큰 나무 등이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가지를 펼쳐, 꽃과 열매를 맺는다.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라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갖는다. 다른 이름을 갖는 것은 다른 작용력 때문이다. 풀의 크기가 다르고, 향이 다르고, 꽃과 열매가 다르다. 하지만 모든 초목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동일한 빗물을 먹고 자라지만 각각의 형태를 가지는 것이 방편이다.
비유에서 갖가지 풀과 나무는 중생을, 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하늘에서 비는 차별 없이 내린다. 하지만 풀과 나무는 자신의 힘과 영역에 따라 물을 흡수한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많은 물을 흡수한다. 뿌리가 얕은 작은 풀은 적은 물로도 충분하다. 빗물은 동일하지만 그 빗물을 통해 살아가는 초목의 모습은 다르다. 비는 부처님의 법우(法雨)다. 부처님이 내리는 법우는 하나의 맛이다. 하지만 빗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중생들도 부처님의 법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빗물이 모든 초목을 포용하는 것처럼, 부처님도 일체중생을 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약초유품」에서는 “여래만이 그 중생들의 능력, 노력의 우열(愚劣)이 다름을 알기 때문에 갖가지 법문을 설하셨다”고 설명한다. 풀과 나무가 크고 작은 것처럼 중생들의 능력에도 우열이 있다. 부처님은 그 우열을 아신다. 그 우열을 부처님만이 아시기 때문에 부처님은 그 우열에 따라 법을 설한다. 이것이 방편이다. 우열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지만, 그 우열을 근거하지 않으면 중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처님은 아신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훌륭한 도사(導師)이다.
경에서는 약초, 풀, 관목, 수목, 나무, 큰 나무 등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만, 천태에서는 이를 ‘삼초이목’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삼초는 작은 풀(小草), 중간 풀(衆草), 큰 풀(大草)의 셋이고, 이목은 작은 나무(小木), 큰 나무(大木)의 둘이다. 삼초를 게송에서는 ‘약초’로 설명한다. 약초는 일반적인 풀이 아니라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귀한 풀이다. 그냥 풀이 아니라 약초라고 한 것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자를 염두에 둔 것이다. 삼초이목을 천태대사는 천인승(天人乘), 성문승과 연각승, 보살승, 통교(通敎)의 보살, 별교(別敎)의 보살로 설명한다. 하지만 삼론종의 길장(吉藏)은 작은 풀과 중간 풀은 동일하지만, 큰 풀을 보살승 중에서 지전(地前)의 보살로, 작은 나무를 초지(初地)의 보살로, 큰 나무를 칠지(七地)의 보살로 설명한다. 범문을 살펴보면 천태대사의 설명보다 길장의 설명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작은 약초를 범문에서 “번뇌를 떠난 법을 요해(了解)하고, 열반을 증득한 것에 머무는 사람, 여섯 가지 신통(神通)과 삼명(三明)을 갖춘 사람들을 작은 약초라고 한다”라고 하는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을 천인승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게송에서 독각승과 보살승을 차례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삼초이목의 비유를 설명하고 난 다음 까샤빠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묻는다. “‘세존이시여, 만약 삼승(三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까닭으로 현재라고 하는 시간에 성문, 독각, 보살을 시설하여 설정한 것입니까?’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장로마하까샤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예를 들면, 까샤빠여, 도공이 똑같은 진흙으로 용기를 만들었다. 어떤 것은 흑당(黑糖)의 용기가 되고, 어떤 것은 우락(牛酪)의 용기가, 어떤 것은 발효유와 우유의 용기, 어떤 것은 부정한 것의 용기가 된다. 진흙이 여럿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넣는 물질에 따라 여러 가지 용기가 시설된다. 마찬가지로 까샤빠여, 탈 것은 불승(佛乘) 하나 뿐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의 탈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한역본에는 없는 내용이다. 삼초이목의 비유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 시설되는 방편을 밝힌 것이라면, 여기서 언급되는 용기의 비유는 결국 진실을 밝힌 것이다. 중생을 완전한 깨달음으로 이끌어주기 위해서는 방편이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 그 방편은 진실을 떠날 수 없다. 따라서 하나의 불승으로 모든 중생이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법화경』의 진실이다.
# 三草二木
"일체 중생으로서 나의 법을 듣는 자는 힘을 따라 받는 바의 모든 지위에 머무나니, 혹은 사람과 하늘의 전륜성왕과 석과 범의 모든 왕으로 있으면 이것은 작은 약초요, 새는 것이 없는 법을 알아서 능히 열반을 얻으며 육신통을 일으키고 그리고 또 삼명(三明)을 얻어서 홀로 산이나 수풀에 살면서 항상 선정을 행하여 연각을 증함을 얻으면, 이것은 중간 약초이고, 세존의 자리를 구하여 `나는 마땅히 부처님을 지으리라.`하고 정진과 정을 행하면, 이것은 위의 약초이니라.
또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 마음을 부처님의 도에만 오로지 하여 항상 자비를 행하며,
스스로 부처님 지음을 알고 결정코 의심이 없으면, 이것의 이름은 작은 나무요, 신통에 편안히 머물러서 물러나지 아니하는 바퀴를 굴리며 헤아릴 수 없는 억백천 중생을 제도하면, 이와 같은 보살은 큰 나무라고 이름하니라."
※ 삼초 (三草)
① 작은 약초(小草) : 불법에 귀의한 공덕으로 인간 세상에 나서 국왕 대신이 되고 부자가 되거나, 혹은 하늘 나라에 나서 제석천이나 범천이 되거나 하는 정도의 불자(佛子)
② 중간 약초(中草) : 번뇌를 끊고 무루법(無漏法)을 깨닫고 열반을 얻으며 신통의 법력까지 성취하여 깊은 산, 숲에 고요히 지내기를 좋아하고 세상의 5욕을 멀리한 채 선정만을 닦기를 힘쓰는 성문. 연각의 불자
③ 큰 약초(上草) : `성불하리라.` 하는 원력으로 정진을 하고 선정을 닦으며 육바라밀을 행하는 불자
※ 이목(二木) : 보살의 근기를 둘로 나눠 본 구별이다.
① 작은 나무(소수-小樹) : 항상 자비를 행함으로 당래(當來)에 성불할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보살
② 큰 나무(대수-大樹) : 불타의 큰 깨달음에 대해 물러나는 마음을 내지 않음으로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들을 제도하는 큰 보살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의 자비심으로부터 나온 일승의 법이지만, 듣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그 개성 능력. 신분. 계급에 따라 작은 중생은 작게, 큰 이는 크게 깨닫고 깊게 사무치는 이, 얕게 이해하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첫댓글 대단하신 지선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1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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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13 10:26
강사 스님 고맙습니다
강의 도중에 제자 이름을 거명할때는 마치 제 이름을 불러주는 양 행복했습니다
지선화님, 고맙습니다
녹취록을 다시 읽어 봅니다
저는 아직도 읽는 것조차 전전긍긍 합니다
읽어볼 수 있도록 녹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